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지대루다~.” “옳지 않아~!” “머라 처씨부리 쌌노?” 어쩌면 신봉선의 유행어를 극장에서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애니메이션 <스페이스 침스: 우주선을 찾아서>를 수입한 쇼타임은 지난 6월9일, 신봉선이 <스페이스 침스…>의 목소리 연기를 한다고 밝혔다. 신봉선 외에도 가수 MC몽이 주연 캐릭터인 햄에게 목소리를 입힐 계획. 멀게는 과거 <노틀담의 꼽추>에서 배우 채시라가 에스메랄다를 연기했고, 가깝게는 <호튼>에서 차태현과 유세윤이 목소리를 빌려줬을 만큼 낯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그 효과가 어떤지는 궁금하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 건가?
“두 사람 모두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는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출연하는 토크쇼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그만큼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쇼타임의 최명숙 실장이 말하는 연예인 더빙의 효과는 홍보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실제 배우들처럼 인터뷰를 하거나,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할 수는 없는 일. 특히 드림웍스나 디즈니처럼 브랜드 가치가 높은 제작사의 작품이 아닌 이상 애니메이션은 홍보의 창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호튼>을 홍보했던 유쾌한 확성기 양현진 대리는 “애니메이션을 홍보할 수 있는 곳은 영화 전문 프로그램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연예인들이 더빙을 맡을 경우에는 그들이 실사영화의 배우들처럼 홍보에 나설 수 있다. 일례로 <꿀벌대소동>에서 주인공 배리를 연기했던 개그맨 유재석은 지면광고는 물론이고 기자시사회의 무대인사와 기자간담회까지 나섰으며, <호튼>에서 더빙을 한 차태현과 유세윤은 온라인과 지면매체의 인터뷰까지 뛰었다. 당시 <환상의 짝꿍>에도 출연해 영화를 홍보한 차태현은 “꼭 한국영화에 출연한 것 같다”고 했을 정도. <스페이스 침스…> 또한 신봉선과 MC몽을 데리고 영화전문지의 표지를 제의하고 있는 중이다. 연예인의 더빙은 특히 어린이 관객을 집중타깃으로 설정한 애니메이션들에 선호된다. <꿀벌대소동>을 마케팅한 CJ엔터테인먼트의 김종원 해외마케팅팀장은 “철저히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더욱 친숙한 이미지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영화를 알릴 때 꿀벌이라는 캐릭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애니메이션이란 장르의 한계도 있기 때문에 그런 약점들을 유재석을 통해 친근감을 높이며 상쇄시키려 했다.” 실제 <꿀벌대소동>은 영어교육적인 측면에서 자막버전을 요청한 강남지역의 4, 5군데 극장을 제외한 모든 극장에서 더빙버전으로만 상영됐다. 이 밖에도 <호튼>과 <미운오리새끼와 랫소의 모험> <스페이스 침스…> 등도 어린이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연예인을 섭외한 경우다.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홍보에서는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였을 동물다큐멘터리 <나누와 실라의 대모험>을 수입한 유레카픽쳐스도 개봉 당시 “교육적으로 아이들과 친숙한 이미지”인 서민정을 내레이터로 캐스팅했다.
무작정 연예인 더빙을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모로 효과적인 연예인 더빙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모든 애니메이션들이 연예인들을 섭외하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그렇지 않다. <해피피트> <부그와 엘리엇> <닌자거북이 TMNT>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더빙한 그대로 개봉했다. <에반게리온: 서(序)> <벡실> <애플시드> 등의 애니메이션은 자막버전을 선호하는 청소년과 성인 관객을 타깃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연예인 더빙이 효과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개봉 중인 <쿵푸팬더>와 개봉을 앞둔 <돼지코 아기공룡 임피의 모험> 등 가족 관객 대상 애니메이션들이 연예인 더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아하다. <꿀벌대소동>과 함께 <쿵푸팬더>를 마케팅한 김종원 팀장은 “<꿀벌대소동>과 달리 <쿵푸팬더>는 20대 관객까지 포용할 수 있는 작품이다. 20대 관객은 이왕이면 자막버전을 보는 게 제대로 본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상영버전 또한 자막버전 대 더빙버전의 비율이 7:3이다. 과거 <슈렉>이 연예인 더빙을 하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또한 잭 블랙, 안젤리나 졸리, 성룡 등 기존 더빙배우들의 인지도가 국내에서도 높다는 이유도 있다. 그런가 하면 <돼지코 아기공룡 임피의 모험>을 수입한 마스엔터테인먼트의 송근이 팀장은 “연예인을 섭외하는 비용을 아껴서 광고에 집행하는 쪽으로 계획을 세웠다”고 말한다. “로열티가 비싼 영화들은 모험을 피할 수 없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게다가 주인공이 아기공룡인데 누구에게 더빙을 맡겨야 할지도 고민이더라. 김구라의 아들인 동현이를 데려다 하기도 그렇고. (웃음)”
부담스런 캐스팅 비용과 짧은 더빙 일정도 부담
구체적인 액수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일반적으로 연예인을 더빙에 참여시킬 경우 지출해야 할 출연료는 통상 2억3천만원선(???)이다. 물론 톱스타인 경우에 출연료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한 수입사 관계자는 “모 가수는 1억원의 출연료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김종원 팀장은 유재석을 캐스팅한 <꿀벌대소동>의 경우 “일반적인 예상보다 많은 비용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목소리만 빌리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 기자회견, 광고 등 많은 곳에 활용한다. 할리우드에서 투자하는 캐스팅 비용에는 당연히 미치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효과는 그 이상이다.” 그렇다면 <마다가스카>에 캐스팅된 송강호와 <헷지>에 참여한 황정민의 출연료는 얼마나 될까. 밝혀진 적은 없지만, 유재석보다 낮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평이다. 연예인 더빙을 자제하는 쪽에서는 비용만큼이나 더빙의 퀄리티도 선택의 기준이다. <돼지코 아기공룡 임피의 모험>은 오세홍, 장승길, 이연희, 김서영 등 전문성우들이 더빙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보도자료를 통해 홍보했다. 연예인을 섭외한 다른 애니메이션들과 아예 차별점을 두고 강조하겠다는 뜻이다. 송근이 팀장은 “전문성우를 기용할 때, 어린이 관객에게도 전체적인 스토리와 분위기를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쿵푸팬더>를 홍보하는 영화인의 이명진 대리도 “연예인의 참여가 이슈는 만들 수 있어도 관람만족도까지 높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이 전문성우에 비해 목소리만으로 대사와 감정을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게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는 현재 한국의 애니메이션 더빙 시스템도 한몫하고 있다.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바람의 검심>의 켄신 등을 연기한 구자형 성우는 “마이크 3대를 놓고 성우들이 모여서 더빙을 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따로따로 녹음을 하는 시스템”이라며 “이런 경우 메인캐릭터의 성우가 미리 호흡을 맞추지 못하고 녹음할 경우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고, 그런 균형을 조율할 수 있는 연출자가 많지도 않다”고 말했다. 특히 스케줄 문제로 짧은 시간 안에 녹음을 해야 하는 유명 연예인의 입장에서는 잘해보고 싶어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스페이스 침스…>의 신봉선과 MC몽도 더빙을 위해 이틀 정도의 시간을 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 마케팅, 퀄리티, 비용의 무게균형 잡기가 관건
그렇다면 연예인 더빙의 이상적인 모델이라는 게 있을까. 스타마케팅에 더해 더빙 퀄리티를 높이는 경우다. 구자형 성우는 강혜정, 김수미, 노홍철 등이 참여한 <빨간모자의 진실>을 적절한 사례로 꼽았다. “배우들의 실제 캐릭터를 애니메이션에 녹이면서도 개성을 잘 살렸다고 본다. 당시 투니버스에서 일하는 PD가 더빙을 연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업계에서도 상당히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치와 씨팍>도 이상적인 녹음으로 생각한다.” 퀄리티 면에서는 평가받은 바 없지만, <미운오리새끼와 랫소의 모험>은 비용 면에서 연예인을 효과적으로 운용한 경우로 꼽힌다. 여기에는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웅이아버지’ 코너에 출연 중인 개그맨 이용진, 이진호가 목소리 연기에 참여했다. 영화를 수입한 코랄픽쳐스의 최광래 대표는 “덴마크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라 전혀 인지도가 없었던데다 광고를 할 수 있는 예산도 부족했지만, 톱스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출연료를 투자해 높은 효과를 거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의 대다수 관계자들은 이상적인 퍼즐을 맞추는 게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스타 마케팅과 만족스러운 더빙 퀄리티, 그리고 비용. 세 꼭짓점이 이루는 삼각형 안에서 어디에 접점을 둘지는 역시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주인공과 MC몽의 이미지가 비슷했다”
<스페이스 침스: 우주선을 찾아서>를 수입한 쇼타임의 최명숙 실장
-신봉선과 MC몽을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주인공 햄과 MC몽의 이미지가 잘 맞았다. 햄은 침팬지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숭이로 의식한다. MC몽의 별명이 원숭이이기도 하지만, 햄이 극중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걷는 폼이 MC몽과 비슷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 신봉선이 연기할 00은 아예 본래 캐릭터와 다른 이미지로 갔다. 00은 무척 똑똑하고 용감한 캐릭터다. 할리우드 배우라면 안젤리나 졸리가 어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코믹어드벤처다 보니 그런 캐릭터를 신봉선이 연기하면서 더 재밌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예인을 캐스팅하지 않는 애니메이션들은 더빙 퀄리티를 걱정한다. 그 부분에 대한 우려도 있을 텐데. =아무래도 전문 성우보다는 좀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일반 배우를 캐스팅할 생각도 있었지만 워낙 스케줄 맞추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MC몽은 연기 경험이 많은 가수고, 신봉선도 콩트개그에 뛰어난 개그맨이다. 역시 스케줄 짜는 게 쉽지는 않지만, 일단 하루, 이틀 정도에 녹음을 끝내는 것으로 이야기했다. 그렇게 느낌을 끊지 않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캐스팅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비용은 감수를 해야겠지만, 그만큼의 인지도를 얻을 수는 있다고 본다. 우리는 포스터에는 신봉선과 MC몽의 얼굴을 노출하지 않을 계획이지만, 전단에는 사용한다. 또 기자시사회와 간담회에도 나선다. 더빙현장을 방송쪽에서 취재해 가기도 할 것이다. 특히 MC몽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나. 그런 식으로 이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에도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을 것이다.
-관객 타깃이 어린이에게 맞춰져 있을 것 같다. 더빙버전을 자막버전보다 많이 활용하나. =가족 관객이 메인 타깃이지만, 중학생 정도까지는 재밌게 볼 수 있다. 동물이 캐릭터지만 우주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 완전히 어린이 관객만을 타깃으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빙의 퀄리티를 봐서 버전의 비율을 결정할 것이다. 중학생 정도까지는 더빙버전이 맞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