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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서울은 역시 국제도시야

<마린보이>를 서울의 영화관에서 영어자막과 함께 본 아주 특별한 경험

<마린보이>

2002년에 나는 마지막으로 베를린영화제에 갔다. 그해는 베를린에서 볼 만한 아시아영화가 많았던 마지막 해였다. 특히 일본영화가 좋은 수확을 거둔 해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경쟁부문에, 이와이 순지의 <릴리 슈슈에 대한 모든 것>, 유키사다 이사오의 <고>, 나카타 히데오의 <검은 물 밑에서>가 파노라마 섹션에서 상영됐다. 다른 아시아영화로는 김기덕의 <나쁜 남자>와 장이모의 <행복한 날들>, 펑샤오강의 <거장의 장례식>이 파노라마 섹션에서 상영됐다.

베를린의 추운 날씨가 그리웠기 때문일까. 나는 지난 2월 중순에 서울에서 긴 주말을 보냈다. 특별히 영화제가 있지는 않았다. <쌍화점>과 <과속스캔들>이 보고 싶었다. 두 영화는 모두 2009 베를린영화제 마켓에서 상영되었고 서울에서는 여전히 영화관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계획했던 대로만은 되지 않아서, 대신 <마린보이> <작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를 보게 됐다. 또 <작전명 발키리>와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를 신사동의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심야상영으로 보았다.

그러나 밸런타인 데이에 명동의 롯데시네마에서 <마린보이>를 본 경험은 좀 특별하게 다가왔다. 영화는 야심작에 신인감독의 첫 번째 작품인 걸 고려하면 더더욱 놀라웠다. 여러 단점들이 있지만, 영화의 기술적인 수준은 다른 어떤 아시아영화들이 도달할 만한 수준을 능가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것은 새로 개봉하는 한국영화를 한국 관객이 들어찬 상업영화관에서 영어자막과 함께 보는 경험이었다.

그 큰 영화관에서 내가 유일한 외국인은 아니었겠지만 어쨌거나 특별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특히 다른 관객이 자막이 없는 좀더 깨끗한 화면으로 영화를 보고 싶다고 불평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고맙게 느껴졌다. 사실 관객 대부분은 처음 몇분, 아니 몇초간은 영어자막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았다. 영어 읽기 이해력을 시험할 기회로 여기며 오히려 한두명은 이를 반기는 듯도 했다.

나는 좋아하는 많은 한국영화를 처음에는 영어자막 없이 보았다. <해피엔드> <색즉시공> <주유소 습격사건> 그리고 가장 최근의 <고고70>까지. 중국, 일본, 혹은 타이영화를 영어자막 없이 보는 건 더이상 견딜 수 없지만, 한국어의 특정한 소리와 대부분의 한국영화가 보여주는 강한 시각적 스타일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서 영어자막이 없더라도 8천원을 내고 보는 걸 아직도 주저하지 않는다. 자막없이 영화를 보는 것이 어째서 어려운 것인가를 알고 싶다면, 자막이 전혀 없는 평균 두 시간 길이의 필리핀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보는 경험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서울에서 마주친 영어 간판들, 영어로 된 커피숍 메뉴, 영어가 가능한 택시 운전사들보다, 영어자막이 들어간 <마린보이>를 본 경험이 내게는 서울이 국제적인 도시임을 더욱 깊이 각인시켜주었다. <워낭소리> 역시 내가 머무르던 당시 서울에서 영어자막과 함께 상영되고 있었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가 국제 문화 교류를 위해 <마린보이> 같은 영화에 영어자막을 달아 국내 상업영화관에서 상영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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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