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을 앞둔 작품들과 먼저 살짝 밀회할 수 있는 프리미어기획영화제가 씨네큐브에서 열린다. 한가위라 보름달 가득한 밤에 만나는 영화와 관객의 데이트, ‘풀 문 데이’ 기획전이 바로 그것. 씨네큐브에서 앞으로 개봉될 영화들 총 14편이 리스트에 올랐다. 이번 영화제에는 모두가 함께 과거의 행복과 불행을 되돌아볼 수 있는 ‘타임머신 타고’ 섹션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거나 가족과 함께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가족과 함께’ 섹션, 새롭고 낯설며 오묘한 이야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영화와 함께 4차원의 세계로’ 등의 총 3개의 섹션이 마련되었다. 애니메이션과 극영화, 판타지와 리얼리즘, 재난영화와 전쟁휴머니즘영화, 그리고 알랭 레네의 신작까지, 오밀조밀한 별사탕처럼 개성은 제각각이지만 취향에 맞게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SECTION1. 타임머신 타고 Happy Together~!
실화로 구성된 전쟁휴먼드라마 <메리 크리스마스>(2005)는 세계 제1차대전 당시 대치하던 스코틀랜드, 프랑스, 독일군들이 맞은 특별한 성탄절을 다뤘다. 독일군 테너가 선사하는 캐럴에 백파이프 연주로 화답하는 스코틀랜드 군악대의 주고받음은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답고도 숭고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20세기 초의 공연장 주위를 유머러스하고 낯설게 이미지화한 영화인 존 터투로의 <일루미나타>(1998)도 뒤늦게나마 만날 수 있다. 인형극, 판타스마고리아, 연극 등 영화에 등장하는 볼거리들의 이미지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주목할 것.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성폭행당한 여성의 고통과 새로운 삶을 다룬 여성감독 야즈밀라 즈바니치의 <그르바바차>(2006)와 올해 부천영화제에 소개된 바 있는 독일의 방사능 재난영화 <클라우드>(2006), ‘정치 동물’ 윌리 스톡의 권력욕을 보여주는 숀 펜, 주드 로, 케이트 윈슬럿 주연의 영화 <올 더 킹즈 맨>(2006)도 함께 상영된다.
SECTION2. 가족과 함께 Happy Together~!
<프린스 앤 프린세스> <키리쿠 키리쿠>의 미셸 오슬로의 신작 애니메이션 <아주르 아스마르>(2006)는 서로 다른 피부색의 아주르와 아스마르가 공주를 구하기 위해 ‘데진 요정’들의 관문을 뚫고 모험을 떠나는 중세적인 신화를 다뤘다. 극도로 동양적인 현란한 이미지들은 잘 세공된 수공예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편견에 구애받지 않는 영웅들의 에피소드는 유쾌하고 발랄하다. 이외에도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리턴>(2003)은 12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와 두 아들이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다뤘다. 성서적 알레고리로 가득한, 불안감에 근거한 비극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결말은 극장을 나오고 나서도 오래도록 음미될 것이다. 가족애와 부정(父情)을 60, 70년대 록음악과 버무린 장 마크 발레의 <크레이지>(2006)와 미셸 세로의 관록있는 연기를 볼 수 있는 코믹드라마 <버터플라이>(2003?)도 만날 수 있다.
SECTION3. 영화와 함께 4차원의 세계로 Happy Together~!
<클로저>를 연상시킬 법한 마음의 어긋남들을 다룬 알랭 레네의 <마음>(2006)은 근래에 우리 곁을 떠난 거장들의 허전함을 메워줄 반가운 신작이다. 레네는 여기서 6명의 파리지엥들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서글픈 사랑과 욕망 사이를 보이지 않는 신의 바늘처럼 미끈하게 유영하여 나가는 연출의 묘를 선보여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물 흐르는 듯한 전개와 모든 것이 교묘히 우아하게 배치된 미장센들, 영화의 미래는 저 첨단에 있는 게 아니라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스티븐 타디켄의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2006)는 야생적 삶을 사는 엠마의 자유와 죽음을 앞두고 처음으로 일상을 떠난 한 남자의 사랑을 유쾌하게 그렸다. 해학과 죽음이 경계없이 뒤섞인 삶, 그것이 바로 야생의 행복임을 천진하게 긍정하는 영화. 드니 데르쿠르의 <페이지 터너>(2006)는 사소한 원한이 불러오는 심리적 폭력에 대해 다뤘다. 특정 심사위원 때문에 피아노 콩쿠르에서 탈락했다고 생각하는 까트린느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 심사위원의 집에 들어가 잔잔히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게 바꾸어놓는다. 섬세하고 고요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칸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았다. 1970년대 독일의 작은 마을에 사는 소냐가 세계 2차대전 중의 마을에 대해 조사하면서 알게 되는 당황스러운 사실을 복고풍 화면에 담아낸 <내스티 걸>(1991)은 파시즘이란 친절한 얼굴로 가까운 이웃들의 과거에 잠복해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