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아 다운로드 사이트를 기웃거렸던 일본영화 팬들, 클릭질을 멈추시라. 영화배급사 키노아이DMC가 8월12일부터 9월1일까지 서울극장 하모니관과 CGV상암 무비꼴라쥬관에서 <J-MOVIE 썸머 페스타: 하나비전>을 연다. 이번 행사에서는 ‘피어라, 청춘의 불꽃!’, ‘퍼져라, 감동의 불꽃!’, ‘터져라, 상상의 불꽃!’ 3개 섹션에서 13편, 특별상영작 4편, 핑크영화 2편 등 총 19편의 일본영화가 상영된다. 모두 극장 미개봉작이다. 무엇보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영화가 다수 포진한 것이 눈에 띈다. <다이브> <배터리>는 개봉 당시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오랫동안 1위를 차지했고, 도이 도시쿠니 감독의 다큐멘터리 <침묵을 깨다>는 지난해 <키네마준보>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도 노장 히가시 요이치 감독의 <나의 할아버지>, 일본 다큐멘터리 역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노인과 바다> 역시 국내에 처음 공개된다. <씨네21>은 이중 6편을 추천한다(자세한 사항은 영화제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kino_eyes 참조).
<배터리> バッテリ─
감독 다키타 요지로 │ 2007년 │ 119분 │ 피어라, 청춘의 불꽃!
배터리는 야구에서 투수와 포수의 관계를 뜻한다. 부부에 비유하기도 한다. 배터리의 실수를 줄이는 것이 야구의 1차 목표라 할 정도로 둘의 호흡은 중요하다. 그 점에서 투수 하라다 다쿠미(하야시 겐토)와 포수 나가쿠라 고(야마다 겐타)는 미완의 배터리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다쿠미는 야구부에 입부하자마자 3학년생을 밀어낼 정도로 빠른 구속과 정확한 제구력을 갖췄다. 역시 같은 학년인 고는 다쿠미의 빠른 공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포수다. 다만 다쿠미가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까닭에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평소에는 문제될 게 없지만 강한 타자를 만났을 때 금방 밑천이 드러난다. 게다가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서툰 다쿠미와 고에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은 씨도 안 먹힌다. 그런 두 사람이 위기를 함께 겪으면서 서로 알아간다. <배터리>는 야구를 소재로 우정, 가족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굿’바이>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작품상을 수상한 다키타 요지로 감독의 작품이다.
<다이브> ダイブ
감독 구마자와 나오토 │ 2008년 │ 115분│피어라, 청춘의 불꽃!
이만큼 빠른 시간에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가 있을까. 다이빙 말이다. 10m 높이의 점프대에서 뛰어내리면 물에 다다르기까지 2초도 채 안 걸린다. 그 시간 안에 선수들은 준비한 모든 동작을 선보여야 한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다이빙 역시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다이브>의 주인공 토시키(하야시 겐토), 요이치(이케마쓰 소스케), 시부키(미조바타 준페이)는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들이 속한 미즈키 다이빙 클럽이 적자 운영으로 해체 위기에 처해 있다. 팀을 살릴 방법은 하나뿐이다. 올림픽 다이빙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이다. 물론 단 한명만이다. <다이브>는 여느 일본 학원스포츠청춘영화들처럼 스포츠를 통해 성장하는 청춘을 그린다. 그러나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다이빙 시합의 꼼꼼한 묘사, 대역없이 직접 뛰어내리는 배우들의 박진감 넘치는 연기 덕분이다. 달랑 팬티 한장만 걸치고 나오는 꽃남들의 매끈한 몸매는 덤이다.
<남쪽으로 튀어!> South Bound
감독 모리타 요시미쓰 │ 2007년 │ 114분 │ 퍼져라, 감동의 불꽃!
“여기도 난센스! 저기도 난센스!” 아버지 우에하라(도요카와 에쓰시)는 세상을 향해 “난센스!”를 외치지만 아들 지로(다나베 슈토)는 아버지가 ‘난센스’다. 수학여행비 3만5천엔이 비싸다며 불쑥 학교를 찾아와 “비리 냄새가 난다”고 난동을 부리질 않나, 국민연금이 부당하다며 “오늘부로 일본 국민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질 않나 속수무책이다. 지로는 그런 아버지가 참 창피하다. 매사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는 결국 가족을 데리고 머나먼 남쪽 오키나와로 이사 간다. 그러나 그곳도 일본인데 별수 있으랴. 강제로 점거했다는 이유로 지로의 가족은 겨우 자리잡은 집에서 쫓겨날 위험에 빠졌다. 순간 우에하라는 과거 전공투 동료였던 아내(아마미 유키)와 함께 국가의 부당한 행정 절차에 저항하고, 지로는 난생처음으로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남쪽으로 튀어!>는 일본사회의 온갖 모순을 경쾌하게 풀어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애디언텀 블루> アジアンタム ブル─
감독 후지타 에이지 │ 2006년 │ 110분 │ 퍼져라, 감동의 불꽃!
드라마 <히어로>(2001), <결혼 못하는 남자>(2006),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9) 등에 출연한 아베 히로시의 팬들은 <에디언텀 블루>를 꼭 챙겨보시라. 걸작이거나 그의 대표작이라서가 아니다. 필모그래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정통 멜로드라마다. 영화에서 그는 얼굴에 고독을 달고 다니는 성인잡지 편집자 야마자키를 연기한다. 그는 함께 일하는 SM 모델 유카를 통해 물웅덩이만 찍는 사진작가 요코(마쓰시타 나오)를 소개받는다. 요코의 순수함에 반한 야마자키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행복한 시간은 잠시뿐이다. 요코가 말기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고 둘은 프랑스 니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애디언텀 블루>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멜로드라마다. 그럼에도 억지로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 연출과 감정을 절제하는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이야기가 제법 담백하다. 무엇보다 니스의 골목 곳곳의 풍경을 보면 당장 휴가를 떠나고 싶어지리라.
<18금 린코> 18倫
감독 조조 히데오 │ 2009년 │ 77분 │ 터져라, 상상의 불꽃!
대사가 “아아, 야메테(그만해요). 기모치 이이(기분이 좋아요)” 정도라고 해서 AV(Adult Video) 세계가 단순한 건 아니다. 이상적인 가짜 정액을 만들기 위해서 달걀흰자와 물을 어떤 비율로 배합해야 하는지 따져야 하고, 침대에 어떤 천을 까는지에 따라 여배우의 컨디션이 달라진다. AV물의 주소비층(?)인 남성에게도 제법 생소한 내용인데 하물며 AV의 A자도 모르는 여고생 린코(다시로 사야카)는 얼마나 난감했을까. 세상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 딸 린코는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다. 일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니지만 아무도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를 받아주지 않는다. 궁여지책으로 그녀가 선택한 일은 AV물 촬영 아르바이트다. 에로영화의 A부터 Z까지 배우면서 린코는 진정성있는 에로영화를 만들 것을 결심한다. <18금 린코>는 초보자 린코의 눈으로 미지의 세계 ‘AV 촬영현장’을 코믹하게 묘사한다. 린코 역의 다시로 사야카는 154cm의 작은 키에 상상하기 힘든 H컵의 가슴으로,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그라비아 아이돌 중 한명이다. 단, 이 영화에서는 벗지 않으니 참조할 것.
<더 코드> ザ·コ─ド
감독 하야시 가이조 │ 2008년 │ 124분 │ 터져라, 상상의 불꽃!
“아무도 본 적 없는 암호를 해독하고 싶다.” 탐정사무소 5의 암호 해독 천재 ‘탐정507’(오노에 기쿠노스케)에게 웬만한 암호는 시시하다. 그런 그에게 아무도 풀지 못한 암호 해독 임무가 주어지고, 그는 상하이로 간다. 의뢰인은 상하이 최대 조직 폭력배의 연인이자 클럽 가수인 메이란(이나모리 이즈미)이다. 그녀는 조직 몰래 어린 시절 헤어진 아버지를 찾으려고 한다. 아버지의 거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자신의 등 뒤에 새겨진 거대한 암호 문신이다. 메이란을 만나 문신을 확인한 탐정507은 암호를 풀던 중 테러를 당한다. 이후 이야기는 전형적인 탐정영화의 법칙에 따라 전개된다. 그러나 영화의 재미는 하야시 가이조 감독의 탐정 시리즈에서 익히 봐왔던 탐정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다. 익숙한 데서 오는 즐거움이랄까. 마치 비슷한 포맷 안에서 여러 사건을 맡은 필립 말로가 전혀 지겹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감독은 탐정학교를 졸업한 정식 사립탐정으로 장편 데뷔작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탐정물을 만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