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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인 악순환을 고치는 꿈 대박의 꿈보다 소중해
이화정 장영엽 사진 오계옥 2011-04-21

영화 기획제작, 마케팅, 연출, 시나리오 분야의 ‘팔팔세대’ 4인이 말하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50인의 ‘팔팔세대’를 한자리에 모으고 싶었다. 현장은 오늘도 끊임없이 가동 중이고,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대변할 4인의 젊은 영화인을 선정해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자 부탁했다. 지금 여러분의 현재, 그리고 고민은 무엇인가요?

<왼쪽부터 이소영, 한지혜, 이인성, 손상범>

이소영 시나리오작가. 18살 때 <화성으로 간 사나이> 시나리오로 영화계 입문, 시나리오작가가 부족한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여고괴담3: 여우계단> <아파트> <미확인 동영상> 등의 시나리오 작업. 계속 쓰는 것이 길이라는 단순명쾌한 진리를 깨닫고 시나리오 작업 중.

한지혜 감독.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출을 전공하고 있다. 지난해 전주영화제 숏숏숏 2010 프로젝트였던 옴니버스영화 <환상극장>이 개봉. 그 과정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는 그녀는 다시 심기일전해 단편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이인성 영화 마케터. 홍보대행사 영화인에서 시작, 지난해 N.E.W. 마케팅팀으로 이직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개봉을 앞둔 지금. 그 사이 드라마 홍보로 외도도 하면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아낌없이 영화 홍보에 쏟아붓는 중.

손상범 기획제작자.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의 조연출로 영화계 입문. 이후 CJ E&M에 입사해 <달콤한 거짓말> <그림자살인> 등에 제작지원, <해운대> <마더> 등에 투자지원으로 참여했다. 지난해 대리로 승진, 첫 번째 기획 작품 <코리아> 준비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손상범_ 지난번에 인터뷰할 때 사진촬영이 힘들었다. 사진기자분이 안경을 살짝 잡으라기에 따라했는데 하면서도 민망하더라. 아니나 다를까, 잡지 보고 사람들이, ‘너무 설정 들어간 거 아냐!’라며 핀잔을 주더라. (웃음)

이인성_ 지난해 이맘때 회사를 막 그만두려고 맘먹었는데 하필 그때 인터뷰 요청이 왔다. 후배한테 넘기려고 했는데 결국 설득당했다. (웃음)

한지혜_ 난 정말 수많은 단편영화감독 중 한명일 뿐인데, 이런 자리에 나오라니 민망하더라. 특히 ‘팔팔통신’ 쓸 때 너무 부담스러웠다. 다른 스탭들은 현장에서 겪은 일을 쓰는데 난 집에서 혼자 시나리오 쓰고 있을 때였다. 지난해에 메이킹도 찍었고, 다른 스탭들이랑 비슷한 일 했는데 ‘감독’이란 호칭도 낯뜨겁더라.

이소영_ 시나리오 작가야말로 개인 작업이 가장 많은 일 아닌가. 나서기가 그랬는데 거절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시더라. (웃음) 기자분이 ‘당연히 하실 거죠?’라고 묻기에, 얼떨결에 참여했었다. 지난해에 인터뷰할 땐 그냥 별 생각 없었는데 연초에 시나리오작가와 관련해서 불미스런 사건도 있고 해서 이번 인터뷰는 조심스럽더라. 무언가 대변하거나 변명한다는 게 오히려 고인에겐 실례가 되는 것도 같고.

손상범_ ‘88만원 세대’라고 말하면, 원래 대학은 졸업했는데 뚜렷한 적을 갖지 못한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솔직히 난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100% 공감한다고 하면 그것도 거짓말일 거다. 그런데 연출을 전공했으니 이해는 간다. 친구들 대부분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낮에는 아르바이트하고, 밤엔 시간 쪼개 시나리오 쓰는 거다. 가시적인 결과물이 있으면야 직함을 가지지만, 그런 게 없으니 친구들 대부분이 밖에서는 스스로를 ‘백수’라고 칭한다. 물론 88만원 세대가 현실적인 벽에 부딪힌 사람들이라면, 영화하는 친구들은 자기 이상이 뚜렷이 있으니 달리 분류해야 할 것도 같다.

한지혜_ 난 아르바이트를 3∼4개, 닥치는 대로 장난 아니게 많이 한다. 생업은 그렇게 해결하고 지난주까지 영화를 한편 찍었다. 3일간 찍었는데, 이번 영화 제작비는 학교에서 어느 정도 지원해줬다.

이소영_ 지원비가 어느 정도나 나오나.

한지혜_ 시나리오 선정해서 200만원씩 준다. 그런데 문제는 배우가 100명 정도 필요했다. 하루에 30명씩 3일 동안 다른 사람들로. 토끼가 사람 물어뜯어서 죽이는 이야기인데 마지막 날 밥값만 60만원이 나왔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살면서 말도 안되는 작업을 한 거다. 이런 얘기하기 부끄러운데 어쨌든 지난해엔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소영_ 그 영화 너무 재밌을 것 같다. 나 역시 힘들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상황이 좀 괜찮을 때도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힘들다, 영화인 처우가 왜 이 모양이냐 이런 걸 너무 생각하니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다. ‘구조적인 걸 고민하는 시간에 차라리 쓰자!’ 하고 맘을 다졌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계속 썼다. 곧 개봉할 <미확인 동영상>에도 참여했다. 난 본질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이 구조화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한지혜_ 우석훈(우석훈은 박권일과 함께 <88만원 세대>를 썼다-편집자)이 하는 말의 논지가 그거다. 너희가 다 그렇지, 결국 안된다는 게 핵심이다. 이 세대는 사회에 나오는 순간, 쭉 그런 방식으로 묶여서 통용되어왔다. 결과적으로 ‘나는 안된다’를 주지하고 나니까 내가 노력 안 해서 못하는 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안된다고 해버리는 거다. 열심히 놀고 있으면서, ‘나는 안되니까’라고 규정하는 거다.

손상범_ <미녀들의 수다>에서 언급된 루저의 정의로 따지면 나도 루저다. 기준선이 없을 땐 몰랐는데 180cm라는 걸 규정하고 나면 난 그 범주에 속하게 된다. 부정적으로 지금의 젊은 세대를 보자면 이런 개념과 비슷하다고 본다.

지난 1년, 충무로의 변화는…

이인성_ 개인적으로 서른에 대한 의미를 내 인생에서 굉장히 크게 생각했다. 다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진 거다. 그래서 지난해에 정말 뜬금없이, 다른 직장도 구하지 않고 회사를 그만둬버렸다. 막상 저지르고 보니 되게 걱정되더라. 백수 되면 어쩌지, 모아둔 돈도 없고 집세도 내야 하고…. 그때 새로운 길에 대한 조언이 굉장히 많았다. 영화계가 워낙 힘들고 보수도 적지 않나. 서른 넘으면 아무 데도 못 가니 지금 생각 잘하라고들 하더라. 안정적인 공무원도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사람은 먹던 밥 먹어야지 싶더라.

손상범_ 지난해는 개인적으로 변화가 컸다. 처음엔 영화제작팀에서 일했는데 회사 방침상 보직순환이 있어서 2년 동안 드라마팀에서 일했다. 그러다 지난해에 영화팀으로 다시 왔고, 기획제작팀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게 됐다. 지금은 명함에 ‘프로듀서’라고 쓰여 있다. 지금까지는 프로듀서를 서포트하는 일이었다면, 이젠 오롯이 내가 책임을 지고 일하는 거다. 하지원, 배두나가 출연하는 <코리아>가 첫 작품인데 요즘은 그래서 상당히 고무되어 있다.

한지혜_ 전주 숏숏숏 <환상극장>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학교 밖으로 나와 작업을 하게 됐다. 어려운 점이 많았다. 단편할 때처럼 시나리오 잘 쓰고, 잘 찍고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영화가 그렇게만 해서 되는 건 아니더라.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른 두 감독들이 장편 경험이 있는 분들인데, 그분들의 규모를 따라하다 보니 어느새 예산도 오버되고 혼자 고통스러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었다. 진짜 생애 처음으로 실패란 게 뭔지 겪게 된 거다. 무섭더라. 그전까지는 누군가가 나를 평가해주는 것이 즐거웠는데, 이젠 내 영화 검색도 못하겠더라. 기회만 오면 한다는 생각대신 이젠 조금 더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어린 나이에 기회를 얻었다가 제대로 공부 톡톡히 한 셈이다.

손상범_ 감독님을 보니 내 경험이 생각난다. 영화일 처음 시작한 게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의 조감독을 하면서다. 제작비가 2500만원이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현실적으로 할 수가 없는 거다. 크레딧 보면 내 이름이 미술, 각색, 특수효과에 다 들어가 있다. 팔목 끊을 때 피 나오는 것도 내가 카메라 안 보이는 데서 주삿바늘로 짠 거다. 피가 잘 안 나와서 현장에서 욕도 많이 먹었다. 그때 2500만원이 아니라 25억원이 있었다면 현장에서 그런 식의 막무가내 해결책으로 임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평균적으로 영화제작비가 30억원이라고 본다면, 그 큰돈을 함부로 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의 내 역할은 결국 투자사들의 자금과 감독의 예술적인 부분의 접점을 찾아주는 거다. 같이 만들 수 있는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일종의 의사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는 거다.

이소영_ 난 비교적 이 일을 일찍 시작한 편이었고 <여고괴담3> <아파트> <화성으로 간 사나이> 같은 기획영화에 참여해왔었다. 올해로 시나리오작가 11년째인데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직 없다. 상업영화 컨벤션이라는 자체가 만만한 게 아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된다. 내가 대본을 쓰기만 하면, 어떤 회사가 나한테 40억원을 투자하는 그런 대본을 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런 기회를 만들려면 작가가 직접 기획까지 다 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단편도 찍어봤고, 사실 미쟝센단편영화제에도 출품했는데 떨어졌다. 남자 시나리오작가였다면 얘기가 또 다를 수도 있다. 남자 작가들 중에 연출을 하려는 분은 꽤 많다. 그런데 여자 작가들은 이 일을 하다가 드라마작가로 많이 가는 편이다. 연출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남자 작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누군가가 “여자 작가가 감독을 하려면 100점 만점에 150점짜리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고 하더라.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한지혜_ 앞으로 달라질 거다. 지금은 영화학교에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이인성_ 보통 마케터들은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마케터의 최종 목표가 프로듀서인 경우도 많다. 그전에 홍보대행사 있을 때는 애초 홍보만 목표로 삼았는데, 요즘 배급사로 옮기고 나니 사람들이, ‘제작프로듀서 하려고 하냐?’고 묻는다. 얼마 전에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은 적이 있는데, 그러면서 나도 연출에 대한 잠재적인 욕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결국 난 마케팅일만으로도 벅차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돈이 왔다갔다하고, 스토리 끌어내고 배우 컨트롤하는 것만도 너무 힘들다.

한지혜_ DSLR과 맥북 하나면 못할 게 없다. 얼마 전에 일본 규슈의 ‘나가유온천한일단편영화제’에 갔다가 거기 프로그래머랑 이야기가 잘돼서 3주간 머물면서 두편의 짧은 영화를 제작했다. 다 맥북 프로랑 550D로 만든 거다. 다들 너무 좋아하더라. 굳이 50억, 100억원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의 변화가 반갑다.

이소영_ 아무리 영화 만들기가 간편해졌다고 하지만, 시나리오를 쓰는 것과 영화를 연출하는 건 확연히 다른 작업이다. 난 그쪽 머리는 아닌 것 같다.

손상범_ 사실 아이폰으로 영화 찍을 수 있다, 이런 말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쉬워졌다는 얘기다. 내가 취미로 밴드를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지인들끼리 즐거워하는 수준이다. 다들 DSLR을 들고 다니지만, 그렇다고 모두 사진작가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접근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대중에게 보여진다, 극장에 걸린다 했을 때 퀄리티로 보자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되는 거다. 다만 기술이 발전되니 영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좀더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된다고 본다. 예전엔 캠코더도 별로 없었고 이렇게 손쉽게 영화를 찍을 수도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습작들을 통해서 스스로가 어떤 쪽에 더 소질이 있는지 좀더 빨리 알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영화과 친구들은 모두 자기가 천재인 줄 알고 학교에 왔다. 다들 연출을 목표로 하는 아티스트인 거다. 그런데 지금 영화를 공부하는 아이들은 PD, 시나리오작가, 촬영 등등 영화의 세분화된 직업을 더 많이 알고 있다.

이인성_ 지난 1년 사이 충무로에 변화가 컸다. 시나리오가 진짜 읽기 벅찰 정도로 들어오는 게 지금 분위기다. 다양하다고 말하긴 좀 그렇고 방향성이 있다. 휴먼드라마, 스포츠 관련, 아니면 대작이 대부분이다.

손상범_ 확실히 지난해까지는 스릴러영화가 대세였다. <추격자> 이후에 비슷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다. 스릴러영화가 투자를 유치하기에는 확실히 유리한 부분이 있다. 마지막 반전이 아주 좋다거나, 아니면 설정이 궁금증을 유발한다거나. 한마디로 설득하기가 쉬운 거다. 요즘은 관객의 요구가 바뀌었다. 스릴러에 지쳐 다들 따뜻한 걸 원하는 거다. 난 친구나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참고하는 편인데, 요즘은 여자친구나 가족과 흐뭇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원한다. 창자 꺼내는 거 보고 곱창 먹으러 가기는 좀 그렇지 않나.

이인성_ 이렇게 영화가 많다는 건 어디선가 투자도 많이 되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 이게 정말 긍정적인 상황인가는 잘 생각해봐야 한다. 한꺼번에 많은 작품이 기획됐다가 대부분 망하고, 한참 조용했다가 다시 살아나고 이런 순환이지 않을까 싶다. 아까 말한 것처럼 기술이 발전하고 디지털 장비가 보급되다보니 영화 찍기가 손쉬워진 것도 제작이 활발해진 계기인 것 같다. 영화를 하면 돈을 한방 크게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돈은 얼마든 댈 테니 너희들은 만들라는 거다.

손상범_ 투자의 기회로 본다면 확실히 많이 확대된 것 같다. 한지혜 감독님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제작지원을 받았지 않나. <용서받지 못한 자>도 영진위 지원을 받은 작품이었다. CJ 아지트 프로그램도 비슷한 경우다. 함께 참여했던 변소영 감독은 그 기회로 함께 상업영화를 준비 중이다. 날선 것들을 좀 다듬고 상업영화적으로 통할 수 있는 지점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독립영화만 할 때 힘들었던 점이 해소됐다는 점에선 감독님도 좋아하시더라. 제작지원이나 투자 같은 경우 서로 뜻만 잘 맞는다면 최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런 기회들이 지금도 많은데 정작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인지가 덜 된 것 같다. 당장 내 친구들만 보더라도 시나리오 쓰면 이걸 어디다 내야 영화화되는지 잘 모른다. 이 자리에서 감독님을 처음 뵀지만 이걸 인연으로 언젠가 같이 영화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상업영화라고 해서 꼭 연출자의 의도를 깎아내리는 ‘타협’이 전제되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 컨벤션을 따르되, 연출자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줄 수 있는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거다. 감독이 연출에만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작까지 도맡아 책임지는 건 낭비 아닌가.

한지혜_ (웃음) 좋은 기회다. 이후에도 연락하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누구의 가슴 속에나 영화 한 편은 있다

이소영_ 처음엔 영화를 꼭 해야지 하는 마음 같은 건 없었다. 대학 땐 극작을 전공했고, 그러면서 지금은 글 쓰는 자체가 좋으니까 이 일을 한다. 너무 현실에 대해 깊이 빠지고 푸념을 하면 괴롭지만,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일하니 할 만하다.

손상범_ 난 영화를 전공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게다가 이과였다. 그런데 수능 봤는데 점수가 생각보다 안 나온 거다. 어머니가 점수 보고 내 앞에서 기절하셨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네 맘대로 해!’ 하신 거다. 그래서 정말 맘대로 할 수 있게 됐다. (웃음) 그때 반 친구가 중앙대 영화과를 지원했는데, 점수 확인하고 나도 지원했다. 영화를 하면서 우리 어머니가 나 때문에 세번을 우셨는데, 처음엔 학교 입학하고 안성에 있는 기숙사 보고 우셨고(기숙사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고), 두 번째는 영화과 졸업하면 연봉 500만원이라고 주지시켜 드렸더니 또 한번 우시고(처음엔 월급인 줄 알고 좋아하셨다), 세 번째는 회사 입사하고 한번 우셨다. 그땐 어엿한 직장인이 된 걸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신 거다.

이인성_ 난 원래 방송기술과에 다녔는데 영화하는 사람들이 방송계를 무시한다는 분위기를 많이 느꼈다. 도대체 영화하는 사람들이 어떻기에? 알아보고 싶더라. 겪어보니 정말 똘끼 가득한 사람들이 많더라. 그러다 광고마케팅쪽을 알게 되고 서울행(부산 출신)을 결심했다. 집에선 뭘 한다고 서울까지 가냐고 이만저만 만류가 아니었다. 사촌오빠가 영화제작사 ‘화인웍스’에 있는데 오빠마저도 하지 말라고 만류하더라. 그렇게 모두의 반대를 떨치고 투쟁하듯 나와서 일을 했는데 웬걸. 1년 지나니까 그만두고 싶더라. 배우, 제작사, 기자 등 모든 관계에서 받는 중압감이 엄청났다. 대한민국 영화구조가 말도 안되는데, 불합리하지만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 친구들이 ‘그래도 넌 월급은 받잖아!’라고 하더라. 그런 말 들으면 난 오히려 현장 스탭들은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나중에 조명, 촬영 퍼스트 되면 한마디로 ‘대박’이 나는 건데 왜 나를 부러워할까 싶더라. 물론 그럼에도 시스템에 나를 맞추자는 쪽으로 결론 내리고 계속 일하고 있다.

손상범_ 난 결국 내가 같이 일하는 파트너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고, 현실적인 조율을 할 수 있느냐에서 일의 즐거움을 느낀다. 누구나 각자 하나쯤 찍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가 <장화, 홍련> 보시고 나라면 이렇게 저렇게 만들었겠다 하시는 것처럼, 아버지도 할머니도 누구나 가슴속엔 자기 영화가 한편씩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꾸고 있는 꿈을 대신 꾸는 것이 바로 나의 직업이다. 감독, 배우, 스탭을 모두 패키징하는 작업. 다행히 영화를 전공해서 그런지 연출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좀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

이인성_ 지금은 마케팅에 국한되어 있지만, 결국 구조적인 악순환을 고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소리를 낼 수 있는 게 목표다. 요즘은 시나리오 공부가 절실해서 그게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지만. 회의 때 들어가면 내가 너무 마케팅 시점에서만 보게 되고 영화의 전체적인 것들은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지금의 관심은 적금. 그전까지 사실 돈 개념이 전혀 없었다. 쓴 데도 없는데 돈이 없더라. 이제 돈 모아서 노후를 준비해야겠다.

한지혜_ 일단은 살아보려고 한다. 영화 만드는 과정을 모두 겪으면서 지난해가 암흑기였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놓아버렸고 그러다보니 즐거워졌다. 단편영화 찍은 게 마무리됐으니, 일단은 학교 열심히 다니고 여름에 또 다른 단편을 찍어야겠다.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또 기회가 오지 않을까. 지금은 학교가 너무 좋다.

이소영_ 난 요즘 수영을 배운다. 평영까진 했는데 자유형은 제대로 못하고 있어서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시나리오 작업처럼 부정기적인 일을 하면서는 인성씨가 말한 적금은 도저히 계획할 수가 없다. 한달에 얼마씩이나 넣나?

이인성_ 솔직히 말하기 창피할 정도로 조금이다.

손상범_ 난 통장이 딱 두개다. 입사하면서 한달에 3만원씩 부었던 주택청약통장과 월급통장. 3만원씩 부었던 청약통장의 금액이 월급통장의 금액보다 더 될 때 굉장히 자괴감이 들더라. 나란 남자가, 집에선 어머니가 친척들에게 ‘비밀병기’라고 했었는데. (웃음)

한지혜_ 그나저나 내년에 우리가 또 모일 수 있을까. 지구가 2012년에 멸망한다니 못할지도 모르겠다.

손상범_ 지금 하고 있는 <코리아>가 그때쯤 개봉하거나 끝났을 테니 그게 아주 잘됐으면 한다.

이소영_ 영화계는 그렇고. 그런데 <씨네21> 기자로 사는 건 어떤가? 시나리오 쓰는 친구들이 <씨네21> 기자에 관심 많던데….

씨네21_ (손사래 치며) 저희도 어렵… 이만 마치시는 편이…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