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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바그의 산파
2001-12-05

<네 멋대로 해라> <피아니스트를 쏴라> 라울 쿠타르

<네 멋대로 해라>에서의 미셸과 파트리샤를 따라 파리의 샹젤리제를 묵묵히 따라오던 카메라의 움직임을 주목하게 된 것은 전에 없던 소박함과 진실함 때문이었다. 카페와 상점을 따라 줄곧 이어지던 화면은 단순한 진리, 곧 거기에 이미 삶이 있다는 것을 전달해준다. 기존의 영화와 젊은 영화를 양분했던 그들 나름의 영화찍기의 정신은 레일도 없이 휠체어에 앉아 밀며 찍던 카메라에서 이미 배어났던 것이다. 1950년대 후반, 영화의 정체성을 구하려는 영화 자체의 노력은 새로운 기술과 조우한다. 스튜디오 대신 야외에서 촬영이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가벼운 카메라, 적은 조명, 수많은 보조기구 없이도 촬영이 가능한 장비들이 갖춰졌다. 이동이 쉽고 조작이 간편한 장비들 덕으로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촬영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예술적인 실험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카메라와 맞닥뜨린 영화의 이 자기확인 절차를 통해 프랑스 누벨바그의 신호탄이 울렸으며, 파리의 거리 곳곳을 누비는 촬영감독 라울 쿠타르의 핸드헬드 카메라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벗어나 영화는 마침내 바깥 공기를 호흡한다.

장 뤽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를 프랑스 누벨바그의 아버지라 칭한다면, 그들을 도와 가공의 이미지를 영화라는 틀 안에 접목시킨 산파 역을 해낸 이는 다름 아닌 라울 쿠타르일 것이다. <라이프>와 <파리 마치>의 사진기자로 명성을 얻어오던 1924년 파리 태생의 라울 쿠타르가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35살이 되던 1959년. 피에르 스코엔도에르페르 감독의 <라 파스 뒤 디아블>(La Passe du Diable)의 촬영을 통해서이다. 촬영감독의 일을 하는 것이고, 상영되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허세로 들릴 정도로 핸드헬드 카메라에 담아낸 영상은 독특했고, 그해 독일 비평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새로움을 구하던 누벨바그의 감독들은 곧 그의 손길을 필요로 하였다.

17편이나 함께 작업해온 장 뤽 고다르와의 만남 또한 이러한 가능성에 출발한다. 쿠타르의 비유대로라면 ‘파시스트의 좌파와 우파’와도 같던 이들의 영상에 대한 감각이 물론 처음부터 합일점을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치 보고서처럼 있는 그대로를 단순하게 기술하길 바랐던 고다르의 주문과 촬영하는 당일에야 나오는 그의 대본을 즉각 수용할 수 있었던 것도 인도차이나 전선에서 고비에 직면해 발빠르게 적응했던 사진기자로서의 쿠타르의 경력과 멀지 않은 것이었다. 올 로케이션을 감행했던 <네 멋대로 해라>의 성공 이후 그의 실험정신과 순발력은 그 진가를 드러낸다. 네발 달린 돌리는 세발로 개조되어 움직임이 자유스러워졌으며, 거추장스러웠던 스튜디오의 조명 대신 전구를 이용한 간접조명을 고안하고, 빛에 민감한 필름을 사용해 일반적인 조명시설이 필요없게 해주었다. 그의 카메라는 360도 회전하는 대담한 시도를 종종 감행했으며, 다큐멘터리의 거칠고도 역동적인 스타일을 접목시키는 등 이전의 진부한 형식은 거부되었다.

예측할 수 없던 고다르와 달리 철저한 사전준비를 한 뒤 촬영에 임하는 트뤼포는 안정감 있는 분위기를 형성해주어 쿠타르에게 자신이 원하는 테크닉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정적으로 흐르던 핸드헬드 카메라의 움직임은 이내 돌발적인 장면전환을 이루어, 다리를 질주하던 <쥴 앤 짐>의 영상을 영화사에 오래도록 간직하게 해주었으며, 이후 쿠타르의 기교와 트뤼포의 감성이 이루어낸 교류는 지속된다. 정치적인 이유로 한동안 멀리했던 고다르와는 그의 후기작품인 <열정> <미녀 갱 카르멘>으로 다시 맥을 잇는다.

최근 고다르의 경배자인 필립 갸렐의 로맨틱스릴러 <와일드 이노센스>로 75번째 촬영을 마친 쿠타르는 촬영감독으로의 기나긴 행로를 거쳐 이제 휴식을 취하려 한다. 촬영 이외에 <호아 빈>(1970)과 몇편의 영화 연출을 한 그는 카메라맨과 이야기하려면 때때로 프랑스인과 체코인이 마주한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두 자리에 모두 서 본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분석한 촬영의 딜레마 하나. “촬영과 감독 사이의 문제는 항상 의사소통에 기인한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감독은 이미 여러 달 숙고를 거듭해온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감독은 그 나름의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촬영감독의 시각은 그 이후에 온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필모그래피

촬영

<와일드 이노센스>(Sauvage Innocence, 2001) 필립 갸렐 감독

<팬텀 허트>(Le Coeur Fantome, 1996) 필립 갸렐 감독

<사랑의 탄생>(La Naissance de L’amour, 1993) 필립 갸렐 감독

<상처난 삶>(La Vie Crevee, 1992) 길라우메 니콜로스 감독

<닥터 베쑨>(Bethune: The Making of a Hero, 1990) 필립 보르소스 감독

<날으는 아이들>(Les Enfants Volants, 1990) 길라우메 니콜로스 감독

<무정한 사람>(Peaux de Vaches, 1988) 파트리샤 마주이 감독

<분노는 오렌지처럼 파랗다>(Ne Reveillez Pas un Flic Qui Dort, 1988) 조세 핀헤이로 감독

<내 사랑 맥스>(Max, Mon Amour, 1986) 오시마 나기사 감독

<낙하산>(Parachute, 1985) 사비네 에카드르 감독

<미녀의 덫(La Garce, 1984) 크리스틴 파스칼 감독

<위험한 행마>(Dangerous Moves, 1984) 리처드 뎀보 감독

<미녀 갱 카르멘>(Prenom Carmen, 1984) 장 뤽 고다르 감독

<위험한 움직임>(La Diagonale du Fou, 1984) 리처드 뎀보 감독

<열정>(Passion, 1982) 장 뤽 고다르 감독

<딸기단지처럼>(Comme un Pot de Fraises!, 1974) 장 아렐 감독

<인질>(Le Gang des Otages, 1972) 에듀아르 몰리나로 감독

<예루살렘, 예루살렘>(The Jerusalem File, 1972) 존 플린 감독

<은신처>(L’Explosion, 1971) 마크 시메농 감독

<고백>(L’Aveu, 1970)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남쪽 별>(The Southern Star, 1969) 시드니 헤이어 감독

<제트>(Z, 1969)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지평선>(L’Horizon, 1967) 자크 로피오 감독

<비련의 신부>(La Mariee Etait En Noir, 1967)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중국 여인>(La Chinoise, 1967) 장 뤽 고다르 감독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2 Ou 3 Choses Que Je Sais D’Elle, 1967) 장 뤽 고다르 감독

<아메리카의 퇴조>(Made in U.S.A, 1966) 장 뤽 고다르 감독

<안녕 마피아>(Je Vous Salue Mafia, 1965) 라울 레비 감독

<미친 피터>(Pierrot le Fou, 1965) 장 뤽 고다르 감독

<알파빌>(Alphaville, Une Etrange Aventure De Lemmy Caution, 1965) 장 뤽 고다르 감독

<부드러운 살결>(La Peau douce, 1964)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아름다운 사기꾼>(Les Plus Belles Escroqueries du Monde, 1964) 장 뤽 고다르 감독 외

<아웃사이더>(Bande a Part, 1964) 장 뤽 고다르 감독

<경멸>(Le Mepris, 1963) 장 뤽 고다르 감독

<기관총 부대>(Les Carabiniers, 1963) 장 뤽 고다르 감독

<리틀 솔져>(Le Petit Soldat, 1963) 장 뤽 고다르 감독

<사탄이 이끄는 춤>(Et Satan Conduit le Bal, 1962) 그리샤 다바 감독

<비브르 사 비>(Vivre Sa Vie, 1962) 장 뤽 고다르 감독

<인형>(La Poupee, 1962) 쟈크 바라티에르 감독

(L’Amour a Vingt Ans, 1962) 이시하라 신타로 감독 외

<사랑을 위한 휴식>(Les Grandes Personnes, 1961) 장 발레르 감독

<줄 앤 짐>(Jules et Jim, 1961)

<여름의 연대기>(Chronique d’un ete, 1961) 에드가 모린, 장 로시 감독

<여자는 여자다>(Une Femme Est une Femme, A Woman Is A Woman, 1961) 장 뤽 고다르 감독

<롤라>(Lola, 1961) 자크 데미 감독

<피아니스트를 쏴라>(Tirez Sur Le Pianiste, 1960)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 1960) 장 뤽 고다르 감독

<라 파세 두 디아블>(La Passe du diable, 1959) 피에르 스코엔도에르페르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