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을 SBS 마감뉴스에서 봤다. 현재 기세로는 <과속스캔들>이 전국 800만명을 달성할 조짐이니 뉴스 스튜디오에 양복을 입고 등장한 감독의 모습이 낯설지는 않았다. 아마도 이 뉴스는 영화가 기록한 800만이란 수치보다는 말 그대로의 ‘대박’을 입증하는 장면일 것이다. 게다가 신인감독이 스타급과는 거리가 먼 배우들과 함께 적은 예산으로 만든 영화라는 드라마틱한 이야깃거리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드라마가 단지 강형철 감독이나 제작사인 토일렛픽쳐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그동안 눈에 띌 만한 흥행작이 없었던 롯데엔터테인먼트에도 <과속스캔들>은 분명 의외의 사건이 아니었을까?
“이번에는 200만 가나?”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투자작이 개봉될 즈음, 영화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2004년 6월 <나두야 간다>를 시작으로 투자·배급 사업을 시작한 이래 롯데의 영화들은 200만명을 목표로 세웠고 항상 그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했다. 롯데가 투자한 작품 중 처음으로 전국 100만명을 넘긴 영화는 2005년 1월에 개봉한 <몽정기2>(전국118만8815)였다. 이후 <B형 남자친구>(2005)가 148만5454명, <미스터 소크라테스>(2005)가 126만1965명, <홀리데이>(2006)가 145만8896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고 송강호가 주연을 맡아 이번에는 정말 전국 200만 고지를 달성할 줄 알았던 <우아한 세계>(2007)도 102만5781명이란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에 비로소 꿈의 200만 달성을 안겨준 작품은 전국에서 212만3815명의 관객을 동원한 곽경택 감독의 <사랑>(2007)이었다(이상, 영화진흥위원회 기준).
당연히 롯데의 성적은 CJ, 쇼박스와 비교됐고 충무로에서는 ‘롯데의 보수적인 취향’을 지적하곤 했다. 신선한 소재의 영화에 모험을 걸기보다는 고만고만한 장르에 적당한 자본을 투자할 작품만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정식명칭은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다. 롯데쇼핑 안에 하나의 사업부로 존재하는 만큼 투자성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 투자 관계자는 “사업부에서 마이너스가 나는 건 독립법인에서 마이너스가 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라며 “조직을 나갈 생각이 아닌 이상 눈 밖에 날 모험을 하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속스캔들>은 롯데엔터테인먼트에 모험작이었을까?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이진훈 한국영화팀장의 회고는 다음과 같다. “여러모로 선뜻 투자할 만한 패키지는 아니었다. TV드라마 같다는 평가도 있었고 신인감독에 신인배우도 부담스러웠다. 한데 이야기의 진정성이 좋더라. 주연배우인 차태현도 티켓파워 면에선 약하지만 작품을 빛내는 역할을 안정적으로 해줄 것 같았다. 어떤 작품에서도 크게 망가진 적이 없는 배우 아닌가.” 분명 모험의 성격은 있으나 그동안 검증된 매뉴얼을 따르던 롯데의 기본적인 투자성향을 적용한 사례이기도 한 것이다.
만약 롯데의 투자성향에 변화의 흐름이 생겨난다면 <과속스캔들> 다음 작품일 것이다. 자칫하면 <과속스캔들>의 선택이 충무로 일각에서 말하듯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격’으로 입증되지 않을까? <과속스캔들>은 800만을 향해가지만 롯데의 투자작에 ‘200만’을 의심하는 시선은 여전한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