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전문 배급사’라는 타이틀은 과거 고유명사처럼 쓰였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인디스토리를 제외하고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가 없었다. 이젠 보통명사가 됐다. 지난해 생겨난 시네마 달과 키노-아이 때문이다.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가 늘어났다면 관객과 소통을 원하는 작품들이 그만큼 많아져서가 아닐까. 7월23일부터 8월5일까지 서울 명동 인디스페이스 등에서 열리는 ‘제1회 키노-아이 감독열전’은 신생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가 곳간을 내보이는 흔치 않은 기회다. 지난해 말 <하늘을 걷는 소년> <가벼운 잠> 등을 시작으로 독립영화 배급에 의욕적으로 나섰던 키노-아이가 이번에 공개하는 작품은 모두 10편. 2008년과 2009년에 제작된 신작들이 많다.
상영작 중 대다수는 ‘폭력’이라는 키워드로 한데 묶인다.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화 장편경쟁부문에서 JJ-STAR상을 수상한 이서 감독의 <사람을 찾습니다>는 보는 이를 시종 불편케 하는 영화다. ‘개보다 못한’ 인간 원영이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규남에게 린치를 가하는 동안, ‘개를 찾습니다’로 운을 뗐던 영화는 어느새 ‘사람을 찾습니다’라고 호소한다(극중 당돌한 원조교제 소녀로 <반두비>의 백진희가 출연한다). <사람을 찾습니다>와 비교할 만한 영화로 명중오 감독의 <말보로 전쟁>이 있다. 몸이 불편한 생수는 꼬맹이들에게 놀림받고, 고딩들의 담배 심부름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소년. 폭력을 참지 못하고 얼떨결에 생수는 복수를 감행하지만 주인과 노예로 맺어진 세상은 전복되지 않는다. ‘세상의 끝’을 보고 싶어 하는 <보통소년>(박성훈 감독)의 세 ‘고딩’도 구원을 바라지만 기적은 불가능이다. 누군가는 자살을 실행하고, 누군가는 장기밀매로 연명하고, 누군가는 테러를 계획할 뿐이다.
폭력은 더 나아가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기도 한다. <세리와 하르>에 등장하는 이주 노동자들은 언제나 ‘피해자’다. 베트남 엄마를 가진 세리와 필리핀 아빠와 사는 하르 또한 ‘법’이 폭력의 보호막이 아니라 수단임을 깨닫게 된다. 상영작 중 한편인 그레이스 리 감독의 <아메리칸 좀비>를 빌려 말하자면, <세리와 하르>는 ‘코리안 좀비’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장르를 동원해도 세상의 폭력은 쉽사리 가려지거나 순화되지 않는다. 남기웅 감독의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는 흥분하면 성기에서 총알이 발사되는 남자의 이야기다. 폭력은 아예 인간의 몸에 뿌리내리고, 반전없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을 앞두고 특별상영하는 노진수 감독의 <노르웨이의 숲>에 찾아든 인간들 역시 한껏 증식한 폭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두만강변에 사는 조선족 학교와 가족을 다룬 강미자 감독의 <푸른 강은 흘러라>는 상대적으로 희망의 기운을 많이 품은 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두만강은 어떻습니까? 그냥 푸릅니까?” 끝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는 철이 엄마의 편지는 휴대폰과 오토바이와 PC에 열광하는 청춘들의 모습들과 겹치며 언젠가 푸르기만 한 두만강 또한 자본의 폭력에 오염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번 기획전에선 지리산 자락에 얽힌 사적인 기억을 매력적인 환상의 틀을 빌려 떠올리는 김영혜 감독의 <낯선 곳 낯선 시간>이나 죽음을 떠올리면서 사랑을 확인하려는 남녀의 이야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전하는 김은희 감독의 <딱정벌레>도 함께 상영된다.
참고로 기획전 기간 동안 상영작들을 IPTV(myLGtv)로도 만난다. 단, <푸른 강은 흘러라> <사람을 찾습니다>는 하반기 개봉이 예정되어 극장에서만 상영한다. 인디스페이스 외에 대구 동성아트홀, 부산국도예술관, 대전 아트시네마, 영화공간 주안 등에서도 순회 상영전이 예정됐다. 자세한 일정은 www.kino-eye.co.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