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오다기리! 지수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지수 ★★★★☆ 그래도 아리송해 지수 ★★★
전각 새기는 남자는 나비 날개 모양의 ‘아닐 비’(非) 아래 ‘꿈 몽’(夢)을 새겨 넣는다. 나비 꿈 혹은 꿈 아님. 이어 세심히 비(非) 아래 ‘마음 심’(心)을 새겨 넣으니 슬픈 꿈(悲夢)이라는 낱말이 조합된다. 처절함에서 처연함으로 정념의 좌표를 이동시켰으나 사랑과 적대감의 양면성, 순환과 재생의 메시지에 집중하는 김기덕 감독의 일관성은 여전하다. 그러나 그의 영화들은 서서히 악몽의 세계에서 푸른 감수성이 스며든 비몽의 세계로 이행하고 있다.
남자 진(오다기리 조)이 꿈을 꾸면 몽유 상태의 여자 란(이나영)이 그 꿈을 실행한다는 설정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옛 애인을 따라가다가 교통사고를 내는 꿈에서 깬 남자는 사고 현장을 찾아간다. 뺑소니 혐의로 잡힌 여자는 몽유 상태에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정신과 의사(장미희)는 둘이 본래 한몸이며, 한명이 행복해지면 다른 한명이 불행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남자는 꿈에서도 옛 연인을 그리워하고 반면 옛사랑을 증오하는 여자는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밤마다 옛 연인 집의 문턱을 넘는다.
사랑에 관성이 있듯이 증오에도 관성이 있다. 진은 간절히 사랑의 지속을 갈구하나 란은 단호히 사랑의 단절을 욕망한다. 그리하여 남자는 숙면을 원하고 여자는 그의 불면을 요구한다. 이렇게 서로 반대인 이 둘은 도상적으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남자는 검은 옷을 여자는 흰 옷을 그리고 이 둘을 중재해주는 의사는 검정과 흰색이 섞인 옷을 입고 나온다. 이러한 분명한 대칭과 더불어 영화의 주된 특징은 기존 영화에 비해 상당히 장식적이라는 점이다. 인장을 파는 것이 업인 진과 의상을 만드는 것이 업인 란은 현대적으로 개축된 한옥에 살며 이곳은 그들의 작업공간인 동시에 주거공간이기도 하다. 그들이 낮과 밤에 배회하는 마을도 한옥마을이며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경찰서조차 한옥이다. 첫 장면인 교통사고 장면을 제외하고는 현대적 공간과 구조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현대적 복식의 인물들이 오히려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만큼 영화는 철저히 한옥 공간을 선택적으로 운용했다. 가회동 한옥마을, 혜화동 주민센터, 보광사, 성북동 이태준 생가 등 고전적이지만 동시에 현대적인 한옥 건물들은 기이하게도 탈시간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감독 스스로 가장 압축적인 장면이라고 언급한 갈대밭 신에서는 진과 그의 옛 연인, 란과 그의 옛 연인 이 네 사람의 관계를 진과 란이라는 두명의 관계로 치환해 보여주고, 이 둘도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대칭과 합일의 구조는 이 장면에서 뒤바뀐 두 인물의 도상적 색채를 통해서도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진과 란의 깍지 낀 손가락의 형상과 수갑으로 연결된 두 사람의 손의 형상은 현실과 꿈의 대칭적 데칼코마니인 양 나비 모양이다. 영화 내내 오다기리 조는 일본어, 나머지 배우들은 한국어로 연기하나 묘하게도 소통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야말로 열다섯 번째 작품 <비몽>에 담긴 김기덕 감독의 숨은 욕망이 아닐까. 대중에게 여전히 다른 언어로 들릴지 모르지만 김기덕의 언어는 분명 소통을 향해 개방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때깔 좋은 한옥마을로 공간을 옮겼고, 보임새는 오다기리 조와 이나영이라는 스타의 비주얼과 양식화된 실내 공간 스타일로 곱고 화려해졌다. 그리하여 김기덕의 영화를 견고하게 만드는 잔혹한 힘의 근원인 칼날과 송곳이 전각가의 작은 조각칼과 의상 디자이너의 시침용 핀으로 축소되어버린 듯해 맥이 빠지는 순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tip/ 애초의 의도 두 가지. 감독은 오다기리 조의 일본어 대사를 자막없이 상영하고 싶어했으나 실제 영화에서는 자막이 제공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나비 역시 감독은 본래 넣고 싶어하지 않아 언론시사회 때 나비 없는 버전을 선보였으나, 일반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개봉 버전에는 나비의 그래픽을 삽입했다.
김기덕과 몸의 시학
전작 <숨>(2007)의 전례를 따르자면 이 영화의 제목은 영어제목 ‘꿈’(Dream)처럼 외자여야 온당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슬픈 꿈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숨>에서 한발 더 나아간 화합과 재생의 이야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관능과 본능의 세계에 충실하던 김기덕의 영화가 시적인 세계로 이행하기 시작한 분명한 징조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영화적 직관과 정조에서뿐만 아니라 곳곳의 장면에서도 드러났다. 가령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불경 ‘반야심경’을 쓰고 새기는 장면과 이백의 시 <망여산폭포>를 쓰는 장면에서, <숨>에서 죄수들이 벽에 새긴 ‘숨(이 막힌다)’이라는 낙서의 메타포에서. <숨>에선 죄수들이 벽에 글과 그림을, <비몽>에선 진이 인장에 문자를 새기는 소리는 사각거리며 문자를 청각화한다. <비몽>에서 도장 파는 장인인 진은 인장에 글자를 새기고, 나중에는 천에 시를 쓴 뒤 조각칼로 이를 몸에 새긴다. 진이 시를 자신의 몸에 고통스럽게 새기는 행위는 문자를 촉각화하는 행위이다. 글자를 신체에 날인하는 행위는 <시간>(2006)에서 성형수술을 하는 행위와도 관련될 것이다. 여기서 성형수술이란 존재의 갱신, 새로움을 위해 신체에 가장 직접적으로 행하는 날인인 셈. 한편 <숨>에서 면회 뒤 사형수 진이 연의 머리카락을 먹는 행위와 <비몽>에서 면회 뒤 란이 새로운 재생을 위해 나비(목걸이)를 먹는 장면도 연관된다. 그들은 수용함으로써 용서받거나 재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무언의 지점, 진(공교롭게도 두 영화의 남자주인공의 이름은 모두 진이다)의 경우처럼 목소리가 없거나 소통되지 않는 유령의 언어로 말하는 지점 혹은 란처럼 분열되어 언어가 불가능한 지점에서야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