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액션, <본 얼티메이텀>
모로코 탕헤르에서의 숨막히는 질주
‘본’ 시리즈 중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둔 3편 <본 얼티메이텀>은 여전히 박진감 넘치고, 여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에 비해 역시 독창적이며, 종종 숨이 멎을 것 같은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가디언>의 기자와 몰래 접선하는 런던 워털루역 장면부터 스피디한 장면 전개는 상상을 불허한다. 2편부터 메가폰을 잡고 있는 폴 그린그래스는 어떤 장르에 손을 대더라도 극도의 사실감을 추구하는 특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특히 모로코 탕헤르에서 펼쳐지는 액션신은 표적과 추적, 유인과 이탈, 골목과 거리, 건물과 건물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러면서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질주하는 최고조의 액션을 펼쳐 보인다. 그것의 마무리는 일체의 사운드트랙 없이 오로지 숨소리와 타격음만으로 이뤄진 두 워커홀릭 첩보원의 가공할 맨손 대결이다. 웰메이드 홍콩 액션영화의 그것과 비교해도 창의성과 숙련도 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대결이다. 하지만 결국 그 액션의 마지막을 완성하는 것은 여전히 미로 속을 헤매는 제이슨 본의 무표정한 얼굴이다.
올해의 의상,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문화 빨아들이기>
이거 수영복 맞는 거죠?!
300 전사들의 ‘천조각’ 패션도, 잭 스패로우 선장의 누더기 의상도 이보다 민망할 순 없다. 카자흐스탄의 TV리포터 보랏 사그디예프가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문화 빨아들이기>의 초반에 입고 나온 형광톤의 연두색 수영복이야말로 보는 이의 눈을 질끈 감고 싶게 만드는 의상이었다. 하긴, 미국에서 한 여성에게 아들의 성기가 덩그러니 나온 사진을 보여줬던 그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긴 하지만. 지난해 칸 해변에서 이미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 쇼킹 패션은 불룩한 앞모습보다 ‘똥X 라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뒷모습이 더 공포스러울 듯하다.
올해의 재연드라마, <화려한 휴가>
80년 5월, 금남로에서 생긴 일
<화려한 휴가>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을 재현하려는 영화다. 그러나 김지훈 감독이 추구하는 재현(再現) 방식은 멜로드라마와 블록버스터의 법칙에 기대인 재연(再演)이다. 제작진이 30억원을 투여해 1만7천평에 달하는 광주북구 첨단과학산업단지에 재현한 80년의 금남로에서 카메라는 동생을 잃고 부르짖는 택시기사의 분노를 스타일리시하게 재연하며 관객에게 말한다. 울어라. 그러면 세상이 너를 용서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현대사의 원죄를 깨끗하게 속죄받을 수 있을 것인가. <화려한 휴가>의 금남로 장면은 올해의 가장 세련된 재연드라마의 절정이다.
올해의 복근, <300>
창과 방패보다 단단한 그들의 복근
<300>은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우파 영화인가, 아니면 “소재만 빌려왔을 뿐 역사를 다룬 것이 아니었다”는 프랭크 밀러의 말처럼 재미 하나만 추구하자며 돌진하는 오락영화인가. 하지만 관객은 영화의 정치적인 논란에는 정작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영화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토론보다 더욱 활발했던 건 300명의 복근이 디지털로 만들어졌느냐 아니면 철저한 식이요법과 트레이닝으로 만들어졌느냐는 논쟁이었다. 대부분의 관객에게 <300>은 300개의 복근이 날카로운 창날과 스치며 내뱉는 단발마의 미학에 다름 아니었던 셈이다. 먼 훗날 <300>은 <씬 시티>에 이어 할리우드가 창조한 디지털 영상 실험의 유산이 아니라 ‘육체 예찬의 시대’를 대변하는 춘화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혹은 21세기 초 남한에 불어닥친 몸짱 열풍의 미학적 사례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300명의 복근은 실제라고 한다.
올해의 호러신, <인랜드 엠파이어>
당신의 얼굴이 가장 무섭소
올해의 호러신을 선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죽을 쑨 한국 호러영화들을 제외한다면 올해 개봉한 해외 호러영화들은 질과 양에서 꽤 짭짤했다. <디센트>의 동굴 격투장면은 어떤 시퀀스를 꼽아도 베스트에 오를 만하고, <세브란스>의 목 절단장면도 기가 막히게 좋다. 하지만 그 어떤 인상적인 호러 시퀀스도 <인랜드 엠파이어>만큼 보는 이의 신경을 벅벅 긁어대지는 않았다. 사실 데이비드 린치의 <인랜드 엠파이어>는 린치의 가장 종잡을 수 없는 영화다.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것은 금세 해체되거나 내부에서 자폭하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허물어진 채 결코 봉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성을 오감에 맡기고 느슨한 태도로 스크린에 점멸하는 이미지를 따르는 순간 <인랜드 엠파이어>는 무시무시해진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어낸 인간 면상의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이토록 두려운 존재인지 누가 알았겠는가. <잔다르크의 열정>이후 가장 보는 이의 신경을 쥐어짜는 전대미문의 클로즈업들.
올해의 소품, <마리 앙투아네트>
청춘의 상징, 연보라 컨버스
베르사유에서 벌이는 소피아 코폴라의 아찔한 인형극은 귀족들이 수지 앤 더 밴시스의 <HongKong Garden>에 맞춰 무도회를 벌이는 영화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놀로 블라닉을 신든 영에이지를 신든 놀랄 필요는 없는 것이다. 특히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것은 앙투아네트가 구두를 갈아신는 장면에서 스쳐지나는 연보라색 컨버스 운동화. 이 시대착오적 소품은 “앙투아네트도 평범한 소녀일 따름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삽입된 것이었다. 참고로, 정확한 모델명은 ‘컨버스 올스타 1923 척 테일러 농구화’다. 인터넷에서의 가격은 42달러. 영화소품 수집광이라면 미리 사놓는 게 좋다. 언젠가는 가격이 오를 게 틀림없으니까.
올해의 폼생폼사, <익사일>
고독한 남자들의 아우라
두기봉은 현재 왕가위와 더불어 칸영화제 경쟁부문의 부름을 받는 거의 유일한 홍콩 감독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작업속도다. 그는 거의 해마다 2편 이상의 영화를 만들어오고 있다. 그의 영화에 홍콩 영화계의 톱 남자배우들이 언제나 동시에 출연한다는 것과 미장센이나 몽타주 측면에서 그가 지닌 완벽주의를 고려할 때 그건 거의 기적에 가깝다. 마치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1968)처럼 시작한 <익사일>은 <미션>(1999)을 비롯, <흑사회> 연작을 통해 보여준 남자들의 고독한 세계를 더욱 스타일리시하게 펼쳐 보인다. 과거 <흑사회2>를 표지로 삼은 <카이에 뒤 시네마>의 두기봉 특집제목이 ‘고독한 남자들의 전쟁’이었는데 <익사일>은 거기서 더 극단적인 폼생폼사의 리듬으로 나아간다. 마치 오우삼이 <첩혈쌍웅>(1989) 뒤에 만든 <첩혈속집>(1992)처럼 <익사일>은 그가 <흑사회>에서 매듭짓지 못한 갈증을 모두 해소하려는 것 같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결코 타오르지 않는 절제된 감정, 애매모호한 시선만을 교환하는 인물들, 결국 모든 것이 예정돼 있음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운명에 모든 것을 내맡겨야 하는 숙명을 더욱 극단적으로 펼쳐 보인다. 현재 오우삼이 떠난 홍콩 영화계에서 장 피에르 멜빌의 적자를 찾으라면 오직 그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