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단 3일.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8월6일부터 8일까지 강원도 강릉시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제12회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열린다. 담벼락도 지붕도 없는 뻥 뚫린 운동장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고, 스크린 뒤로는 밤기차가 지나가고, 모기를 쫓으려고 피운 쑥불 연기는 분위기 연출용 특수효과 장치가 되는 별난 영화제.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장’이라는 수식어가 정동진독립영화제에 괜히 붙은 것은 아니다. 박광수 정동진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도 말했다. “자랑할 게 그거다. 요새는 극장이 전부 멀티플렉스 아닌가. 대형 스크린이 걸린 곳도 많지 않다. 영화를 진짜 재밌게 보려면 여러 사람들과 큰 스크린으로 봐야 한다. 정동진독립영화제에 오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선 총 21편의 독립장·단편 영화가 상영된다. 모든 영화는 영화제 기간 딱 한번 상영되며, 모두 무료다.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추천작을 꼽기가 어렵다”고 운을 뗀 다음 “그래도 추천을 한다면 <태영, 센터 가는 길>을 꼽고 싶다”고 말했다. <태영, 센터 가는 길>은 강릉에 살고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 김태영씨가 출연하고 감독(김태영·배성진·이한규 공동연출)까지 한 다큐멘터리다. 전동휠체어를 탄 김태영씨가 집에서 시내에 위치한 자립생활센터까지 가는 힘겨운 여정이 담겨 있다.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일상적으로 다가오는 공포심을 잘 담은 영화”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생명의 강 프로젝트’ 중 첫 번째 작품인 <저수지의 개들>도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라고. 최진성 감독과 레게 밴드 윈디 시티가 손잡고 만든 <저수지의 개들>은 인간의 추악함과 현실의 잔혹함을 아름다운 춤과 노래로 질타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아날로그 드림> <NO.1009> <결정적 순간>은 제12회 정동진독립영화제를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유미정 감독의 <아날로그 드림>은 느리게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승민 감독의 <NO.1009>는 자신의 부품을 떼어내 아기 로봇을 만드는 어미 로봇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정한 감독의 <결정적 순간>은 사진작가, 직장인, 거지 세 사람의 우연한 만남과 그들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흑백 단편영화다. <아이스크림> <런던유학생 리차드> <더 브라스 퀸텟> <아따쿨> <이공계 소년> 등 올해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들도 상영된다. 유대얼 감독의 <더 브라스 퀸텟>은 제9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과 희극지왕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 두편의 장편영화도 준비되어 있다. 그동안 온라인상으로만 공개됐던 윤성호 감독의 인디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온라인판)가 대형 스크린에 걸린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무명배우, 힘없는 매니저, 그들의 산만한 가족과 이웃의 일상을 두근두근 펼쳐내는 시트콤이다. 또 한편의 장편영화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장편경쟁부문 JJ-Star상을 수상한 신수원 감독의 <레인보우>다. <레인보우>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영화감독인 지완이 낙담과 좌절을 꿈과 희망으로 바꾸어나가는 과정을 조심스럽게 그린 영화다.
올해 개막식 사회는 배우 김꽃비와 박혁권이 맡는다. 김꽃비는 정동진독립영화제를 자주 찾는 배우 중 한 사람인데, “개막식 사회를 안 보더라도 영화 보고 휴가도 갈 겸 정동진에 가려고 했다”며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밤에 영화 상영이 끝나면 급식실에서 먹고 놀다가 잠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낮에 해수욕하러 간다. 거기서 자장면도 시켜먹고. 정말 화기애애하고 낭만적인 영화제다.” 김꽃비처럼 여름휴가를 정동진독립영화제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자세한 사항은 영화제 홈페이지(www.jiff.co.kr)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