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그놈에게 딴 여자가 생겼다. 만화가인 소피(장쯔이)는 결혼을 두달 앞두고 떠나간 연인 제프(소지섭)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일단 제프를 되찾아 다시 차버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소피의 상대는 최고의 톱 배우인 안나(판빙빙). 외모로나, 능력으로나 상대가 안되는 소피가 할 수 있는 건 스토킹과 눈물을 흘리는 일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찾아간 파티장에서 소피는 사진작가인 고든(허륜동)을 만난다. 친구가 말하길 고든은 안나의 전 애인이란다. 소피와 고든은 합심해 패자부활전을 벌인다.
<소피의 연애매뉴얼>(이하 <연애매뉴얼>)에는 1990년대와 2000년대가 섞여 있다. 멕 라이언이 군림했던 로맨틱코미디 시대의 향수와 뉴욕발 칙릿 열풍의 여파가 베이징에서 만난 셈이다. 전문직 여성의 사랑과 결혼, 이별에 관한 수다가 이어지는 가운데, <프렌치 키스>나 그보다 한국에서 먼저 등장한 <패자부활전> 혹은 <애딕티드 러브>의 소동극이 벌어진다. 소피에게는 더 많은 동지들이 있다. 브리짓 존스, 혐오스런 마츠코 심지어 한국의 엽기적인 그녀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로맨틱코미디들을 모아놓은 양장본이 될 법한 영화다.
익숙한 설정과 캐릭터들을 폭식한 <연애매뉴얼>에 신선한 웃음이나 재기발랄한 위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몇몇 웃음코드들은 아예 로맨틱코미디의 명장면들을 고스란히 패러디하고 있다. 액자 속 인물과 인형들이 수다를 떠는 <아멜리에>의 판타지나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시키는 묘사도 ‘뒷북’처럼 보이긴 마찬가지. 그럼에도 산만하지 않게 펼쳐놓은 능숙한 연출은 눈에 띄는 부분이다. 약 10년 전이었다면 당시 한국에 등장한 <닥터봉>이나 <패자부활전> <키스할까요>처럼 나름 완성도 있는 벤치마킹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오히려 <연애매뉴얼>은 중국 본토에서 만든 로맨틱코미디인데도 지역적 색깔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화 속의 베이징은 뉴욕을 지향하고 있다. 오피스텔, 헬스클럽, 갤러리 등 주요 공간뿐만 아니라 동네의 거리조차도 뉴욕처럼 보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로맨틱코미디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성하려는 대륙의 야심은 아닐는지. 또한 <연애매뉴얼>은 장쯔이의 첫 번째 로맨틱코미디라는 의미로 기억될 영화다. 넘어지고, 구르고, 마스카라가 번질 때까지 우는 장쯔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소피는 그동안 중국 대작영화의 여신 이미지에 감춰졌던 장쯔이의 새로운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