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심도 지식도 없던 시절, 내게 임권택이란 이름은 그저 ‘흥행감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개봉했던 <길소뜸> <티켓> <씨받이> <장군의 아들> 등은 대단한 흥행작이었기 때문이다(한국영화 사상 첫 100만 관객을 동원한 <서편제>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임권택 감독에게서 흥행 이상의 관심을 갖게 된 것은 TV에서 <짝코>를 본 뒤부터다. ‘반공영화’라는 딱지가 붙어 있음에도 당시(이 영화는 1980년작이다)의 살벌한 시대적 공기를 확고하게 거스르는 이 영화를 보면서 소름이 확 돋았다. 빨치산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짝코>는 엄청난 파격이요 대단한 용기였다. 그 뒤 <깃발없는 기수> <만다라> <안개마을> <연산일기> 같은 비디오 출시작을 보면서, 그리고 <춘향뎐> <취화선> <천년학> 같은 동시대 영화를 만나면서 비로소 임권택이라는 거대한 산의 모양새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됐다.
<씨네21> 입사 뒤 가장 기억나는 순간 중 하나도 임권택 감독을 처음 만나뵀을 때다. <취화선>을 준비 중이던 2001년 한남동 태흥영화사 2층 회의실에서 나는 덜덜 떨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이기도 했지만 대감독을 만난다는 기대감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인터뷰는 허문영 선배가 진행하고 나는 그저 정리만 할 뿐이었는데도!). 그는 상상보다 훨씬 지적이고 강직했으며 유머감각과 여유 또한 갖고 있었다. 자신의 영화에 관해 설명할 때는 어떤 젊은 감독보다도 분석적이고 섬세해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취화선> <하류인생> <천년학> <달빛 길어올리기>의 현장에서 그는 역동적이고 능숙했으며 임기응변에 능했고 명철한 판단력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한순간도 영화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 자세(해서 현장에서 그에게 말을 붙이기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는 ‘거장’이라는 단어 이외에 그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8월12일부터 열리는 임권택 전작전은 정말 기대되는 행사다. 그가 만든 100편의 영화 중 프린트가 보존돼 있는 70편이 상영되는 이번 전작전은 임권택이라는 웅장한 산을 알게 해줄 소중한 기회다. 자의식 없이 다작하던 시절의 상업영화들부터 연좌제의 멍에가 그림자처럼 배어 있는 <족보> 이후 ‘시대’의 영화들, 그리고 임권택 필모그래피에 큰 획을 그은 <춘향뎐> 이후 영화들까지 한꺼번에 만나게 된다는 얘기다. 이번주 김영진 선배의 임권택 감독에 대한 (예상외로) 촉촉한 에세이가 70편의 여정을 위한 준비운동에 해당한다면 몇주 뒤 정성일, 허문영 선배가 임권택 감독과 함께할 씨네산책은 그야말로 산책이 될 것이다. 본격적으로 ‘등정’을 할 의사가 있다면 정성일 선배의 임권택 감독 인터뷰집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현문서가 펴냄)가 꼭 필요할 것이다. 임권택 전작전이 열리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당신을 뵙게 되길 진심으로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