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그래도, 하루 빨리 현장에 가고 싶다
진행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1-03-03

3명의 젊은 영화인, 대한민국의 ‘슈퍼 을’ 영화 스탭으로 사는 삶을 말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는 영화 스탭 출신이다. <씨네21>에 입사하기 전,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4편의 영화에서 연출부와 제작부로 일했다. 미술, 소품, 세트, 로케이션 헌팅, 주연배우 관리, 촬영 스케줄 관리 등 연출부의 모든 파트를 거쳤고, 해외 로케이션이라는 귀중한 경험도 했다. 되돌아보면 능력이 좋았다기보다 한국영화의 호시절이라 상당한 운이 따랐던 것 같다. 그때는 그랬다. 연출부로 서너 작품을 하고 조감독 타이틀을 딴 뒤 영화사에서 시나리오를 준비해 감독으로 데뷔하거나, 제작부로 서너 작품을 하고 제작부장과 제작실장을 차례로 거친 뒤 프로듀서로 입봉했던, 그런 낭만이 가득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영화산업이 메이저 투자·제작사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아이템 개발부터 시나리오 작업, 프리 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영화 공정의 전 과정이 수직계열화됐고, 충무로 인력구조는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은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현재 충무로의 젊은 스탭들은 이전 세대와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영화 스탭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을 막연하게 기다리는 상황’, ‘이들이 생각하는 충무로의 시스템이 무엇인지’ 등에 관해 세명의 젊은 영화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습니까.

김경식 ▶ <경계>가 끝나고 학교에 갔는데 (현장) 일을 더 하고 싶더라. 그래서 휴학을 했는데 (하기로 한) 작품이 (촬영에) 들어가지 못했다. 돈은 필요한데 독립영화 일만 들어오고. 집에 내려가서 집안일을 도우려던 차에 <잘못된 만남>을 하게 됐다. 작품이 끝나고 나니까 또 막막했다. 나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가장인데, 어머니께서 조그만 방 하나 얻을 수 있는 전세금을 주셔서 그나마 좀 편해졌다. 2007년 11월 말, 생활비가 필요해서 지금은 자동차보험 긴급 출동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수업 듣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런 생활을 4년째 하고 있다.

이미랑 ▶ 26살 때 이창동 감독님을 처음 만났고, 그때는 영화를 하는 이유가 단순히 ‘생계’보다는 ‘연출’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창동 감독님의 연출을 옆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 생계에 대한 이런저런 조건 없이 <>에 참여했다. 대학원에 간다고 했을 때, 한 학기 등록금 700만원으로 단편을 찍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단편 찍고 나면? 직업으로서의 영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세훈 ▶ 제작자로 활동하는 교수님들이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신다. 아카데미 나와서 세 작품하면 (프로듀서) 입봉할 수 있다, 한살이라도 어릴 때 현장 경험을 하라고 말씀하신다. 기회는 언제든지 찾아온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막상 졸업 때가 되니 어떤 작품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 현장에 가서 일을 잘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한 생각이 복잡하다. 막상 현장에 있는 친구들을 보면 페이가 내 생각과 차이가 있고.

김경식 ▶ <경계> 이후 일이 차근차근 들어왔다면 지금쯤 제작부장을 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회는 생각처럼 쉽게 오지 않는다. 영화인들이 바라는 건 ‘현장 디졸브’다. (웃음) 한 작품이 끝나기 전에 이미 다음 작품이 결정되어 있는 상황 말이다. 한 학기 마치면 사회인이 되는데, 제작부 일이 계획처럼 들어오지 않다 보니 차라리 애초에 하고 싶었던 연출을 준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런데 서른 넘어서 연출부 막내로 들어가기도 어렵다. 이미랑씨처럼 학교를 더 다니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침 6시부터 밤 8시까지 아르바이트하다 보면 영화든, 공부든 집중할 수가 없다. 일주일에 학교는 세번, 직장은 네번 나가는데 가끔 내가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헷갈린다.

김경식 대학 입시를 준비하다 영화진흥위원회 사이트에서 ‘독립영화를 함께할 스탭을 찾는다’는 게시물을 보고 트렁크 하나 싸서 서울로 올라왔다. 부모님께서 서울에 방 하나 얻어주신 덕분에 돈 생기면 영화 찍고, 돈 떨어지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2006년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고, 그해 장률 감독의 <경계>의 제작부로 첫 장편영화를 경험했다. 안슬기 감독의 <나의 노래는>(2007), 정영배 감독의 <잘못된 만남>에서 제작부를 맡았다. 현재 4학년 1학기 과정으로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있다.

이미랑 ▶ 우회로를 자꾸 찾게 되는데, 문제는 그렇게 선택한 우회로 안에서 목적지를 잃어버릴까 두렵다는 거다.

김세훈 ▶ 일을 할 수 없으니 대학원에 갈 수밖에. 사회에 바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학원은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시하기 위한, 스스로 안심시키기 위한 하나의 손쉬운 방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이제 뭐할 거냐고 물어보면,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번에 전문사(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대학원 과정)에 들어가려고요’라고 농담한다. 정말 그렇게 될까봐 두렵다. 이러다 학위만 모으는 게 아닌지 싶고.

김경식 ▶ 아버지가 기술 하나쯤은 배워둬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웃음) 기술 스탭도 분명 힘들지만 솔직히 똑같이 영화 일을 한다고 해도 연출부나 제작부는 기회가 더 적다.

이미랑 ▶ 아는 촬영부 오빠를 만났는데, CF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면 건당 300만원 정도 번다고 하더라. 내가 몇 개월 일해야 벌 수 있는 액수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또 다르다. 영화만 계속 하고 싶지만 페이가 더 세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 거잖나. CF 촬영하고 영화 현장에 돌아가면 마음이 힘들다더라. CF쪽은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이 다르다고 하더라.

김경식 ▶ 에소프레소 기계로 원두를 내려준다니까. (웃음) CF 밥차는 한끼에 1만5천원짜리라고 하더라.

김세훈 ▶ 뷔페다.

김경식 ▶ 점심에 회도 나온다. 우리는 OO도시락 먹는데…. (웃음)

한국영화 시스템, ‘득’은 없고 ‘실’만 있는 듯

이미랑 ▶ 영화과에 입학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감독이 되고 싶어 한다. 처음부터 촬영, 조명감독처럼 기술 스탭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시로 갈등한다. 학생들은 ‘난 연출에 재능이 없나봐. 그럼 촬영감독이 되어야지, 프로듀서가 되어야지’와 같은 식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각자의 전공이 세분화된다. 커리큘럼의 구성도 다르지 않다. 학생들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어떤 파트가 자신에게 잘 맞는지’를 잘 모르고, 고민을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스크립터가 하는 일 중 하나가 모니터에 카메라 라인을 연결하는 건데, 이거 꽂는 데 왜 학위가 필요하고, 대학원을 가야 하는 걸까. 내가 감독이라면 성실한 사람을 쓸 텐데 말이다.

김세훈 ▶ 확실히 한국은 연출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다. 감독이 시나리오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대표적이다. 사실 연출은 주어진 시나리오를 영상화하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우리나라는 감독에게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다.

김경식 ▶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뭐하며 지내냐’고 물어보면 다들 ‘시나리오 쓰고 있다’고 얘기한다.

김세훈 ▶ 산업화가 많이 진전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100억원이 넘는 자본이 투여되는 프로젝트 중에 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저렇게 많은 돈이 필요했을까 의심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김세훈 국민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너무 좋아했다. 휴학을 하고 미디액트에서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를 해보는 게 어떨까’ 하다가 집안의 반대로 미국의 한 반도체회사에 입사했다. 회사생활을 하던 중 회사가 망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 프로듀서 전공을 지원해 운 좋게 붙었다. 최근에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를 치렀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아직 장편영화 경험은 없다.

이미랑 ▶ 한국영화가 말하는 시스템은 ‘득’은 없고 ‘실’만 있는 듯하다.

김세훈 ▶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은 시나리오 작성에 몇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몇분에 한번씩 웃겨줘야 하고, 어떤 시점에 어떤 게 나와야 하고. 자체 시나리오 모니터링 시스템으로부터 평점 몇점 이상이 나와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 나 역시 글 쓰는 걸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인데, 글이라는 게 그렇게 계산되는 건 아니다. 인물이나 이야기의 감정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지점인데, 이것이 산업화라는 이름 아래서 획일적인 법칙으로 자리잡았다. 결국엔 안정적인, 무난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김경식 ▶ 주변에 메이저 투자배급사에서 아이템 개발 및 모니터링하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과연 수치화한 데이터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 물론 내가 쓴 시나리오를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기준으로 채점해보고 또 그에 맞춰 각색을 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웃겨주고, 여기서 울려보고 하는데, 창작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 맥 빠지는 일인데, 이런 작업은 점점 보편화할 것이다. 가끔 시스템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그나마 있던 기회조차도 없어지는 것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 단계, 한 단계 밟아올라가는 과정은 옛일이 됐다.

이미랑 ▶ 이제는 그런 수순을 밟아도 기회가 안 주어질 것 같다. 예전에는 ‘낙오되거나 올라가거나’였는데 이제는 그것도 아니다. 진짜 순응이다.

김세훈 ▶ 가끔 우리끼리 농담한다. 결국 공채밖에 없는 건가, 라고. 토익을 열심히 공부하고 면접을 봐서 대기업에 입사해 영화팀에 가는 것이 영화인이 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방송사처럼 말이다.

김경식 ▶ 한 투자배급사 아이템 개발팀의 경우, 18명 중 16명이 카이스트, 포항공대, 서울대, 연·고대 출신이라고 하더라. 영화 전공자는 달랑 2명이고. 그 2명도 엄청난 경쟁을 뚫고 들어갔을 거다.

김세훈 ▶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에 충무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씨네21>만 봐도 ‘충무로는 그나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바닥’이라고 하잖나. 하지만 실상은 낭만적인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김경식 ▶ 슈퍼 갑의 울타리 안에서만 영화는 행복한 꿈이다.

김세훈 ▶ 월급 꼬박꼬박 받고….

이미랑 ▶ 이창동 감독님 현장 이야길 안 할 수가 없다. 경험없는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는 현장이니까.

김세훈 ▶ 그런 얘기 들었다. 연출이 꿈인 친구들은 이창동 감독님 현장을 보기 위해 제작부, 촬영부, 조명부로 들어간다고. (웃음)

이미랑 ▶ <> 제작부들은 전부 감독이 꿈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 연출부들의 위기감이 어마어마했다.

이미랑 서울예대 영화과에 02학번으로 입학했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2005)를 비롯해 단편영화 두편을 연출했다. 학교를 다니던 중 감독에 대한 꿈을 접고 같은 학교 문예창작과 05학번으로 재입학했다. 그러다가 다시 영화가 하고 싶어 이창동 감독의 <>의 스크립터로 참여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영상학 전공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고, 장편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김세훈 ▶ 다들 슛 들어가면 카메라, 조명 안 보고 이창동 감독님만 본다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거지. 나도 밥차 스탭으로 들어갈까봐. (웃음)

이미랑 ▶ 이건 특이한 경우이긴 하다. 영화과 후배들이나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감독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창동, 홍상수 감독님처럼 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라고 꼽지 않더라도 우리 세대가 꿈꾸는 모델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감독이다. 나 역시 그런 욕심이 있다. 한마디로 내 영화가 극장에 걸려서, 많은 관객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거다.

김경식 ▶ 난 하루빨리 현장에 갔으면 좋겠다. 이창동 감독님 영화가 아니라도 말이다.

“영화가 직업이 될 수 있다면…”

이미랑 ▶ 이른바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우리는 경제적인 혜택을 받고 자라난 세대다. 한마디로 개인주의가 강하다.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개인적인 질문은 하지만 ‘영화산업이 어떻게 바뀌어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지’와 같은 큰 지도를 그리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런 노력조차도 없고, (시스템을) 바꿔보려는 생각도 없는 세대다. 누굴 원망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누굴 원망하는 데 큰 에너지를 쏟고 싶지도 않고. 그만큼 자기 자신의 일이 아니면 무관심한 세대다. 나나 내 주변 친구들이나 대체로 그런 것 같다. 한마디로 무기력하다. 아버지 세대를 부정하고, 세상을 바꿔보려고 몸부림쳤던 선배 세대들과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김세훈 ▶ 교수님들도 그런 말씀들을 하신다. ‘돈이 철철 넘칠 때 영화산업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 지금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모두 우리 잘못이다.’ 그건 지나간 얘기고. 어쨌거나 지금 우리 세대와 가까이에 있는 젊은 선배 프로듀서들은 과거와 다른 형태로 작업한다. 과거에는 제작사들이 자체 시스템으로 아이템을 개발하고, 펀딩을 해서 촬영에 들어갔다면 지금은 젊은 프로듀서들이 철저히 개인적인 프로젝트 위주로 움직인다. 그리고 직접 대기업과 접촉한다. 분명한 건 대기업이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에 젊은 프로듀서들은 제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투자를 받기 위해 제 살을 깎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프로듀서가 ‘갑’인 동시에 ‘을’인 셈이다. ‘슈퍼 갑’인 메이저 제작·투자사 앞에서는 ‘을’이고, 스탭 앞에서는 ‘갑’이고. PGK(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라는 단체가 만들어진 것도 나름대로 뭔가 산업 시스템을 변하게 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좀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이미랑 ▶ 시스템, 시스템 하는데. 시스템이 뭘까. 영화가 직업이 될 수 있다면, 시스템이 갖춰진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영화는 시스템이 없는 셈이다.

김세훈 ▶ 영화 처음 시작할 때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영화판 좁으니까 말, 행동 조심해라’다. 이런 말은 시스템이 없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김경식 ▶ 프리 프로덕션 때 일을 하고 있다는 즐거움과 동시에 영화가 엎어져서 계약을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떠안아야 한다. 시스템이 존재한다면 그럴 리는 없겠지.

김세훈 ▶ 그런 부분은 제작자나 프로듀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점에서 정부가 사회적인 안전망을 구축해줬으면 좋겠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