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어느 교사의 섬뜩한 고백
<고백> Confessions 감독 나카시마 데쓰야/ 출연 마쓰 다카코, 오카다 마사키/ 개봉 11월
“내 딸을 죽인 사람이 우리 반에 있습니다.” 봄방학이 시작하는 날, 여교사 모리구치는 교단에서 충격적인 개인사를 고백한다. 더 큰 충격은 그녀의 다음 고백에서 온다.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범인에게 자기만의 응징을 가하기로 결심한 모리구치는 범인의 우유에 에이즈 환자의 피를 넣었다고 말한다. 이에 학생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올해 6월 일본에서 개봉해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세우고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일본 출품작으로 선정된 <고백>은 미나토 가나에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개봉 당시 여교사와 제3자 입장의 학생, 범인과 범인의 부모 등 다양한 인물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소설의 결을 효과적으로 살려냈다는 평을 들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불량공주 모모코>를 연출한 나카지마 데쓰야 감독은 CF 경력을 백분 살린 특유의 빠른 화면 전환에 덧붙여 원작의 어둡고 차가운 정서를 복원해냈다고 한다. 특히 원작보다 강화된 점은 인물의 모호함이다. “관객도 인물의 말을 좀 의심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출했다는 나카시마 감독은 영화의 말미, 원작에는 없는, 극의 행방을 완전히 바꿔버릴 충격적인 한마디를 준비했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소개돼 한국 관객에게도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겼다는 여교사의 마지막 한마디를 기대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글 장영엽
18. 아메리칸 꽃중년의 인생 모험담
<아메리칸> The American 감독 안톤 커빈/출연 조지 클루니/개봉 11월18일
무기제작 전문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잭(조지 클루니). 잭의 경력은 오래됐고 솜씨는 비상한데 그의 무기제작이 공식적인 일을 하는 데 쓰이는 것은 아니다. 무기를 만드는 잭의 기술이 창조적이기는 하지만 그는 파벨이라는 살인청부업자를 위해 그것들을 만든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맡았던 일이 끝나고 난 뒤 잭은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가 그를 감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위험을 느낀다. 잭이 직감적으로 이 일을 그만둘 때가 왔음을 느끼고 있을 때 이탈리아의 조용하고 작은 마을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마틸다라는 여자를 만나 무기를 제작해주는, 이젠 정말 마지막 임무라고 할 만한 사건을 맡게 된다. 하지만 일은 순조롭게만 풀리지 않는다. 한번에 여러 가지가 밀려든다. 평생을 고독하게 지내던 그에게 마을 사람들은 친절하게 대하고 그중에서도 마을의 신부와는 특별한 우정을 쌓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클라라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에게 다시 위협이 찾아온다. 범죄세계에 깊이 몸담고 있던 한 범법자에게 갖가지 불운과 행운이 동시에 찾아온다.
유명 사진작가였으나 유명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었고 ‘조이 디비전’의 요절한 보컬 이언 커티스를 주인공으로 했던 <컨트롤>을 만든 뒤 각광받아 지금은 유능한 신인감독으로서의 영화인생을 살고 있는 안톤 커빈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박스오피스 성적도 좋다. 무엇보다 조지 클루니의 출연만으로도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조지 클루니는 그 어떤 범법도 그가 저지르면 괜찮은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좁고 오래된 골목길을 걸어가는 한 남자의 낭만적인 뒷모습을 상상할 때 그보다 더 어울리는 주인공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야기의 구조상 몇몇 액션장면은 필수적이며 등장하는 인물들로 볼 때 러브스토리도 중요한 한 부분이다. 이런 것들이 한데 모여 뜻하지 않은 전환을 맞이한 중년 멋쟁이의 인생 모험담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글 정한석
19. 전통과 감정 사이, 당신의 선택은?
<아임 러브> I’m Love 감독 구아 다그니노/출연 틸다 스윈튼, 플라비오 파렌티/개봉 12월
<아이 엠 러브>는 이탈리아 감독 구아 다그니노가 연출한 이탈리아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영국 출신의 여배우 틸다 스윈튼 같다. 틸다 스윈튼은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을 뿐 아니라 감독 구아 다그니노와 함께 11년 이상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켜왔고 여주인공으로도 출연한다.
직물제조업으로 돈을 번 밀라노의 한 부유한 가문. 노년의 회장은 아들 탄크레디와 손자 에드워드 주니어에게 자신의 생일파티를 기점으로 사업을 승계하려고 한다. 그의 며느리, 탄크레디의 아내가 엠마(틸다 스윈튼)다. 남편과 아들이 거대 회사의 승계자가 되었으니 좋아할 만한 일이기도 할 텐데 그녀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찾아온다. 한때는 아들의 사업 경쟁자였으나 지금은 친구인 안토니오가 파티에 찾아와 엠마와 얼굴을 익힌다. 그리고 엠마가 딸의 초대를 받아 여행 간 산 레모에서 엠마는 안토니오를 다시 만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강인하면서도 흡인력있는 배우 틸다 스윈튼이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여인을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 엠마는 극중에서 러시안 출신인데, 러시안 악센트로 이탈리아어를 하는 틸다 스윈튼의 연기가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영화를 본 이탈리아인들조차 놀랐다는 후문이다. “<아이 엠 러브>는 놀랄 만한 영화다. 깊고 풍요롭고 인간적이다. 부와 가난함이 아니라 오래됨과 새로움에 대한 것이다. 태고부터 이어져온, 전통과 감정 사이의 싸움에 관한 것이다”(로저 에버트)라는 호평도 뒤따른다. 글 정한석
20. 아시아 영웅담이 카우보이 영화가 만났을 때
<워리어스 웨이> The Warrior’s Way 감독 이승무/출연 장동건, 제프리 러시, 케이트 보스워스, 대니 휴스턴/개봉 12월2일
‘피도 눈물도 없던 최강의 전사가 어느 날 모든 것을 버리고 사막 끝 서부마을로 간다.’ <워리어스 웨이>의 줄거리를 한줄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언론에 공개된 자료를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부마을로 간 전사(장동건)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함에 감화되고 부모의 복수를 꿈꾸는 한 여인(케이트 보스워스)과 사랑에 빠지며, 그 여인의 원수(대니 휴스턴)와 대적한다. 사실 이것만으로 <워리어스 웨이>가 어떤 영화인지 짐작하기란 어렵다. 차라리 제작자 배리 오스본(<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시리즈 프로듀서)의 코멘트가 도움이 된다. “아시아의 영웅담을 서양의 카우보이 영화로 풀어냈다.”
<워리어스 웨이>는 한국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고, 할리우드 프로듀서가 제작을 맡고, 뉴질랜드 무술감독이 액션을 맡은 글로벌 제작영화다. 행간에서 아시아와 할리우드 양쪽 시장의 입맛을 고루 만족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사무라이를 떠올리게 하는 장검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전사’ 장동건과 그에게 총으로 맞서는 카우보이 총잡이의 대결이 어떤 방식으로 묘사될지가 궁금하다. 한편 이 작품으로 본격적인 할리우드 진출을 노리는 장동건의 연기도 관람 포인트다. 마을의 수장을 맡은 제프리 러시와의 앙상블, 케이트 보스워스와의 멜로 연기, 대니 휴스턴과의 승부 등 할리우드 배우들과의 마주침이 어떤 효과로 나타나게 될지 기대된다. <만추>(2010), <바람난 가족> <얼굴없는 미녀>의 김우형 촬영감독이 촬영을 맡았다. 글 장영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