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성적으로 보면, 2010년 한국영화계는 남자배우들이 압도했다. <전우치>와 <의형제>와 <아저씨>가 대표 격이다. 좀더 붙인다면 <이끼>와 <포화속으로>가 있겠다. 특히 강동원, 원빈이라는 당대의 꽃미남 배우들이 ‘누구의 동생, 교복 입은 청춘, 아들’의 옷을 벗고 ‘남파공작원, 전직 특수요원’ 등 남자 어른의 모습으로 무장하고 한국 상업영화의 기세를 이어갔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로 현실(인 듯)의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그 위용이 실로 대단했다. 반면, ‘주류 흥행영화’ 목록에서 주인공으로서의 여배우들을 찾아내는 일은 이제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시>의 윤정희와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의 서영희와 <옥희의 영화>의 정유미 등은 2010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연기자들이지만 그들의 영화는 상업적 성공과 거리가 있었다. 이제 점차 온전히 여자주인공이 중심인 영화는 상업영화로서는 변방의 자리로 밀려나는 건 아닐까 하는 근심을 갖게 한다.
올해의 연기자 중 빠질 수 없는 <하하하>의 문소리는 어떠한가. 몇년 전에 촬영한 <작은연못>과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가 올해 공개된 그녀의 영화다. <하하하>의 문소리 연기는 특히 발군이었다. 통영지역 문화해설가이자 아마추어 시인인 성옥은 새침한 듯 활달하고 엉뚱한 듯하나 결국 어른스럽다. 자주 “맞죠, 그죠?”를 토처럼 달며 사투리와 표준말을 반쯤 섞은 경남 사투리로 객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녀는, 두 남자의 영화인 듯 여겨지는 이 영화에 ‘여성’의 기운을 강하게 불어넣으면서 활기와 어른스러움을 덧입혔다.
제작자로서, <바람난 가족>을 비롯해 그녀와 5편의 영화를 함께했다. 매번 느끼지만 그녀의 연기는 매우 영리하고 치밀하게 분석한 뒤 대담하게 펼쳐내는 식이다. 그 대담함은 작품 선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체로 그가 맡은 역할은, 직업은 분명한데(떡볶이 파는 노처녀, 무용하는 유부녀, 교수, 문화해설가, 핸드볼 선수 등) 성격은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억척스럽지만 지극히 헌신적이거나, 위악적이지만 알고 보면 나약한, 내성적인 듯 강단이 있거나 식의 중층의 겹이 있는 ‘현실적’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문소리는 독보적으로 체현해낸다.
속된 말로 여신급의 미모도, 20대의 싱그러운 젊음도 이젠 없지만 그녀가 보여준 <하하하>의 성옥은 ‘현실적’인 영화가 그래도 계속 만들어지고, 진행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기뻤다. 그건 위안이기도 하고 안도의 감정이기도 하다. 좀더 자주 그녀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는 영화계라면 더 기쁘겠다.
올해의 장면
<하하하> 대낮에 바람피우다 여관 앞에서 마주친 애인 정호를 “마지막으로 한번 업어주고 싶어”라며 정말로 업어주는 성옥. 이 요령부득의 상황이 문소리에 의해 충분히 설득된다. ‘묘한 모성’이 코미디로 전해지는 놀라운 순간을 그녀는 선사한다. 좋은 것만 본다는 문경에게 “사람이 창피하지 않아요? 거짓말쟁이.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 나한테 절대 전화하지 말아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뱀 같아요?”라고 내쏘는 성옥. 서로 이물스럽고 조응되지 않는 듯한 이 문장에서 문소리의 대사 연기는 모든 단어가 머리에 와 박히게 명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