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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문> 소녀시대 순정을 거머쥐다
장미 2009-12-10

박스오피스 초유의 기록을 달성한 <뉴문> 신드롬의 정체는?

바야흐로 소녀들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11월20일 북미에서 개봉한 <트와일라잇>의 속편 <뉴문>이 무서운 기세로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폭발적인 개봉 첫날 미드나잇 상영을 토대로 난공불락이라 여겼던 <다크 나이트>의 1일 최고 수익 기록을 탈환하더니, 역대 개봉 첫주 수익 1위까지 동시에 거머쥐기에 이르렀다. 하늘을 찌를 듯한 소녀들의 환호에 안 그래도 예민한 할리우드 관계자들이 바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기이한 소동극은 뭘 의미하는가. 캐서린 하드윅에게 메가폰을 물려받은 크리스 웨이츠, 아니 작가인 스테파니 메이어가 마법이라도 부린 걸까. 이토록 많은 여성 팬이 열광적으로 소설을 암기하고, 팬 카페를 만들고, 촬영장을 급습하고, 포크스를 성지순례하고, 영화적 완성도를 의심하는 일부 관객과 스크롤바를 내리다 지칠 만큼 끈질기게 논쟁하는 까닭은 대체 뭘까. 스테파니 메이어의 베스트셀러 ‘트와일라잇 사가’의 두 번째 편을 원작으로 한 영화 <뉴문> 신드롬을 추적했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기절 직전의 비명이 쏟아졌다. 11월16일 <뉴문> LA 프리미어 현장.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몇 천명의 군중이 한손엔 플래카드, 다른 한손엔 카메라를 들고 극장으로 향하는 거리를 점령했다. 영화의 캐릭터를 프린트한 티셔츠는 수수한 준비물에 불과했다. 뱀파이어의 송곳니를 단 소녀는 물론, <뉴문>의 새로운 스타 테일러 로트너의 사인을 받기 위해 속옷(!)을 내미는 용감한 숙녀도 있었다. 뉴저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한 여성은 성의를 알아달라는 듯 항공권을 붙인 플래카드를 흔들기도 했다. 대개 앳된 소녀 집단이었던 이들은 몇달, 심지어 <뉴문> 제작이 선포됐던 거의 1년 전부터 로버트 패틴슨과 크리스틴 스튜어트, 테일러 로트너 등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출연진과 직접 마주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목놓아 외쳤다.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믿은 모양인지 열성 팬들은 좋은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그 전주부터 일찍이 거리에 텐트를 치고 노숙(!!)까지 불사했다.

800장에 이르는 티켓은 깨끗이 사라졌다. 한 주민은 “내 인생에서 고딕풍으로 차려입은 12살 소녀들을 이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라면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가히 광기에 가까운 열성이었다. 가장 새된 함성을 불러일으킨 뱀파이어 연인 로버트 패틴슨은 농담처럼 대답했다. “여러분은 이런 걸 준비하면 안돼요. 이건 제정신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몇 안되는 인간만이 <트와일라잇> 이벤트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사랑을 경험할 겁니다.” 테일러 로트너는 이렇게 감격을 표했다. “우린 <트와일라잇>의 프리미어가 장난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건 그 10배는 되는 것 같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다크 나이트 베고, 해리 포터에 주문 걸다

할리우드의 반응은 유사하다. 흥행은 알았으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식이다. 돌풍의 전조는 예매율에서 먼저 감지됐다. 미국 최대 예매사이트 판당고에서 <뉴문>이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를 물리치고 사전 예매 최다 판매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이어 전작인 <트와일라잇>이 만만찮은 힘을 발휘한 개봉 첫날 미드나잇 상영으로 2630만달러의 수익을 올리면서 같은 부문 1, 2위인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2200만달러), <다크 나이트>(1800만달러)를 제치는 것도 모자라, 개봉 첫날까지 7천만달러 이상을 긁어모아 1일 최고 수익에서 다시 한번 <다크 나이트>(6720만달러)를 여유롭게 따돌렸다. 개봉 첫날 극장 수가 <다크 나이트>보다 342관 적었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괄목할 만한 수치다. 판당고 관계자는 말했다. “에드워드와 제이콥이 티켓 판매의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다크 나이트’를 베고, ‘해리 포터’에게 주문을 걸었다고 설명하면 어떨까. 극장주들은 팬의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새로운 쇼타임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한편 이를 공지하고 있다.” 개봉 주말 미국에서만 1억4070만달러를 벌어들인 <뉴문>은 역대 개봉 첫날 수익 1위와 11월 개봉작 중 수익 1위, 개봉 주말 수익 3위에 올랐고, 올해 주말 최고 신기록을 경신했으며, 가장 빨리 1억달러 수익을 올린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외 25개국에서 벌어들인 금액까지 보태면 개봉 주말 수익은 2억5880만달러. 5천만달러 남짓인 제작비를 몇배나 넘어서는 수익으로 한국을 비롯해 아직 개봉하지 않은 나라에서 휩쓸 지폐 다발까지 합산하면 <트와일라잇>의 극장 총수익인 3억8200만달러를 가뿐히 능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뉴문> LA 프리미어 현장.

더욱 놀라운 사실은 관객의 근간에 있다. <뉴문>은 가족 단위 관람객에게 최적의 선택인 <해리 포터> 시리즈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팬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예컨대, 메가히트 베스트셀러인 <해리 포터> 시리즈의 4억부에 달하는 판매부수와 비교하면 ‘트와일라잇 사가’의 그것은 초라하게도 1700만부에 불과하다. 제작사인 서밋 엔터테인먼트야 이번 영화가 <트와일라잇>보다 CG와 액션신이 많은 만큼 남성 관객의 입맛에도 충분히 맞으리라 주장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연하다. <트와일라잇> 시리즈, 무엇보다 ‘트와일라잇 사가’는 명백히 여성을, 더 정확하게는 10대 소녀들을 타깃으로 한 프랜차이즈다. 첫 주말 관객을 토대로 한 출구 조사에 따르면 관객의 80%가 여성이요, <뉴문>이 개봉한 주말 내내 캐나다와 미국의 극장들이 소녀들과 그들의 어머니, 대체로 25살 미만의 여성들로 폭발 직전이었다는 (아마도 남성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마저 들려올 정도다. 미국 영화 전문 데이터베이스인 IMDb의 관객 평 역시 나이를 불문하고 10점 만점에 남성이 3점대, 여성이 7점대로 확연히 구분되는 추세다. 두세번은 기본이요, 많게는 그 서너배에 이르는 반복 관람의 힘은 <트와일라잇>으로 생생하게 입증된 바 있다. 미국 내 역대 개봉 주말 수익에서 성수기인 여름 시즌에 개봉한 <다크 나이트>(1억5840만달러)와 <스파이더맨 3>(1억5100만달러)에 밀려 3위를 차지한 것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뉴문>의 흥행은 스스로를 ‘트와이-하드’(Twi-Hard)라 일컫는 제한적이나 충성도 높은 팬들이 일군 경이로운 승리라는 뜻이다.

최소의 신체 접촉으로 최대의 호르몬 분출

그렇다면 소녀 팬들, 아니, 트와이-하드들이 이토록 순순히, 아니 기다렸다는 듯이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이유는 뭘까. 많은 리뷰어들이 지적했듯이 ‘트와일라잇 사가’의 심장은 뱀파이어 장르가 아니요, 명백히 하이틴로맨스다. 에드워드와 컬렌 가족은 송곳니가 있기는커녕 햇볕 아래서도 죽지 않는 예외적인 뱀파이어다. 스테파니 메이어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읽어본 적이 없고, R등급 영화를 단 한번도 보지 않았다는 건 너무 유명한 이야기다. 타인의 내면을 읽고, 미래를 예측하며, 태양 아래 피부가 반짝이고, 초대받지 않은 집에 자유롭게 출입하는 ‘트와일라잇 사가’의 뱀파이어들은 유별난 식성의 초능력자나 슈퍼히어로에 가까워 보인다. 피의 갈구는 오히려 로맨스에 긴장을 더하는 요소로, <트와일라잇>은 최소의 신체 접촉으로 최대의 호르몬을 분출한 “섹스보다 섹시한”(<뉴요커>) 영화였다. TV시리즈 <트루 블러드> 등 표절이 의심될 정도로 비슷한 기타 뱀파이어 로맨스물이 태생적으로 섹시한 뱀파이어-인간 커플의 끈끈한 러브신으로 어필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접근이다. 심지어 철저한 모르몬교 신자인 메이어는 혼전 섹스가 만연하는 할리퀸 로맨스를 꾸짖듯 ‘트와일라잇 사가’를 10대 커플을 위한 바람직한 연애 가이드 형식으로 집필했다. 거칠게 정리하면 <트와일라잇>은 만남, <뉴문>은 이별과 재결합, <이클립스>는 삼각관계, <브레이킹던>은 결혼과 임신편이다. 어린 연인들은 야밤 밀회를 제외하면 각 단계의 선을 철저히 고수하는데, 특히 에드워드는 뱀파이어라는 정체성만 모른 척한다면 <이클립스>에서 첫 섹스를 겨냥한 벨라의 유혹에도 요지부동일 만큼 모범적인 청년이다. 벨라는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라 대학에서 만난 남편과 21살에 결혼에 골인한 메이어의 사례와 단연 흡사하고, 이는 잭과의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미국 질들의 평범하지만 가슴 떨리는 대표적인 판타지다.

캐서린 하드윅의 하차에 동요하는 팬들을 향해 서밋 엔터테인먼트는 늑대인간이라는 종족을 본격적으로 소개해야 한다는 이유로 크리스 웨이츠의 발탁에 대해 설명했다. <황금 나침반>을 연출한 경력을 높게 샀다는 의미다. <트와일라잇>이 여성 감독이 제대로 특기를 발휘할 만한 영화라면, <뉴문>은 확실히 남성 감독이 맡아야 매력적일 영화다. 전편에서 조연에 머물렀던 제이콥을 주인공으로 새롭게 부각시키는 동시에, 에드워드 대 제이콥, “고스족과 운동선수 사이”(<버라이어티>)의 대결을 강조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다. 이는 대중소설과 영화에서 물리도록 되풀이됐으나 여전히 통용되는 삼각관계의 변형으로, CG의 도움없이는 성취 불가능하나 섬세한 감수성이 필수적인 영역은 아니다. 이를테면, 차갑고 지적인 연상의 식물성 미남과 다정하고 귀여운 연하의 동물성 근육남, <트루 블러드>의 뱀파이어 빌과 형체변환자 샘, <제인 에어>의 세인트 존과 로체스터씨, <키다리 아저씨>의 키다리 아저씨와 지미, <폭풍의 언덕>의 에드거와 히스클리프,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다니엘과 마크, 나아가 한국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와 윤지후 등이 변주된 그 후예들이다. 늑대인간의 ‘각인’에 대해 언급하는 <이클립스>에서 확실히 밝혀지겠지만, 이들은 한 여성을 죽도록 사랑함에도 열정이 지나쳤다가는 그녀의 목숨을 빼앗기 십상인 순정적이고 위험한 남자라는 측면에서 동류로, 비현실적인 백일몽의 주인공이다. 결론적으로 <뉴문>의 전략은 적확했다. 테일러 로트너는 개봉과 동시에 뜨거운 스타덤에 휩싸였고, 팬들은 ‘팀 에드워드’와 ‘팀 제이콥’으로 나뉘어 애정을 과시하는 중이다. 삼각관계가 최고조에 도달하는 <이클립스>의 서론으로 순조로운 출발이다.

초식남 vs 동물남 묘사에는 남성 감독이 제격

물론 스테파니 메이어가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의 창조자를 꿈꿨을 리는 없다. 감독직을 수락하기 전까지 ‘트와일라잇 사가’를 단 한줄도 읽은 적이 없던 크리스 웨이츠 역시 내심 <뉴문>을 제작사의 요구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팬시상품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대신 스테파니 메이어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던 캐서린 하드윅의 전례를 따라 웨이츠는 원작을 있는 힘껏 존중하려 했고, 사방에서 번뜩이는 감시의 시선을 고려한다면 그래야 옳았다. “스테파니가 창조한 이 특별한 세계는 수백만 팬을 거느리고 있다. 그들이 사랑하는 캐릭터와 주제, 이야기의 편에 서서 이를 보호하는 것이 나의 의무다.”

그러니 비평가들의 악평은 <뉴문>의 운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미국 영화정보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뉴문>은 49%에 달했던 <트와일라잇>의 그것에 한참 못 미치는 30%의 신선도에 머물렀고, 로저 에버트 역시 별 5개 만점에 1개만을 선심 쓰듯 허락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냉소적으로 이렇게 썼다. “10대 소녀들이 비명을 지르도록 만드는 영화가 존재하는 건 훌륭하다. 할리우드가 만드는 나머지 반쪽의 영화들은 10대 소년들이 비명을 지르게끔 고안되지 않았나. 이같은 소년들의 영화는 <뉴문>만큼 우스꽝스럽거나 훨씬 더 추잡하다.” <워싱턴포스트>는 대놓고 혹평했다. “(테일러) 로트너가 극중 셔츠를 벗었을 때 관객은 헐떡거림과 비명의 중간이라고 할 만한 소리를 냈다. 그건 공포영화를 볼 때나 듣고 싶은 뭔가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에드워드를 “초자연적으로 창백한 랄프 로렌 모델의 몸에 깃든 뱀파이어”라고 명명하는 한편, 늑대인간 무리는 “아베크롬비&피치의 카탈로그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고, 에드워드의 뱀파이어 가족은 “바니스에서 쇼핑한 것 같다”고 폄하했다. 한 블로거는 탄식했다. “이게 소녀들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란 말인가. 이렇게 성차별적인 영화가.”

영화산업에 ‘소녀시대’ 도래할지는 미지수

개봉 둘쨋주의 성적을 확인해야 장담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뉴문>의 다급한 흥행이 순식간에 가라앉으리라 예측하고 있다. 물론 소녀들의 반복 관람 행렬을 무시할 순 없으나 애초 ‘트와일라잇 사가’의 팬층이 그리 두텁지 않다는 점에서 수긍 가능한 논리다. 평론가들의 혹평과 성차별적이라는 비판과는 별개로 소녀들의 파워는 이미 박스오피스에 확연한 자취를 남겼다. 그녀들은 <뉴문>에 몰표를 던졌다. 문화 콘텐츠의 주된 소비자로 여성의 마음을 매혹시켜야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는 수년 전부터 마케터들을 자극했고, 이는 더이상 혁신적인 발상이 아니다. 하지만 소비 관념이 확실한 20∼30대 직장 여성이 아니라 소녀들이라면 어떤가. 또래 집단의 취향에 중독되기 쉬울 뿐 아니라 사랑해 마지않는 존재에게 무조건적으로 주고 또 베푸는 10대 소녀들이라면. 처음으로 돌아가, 문화산업의 새로운 주인으로 소녀들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확신할 순 없다. 다만 <다크 나이트>의 흥행에 프랜차이즈의 재부팅이 돈 세례를 맞이하는 지름길이라 확신하던 할리우드영화 관계자들은 또 하나의 대안을 가장 달콤한 방식으로 확인했다. 빅뱅과 2PM, 소녀시대와 카라 등 아이돌 스타들이 한국의 브라운관을 접수한 지금, <뉴문>이 미국 내 박스오피스 신기록을 하나둘 갈아치우고 있다는 사실은 그저 이상한 우연의 일치일 따름일까. 최악은 지났다지만 여전히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는 미국에서 소녀들의 티켓 파워만큼은 시들지 않았거나 혹은 한층 맹렬히 불타오르고 있다는 일종의 방증은 아닐까. 서밋 엔터테인먼트는 ‘트와일라잇 사가’의 세 번째 작품 <이클립스>의 영화화를 공언했다. 감독은 크리스 웨이츠에서 <하드 캔디> <써티데이즈 오브 나이트>의 데이비드 슬레이드로 교체됐지만 각본가 자리는 전편 두편을 모두 작업한 멜리사 로젠버그가 고수할 예정이다. 이만 하면 로맨틱코미디는 물론이고 장르영화에 능한 할리우드에서 신대륙 개척에 박차를 가할 명분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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