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의 엘리오 제르마노(맨 왼쪽).

11월의 이탈리아 날씨는 어제 비, 오늘 잠깐 해, 내일 또 비다. 집에만 있으려니 파스타가 허리둘레를 늘린다. 우중충한 날씨에 딱히 할 일도, 갈 곳도 없는 사람들이 찾는 곳은 영화관. 이탈리아 배급사들이 겨울 날씨의 우중충함과 허리둘레를 겨냥해 내놓은 영화들은 한결같이 코미디영화다. 이탈리아 파네토네(성탄절에 주로 먹는 디저트로, 성탄절과 12월 전후로 개봉하는 영화들을 지칭) 영화는 이제 고유명사로 정착했다. 11월 마지막 주 박스오피스를 보면 다른 달과 달리 유독 이탈리아영화 세편이 10위권 안에 들어 있다. 파우스토 브리지 감독의 <남자 대 여자>(Maschi contro femmine)가 3위, 루카 미니에로 감독의 <남부지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Benvenuti al Sud)가 5위, 카를로 반지나 감독의 <제 친구를 소개합니다>(Ti presento un amico)가 7위다. 같은 시기인 지난 10월 박스오피스에 이탈리아영화가 한편도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모두 코미디다.

사실 올해 이탈리아 영화계는 별다른 일 없는 한해를 보냈다. 영화제에서 승전소식도 없었고, 논란을 일으킨 작품도 없었다. 그나마 주목할 만한 일을 꼽아보자면, 63회 칸영화제에서 <우리의 삶>의 배우 엘리오 제르마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난니 모레티가 <하베무스 파팜>을 제작한 것, 2008년 프랑스 최고 흥행작이지만 이탈리아에서 흥행에 실패한 영화 <웰컴 투 슈티>(Bienvenue chez les Ch’tis)를 리메이크한 루카 미니에로 감독의 <웰컴 투 남부>(Benvenuti al Sud)가 이탈리아에서 크게 성공해 97년작인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 이후 두 번째로 높은 흥행기록을 세웠다는 것 정도다.

이탈리아영화의 회생 기운이 잠깐 비쳤던 2008년을 돌이켜보자. 당시 관객과 비평가들은 이탈리아 영화계의 찬란한 시절을 풍미했던 거장들을 떠올리며 이탈리아영화의 르네상스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기뻐했다. 그런 회생의 기운이 정말로 존재하기나 했던 걸까? 20년 동안 영화평론을 하고 있는 ‘센티에리 셀바지’ 사이트의 부편집장 시모네 에밀리아니에게 한해 동안 이탈리아영화가 가졌던 희로애락을 물어봤다.

-2010년 이탈리아영화의 가장 큰 성공은 뭐였나. =겉으로 드러나는 성공은 없었다. 하지만 배우들의 질이 상당히 좋아졌다. 예전에는 TV드라마 한편으로 성공한 배우가 영화를 곁들여 하다보니 연기력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지금 현장에서 활동 중인 배우들은 연극 무대에서도 왕성히 활동하는 배우들이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엘리오 제르마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 또한 성과다. 배우들의 능력이 이탈리아영화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2011년 이탈리아영화의 살길은 뭔가. 너무 거창한 질문인가. =아니다. 심플하다. 실질적인 답을 원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지금으로서는 이탈리아에 있는 영화제가 이탈리아영화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다행히 이탈리아에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영화제가 있고 그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국내에 알려진 영화제들이 있다. 영화제에서 수상했거나 초청받은 영화들은 개봉관에서 더 많이 팔린다.

-이탈리아 영화계에 젊은 감독이 없다. =제작자들이 모험을 하지 않는다. 제작자는 감독의 명성이나 배우의 명성 둘 중 하나에 투자한다. 첫 경험도 없는 감독은 위험 그 자체다. 감독 지망생들은 20대부터 제작사를 찾아다니며 얼굴을 익혔다가 40살이 되어서야 첫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보통이다.

-2008년에 <일 디보>와 <고모라>가 칸영화제에서 나란히 수상하면서 세계 언론이 이탈리아영화에 주목했다. =내가 보기에는 우연이다. <일 디보>와 <고모라>는 주제 면에서 국제 경쟁력이 있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미를 본다면 부족한 영화들이다. 국제 경쟁력이 있으면서 시대를 껴안은 영화로는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빈체레>(vincere)라고 생각한다. 강렬하진 않지만 올해 본 영화 중 추천하고 싶은 영화 5편은 다음과 같다. 파올로 비르지의 <La Prima Cosa Bella>, 카를로 베르도네의 <Io, loro e Lara>, 페데리코 잠팔리오네의 <Shadow>, 로코 파파레오의 <Basilicata Coast to Coast>, 실비오 솔디니의 <사랑하고 싶은 시간>(Cosa Voglio di Pi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