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와 함께하는 영화제가 열린다. 필름포럼과 서울시네마테크는 5월1일부터 12일까지 필름포럼에서 ‘영화사 강의’ 영화제를 연다. 이번 영화제는 “영화에 대한 사고와 논의가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영화의 역사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충실한 지식이 바탕돼야 한다”는 생각 아래 “영화사를 장식한 대표적인 작품들”을 살펴보기 위해 마련한 자리. 영화 상영 이후 강의가 진행되며 영화평론가 허문영, 김성태와 <카뮈 따윈 몰라>를 만든 일본의 영화감독 야나기마치 미쓰오가 강연자로 나선다.
이런 취지로 모은 상영작들은 모두 영화사에 굵직한 종적들을 남긴 작품들이다. 조셉 로지 감독의 <무슈 클라인>,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그림자 군단>,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러스티 맨>, 막스 오퓔스 감독의 <쾌락>, 존 포드 감독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소매치기>,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칼 드레이어 감독의 <오데트>,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치카마츠 이야기> 등 모두 9편. 이미 어디서든 봤을 법한 영화들이지만 영화제는 이 영화들을 통해 미국과 프랑스, 덴마크와 일본 등 동서양의 영화사를 돌아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장 피에르 멜빌의 1969년작 <그림자 군단>은 나치 점령기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레지스탕스 활동을 그린다. 장 피에르 멜빌은 자신의 인장과 같은 누아르 스타일에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녹여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분위기를 아찔하게 포착한다. 리노 벤투라, 폴 뫼리스, 시몬느 시뇨레 등 프랑스 대표배우들의 명연도 기억에 남는 영화. 2차대전을 다룬 또 다른 상영작으로는 조셉 로지의 1976년작 <무슈 클라인>이 있다. 알랭 들롱과 잔 모로의 출연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유대인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파리의 미술 상인 로베르 클라인이 자신이 유대인이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2차대전에 대한 색다른 접근 방법으로 개봉 당시 프랑스에서 논쟁을 일으켰다.
또 다른 프랑스영화로는 막스 오퓔스 감독의 1952년작 <쾌락>,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1959년작 <소매치기>가 있다. 우선 막스 오퓔스의 <쾌락>은 제1화 <가면>, 제2화 <텔리에 부인의 집>, 제3화 <모델> 등 쾌락에 대한 3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영화. 쾌락을 중심으로 1화에선 젊음을, 2화에선 순수를, 그리고 3화에선 죽음을 이야기한다. 막스 오퓔스 감독이 직접 제작까지 한 영화로 그의 러브스토리들이 왜 항상 불안하게 흘러 불행하게 끝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소매치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범죄는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소매치기 청년이 주인공으로 그가 옆집에 사는 젊은 여인 잔느와 관계를 갖는 과정을 따라간다. 브레송의 영화적인 화법이 집약돼 드러난 작품으로 시선과 소리에 대한 그의 독특한 접근을 맛볼 수 있다.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영화들을 보면 우선 미국 감독인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와 일본 감독 미조구치 겐지의 <치카마츠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1941년작으로 탄광 노동자의 삶을 통해 시대 변화의 잔인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리처드 리웰린의 소설을 필립 던이 각색했으며, 존 포드는 시대적 변화와 함께 동시에 무시할 수 없는 시대에 대한 향수를 묘사한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다. 야나기마치 미쓰오 감독이 강연자로 나설 미조구치 겐지의 1954년작 <치카마츠 이야기>는 일본의 셰익스피어 지카마쓰 몬자에몬의 인형극을 각색한 영화다. 사랑과 억압을 주제로 일본사회를 반영해 보여준다. 하세가와 가즈오, 가가와 교코의 연기가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