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글은 스타일리쉬하다. 수많은 인용, 괄호치고 설명하기, 문장의 도치, 접속사 없애기, 단문의 연속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인용은 영화의 플래시백에, 괄호치기는 나레이션에, 접속사 없애기와 도치 및 단문은 빠른 편집과 점프컷 등에 해당된다. 이런 영화의 대가는 왕가위다. 그리고 그는 왕가위를 굉장히 좋아한다.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시립미술관에서 그를 만난다.
정윤철: 일단 트뤼포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겠다. 그는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고, 마지막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도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인터넷 별점을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씨네21> 기사를 보는 것이고, 마지막은 정성일의 글을 읽는 것이다(웃음). 이번에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당신의 글을 많이 뒤적거려봤다. 그런데 굉장히 옛날에 썼던 글이 있더라. 성균관대 3학년 때 쓴 영화평이었다. 대학교 3학년이었던 정성일 학생의 글은 어떨까 궁금했다. 그런데, 똑같이 어려웠다(웃음). 놀랍기도 하고 사람은 정말 바뀌는 게 아니구나 싶기도 했다. 대체 영화는 언제부터 좋아했고 글은 언제부터 썼나. 정성일: 프랑스 문화원에 다니면서 내가 본 영화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정리를 해야만 했던 이유는 일단 어린 나로서는 영어자막을 읽기가 힘이 들었고, 그러니 영화를 보고 나서도 무슨 말인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씨네21>도 인터넷도 없고, 참고할 어떤 자료도 없던 시절이었다. 불어를 모르니까 내가 본 영화의 감독 이름을 읽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영화를 보고 나면 너무 이상한 느낌이 있으니까 그걸 머릿 속에서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윤철: 그래도 영화잡지는 있지 않았나 정성일: <스크린>도 나오기 전이었다. <스크린>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야 창간됐다.
정윤철: 대중적인 자료는 전혀 없었으니 혼자 글짓기하듯 쓰는 셈이었겠다. 정성일: 어떤 글도 참고할 수 없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고마웠다.
정윤철: 그렇다면 독자적으로 초식을 닦았다는 건데, 중학교 3학년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프랑스 문화원에 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 아닌가. 형이 있었다든지 해서,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지. 정성일: 내가 장남이니까 형은 없었고, 어머니가 영화관에 데리고 갔다. 내가 돈을 내고 혼자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건 국민학교 4학년 때 부터다. 주로 재개봉관에 가서 영화를 많이 봤다. 주로 쇼브라더스와 장철의 무협영화들을 미친 듯이 봤는데 성북구 일대 영화관은 안 다닌 데가 없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라디오 영화 프로그램을 들었는데, 자주 나오는 음악 중의 하나가 영화 <금지된 장난> 주제곡인 ‘로망스’였다. 이 영화가 죽인다는데 볼 수가 없는 거다. 그때는 비디오도 없었고, TV에서 방영되는 <명화극장> 같은 것도 모두 할리우드 영화였으니까. 1974년 즈음인가, 좌우간 내가 중3일 때, 우연히 신문 구석에 있는 작은 기사를 보니 프랑스 문화원에서 <금지된 장난>을 상영한다는 거다.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해서 찾아갔다. 막상 갔더니 <금지된 장난>은 다음 회여서 엉뚱한 영화를 먼저 보게 됐다. 그게 고다르의 <기관총 부대>였다.
정윤철: 고다르도 알았단 말인가? 벌써? 정성일: 알 리가 없지. 중3인데. 좌우간 <금지된 장난>은 기대했던 것보다 전혀 심금을 울리지 않았고 왜 좋은 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기관총 부대>는 미학적으로 어떤지 어린애가 알 리가 없었는데도 쇼크가 너무 컸다.
정윤철: 어떤 영화였길래... 정성일: 제목과는 달리 군대 영화는 아니다. 배경은 현대인데도, 시골에 살던 두 청년이 전쟁이 벌어졌으니까 입대하라는 왕의 명령서를 받고, 전쟁이면 재미있겠다, 그러면서 전쟁에 나가는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작은 전투들을 쫓아다니는 것처럼 찍어서 풍자한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보고 내가 쇼크를 받았던 이유는, 나는 이게 스스로 너무 자랑스러운데(웃음), 영화를 ‘카메라로 찍는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던 거다. 화면에서 카메라를 본 거다. 그때까지는 주인공과 이야기만 쫓아갔었다. 그런데 <기관총 부대>를 보다가 문득 “아, 영화는 카메라로 찍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카메라라는 존재를 알게 된 거다. 그렇게 영화에서 카메라라는 존재를 발견한 다음부터 내 안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이 일어났다. 그땐 정확하게 몰랐지만 영화를 보는 내 태도가 바뀐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이야기에 몰두할 수 없었고, 더 이상 주인공을 쫓아가지 않았다. 영화라는 것은 카메라를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윤철: 카메라의 존재감을 느꼈다는 건가. 그렇다면 영화에 몰입하기가 어려웠겠다. 정성일: 나를 밀쳐낸 거다. 영화가 만들어내는 환상에 동화가 안 되는 거지.
정윤철: 그런데 고다르는 그런 점을 의도하는 감독 아닌가. 그런 걸 모르고 그의 영화를 보았는데 도 그런 점이 느껴지던가. 정성일: 만약 고다르가 브레히트의 방법을 사용했다는 등의 사실을 알고 봤다면 오히려 쇼크를 안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영화에 대한 교양이 전혀 없는, 영화라고는 오직 홍콩영화와 액션영화와 주말의 명화극장에 홀려있던 애한테, 무방비 상태의 애에게 환상에서 빠져나오는 소외 효과를 바로 느끼게 한 거다. 그때부터 영화를 보고 정리를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중3 때였다. 그때 <금지된 장난>만 보고 돌아왔다면 그것을 깨닫기까지 훨씬 오래 걸렸을 것이다.
정윤철: 중3때 프랑스 문화원이라...대단하다. 당시 그곳의 최연소 관객이었겠다. 정성일: 그땐 이상하게도 그런 애들이 몇 있었다. 중3 마지막 무렵, 11월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예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해서, 아주 특별한 학생은 아니었다.
정윤철: 듣자하니 학창시절 때 한가닥 했다는데? 주먹 좀 썼다는 게 사실인가? 정성일: 철없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 그랬는데, 별 얘기 다하게 되네(웃음) 그때 이미 지금만큼 키가 커서 70명 중에서 65번, 64번 이랬다. 이미 집안은 기울기 시작했고, 집으로부터 풀려나기도 했고, 뒤에 있는 애들이랑 어울리다보니 그렇게 됐다. (주먹을 들어보이며) 싸움이란 건 처음에 사람 한번 때리기가 힘든 거지, 그 다음부턴 때리는 건 일도 아니게 된다. 처음에 주먹 날리는 건 힘들었다.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한번 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질 것 같으면 의자를 들어서 내리치고, 상대에게 겁을 주려고 맨주먹으로 유리창을 깼다. 한 1년 반을 진짜 막 살았다. 나는 지금도 싸우다가 접질린 오른쪽 손이 완전히 안 젖혀진다.
놀랍게도 그의 주먹엔 아직도 굳은살이 박혀 있다. 후진 영화를 보고 감독을 때리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요즘도 집에서 혼자 벽을 치는 걸까?
정윤철: 프랑스 문화원에 다니면서 그랬다는 건가. 정성일: 아니, 중학교 1,2학년 때였다.
정윤철: 고다르를 만나기 전이었군. 정성일: 그때는 홍콩영화만 봤으니까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일치를 한 거다(웃음). 집안이 어려우니까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그런데 더 이상 이러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학교 2학년 마지막 날이었는데 친한 친구가 청소를 안 하고 도망갔다가 붙잡혀서 애들 앞에서 뺨을 맞았다. 근데 이 녀석이 우리 아버지도 내 뺨을 안 때린다며 선생을 때렸다. 아무리 친한 친구지만 저건 아니다 싶었다. 그러고 3학년에 올라갔더니 담임이 불러다가 너 걔랑 제일 친하다며, 나는 때리지 마라, 그러더라.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좌우간 그때 이후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뒤에서 놀던 애들하고 떨어졌는데, 공부하는 아이들은 내가 무서운 거야. 1, 2학년때 모습을 봤으니까. 그런 식으로 학교에서 고립이 되다 보니 더욱 영화에 몰입을 했다. <금지된 장난>은 중학교 1,2학년 때부터 궁금했던 영화지만, 신문에 난 상영 기사를 보는 순간 점화 되는 느낌이었다. 피리 부는 사내에게 끌려가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홀리듯 프랑스 문화원에 갔다. 그런 식으로 문화원 다니면서 영화 보고 나서 혼자서 글을 계속 쓰다가 대학에 갔는데, 워낙 친구들 사이에서 영화 좋아한다고 소문이 났었고 과도 신문방송학과이다 보니, 학보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한번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영화평을 쓰기 시작했다.
정윤철: 연극영화과에 갈 생각은 하지 못했던 건가. 정성일: 그것이 정윤철 감독 세대와 내 세대의 차이다. 내가 영화를 공부하겠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보고 있던 TV를 때리더니 정신 차리고 공부나 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계속 TV를 보시더라(웃음). 그때는 영화과에 가는 것이 인생을 망치는 거였다.
정윤철: 우리 때도 비슷했다. 내가 90학번인데 80년대 후반은 1, 2억 가지고 한국영화를 만들 때였다. 전혀 비전이 없었다. 정성일: 그리고 영화과에 간다고 해서 영화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대학에 간 다음에 영화수업을 너무 듣고 싶어서 모대학교 영화과에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어떻게 된 놈의 학교가 맨날 휴강이야(웃음) 그렇게 한 학기를 다니다가 좌절하고 다시는 가나봐라 하면서 그만뒀다.
정윤철: 대학 때도 계속 문화원에 다녔을 텐데, 그렇게 영화를 보다가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일이 있었나. 정성일: 대학에서 영화하는 친구들을 만났고, 큰 도움이 됐다.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전양준 선배가 1년 과선배였고,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한상준 선배도 있었고, 독일 문화원에서는 강한섭 교수를 만났다.
정윤철: 당시 독일 문화원파와 프랑스 문화원파가 경쟁을 했다던데. 정성일: 그런 건 아니었다. 궁금하다면 얘기해보겠다. 그때 프랑스 문화원이 활동을 잘하니까 독일 문화원도 지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문화원장이 황당무계한 공약을 내걸었다. 독일 문화원 산하 서클에서 활동을 하고 독일 문화원에서 요구하는 어학시험을 통과하면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속아서 약 400명이 한꺼번에 독일 문화원으로 몰렸다. 하지만 유학은 한명도 못갔다. 80년 5월 독일 문화원 산하 헤겔 연구회와 카프카 학회가 광주와 관련이 있다고 하여 서클이 완전히 끝장났고, 원장은 본국으로 소환당했다. 그 사람이 약간 좌파였던 것이다. 공약을 내걸었던 사람이 갑자기 돌아가니까 공약도 무용해졌다.
정윤철: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처럼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었나. 정성일: 전혀 아니었다. 일단 공부를 하고 싶었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는 도제 제도가 있어서 연출부를 안 하면 감독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연출부 임금이라는 것은 지금보다도 훨씬 열악했다. 집안이 파산을 했기 때문에 나는 소년가장이 되어야만 했다. 정말 충무로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시나리오도 쓰고, 서울극장 기획실장도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집안을 먹여 살려야 했다. 번역도 하고 필명으로 원고도 썼다. 창피해서 차마 필명을 대지는 못하겠는데 여러 잡지에 썼다. 그런데 사람이 가고 싶지 않은 길이 잘 풀릴 때가 있지 않나. 글이 꽤 인기를 얻어서 여기저기서 청탁이 들어왔다.
정윤철: 그때는 전문비평이 아니고 영화감상 정도였나. 정성일: 지금처럼 쓰면 거기선 안 받지(웃음). 그러다가 <말>지 기자가 나를 찾아왔다. 우리가 당신 글을 읽었는데 영화평을 좀 써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정윤철 감독의 대학 시절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도 좋은 세상이 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어서 <말>지에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말>지는 수배자가 아니라면 본명으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수배자는 아니니까(웃음) 그러면 알겠다고 했다. 스물여덟살 때부터 지금까지 쓰고 있다. <말>지 최장수 필자지. 내가 <말>지 편집장 일곱 명과 담당기자 열 두명을 갈아치웠다(웃음). 그 글을 보고 <스크린> 경쟁지를 만든다고 창간된 <로드쇼> 편집장으로 오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 이후는 지금 알고 있는 것과 똑같다.
정윤철: <로드쇼> 편집장을 맡으면서 우리가 아는, 공식적인 수면으로 드러난 정성일의 인생이 시작됐다. 나도 <로드쇼>를 본 기억이 나고 이 사람은 누군가 궁금해했다. <로드쇼>를 하다가 <키노>를 만들게 된건가. 정성일: <로드쇼>는 92년에 그만두었고, 그해에 <정은임의 영화음악>에 출연하고 <한겨레신문>에 영화평을 썼다. <로드쇼>를 하면서 열패감이 있었다. 하고 싶은 영화저널을 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30대였다. 그래서 <키노>를 만들게 된거다.
정윤철: 모델이 <카이에 뒤 시네마>같은 잡지였나. 정성일: 그렇다. 하나의 롤모델이라고 생각했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영화에 대해 생각을 하고, 인터뷰가 가장 중요한 비평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키노>는 모든 감독, 심지어 단편영화 감독도 인터뷰했다. 결국 최선의 비평은 인터뷰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쓴 영화평은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가 되지만 영화를 만든 감독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영화잡지가 하는 일은 기록하는 거다.
정윤철: 그 때문에 임권택 감독과도 그렇게 집요하게 인터뷰를 한 건가. 임권택 감독과 인연을 맺은 건 이장호 감독이 당신을 임권택 감독 책자 필자로 섭외하면서였다고 했는데. 정성일: <씨네21> 598호에 실린 <천년학> 관련 에세이에 이미 썼는데, 내가 임권택 감독을 처음 발견한 건 대학교 1학년때 <족보>를 보면서였다. 그때 황석영을 중심으로 민중문학 논쟁이 벌어지면서 결국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게 한국영화란 무엇인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대학에 가기 전에 나는 한국영화를 너무 경멸했다. 시네마테크도 없고 영상자료원도 없고 글도 없던 시절이니까.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나는 한국영화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감독 이름도 모르는채 <족보>를 봤는데, 즉각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왔다. 내가 보아왔던 영화들과 편집 방식이 너무 다른데 굉장히 아름다웠다. 이게 뭘까, 극장 밖으로 나와 감독 이름을 보니 임권택이었다. 그때부터 그 사람 영화를 줄기차게 보기 시작했다. 신기했던 것은 임권택 감독을 더 알기 위해 당시 영화진흥공사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전혀 없더라는 것이었다. 유현목과 김기영, 이만희, 신상옥, 하길종 등은 수많은 자료가 있는데 말이다. 만약 임권택 감독을 알면 한국영화를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장호 감독은 마음 속으로 유현목이나 김기영 감독 등을 기대했을텐데 내가 임권택 감독에 관해 쓰겠다고 하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충무로스럽다고 생각했겠지. 대학을 졸업하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젊은 애가 와서 책을 만들 때는 기대하는 게 있었을 텐데 갑자기 상업적인 감독의 이름을 대니 말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임권택 감독을 <만다라>가 개봉한 86년 11월 둘째주 화요일에 처음 뵙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정윤철: <족보>는 개봉한 영화였나. 정성일: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개봉관을 못 잡았고 재개봉관에서 개봉한 걸 봤다.
정윤철: 그게 언제였나. 정성일: 79년이었다. 그이후 <안개마을> <길소뜸> <티켓> 등을 계속 봤는데, 영화들이 서로 너무 다를 뿐만 아니라, 매번 일취월장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묻고 싶었다.
정윤철: <족보> 이후 100번째 영화인 <천년학>까지 왔는데, 그사이에 있던 영화들을 모두 본건가. 정성일: 한편도 빼놓지 않고 모두 봤다. 아시안 게임 기록영화까지 봤으니까. 그 영화는 프린트 자체가 사라졌다.
정윤철: 한 거장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아온 것인데,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느낌은 무엇이었나. 정성일: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임권택 감독에게 배운 가장 큰 것은 아버지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굉장히 오랫동안 아버지와 불화의 시간을 보냈다.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너무 냉정했다. 그런데 임권택 감독을 인터뷰하면서 그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인생을 들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그것도 호남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가출을 했고 떠돌면서 20대를 보냈던 사람, 수전증까지 걸려서 내가 정말 살기는 살겠나 이러면서 살았던 사람을 말이다. 임권택 감독은 열여덟에 짐꾼을 했는데, 사지가 너무 아프니까 잠을 자지 못해 밤마다 깡소주를 마시다가 수전증에 걸렸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영화를 만드는 걸 보면 건강한 거지. 어쨌든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삶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됐다. 그가 왜 그토록 나에게 냉정했고 그런 요구들을 했던 건지에 대해서 말이다. 임권택 감독 연세가 우리 아버지와 딱 한살 차이다. 문득 내 아버지의 삶이 가련하게 느껴졌다. 한국 현대사 속에서 정말 힘겹게 버티어 여기까지 온 모습이. 그러니까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는 과정이 내게는 내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불화의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다. 임권택 감독이 그런 것을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인터뷰를 통해 나는 선물을 얻은 셈이다.
정윤철: 어떤 치유의 과정을 겪었겠다. 어찌 보면 임권택 감독은 당신의 아버지가 채워주지 못했던 아버지같은 느낌을 주었던 것이 아닌가. 정성일: 그렇다기보다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산다는 것에 관한 문제였던 것같다. 꼼짝없이 동시에 체험해야만 했으니까. 1950년대 한국전쟁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가 폐허 속에서 살았고, 해방 이후 좌우대립을 겪었다. 그 이전 일제강점기 또한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홀로 버티고 살아갈 수밖에 없던 사람이 가정을 이루었을 때 자식들에게 보여준 모습이라는 것은 그 삶의 결과였을 것이다.
정윤철: 이제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보겠다. 책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는 편이지 않은가. 당신의 비평을 보면 저렇게 많은 책과 영화를 어떻게 보나 놀라게 되는데, 비결이 있는 건가. 잠을 자지 않는다던지, 하는 소문도 돌고 있는데. 아, 그리고 <키노> 시절을 잠깐 떠올린다면, 그 몇 년의 세월, 행복했는가. 정성일: 행복하기도 했고 불행하기도 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좋은 동료들과 좋은 책을 만들어서 행복했다. 그때 같이 일했던 기자들은 나중에 편집장이 된 이연호 씨부터 막내에 이르기까지 다들 진심으로 일을 했다. 그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불행했던 건 시자하자마자 경제적인 압박에 시달려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문제는 끝내 해결이 안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잡지라는 것을 만들면서 그런 문제에 부딪치면 하중이 편집장에게 걸릴 수밖에 없다. 편집장이 일정 정도 책임이 있는 문제기도 하고. 시작하고 딱 1년 동안만 경제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웠지 그이후로는 굉장히 힘들었다. 아, 책과 영화를 많이 보는 비결은, 그냥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정윤철: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보려고 노력하는 편인가. 정성일: 원칙이 하나 있다. 내가 군대에서 맹세한 건데,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 페이지 이상은 반드시 읽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하고의 약속이다. 두 번째 약속은 아무리 짧은 문장이라도 하루에 한 가지 이상 글을 쓴다는 것이다. 때로는 단상일 수도 있고 때로는 긴 글일 수도 있다. 세 번째는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세편이상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집에서 DVD를 보든 시네마테크에 가든. 그것이 내가 스물 두살 이후 지키고 있는 나와의 약속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시네필이어서 영화만 계속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다 보면 사람이 바보가 된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 말이다. 반면 글을 안 쓰고 책만 계속 읽는 사람은 머리가 잡다해지는 것같다. 나는 영화를 보는 것과 책을 읽는 것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글을 쓴다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중재하는 것, 내가 표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정윤철: <키노>가 창간되던 시기는 냉전이 끝나고 포스트모던적인 사조가 밀려들 무렵이었다. 영화에 있어서도 우리가 시도하지 않았던 사조와 담론들이 소개됐다. 독자에겐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키노>는 그런 것들을 소개하는 거의 유일한 잡지였다. 나도 <키노>를 많이 샀는데,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이름들인 보드리야르, 들뢰즈, 푸코 등을 인용하곤 했다. <키노>는 어떻게 보면 최초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후기 구조주의 철학 이론 등을 끌어들여 영화를 연구했다. 어떻게 해서 그런 방법을 택하게 됐나. 정성일: 책을 읽다보면 한 권의 책이 다른 책을 소개하게 된다. 우리는 최신 철학을 소개해야해,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동시대적인 사고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있었다. 왜냐하면 <키노>는 혹은 나는 지금 현재에 살고 있는 거지 과거에 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전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사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그 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한다.. 내가 명석하다면 그 답을 혼자 생각했겠지만 그 정도 지혜는 가지고 있지 못하니 자꾸 다른 사람 견해를 구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동시대의 철학자와 미학자, 소설가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서로 접속을 하는 거다. 정윤철 감독도 고전영화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동시대를 사고하기 위해 현대영화도 보고 동시대 철학책도 읽지 않나. 그렇게 하는 까닭은 이 시대에 살아가기 위한 ‘좌표’를 얻기 위함이다. 칸트와 헤겔과 스피노자는 위대하다. 그러나 그들을 읽으면서 2007년 남한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좌표를 얻기란 쉽지 않다.
정윤철: <키노>가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키노>에서만 다루는 현대 철학과 다른 이론들이 어렵고 낯설었던 까닭도 있겠지만, 이 잡지는 왜 이런데 관심이 있을까 궁금해서이기도 했다. 불어도 많이 쓰고 소제목 이름도 어렵고(웃음). 죄우간 아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하면서 호기심도 생기는, 뭐랄까 어떤 이국적인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연관을 찾을 수 있지만 당시엔 지식이 없었으니까. 정성일: 효율적으로 전달하지 못한 탓도 있다. 효율적으로 전달을 하고, 전략을 세워서 배치도 잘 했어야 했는데, 그런 점에선 미숙했다.
정윤철: 당신은 그때부터 색이 확실했고 지금도 호불호가 명확하다. <키노>에서 그런 가치관이 확립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정성일: 나는 어릴 적부터 그랬다. 영화를 본다는 행위에는 직관이 포함되어 있고, 논리적으로 따지는건 사기라고 생각한다. 직관적으로 이 영화가 좋다 싫다라고 몸이 반응을 한다. 당신도 직관이 오지 않나. 그런 직관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나의 세계관과 경험과 세상에 대한 태도의 총체적인 반응이다. 그대신 나는 나이를 먹어가며 이런 걸 묻게 됐다. 나는 이 영화가 싫다, 그러면 왜 싫은가. 그런 것에 대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았다. 비평가로서 어떤 영화에 대해 가지는 자신의 태도는 중요한 것이다.
정윤철: 어쨌든 자기 색이 뚜렷했다. 정성일: 새로 기자를 뽑을 때 난 먼저 <키노>는 편견이 있는 잡지라고 말했다. 우리는 균형 잡힌 사고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싫다면 다른 잡지를 선택해라,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좋아할 거고 우리가 싫어하는 영화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겠다고. 만약 영화잡지가 <키노> 뿐이었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당시 <씨네21>을 비롯한 너무나 많은 영화잡지들이 생겼고, 얼마 뒤엔 인터넷도 보급됐다. 여러 가지 정보들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 한 잡지가 소위 균형 잡힌 생각을 한다는 건 이 시장을 다 책임지겠다는 건데, 그건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정책은 무엇인가, 그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겠는가. <키노>에 서운해 하는 감독들도 있다. 나에겐 관심이 없다, 어떤 감독을 과도하게 다루는 거 아니냐, 라는 거지. 그런데 키노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명단이 중요하다고.
정윤철: <키노> 마지막 호에 이런 내용의 글을 썼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가들에 관한 글을 쓰며 어찌 어렵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런 글들을 쓸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하지만 영화가 어렵고 위대하다고 하여 그걸 해석하는 글조차 어려울 필요가 있는지. 정성일: 거기에 관해선 항상 인용하는 아도르노를 인용하고 싶다. ‘자본주의는 지식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지식을 간단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점점 사고를 마비시키고 논리 자체를 무시한다. 결정적으로 말하자면 철학은 점점 광고 카피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아도르노는 내 글을 읽는 것은 사유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아도르노처럼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그 태도는 배우고 싶다.
정윤철: 일부러 쉽지 않게 글을 쓴다는 뜻인가. 정성일: 쉽지 않다는 것은 고마운 표현이고, 나는 내 글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어내고 싶다. 나는 별점을 굉장히 경멸한다. 그 별점은 영화가 아니라 그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어떤 영화에 별 두개를 매기는 순간, 그가 영화를 보는 수준도 별 두개가 된다는 뜻이다. 지금 영화는 너무 쉽게 소비되고 있는데, 나는 영화를 잠시 멈추어 세우고, 영화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럴 때에만 비로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해석의 공간, 창조의 시간에 대한 성찰, 세상에 대한 반성 등을 획득할 수 있다. 내가 그 영화를 봤지, 하고 만다면 누가 영화를 향해 배움을 구할 수 있느냐는 거다. 정윤철 감독도 누군가 당신의 영화를 보고 나서 스무자로 쓰고 별점 주면 화나지 않나. 그 영화를 싫어해도 길게 쓰는 게 좋지.
정윤철: 그렇다고 해도 영화에 관한 글을 쓰면서 소통을 염두에 둘 텐데, 어느 선을 지킬 것인지 고민되겠다. 정성일: 종종 하는 이야기지만, 내 글의 독자는 단 한사람,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내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사실 관심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독의 이름으로 비유되는 영화의 주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정윤철이라는 이름에는 그 영화의 모든 관련자들이 압축되어 있지 않나. 그러므로 내가 감독을 호명할 때 그것은 감독 개인이 아니라 그 영화에 참여한 모두, 어떤 총체성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모든 것을 조율하고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물론 감독 개인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더더욱 쉽게 써야하지 않나? 감독들 생각보다 무식하다...라는 말을 나는 차마 못한다.
정윤철: 하지만 글을 쓰면서 대중에게 무언가 설명해주고, 하다못해 계몽을 한다는, 그런 욕망은 있지 않나. 정성일: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을 설명하고자 하는데 전력투구한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알게 되긴 했지만, <좋지 아니한가>를 봤는데 이해가 안 되는 거다. 이 영화가 도대체 왜 이래야 하는 건지. 천호진과 정유미를 보면서 둘 중 하나다 싶었다. 그 이야기에 뭔가 하나가 더 있어야 했거나, 섹스를 하고 새 족을 꾸며서 나감으로써 심씨 가족이 돈 버는 기계인 아버지 없이 견딜 수 있느냐고 물어보거나. 그런데 <좋지아니한가>는 어느 쪽으로도 결정을 안 했다. 전자라면 이 영화는 뭔가 결핍된 거고, 후자라면 이 영화는 결단을 하지 못한 거다. 이런 불균질성이 발생했을 때 나는 질문을 던져보고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생각하여 글을 쓰는 거다. 그 질문을 견디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부서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질문을 통해 내가 세상에 대한 배움과 깨달음을 얻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 영화를 지지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정윤철: 글을 쓰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하여 결론까지 간다는 건데, 결론이 나지 않을 수도 있는 건가. 정성일: 내가 항상 답을 구하지는 못하니까. 때로는 그 감독의 다음 영화에서 답을 얻기도 한다.
정윤철: 그렇다면 질문을 던지는 대상이 단 한명의 독자인 감독인가. 영화는 무생물이니까 말이다. 정성일: 예를 들면 <피와 뼈>의 감독 개인에게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독의 이름으로 비유되는 영화의 주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정윤철이라는 이름에는 그 영화의 모든 관련자들이 압축되어 있지 않나. 그러므로 내가 감독을 호명할 때 그것은 감독 개인이 아니라 그 영화에 참여한 모두, 어떤 총체성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모든 것을 조율하고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물론 감독 개인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윤철: 그런 면에서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어떤 영화를 보아야하는가라는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 예전에 당신이 <TTL>에 썼던 글을 읽었다. 주인같은 노예가 있다, 자신이 주인이라고 착각한 그 노예는 언제까지나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런 논의로 내용을 이어나가며 진짜 영화와 가짜 영화를 언급했다. 좀 더 설명을 해줄 수 있는가. 정성일: 이렇게 대답을 하겠다. 대중으로서 영화를 보는 단계를 지나 내가 자의식을 가지고 영화를 보게 되면, 영화를 보는 여러 가지 태도가 생겨난다. 예를 들면 스피노자적인 태도와 플라톤적인 태도가 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니체적인 영화보기가 가능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니체가 세상을 대하듯 말이다. 영화라는 것은 세상을, 잠재적인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영화라는 것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액추얼한 세계로 놓고, 가능한 세계를 찍는다. 이 가능한 세계에 대해 내 자의식으로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내가 이 화두를 던진 이유는 많은 비평가와 진지한 이들이 영화에 대해 질문을 던질 때 데카르트적으로 사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 나는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영화를 볼 때 니체적인 영화보기를 통해서 자기가 영화를 보는 행위에 의문을 던져보고, 그 영화에 붙들린 노예의식이라는 것으로부터 뛰쳐나오고, 거기에 대해 비판하고 주체를 되찾는 것도 가능하지 않나 싶다. 그럴때 비로소 니체가 말하는 진짜와 가짜가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가짜는 부정적인 의미의 가짜는 아니고, 가능성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정윤철: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사유를 하고, 괴로움을 참으면서까지 영화를 보는 이는, 일반 대중이라면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굳이 나눈다면, 영화는 대중영화와 예술영화로 나눌 수도 있겠는데,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해본다. 대중음악은 대중음악 평론가가 있고 클래식은 클래식 평론가가 있고 재즈는 재즈평론가 있는데, 영화는 한명이 그 넓은 스펙트럼을 뭉뚱그려 매체에 글을 쓰지 않나. 그런데서 부담감이 오지는 않나. 정성일: 그것은 생각의 차이일 수 있을 거다. 나는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구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영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영화를 붙들 것인가, 어떻게 영화를 이해할 것인가, 납득하고 싸울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건 대중영화니까 이건 예술영화니까 이렇게 보지는 않는다. 관객의 숫자와 관계없이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괴물>은 예술영화다. 내러티브 구조와 영화의 형식을 비롯한 여러가지 점에서 그 영화는 아트필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영화에 대해 생각할 때 대중영화와 예술영화를 구별하는 것이 매우 무의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당신도 <말아톤>은 대중영화로 찍고 <좋지아니한가>는 예술영화로 찍고, 그렇게 하지는 않지 않았나.
정윤철: 이 자리에 오기 전에 감독과 배우 몇 명에게 질문을 받았다. 이건 김혜수가 물어온 질문이다. 영화평을 보면 좋고 나쁨을 떠나 이 사람은 이런 영화를 좋아하고, 저 사람은 저런 영화를 좋아한다고, 안 봐도 알 수가 있다. 말하자면 장르화 되어 있어서 평을 읽기도 전에 결과를 예상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잘 안 읽게 된다는 거다.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고 보나. 정성일: 똑같이 반문하고 싶다. 홍상수 감독에게 <친절한 금자씨>를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박찬욱 감독에게 다음 영화는 <해변의 여인>과 비슷하게 찍으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비평가들도 자기 세계관이 있고 취향이 있고 지금까지 읽어온 책과 보아온 영화가 있고 경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 <극장전>도 좋아하고 <태극기 휘날리며>도 좋아하면 그 사람 되게 이상한 비평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당신의 애티튜드는 무엇이냐고 묻고 싶은 거다. 나는 한쪽을 지지하는 비평가에 대해선 반감이 없다. 가끔 보면 모든 영화에 별 네 개나 세 개를 주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취향을 가진 비평가인가. 나는 그럴 때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 글은 읽지 않아도 알아, 그 사람이 누구 좋아하는지 알고 있지, 이것이 매너리즘에 빠지면 문제가 되겠지만 취향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사람의 취향 자체를 알 수 없을 만큼 공정함을 내세우는 것은 더욱 의심스럽지 않은가.
정윤철: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질 때 의도가 다르다면 어떤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처음부터 목표 지점이 다른 영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카테고리를 지어주면서 비평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이 영화의 목표지점은 이 정도, 그러니까 음악으로 치자면 대중가요 정도다. 음악에는 댄스그룹의 노래도 있고 싱어송라이터가 부른 그럭저럭 잘 만든 대중음악도 있고 나아가면 클래식이나 이런 예술적인 음악도 있다. 영화도 이런 각자의 틀 안에서 완성도를 평가받는 건 불가능할까. 정성일: 이렇게 대답을 하겠다. 나는 정윤철 감독의 단편 <기념촬영>을 지금도 좋아한다. 아주 좋아하고,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기념촬영>은 무언가 간절하게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수많은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을 건너 뛰어와서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그런 다음에 <말아톤>을 봤을 때 나는 그 영화를 대중영화나 상업영화의 카테고리로 보지는 않았다. 나는 이 영화가 무슨 질문을 하고 싶은지를 보았다. 무슨 질문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더라.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말아톤>은 자폐증 소년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가족의 문제를 우회해서 다루고 있다. 문제는 이야기하려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장치들, 이야기들,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몰아가기 위해 수없이 덧붙여진 것들이 <말아톤>을 둔하게 만들었다. 나는 질문하고 싶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뻔한데 왜 에둘러갔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말아톤>을 보고 나서 어떤 글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기념촬영>을 찍었던 감독이니까. 이 연출자가 두번째 장편으로 <좋지 아니한가>를 찍었기 때문에 나는 기대를 하게 된 거다. 물론 나도 제도권 영화의 현장에서 한 사람의 연출자가 데뷔하기 위해 감수하는 여러 가지 타협의 순간들과 열악한 환경을 알고 있다. 그런 것들을 다 괄호칠 만큼 비평가가 세상의 현실에 둔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말아톤>을 둔하게 만드는 것들을 보며 저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묻게 됐다. 그 질문은 비평가에게 매우 중요하다. 나는 이 영화의 퀄리티나 완성도 같은 것들에는 관심이 없다. 내 질문은 이 영화의 애티튜드는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웰메이드라는 단어를 경멸한다. 그것은 영화를 제작자나 프로듀서의 것으로, 말하자면 상품으로 보는 것이고, 어떤 창조의 영역도 발견하지 못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창조하는가, 무엇을 비판하는가, 그리고 그사이에서 어떻게 중재하는가를 보고 싶은 거지, 잘 만든 이야기를 보고 싶은 건 아니다.
정윤철: 내가 한국의 영화평들을 읽으며 가장 아쉬웠던 것은 내러티브(이야기) 위주의 분석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한국평론가들은 줄거리와 이야기에 집착을 하고 이야기가 잘 짜여져 있는가를 문제삼는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도 결국 이야기 아닌가. 그것도 영화에서 핵심이겠지만, 영화가 왜 영화인가 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한다. 컷이 있고 사운드가 있고 예술로서 영화가 있는데, 평론은 내러티브와 인물과 구성 위주로만 풀어간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에 <필름아트> 저자인 데이빗보드웰이 한국에 와서 그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 미국의 교수가 홍상수와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샷 바이 샷으로 분석하며 허우샤오시엔과 비교하는 것을 보며 놀랐다. 미장센과 영화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을 하는 걸 보고 대단하구나 싶었다. 한국영화계에는 그처럼 미학적인 스타일이나 영화 자체를 분석하는 평론이 왜 이렇게 없는 것인가. 정성일: 내가 모든 비평을 읽지는 못하므로 개인적인 소견이라는 것을 전제로 말하겠다. 나는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숏과 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숏과 씬은 결국은 다 떨어져나가는 단위들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숏을 씬으로 연결하는 논리가 필요한데, 이 논리가 이야기다. 영화비평이 이야기를 물어본다면, 그 질문은 정확하게 이야기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의 논리가 무엇인지 묻는 거다. 숏이 어떤 방식으로 붙어있는가, 붙어있는 이야기를 연출자가 어떻게 쪼개고 있는가, 이 이야기는 왜 쪼개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장면을 투숏으로 찍었는가 혹은 숏 리버스 숏으로 찍었는가, 하는 것들을 묻는 거다. 나는 한국의 영화감독들에게 묻고 싶다. 한국영화가 점점 깊이가 없어지는 까닭은 젊은 감독들이 리액션 숏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리액션 숏에 대한 철학이 없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끊어서 상대를 보여줄때, 이것은 결단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숏은 어차피 찍어야 하는데, 리액션 숏을 찍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 논리를 질문하고 싶다. 그러므로 당신 질문과 똑같은 답이 되는 셈이다. 나는 영화에 대한 질문을 문학 텍스트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문화하고 줄거리로 환원하고 그 줄거리를 묻는다면, 이것은 줄거리 요약에 불과하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를 따져 물어야 할 때가 있다. 이야기에서는 필연적으로 나와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안 찍은 거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그렇다. 왜 건너뛰어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왜 그 씬이 없습니까. 그의 영화는 이야기로 환원하지 않으면 질문을 할 수가 없다. 임권택은 장면을 건너뛰며 찍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고다르가 점프컷의 고수라면 임감독님은 점프씬의 대가랄까? 좌우간 <취화선>, <하류인생>에서 끝장을 보여줬지. 많은 관객들이 이야기가 툭툭 끊겨 당황했지만 그런 편집이 개인적으론 씨원 씨원했구 뭔가 미래적인 영화의 느낌이었다.
정윤철: 어쨌든 이야기를 제일 중요시하면서 말이 된다 안 된다 식의 평이 많은 건 사실이다. 스토리텔링 위주의 비평이 관객에게는 쉽게 읽힐 수는 있겠지만 감독이나 영화인들에게는 자극이 되지가 않는 것같다. 편집과 연출과 사운드와 연기 같은 여러 중요한 요소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왜들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정성일: 나의 동료들을 위해 반문하자면,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보지 않아도 되는 영화들을 찍어줬으면 좋겠다. 허우샤오시엔의 <카페 뤼미에르>는 스토리텔링으로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다. 차이밍량의 <나는 혼자 잠들고 싶지 않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 지아 장커의 <스틸 라이프>, 데이빗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줄거리를 써봐야 이야기 자체가 뭔지 모르는 영화들이다(웃음). 나는 그런 비평이 범람하는 것을 뒤집어 보면 그만큼 한국영화가 스토리텔링에 매여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많은 감독이 스토리텔링에 매여 있고, 당신이 말했던 모든 요소들이 스토리텔링에 봉사하고 있지 않나. 한국영화비평의 약점은 한국영화의 약점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의 영화비평은 한국영화와 상관없이 쓰여지는 게 아니라 조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들이 영화비평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편함이 아닌 부족함이라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은 고스란히 한국영화의 부족함으로 돌아온다.
정윤철: 그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일수도 있겠다. 스토리텔링 위주의 비평을 하다보니까 감독들이 스토리를 중요시여기고 결국 시나리오도 자기가 쓰려고 하는 것 아닐까? 정성일: 원인과 결과가 바뀔 수는 없다. 영화가 나와야 비평이 나오는 거지, 이런 비평을 받고 싶다고 만드는 영화는 없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를 따져 묻는 사람은 없다. 김기덕과 박찬욱도 마찬가지다. 비평가들은 영화에 조응하는 비평을 쓴다. 감독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내가 스토리텔링의 감독은 아니었는지, 내 영화의 많은 요소가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것은 아닌지.
영화를 왜 영화 자체로 못 보는가.. 나와 동료 감독들은 늘 말하곤 한다.
정윤철: 좋다. 당신은 한국영화의 약점을 이야기 하고 있는 건데, 감독도 노력해야 하는 문제다. 그런데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보고, 정치적인 함의를 파악하고, 정신분석하듯 영화를 분석하는 것들도 중요하지만, 비평이 미학적인 관심도 가졌으면 좋겠다. 영화를 잘 찍었다고 말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무슨 개념으로 리액션 숏을 이렇게 붙인 건가, 클로즈업이 왜 들어가는가, 이 스타일이 주제에 맞게 쓰였는가... 이렇게 영화를, 미학을 지닌 텍스트 자체로 보고 형식 자체에 대한 비평을 한다면 감독들도 좀 더 긴장을 하게 될 거다. 영화를 분석하며 언제나 철학이나 정신분석이나 여러 가지 다른 학문을 끌고 들어와서 분석하는 경향이 많다는 건 영화미학을 너무 폄하하는 것 아닌가? 정성일: 전혀 다른 문제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영화가 다른 예술에 비해 세상에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베토멘의 현악사중주를 분석하면서 창작 과정을 분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땐 악보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현악사중주에서 도와 미 사이에 이데올로기는 없다. 레와 솔 사이에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차이가 있는지 묻는다면 답은 끝내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좋지 아니한가>의 가족은 등장하는 바로 그 순간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중산층인가라고. 혹은 <가족의 탄생>을 보면 왜 김태용 감독은 가난한, 거의 부서져가는 가족을 다루는가를 묻게 된다. 말하자면 영화는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너무 세상 안으로 들어와 있다. 레와 솔을 물어보듯, 도와 미를 물어보듯, 미학적인 방향으로 완전히 철수할 때, 영화는 굉장히 빈곤해지고 앙상해진다. 그 영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세상을 향해 던지고 있는 (영화 속의) 수많은 질문과 기호와 모순과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한 편의 영화를 끌어안기 위해 세상의 지식을 함께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왜? 세상을 찍고 있으니까. 나는 정신분석학이건, 사회학이나 경제학이나 정치학이건, 분과별로 보기보다는 세상의 지식으로 보고 싶다. 지식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니까. 그러므로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세상의 지식이 필요하다.
정윤철: 많은 영화인과 감독, 심지어 관객마저도 평론에 불만을 제기하며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 생각해야지,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그것으로 영화 전체를 평한다는 거다. 나도 그런 경향이 너무 많지 않나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그런 식으로 비평을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아니면 좋을 텐데. 정성일: 똑같이 반문하겠다. 그 질문 자체가 영화를 폄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영화는 그냥 구경거리가 아니다. 예를 들면 정윤철이 시나리오를 쓸 때,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쓰는 순간 세상은 이미 시나리오에 끌려온다. 이 인물은 합당한가, 나는 2007년에 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나, 이 이야기가 세상과 어떤 호흡을 이루는가, 가족이라는 토픽을 던질 때 내 화두는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에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가능(한)세계라고 생각한다. 그 가능한 세계라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현실적 세계에 닿아 있다. 감독들은 홍상수가 가능한 세계 1을, 정윤철이 2를, 김기덕이 3을, 임권택이 4를 만든다. 즉, 이런 식으로 이 세상을 둘러싼 여러 (가능한) 세계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통해 우리는 현실적 세계를 반성적으로 성찰하게 된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우리에겐 무엇이 문제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럼 현실세계에 살고 있는 비평가들이 가능세계를 만든 영화를 보고 현실세상의 변화 의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영화를 영화로만 봐달라고 한다면 가능세계는 현실세계로부터 떨어져나와 불가능 세계가 된다. 우리가 헐리웃 영화를 보며 후진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런 거다. 영화를 영화로 봐라, 그렇다면 <300>을 보면 되는 거다. <300>이 영화의 참맛인가.
정윤철: 무엇이 좋은 영화이고 나쁜 영화라고 여기는가? 정성일: 나는 이런 말을 인용하고 싶다. 차이밍량이 서울에 왔을 때 누군가 질문했다.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의 차이는 무엇인지. 차이밍량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나쁜 영화는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는 영화고 좋은 영화는 나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다. 나는 거기에 진리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정윤철: 그렇지만 내 문제만이 아닌 어떤 거대한 것들을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정성일: 그럼 파시즘이 되는 거지.
정윤철: 환경문제나 남의 문제들을 걱정하는 영화가 나쁘단 말인가? 정성일: 나는 그때 영화가 프로파간다가 된다고 생각한다. 진보적 프로파간다도 있고 보수적인 프로파간다도 있지만 비슷하다. 나는 똑같은 사건(미국 컬럼바인 고교의 총기 난사사건)을 다룬 영화라고 해도 <엘레판트>는 지지하지만 <볼링 포 컬럼바인>은 지지하기가 힘들다. <볼링 포 컬럼바인>은 폭력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반문하고 싶다. 이해해도 괜찮은 건가. 폭력이 이해되는 순간 그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정말 부조리하다는 질문을 던지고, 가능해서는 안 되는 사건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영화의 미학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봐달라고 했는데, 우리는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면 이런 표현을 쓰지 않나. 숭고하다고.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숭고한 가치가 아닌가 싶다. 나에게는 미학에 사로잡히는 것이 타락의 징후로 보인다. 눈을 움직이는 건 미학이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건 숭고함이다.
어떤 이에게 영화란 종교적인 무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정윤철: 영화가 재미있고 분석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영화만이 갖고 있는 상호텍스트성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야기에 세상이 담겨 있다. 정치와 경제, 문화, 이데올로기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게 읽혀지지 않는 영화를 보면 어떻던가? 정성일: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아무런 정치적 메시지도 담고 있지 않다. 거대담론도 없고, 평범한 이야기일 뿐이다, 딸을 시집 보내는 게 전부인데도 그 영화는 진행이 너무 기괴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오차즈케의 맛>을 보면서 망연자실했다. 그 영화는 오즈의 다른 영화들처럼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타이틀이 올라올 줄 알았다. 남편은 여행을 떠나러 공항에 갔고 아내는 문제가 해결이 됐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오즈의 영화에 언제나 나오는 방식으로 텅 빈 방들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밤중에 귀신처럼 남편이 돌아온 거다. 이 사람이 미쳤나, 여기서 더 이상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생각하는데, 남편이 비행기가 고장 나서 떠나지 못했다고 말하는 거다. 언제나처럼 무뚝뚝하게. 그러다가 밥을 좀 먹자고 그런다. 그 집은 언제나 식모가 밥을 했는데 한밤중이니까 집에 간 거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아내가 남편을 위해 밥을 한다. 오차즈케를. 오차즈케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다. 남편은 자수성가를 했지만, 아내는 부유한 사람이어서 오차즈케를 촌스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반찬이 오차즈케 뿐이었다. 부부가 저녁 식탁에 앉았는데, 이건 절대 나누지 못할 거야, 나누는 순간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니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즈는 그 장면을 나누었다. 그 순간 오즈는 왜 그 장면을 쪼갰는가. 그는 감독으로서 결단하듯 내리친 거였다. 쪼개는 순간 이 구도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생각하다 집에 가는 길에 문득 그 결단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그 장면은 고정된 카메라로 롱테이크를 찍는 것이 맞았다. 그렇게 찍어서 두 사람의 감정을 자르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즈가 그걸 자르고 진행한 것은, 투샷으로 찍어서 시간이 진행되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다. 관객은 그 장면을 이미 투샷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다음 장면에서 남편은 친구를 만나 여행갔다 온 이야기를 한다. 전날 밤 남편이 돌아온 것이 아내의 꿈이었는지, 남편이 진짜 집에서 밥을 먹고 여행을 떠난 건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순간은 영화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 중의 하나다. 숏을 쪼개는가 마는가, 진행을 하는가 마는가, 마음을 나눌 것인가 이을 것인가의 결단. 오즈는 나에게 이 배움을 줬다. 영화는 세상이지만 쇼트는 그자체로 우주다. 그래서 쇼트는 항상 영화보다 크다는 생각을 한다. 왜? 영화는 세상을 쫓지만 쇼트는 잡는 순간 완결된 우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쇼트를 쪼개는 건 우주를 자를 것인가 말것인가를 질문하는 거다. 그것은 브레송에게도 르누아르에게도 히치콕에게도 당연히 묻게 되는 질문이다.
정윤철: 그런 상호텍스트성이나 함의가 없더라도 영화 자체가 신선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 영화의 형식 자체가 사유를 하게 만들고 새로움을 느끼게 해준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 않은가. 정성일: 이건 개인적인 느낌인데 나는 켄 로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한 번도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켄 로치는 그냥 정치를 다룬다. 나는 영화가 정치를 다룰 때 촌스러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를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 때는 행복하다. 정치적인 영화는 힘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오즈가 <오차즈케의 맛>의 마지막 장면을 찍었을 때, 그것은 정치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롱테이크로 찍었을 두 부부의 식사 장면을 샷을 나눠서 한 명씩 잡았음) 전후 일본사회에서는 오즈에게 있어 숏을 쪼개는 그 결단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다. 전후 일본이 패전을 딛고 경제성장을 향해 나아갈 때 가족이 어떻게 쪼개지느냐, 개인화, 파편화 하느냐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다루진 않지만 샷을 쪼개는 것 그 자체가 오즈를 정치적으로 만든다.
정윤철: 영화가 정치를 다룰 때와 영화를 정치적으로 다루는 것은 다르다는 말인가. 정성일: 나는 후자를 지지하고 싶고, 후자가 항상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강의를 하면서도 학생들에게 영화를 진행하며 해서는 안되는 결정적인 일이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함부로 죽이는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영화는 쓰레기야, 네가 창조한 인물이라고 해서 함부로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면 너는 파산한 거야, 그런다. 그것이 아무리 미학적인 것이더라도. 나는 미학적인 결정보다 상위에 있는 결정은 윤리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윤리라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은 도덕과는 다르다. 나는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면 미학은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학은 별로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학에 매달릴수록 영화는 빈곤해지고 퇴폐적이 될뿐만 아니라 몰락한다. 미학의 절정에 도달한 순간 모든 예술은 타락을 경험했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