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 영화 시상식을 거의 보지 않았다. 한국에는 많은 시상식이 있는데 그중 어떤 시상식도 특별히 관객이 주목해야 할 가치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 내가 새롭게 시상식을 하나 더 제안해도 괜찮을 듯하다. 저예산영화를 위한 ‘10억원 미만 영화상’을 시작하면 어떨까?
영진위 통계에 따르면 5년 전인 2004년에 극장 개봉한 영화 중 딱 세편만이 10억원 미만의 예산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그때는 10억원 미만 영화제를 열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영화산업이 변화함에 따라 더 많은 저예산영화가 만들어지고 그중 많은 수가 극장에서 개봉됐다. 정확히 예산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림짐작하더라도 10억원 미만으로 만들어진 50여편의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최고의 영화도 이 영화 중에서 나왔다. 주류 영화 시상식들은 <해운대>나 <국가대표> 같은 영화에만 신경쓰고 <똥파리> 같은 영화는 제대로 취급해주지 않는 듯하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한국영화의 활동이 이루어졌던 이 저예산 분야에 주목하는 새로운 영화 시상식을 만들면 어떻겠는가?
어떤 이들은 영화 시상식이 돈 낭비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시상식은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 개별 영화와 영화산업 전체를 알리며, 영화감독과 배우들을 격려하고, 넓은 의미에서 영화사와 공통된 집단적 기억을 만들어낸다. 상을 받은 영화들은 우리 기억에 조금 더 오래 머문다. 이런 이유에서 영화산업의 ‘다른 한쪽’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을 더욱 인정해주어야 할 필요가 생긴다.
더욱이 여러 시상 분야를 만든다면 참으로 흥미로울 것이다. 여우주연상 부문에는 <똥파리>의 김꽃비, <파주>의 서우,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고현정, <반두비>의 백진희와 <여행자>의 김새론이 후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들 후보는 대종상 후보들에 비해 훨씬 나아 보인다. 모든 영화들이 제한된 예산 속에 만들어진 덕에 프로덕션디자인이나 특수효과 분야 역시 훨씬 흥미로울 것이다(물론 이 분야에도 9억원에서 9천만원이라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아마도 초저예산 영화 분야를 새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만들어진 몇몇 중요한 저예산영화를 보지 못한 까닭에 내 의견이 전적으로 중요하지는 않겠으나, 논의를 위해 내가 지지할 영화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최대한 고르게 많은 영화를 포함하려 했으나 비평적으로 높이 평가받은 몇몇 영화를 놓쳤음을 밝힌다. <장례식의 멤버> <나는 곤경에 처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무없는 산> <다시간의 춤> <고갈> <독> 그외 다수.
달시 파켓의 10억원 미만 저예산영화상 수상자 목록
작품상: <파주> 감독상: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홍상수 남우주연상: <똥파리>의 양익준 여우주연상: <파주>의 서우 각본상: <약탈자들>의 손영성 신인감독상: <여행자>의 우니 르콩트 촬영상: <허수아비들의 땅>의 최정순 신인남우상: <낙타는 말했다>의 김낙형 신인여우상: <반두비>의 백진희 다큐멘터리상: <할매꽃> 인기상: <워낭소리> 5천만원 미만 영화상: <낮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