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5월9일 영상자료원 내에 문을 연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한 영화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며 전시품 기증 캠페인을 벌입니다. 48번째는 서정민 촬영감독이 기증한 <촌오복이>(1961) 필름값과 현상료 청구서입니다.
1934년 인천에서 태어난 서정민 촬영감독은 전후 네오리얼리즘에 경도되었고, 히치콕을 좋아한, 사진 찍는 청년이었다. 박성복 감독에 이끌려 영화계에 입문했다. 데뷔작 <촌오복이>의 필름값과 현상료가 적힌 청구서를 간직해오다가 한국영화박물관을 위해 기증한 서정민의 필모그래피에는 한국영화사의 굵직한 명작들이 자리잡고 있다. 초기작의 대부분은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이만희 감독의 작품들이다. 낙후된 기자재와 부족한 제작비, 스탭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환경에서 서정민 촬영감독은 고교 시절부터 사진으로 다진 기본기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만희 감독의 연출을 뒷받침하며 명콤비를 이루었다. <다이알 112를 돌려라>(1962)에서는 김을 뿜는 자동차 청소기계와 탈곡기를 이용해 바람을 일으켜 기차가 움직이는 효과를 냈고, <검은 머리>(1964)에서는 밤장면에서 감도가 좋지 않은 당시 필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촬영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에서는 특수효과팀이 따로 없어 TNT를 직접 싣고 다니며 폭파장면을 찍었고, 중공군에 기관단총을 쏘는 장면에서는 실탄을 사용했다. 카메라 앵글을 조정해서 사람을 쏠 염려는 없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밀폐된 공간의 서스펜스를 위해 카메라가 제3의 인물처럼 움직이는 <마의 계단>(1964)에서 그의 촬영은 단연 돋보인다. 동시녹음 1호 작품인 <심봤다>(정진우, 1979)도 그의 손을 거쳤다. 서정민 촬영감독은 이외에도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바보선언>(1983), <어둠의 자식들>(1981), <여고괴담>(1998) 등에 애정을 표시한다. 촬영기사의 가장 큰 역할로 ‘연출력을 120% 끌어올리도록’ 돕고 스스로를 ‘절반의 작가’로 인식하고 화면을 만들어내는 책임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영화사의 살아 있는 증인, 서정민은 지금도 영화현장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