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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로 이주한 가족의 삶 <제노바>
문석 2009-11-11

synopsis 세 모녀는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다. 작은딸 메리(펄라 하니-자딘)가 장난으로 엄마 눈을 가렸는데 그 때문에 교통사고가 나 엄마가 죽은 것이다. 아버지 조(콜린 퍼스)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두딸 켈리(윌라 홀랜드)와 메리를 데리고 미국을 떠나 이탈리아 제노바로 향한다. 하지만 죽은 엄마의 그림자는 세 가족의 곁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심지어 메리는 엄마의 환영을 보기 시작한다.

몇년 전 마이클 윈터보텀이 <제노바>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2001년 제노바에서 열린 G8 정상회담과 격렬한 반대시위를 떠올렸다. <웰컴 투 사라예보> <인 디스 월드> <관타나모로 가는 길> 등 정치는 윈터보텀의 주요 주제였기 때문이다. 정치를 소재 삼지 않더라도 <24시간 파티 피플>이나 <나인 송즈>처럼 윈터보텀은 늘 논쟁적인 영화를 만들어왔다. <제노바>는 그런 사람들의 기억 또는 기대와는 영판 다른 영화다.

아내와 엄마의 죽음에서 벗어나고자 낯선 도시로 이주한 가족의 삶을 그리는 이 영화는 지극히 고요하다. 대단한 이야기도 없다. 조는 이곳 여성들의 유혹을 받고, 켈리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려 하며, 메리는 엄마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제노바>는 이 세 구성원의 일상을 굵은 중저음의 톤으로 연주한다. 이상한 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감을 없앨 수 없다는 점이다. 죽음의 공기에 짓눌려 있는 그들의 일상은 살얼음 걷듯 아슬아슬하다.

그건 캐릭터나 이야기보다 제노바라는 공간에서 비롯된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제노바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의 미로는 내게 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줬다”는 윈터보텀의 말처럼 지독하게 눈부신 햇살이 감돌고 있는 해변과 깊은 어둠이 드리워진 뒷골목의 대비는 주인공들의 어슴푸레한 내면을 드러낸다. 그들의 마음은 아무리 밝은 햇살로 나아가려 해도 자꾸 어둑한 골목 안으로 쏠린다. 메리가 홀로 뒷골목을 헤매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절정이다. 이곳은 감독의 말마따나 세 부녀에겐 지옥과 천국 사이에 있는 “림보”다. <제노바>는 아내와 이혼한 뒤 두딸과 헤어진 윈터보텀 자신의 삶과 닮아 있다. 어쩌면 제노바에서 새로운 삶으로 가는 힘을 얻은 건 감독 자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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