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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최고의 ‘문제적 감독’을 돌아본다
김용언 2010-09-09

9월8일부터 19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장선우 특별전

<나쁜 영화>

“아무런 거리낌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이 찍었는데 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안 볼까?”(<거짓말> 개봉을 앞둔 무렵, 영화 전문지 <키노>와 장선우의 인터뷰 중에서) 1990년대 가요계 스타들이 이젠 TV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에 나와서 원로 흉내를 내는 나날이다. 그렇다면 90년대 한국영화계의 가장 뜨거운 이름이었던 감독 장선우는 어떨까. 그는 스스로의 작품들을 두고 “(나는)우리 사회의 변화와 대중적 욕구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다. 시대가 갖고 있는 욕망들과 가슴앓이들이 있고 이것을 영화로 어떻게 잡아낼까를 고민한다. 매번 대중적 욕구와 시대적 쟁점들을 ‘타고’ 싶고, 들추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나의 전략이라면 ‘당대의 영화보기’와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90년대 한국사회는 장선우의 영화들을 대체로 잘못 이해하며 환호하거나, 오해하며 분노했다. 그들은 거의 언제나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금 그의 영화를 스크린으로 다시 보는 2010년의 관객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조선희는 <클래식 중독>에서 장선우를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간 아방가르드 예술가로 평가한 바 있다.

장선우의 실질적인 충무로 데뷔작 <성공시대>(1988)는 거대그룹 내 감미료 회사를 배경으로 협잡과 음모와 경쟁을 무기삼아 성공해야만 하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드라마틱하게 펼친다. <깊고 푸른 밤>에 이어 자본주의의 욕망에 휩쓸려 파멸에 이르는 남자를 연기한 안성기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팜므파탈의 절정을 보여준 이혜영의 냉소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뒤이은 두 작품 <우묵배미의 사랑>(1989)과 <경마장 가는 길>(1991)은 장선우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우묵배미라는 시골 마을의 치마 공장에서 만난 두 남녀의 쓸쓸하고 궁상맞으며 동시에 더없이 따스한 러브스토리(그러나 절대로 해피엔딩이 아니다), 혹은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 남녀가 섹스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두고 두 시간 내내 지리멸렬한 말싸움을 주고받는 ‘한국영화 사상 가장 낯선 풍경’. 이 두 영화는 장선우의 감수성과 세상을 보는 시선의 양극단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경마장 가는 길>을 두고, 이후의 모든 한국영화가 <경마장 가는 길>의 스펙트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숭고한 신화와 비천한 현실을 오가는 아름다운 우화 <화엄경>(1993), 장정일과의 첫 번째 만남이자 섹스로 현실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를 거치면서 장선우 영화의 가장 활발하고 도발적인 시기가 찾아온다. 먼저 <꽃잎>(1996)이 있다. 1980년 5·18 광주항쟁의 비극을 처음으로 상업영화 자장 안에 본격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논란을 자아냈다. 강간과 학살이라는 가장 끔찍한 폭력을 정면으로 충돌시킴으로써 여전히 ‘광주’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억압적 분위기를 묘사한다. <나쁜 영화>(1997)와 <거짓말>(1999)은 각각 그해 ‘등급 외 판정’을 받음으로써 검열의 대표적 희생자가 됐다. <나쁜 영화>는 실제 거리의 아이들을 캐스팅해 그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뒤섞고 모든 영화적 미학에 정면으로 돌파하며 스스로를 부서뜨리는 극단의 경지를 보여준다. <거짓말>은 <감각의 제국>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넘어서는, 사회로부터 끝없이 도망쳐 철저한 개인으로서의 삶에만 집중하고 싶은 개인들의 희구를 강도 높은 (그러나 동시에 한없이 무미건조한) 에로스를 통해 펼쳐 보인다. 조각가 J는 몽둥이를 구하기 위해서 거리에 나갔다가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고 “인간은 아무 일도 안 하고 살 수 없을까?”라고 묻고, 소녀 Y는 청량리역에서 100만인 서명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한 사람의 의견이라도 존중해주는 사회가 좋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IMF의 고통스러운 세월을 견뎌낸) 한국사회의 반응은 경악과 분노에 가까웠다.

9월8일부터 19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장선우 특별전에선 선우완과 공동연출한 데뷔작 <서울 황제>와 그의 (지금까지) 마지막 작품이자 21세기 한국영화계의 초반부 가장 큰 논쟁의 대상이었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제외됐다. 자세한 사항은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cinematheque.seoul.kr)를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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