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자평은 <씨네21> 평자들의 친구이자 적입니다. 20자평은 수많은 스타 필자들의 산실이기도 했지만, 그만큼이나 엄청난 논쟁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송능한 감독은 마지막 작품 <세기말>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20자평을 비판한 적이 있지요. 주인공인 시나리오작가는 술집에서 평론가를 만나 이렇게 말합니다. “자넨, 자네 마누라한테도 별을 주고 그러나? 마누라 쌍통은 두개 반, 젖퉁이는 별 세개.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신중해야지. 영화를 밥그릇으로 보니까 함부로 별을 주고 그러는 거 아냐? 천박하고 파쇼 같은 짓이야. 그런 짓 하지 마.”
송능한 감독의 비판에 <씨네21> 평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그들은 20자평의 선구자들답게 20자평으로 화답했습니다. 유지나 평론가는 ‘목에 힘을 빼면 더 멋있었을걸(글자 수 세지 말 것!) ★★★’, 김영진 평론가는 ‘20자평을 거부할 만한 자질이 있는 영화 ★★★’, 강한섭 평론가는 ‘20자평은 세기말의 타락이 아니라 세기말적 유머입니다 ★★★’라고 말했지요. 이것이 바로 20자평의 존재 가치일겁니다. 짧은 단어 몇개로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비평의 타락이 아니라 또 다른 비평의 즐거움입니다. 게다가 20자평을 쓰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달시 파켓은 ‘외신기자클럽’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물론 한줄 리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영화의 복잡성을 이해하게 도와주는 좀더 긴 리뷰들이 필요하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주고 강점과 약점을 알려주는 리뷰의 유용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결국, 한줄짜리 리뷰야말로 가장 오래 남을 코멘트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유감스럽게도, 이처럼 쓰기 어려울 수밖에.”
창간 15주년을 맞이해 20자평의 15가지 기록을 되새겨봤습니다. 어떤 20자평은 시대를 초월하는 촌철살인의 재미가 여전합니다. 어떤 20자평은 다시 봐도 마음이 두근두근할 만큼 독하디독합니다. 그리고 진보한 20자평은 환영받지만, 진부한 20자평은 외면당합니다.
1. 가장 높은 별점을 받은 영화
<아바타>입니다. 모두 8명의 평자들이 최저 ★★★★점, 최고 ★★★★★으로 대동단결했습니다. 주성철 기자는 ‘귀신이 봐도 싼다’는 싼티 나는 감상을 남겼고요, 점잖은 이동진 평론가마저 ‘블록버스터 역사의 새 이정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래도 삐딱한 황진미 평론가는 좀 특이한 점수를 주지 않을까 기대했더니 ★★★★☆점을 투하하며 단언했습니다. ‘앞으로 수년간 이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를 말할 수 없다.’ 이 무시무시한 대기록은 한 10년 뒤에야 깨지지 않을까 싶군요. 왜 10년 뒤냐고요? 제임스 카메론의 새 영화가 그즈음 나올 테니 말입니다.
2. 가장 낮은 20자평
20자평 평자들은 관대합니다. 아무리 영화가 지랄맞더라도 기본적으로 ★점은 줍니다. 무의식적인 비평적 하한선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참아낼 수 없는 영화로 2시간을 낭비했을 경우, 종종 평자들은 ☆점으로 항의하곤 합니다.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이 ‘시리즈 최악의 졸작 납시오!’라고 외치며 <여고괴담5>에 ☆점을 준 것이 최근의 사례입니다. <여고괴담5>는 7명의 평자의 별점 평균이 ★으로 <요가학원> <4요일>과 함께 역대 최저점을 받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상 최저점은 <맨데이트: 신이 주신 임무>의 몫입니다.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은 ‘관객에 대한 명백한 범죄행위’라는 평과 함께 <씨네21> 역사상 처음으로 ‘Bomb!’을 별점 대신 줬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영화를 찾아봤습니다. 후유, 저의 별점은 ‘Atomic Bomb!’입니다.
3. 다른 20자평과 점수 차가 가장 큰 20자평
황진미 평론가는 <블레임: 인류멸망 2011>에 ★★★☆점을 투여하며 ‘가장 생각해봄직한 재난에 관한 가장 사실적인 묘사’라고 호평했습니다. 문제는 다른 평론가들과의 격차입니다. 평론가 이용철은 ‘하품 백번에 내 뺨은 눈물 범벅’이라며 ★점을 줬고, 김종철 익스트림무비 편집장은 ‘이걸 보느니 바이러스에 걸려 죽는 게 낫다’며 ☆점을 줬습니다. 최저점과 최고점의 차이는 무려 ★★★. 앞으로도 좀처럼 깨지기 힘들 만한 격차입니다.
4. 별점 포기 20자평
그러나 ☆점마저 포기해버린 20자평도 존재합니다. 남다은 평론가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인랜드 엠파이어>에 별점 주기를 포기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번 보고 별점 매길 수 있는 자는 천재이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그렇다면 3년이 지난 지금 남다은 평론가는 <인랜드 엠파이어>에 몇점을 내릴까요. 전화를 해봤습니다. 어익후. 남다은 평론가는 아직 재감상을 하지 못했답니다. 이해합니다. <인랜드 엠파이어>는 두번 겪고 싶은 악몽은 아니니까요. 남다은 평론가는 말합니다. “지금 다시 보면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머리로 이해하려 애쓰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5. 최고의 20자평 연작
20자평에도 속편이 존재합니다. 종종 평론가들은 같은 주의 지면에서 연작을 시도하곤 합니다. 전 <한겨레> 기자 임범의 경우 <그놈은 멋있었다>와 <돌려차기>로 연작을 시도했지요. 전자는 ‘꼰대소리 들어도 할 수 없다 ★★’ 그리고 후자는 ‘꼰대 눈엔 이게 좀 낫네 ★★☆’입니다. 그러나 가장 웃긴 연작의 최고봉은 오랜 20자평의 대가 박평식 평론가의 <요가학원> <4교시 추리영역> 연작입니다. 독자들의 기억에도 강하게 남아 있을 두 영화의 20자평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기한 영업정지! ★, 무기한 등교금지! ★.
6. 가장 수학적인 20자평
김혜리 기자의 <라따뚜이> 20자평은 산수가 필요합니다. ‘독창성 ★★, 맛 ★★★, 서비스 ★★★☆, 위생☆’. 그래서 평균 합이 ★★★점이었지요. 하지만 김혜리 기자님. 산수가 틀렸습니다. 2+3+3.5+0.5를 4로 나누면 평균점은 2.25입니다. 그러니 ★★ 혹은 ★★☆를 주어야 했다고요. 역시 신은 공평합니다. 신은 그녀에게 범접할 수 없는 글솜씨를 내리셨으나 산수 머리는….
7. 가장 맛있는 20자평
20자평은 짧고 인상적인 글로 영화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비유와 은유가 모조리 시도되는 편입니다. 먹을거리 비유법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주변 어른들이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앙꼬 없는 찐빵 같네’라고 말씀하는 걸 들어본 경험 다들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먹을거리 비유법을 끌어들인 최고의 20자평은 누구의 것일까요. 전 <한겨레> 기자 임범은 김기덕의 <빈 집>에 ★★★☆점을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냉면 면발로 치면 이건 함흥냉면 같네.’ 함흥냉면 면발은 메밀이 많이 함유돼 잘 끊어지는 평양냉면 면발에 비해 쫄깃쫄깃한 편입니다. 쫄깃쫄깃하게 재미나다는 의미겠지요. 흠. 확신은 못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진부하진 않습니다. 진보한 20자평은 환영받지만 진부한 20자평은 퇴출되는 법입니다.
8. 가장 사도마조히즘적인 20자평
주성철 기자는 <007 퀀텀 오브 솔러스>에 ★★★☆점을 주며 이렇게 썼습니다. ‘본드한테 한대 맞고 싶다.’ 주성철 기자를 직접 봤더라면 제임스 본드 역시 한대 치고 싶지 않았을까요. 어쨌거나 이 무시무시하게 폭력적인 20자평으로 지면을 더럽힌 주성철 기자가 평소 SM 플레이를 즐기는지 여부를 궁금해하는 독자분이 계실 겁니다. 남의 프라이버시를 함부로 발설할 순 없습니다. 다만 평소 자리에 앉아 있는 자세로 추측해본 결과, 대퇴부 부위에 붉은 줄이 몇개 쳐져 있을 거란 짐작은 해볼 수 있을….
9. 가장 짧은 20자평
김영진 평론가는 <이레이저 헤드>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진짜 컬트 ★★★★.’ 이동진 평론가는 <인랜드 엠파이어>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후덜덜덜 ★★★★☆.’ 둘 다 네 글자입니다. 그러나 글자 사이의 간격이 없는 이동진 평론가의 <인랜드 엠파이어> 20자평을 역대 가장 짧은 20자평으로 선정하겠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님. ‘덜’하나 빼고 그냥 ‘후덜덜’이라고 보내주셨으면 깐깐하게 글자 수까지 세는 수고는 안 했을 겁니다.
10. 가장 긴 20자평
<사랑해, 파리>는 20자평 평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도록 만들었습니다. 20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영화인데다 편차가 너무 커서 도무지 20자에 버무려 넣을 수 없었던 탓이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평자들이 20자를 훌쩍 뛰어넘는 장문의 20자평을 보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길었던 건 김혜리 기자의 20자평입니다. 그녀는 ‘☆부터 ★★★☆까지’라는 별점을 매기며 ‘거린다 차다, 구스 반 산트, 월터 살레스, 올리비에 아사야스 WIN! 크리스토퍼 도일, 코언 형제, 스와 노부히로, 톰 티크베어 OTL’라고 썼습니다. 영어 단어까지 포함하면 무려 51자입니다. 김혜리 기자님. 니가 보낸 20자평이 51자는 아니겠지?
11. 평론가 우정파탄 20자평
종종 어떤 영화는 평론가들의 우정과 사랑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평론가들은 깨어진 우애를 20자평으로 토해내기도 합니다. <쏘우6: 여섯번의 기회>를 본 이용철 평론가는 ★점을 투하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김종철씨, 제발 이런 영화 보러 가자고 하지 마세요.’ 20자평에 평론가의 이름이 직접 거론된 최초의 20자평이기도 했지요. 두분의 우애가 <쏘우6: 여섯번의 기회>로 완전히 깨어진 건 아닌 듯합니다. 여전히 두분은 사이좋게 시사회에 나타나시거든요. 참 <씨네21>에서는 두분을 ‘철 브러더스’라고 부릅니다. <쏘우7: 이래도 참을쏘냐?>가 나오기 전까지는, 두분 우정 영원하시길 바랍니다.
12. 최고의 동어반복 20자평
오랜 <씨네21> 독자들이 지금도 종종 회고하는 20자평이 하나 있습니다. 전 영화진흥위원장을 역임한 강한섭 평론가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20자평이었죠. ‘스필버그 스필버그 스필버그 스필버그 스필버그 ★★★★.’ 스필버그라는 이름이 무려 다섯번이나 반복되는 이 20자평은 스필버그에 대한 강한섭 평론가의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절절한 사랑고백이었습니다. 저도 좀 따라해봐야겠습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임… 상수 상수 상수 상수’,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는 ‘홍… 상수 상수 상수 상수’.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에게는 ‘휴우… 상수 상수 상수 상수’. 아. 이건 아니고.
13. 영어 사대주의 20자평
전 <한겨레> 기자 임범은 <캣우먼>에 ★★점을 주며 이렇게 썼습니다. ‘할리 베리, 돈 체인지. 아이 러브 유 저스트 더 웨이 유 아.’ 임범 기자가 원래 영어로 20자평을 보내왔는지는 알려진 바 없고 기억하는 자도 없습니다. 어쨌거나 영어로 된 20자평이 좀더 시크하고 엣지있어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위 윌 낫 체인지. 위 러브 디스 20자평 저스트 더 웨이 잇 이즈.
14. 음성지원 20자평
김혜리 기자의 <핸콕> 20자평입니다. ‘오호!→우와!→헉!→으응? ★★.’ 이 20자평은 나도 모르게 입으로 흉내내며 읽게 되는 이상한 마력이 있지요. 또 다른 사례로는 이동진 평론가의 <도쿄> 20자평이 있지요. ‘오! 봉준호, 악! 카락스, 에~ 공드리 ★★★★.’ 하지만 다른 평자들께서는 음성지원 20자평을 좀 삼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워어어어어어어!’ ‘항가항가!’ ‘아햏햏’ 이런 20자평을 보내오실 경우, 원고료는 돈 대신 문석 편집장의 ARS 덕담 30분으로 대체하겠습니다.
15. 가장 독창적인 견해를 지닌 20자평 평자
강한섭 평론가의 초창기 20자평은 종종 논란이 되곤 했습니다. 다른 평론가들과는 조금 다른 심사기준 때문이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볼까요? ‘<스크림2> 인간의 몰락을 본다 ★★’, ‘<포스 오브 네이처> 재미있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영화 ★★★☆’, ‘<이레이저 헤드> 컬트영화의 걸작? 영화비평이 불신받는 이유 ★★’. 강한섭 평론가의 20자평 기준은 엄격한 도덕성, 그리고 ‘대중이 좋아하는 영화가 걸작’이라는 특유의 대중영화적 기준이었습니다. 뒤를 잇는 20자평 논쟁의 주인공은 황진미 평론가입니다. 몇 가지 예를 발췌해봅시다. ‘<도마 안중근> 서세원 영화라고 특별히 나쁘진 않다. 그러나 좋지도 않다 ★★☆’, ‘<아일랜드>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진정한 SF대작. 끝까지 간다 ★★★★☆’, ‘<우주전쟁> SF라기보단 재난영화, 가족영화라기보단 허무개그 ★★☆’, ‘<월·E> 설정과 디자인은 깜찍하오만 드라마가 너무 빈약하오 ★★★’. 싫지 않습니다. 20자평의 대동단결이란 얼마나 재미없는 일이겠습니까. 20자평의 재미를 위해 계속해서 삐딱하고 독창적인 심사기준, 지켜주길 바라요.
영화 속 악당 이름이 박평식이더라
박평식 평론가 서면 인터뷰
박평식 평론가는 1997년부터 20자평을 썼다. 영상물등급위원으로서 단 한편의 영화도 지나치지 않는 지면 장악력은 물론, 살인이 가능할 법한 촌철살인의 표현력까지, 그는 진정한 20자평의 대가다. 박 평론가는 젊은 독자들에게 활동 연혁을 조금 알려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활동 연혁엔 수난 내력으로 답하겠다. 내겐 ‘쓴다’와 ‘시달린다’가 이음동의어였다. 욕 하나는 원없이 먹었다. 고소장은 기본, 식칼과 도끼는 필수, 하룻밤 14번 으름장을 놓던 전화는 내 아내 직장으로 이어졌다.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청룡상의 평론상 수상을 거부하고 곤욕을 치른 이야기는 건너뛰겠다.”
-20자평 연재를 언제부터 시작했나. =1997년 여름부터 별점을 매겼다. 마지막 라운드에 한방을 날리는 인파이터처럼 평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원고지 20장보다 단어 20개 추리기가 힘든 적이 많았다. 인간과 시대가 만져지고 시와 유머가 녹아든 화면에 감격했지만 때론 젖은 쓰레기 더미를 뒤적이는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20자평을 쓰면서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한국영화를 다룰 때 괴롭다. 툭하면 르네상스요 툭하면 위기론을 목놓아 외친다. 스크린에 비친 허영의 광기도 놀랍거니와 지적 교만과 예술 강박증엔 답이 안 나온다. 영화인들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으나 한국영화는 볼 적마다 애증이 교차한다. 존경하는 시인의 시구를 감히 인용한다면, 한국영화는 언제나 ‘나의 사랑, 나의 사슬’로 휘감는다.
-가장 기억에 남은 20자평은. =좋은 영화는 결국 관객이 만든다. <쏘우: 여섯번의 기회> 평대로 “독하고 질긴 것들”은 질기도록 독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깔아뭉갤 것이다. 아름다운 영화에 부드러운 글로 고마움을 전하고픈 마음 간절하다. <브로큰 플라워>의 “눅눅한 나그네 삶, 떠도는 이 영원히 떠돌게 하소서”라는 기도문 같은 20자로.
-20자평으로 나쁜 피드백을 받은 경험이 있나. =피드백이라기보다 부메랑일 것이다.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며 내 신혼여행에도 함께 갔던 감독의 작품에 별 셋과 쓴소리를 붙였다가 지상에서의 인연마저 끊기고 말았다. 부디 그 작은 그릇에도 큰 영화가 담기기를! 올 초에 개봉한 어느 영화의 악당 이름이 박평식이었다. 감독의 프로필을 뒤져보니 예전에 나 혼자만 별 한개 반을 준 영화를 제작했더라. 탄식과 연민! 그렇게 해서라도 앙심이 풀리고 살림살이가 나아졌으면 좋겠다. 어쭙잖은 악역은 이제 그만, 아니 평론이라는 허망한 짓을 접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