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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열정으로 표현하라
홍성남(평론가) 2007-04-04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회고전, 4월4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에 대한 깊은 식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의 세계와 관련해 영화만을 논하는 것은 그 전모를 파악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파졸리니에 대한 좀더 포괄적인 이해란 영화만이 아니라 시, 소설, 비평 등의 영역들에도 관여했던 이탈리아의 지식인이란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영화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그것을 붙들려 노력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의 유명한 발언에 따르면, 영화는 삶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영화로 돌아갈 것을 스스로에게 재촉했던 것이다.

파졸리니는 인생 자체가 우리가 삶 속에서 구현하는 살아 있는 영화이고, 영화란 현실을 가지고 표현해내는 현실 자체라고 생각했다. 쉬워 보이는 듯하면서도 오묘한 함의를 담고 있는 이 같은 견해로부터 먼저 유추해낼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야기를 한 사람의, 삶 안에 있고자 하는 의지, 삶에 대한 맹목적인 열정과 사랑이다. 파졸리니라는 시네아스트는 그처럼 영화를 통해 신비와 신성함을 품고 있는 삶을 격정적으로 껴안고자 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전기를 쓴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열정적인 생동주의자’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카토네>

파졸리니가 본 세상은 언제나 그 기저에 서사시적이고 신화적인 본성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를 따라(파졸리니는 1957년에 <그람시의 유해>라는 제목의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최하층부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애정을 피력했다. 일례로 그는 68혁명 당시 투쟁의 열렬한 수행자들인 학생들을 비난하고 그에 맞서 ‘질서’를 수호하는 위치에 섰던 경찰들을 옹호했는데, 이는 학생들은 부르주아의 철없는 자식들인 반면에 경찰들은 가난한 노동자, 농민의 아들들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말단 혹은 주변부에 자리한 이들에 대한 파졸리니의 이 같은 애정은 사실 그람시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지탱하는 힘으로, 신화적인 의식을 간직하는 이들이라는 믿음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이것은 파졸리니의 영화에서는 그 스스로 ‘오염’(contamination)의 형식이라고 부른 것으로 구현되었다. 그의 데뷔작인 <아카토네>(1961)는 자신을 원래의 이름보다는 ‘걸인’이란 뜻의 아카토네라고 부르는, 포주 역할 외에는 특별한 직업없이 지내는 남자의 비루한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사회의 가장 후미진 어느 곳에 카메라를 가져간 작품으로, 그는 그곳에서 비참함만이 아니라 신성함도 함께 발견해낸다. 파졸리니는 이처럼 비속함과 신성함이 뒤섞여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좀더 진실하게 현실을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비직업배우를 기용하고 거리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유사한 만듦새와 모양새를 가진 듯한 앞선 시대의 영화, 즉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자장에서 벗어난 리얼리즘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중에 친밀감을 가졌고 부르주아를 노골적으로 혐오했던 파졸리니는 동일한 맥락에서 산업화가 아직 이뤄지기 전의 원시적인 사회를 동경했다. 그의 영화에서도 종종 그려지는 그 사회가 야만과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아니었지만 여하튼 파졸리니가 보기에 그것은 야만성마저도 불가사의하고 숭고한 기운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 세계를 스크린에 담아내면서 파졸리니는 그것을 현재로 불러내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에 대한 진정한 향수이며 희구라고 생각한 듯하다. 영화가 찍힌 실제 공간이나 실존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강조하거나 현재를 포함해 여러 시대에서 온 요소들을 함께 어울리게 하면서 파졸리니는 잃어버린 과거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도 현재를 상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이를테면 <마태복음>(1964)은 이에 대한 실례를 제공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마도 파졸리니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관통하는 비전을 제시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를 견자(見者)로서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회고의 시선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유토피아도 함께 꿈꾸었던 시인.

물론 파졸리니라는 영화-시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가 세상의 장벽을 무너뜨리려 했던 시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렸을 적 파시스트 장교였던 아버지에게서 일종의 상징적인 행위로서 완력행사를 당한 이후로 아버지에 대한 호감을 없애버렸다고 한 이 시인은 자유로운 사회를 막는 일체의 것으로서 ‘아버지적인 것’을 부정하고 모독했다. 영화를 통해 그는 종교를 모욕했고(<백색 치즈>(1963)), 부르주아를 혐오했는가 하면(<테오레마>(1968)), 순응주의의 힘을 문제삼기도 했다(<사랑의 집회>(1964)). 그렇기에 파졸리니의 삶은 뜻하지 않은 ‘스캔들’로 뒤덮일 수밖에 없었다. 건전한 양식에 반한다며, 또는 외설적이라며 고발당하는 것은 그의 영화(와 예술) 이력에서는 예사로운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그는 종종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한 주유소 직원이 파졸리니에게 ‘황금총알’이 든 피스톨로 위협을 당했다고 그를 고발한, 다소 황당해 보이는 사건은 그 실례 가운데 단지 우스꽝스러운 하나일 뿐이다. 파졸리니의 삶에서 가장 시끄러운 스캔들은 무엇보다 그의 비참한 죽음일 것이다. 1975년 11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살로, 소돔의 120일>이 아직 공개되기 전, 그는 처참한 모습을 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던 죽음의 이미지가 온전히 그 자신에게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이 미스터리한 죽음이 희생인지 순교인지 아니면 자기 주장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여하튼 우리는 그 위로 그가 쓴 문장 하나가 울리는 것을 분명히 들을 수 있다. “영원히 살면서 표현하지 않든지 아니면 자신을 표현하고 죽어라.”(문의: 02-741-9782, www.cinematheque.seoul.kr)

주요 상영작 소개

맘마 로마 Mamma Roma, 1962년, 흑백, 110분 파졸리니가 영화계로 들어오기 전에 썼던 두권의 소설 <발랄한 소년들>(1955)과 <폭력적인 삶>(1959)은 모두 전후 이탈리아 사회 후면의 짙은 그림자 속에 놓여 있는 주변부 프롤레타리아의 이야기를 다뤄 파장을 일으켰다. 그가 직접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첫 두편의 영화는 그 뒤를 잇는 것이었다. 파졸리니의 두 번째 영화인 <맘마 로마>는 매춘부로 일하다가 이제 그 지긋지긋한 일을 그만두고 사랑하는 아들을 말쑥한 사람으로 만들려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그녀(와 아들)는, 그녀가 그 주위에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몽유병에 걸린 듯 거리를 걷는 유명한 긴 장면에서 드러나듯, 출구는 존재하지 않는 길을 외로이 걷는 것인지도 모른다. 암울함과 관능이 교묘하게 섞여 있는 이 비극에서 많은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1945)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듯한 주인공 안나 마냐니의 에너지를 기억에서 지우지 못했다. 비록 파졸리니 자신은 그녀의 연기와 존재 자체에 불만을 가졌지만 말이다.

마태복음 Il Vangelo secondo Matteo, 1964년, 흑백, 133분 예수에 관한 가장 뛰어난 영화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파졸리니의 <마태복음>은 할리우드식의 매끈하고 화려한 에픽이 아닌 방식으로도 종교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증명한다. 신을 믿지 않지만 헌신적인 사랑은 말하고 싶어하고 무신론자이지만 믿음에 대한 향수는 갖고 있다는 파졸리니는 원전에 충실한 종교영화를 만들어 싶어했다. 그래서 그가 찾아낸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불평등에 반대하는 인간적인 개혁가였고 그러한 예수의 면모를 사실적으로 스크린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성스러움의 분위기를 살려내고자 하는 의중에 들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비전문배우(마리아 역을 맡은 파졸리니의 모친까지 포함한)들의 얼굴을 담아낸 리얼리즘적인 비주얼이 시적인 힘을 발휘하는 이 영화는 공개 당시 좌우 양쪽에게서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혹은 그랬기에 파졸리니를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한 것도 <마태복음>이다.

테오레마 Teorema, 1968년, 컬러, 98분 한 부유한 가정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잘생긴 청년이 방문한다. 그는 집안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들의 아들과 딸, 그리고 하인과 ‘관계’를 맺고는 집을 떠난다. 이후 집안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공허감과 혼돈감에 빠지게 된다. 파졸리니의 가장 뛰어난 ‘문제작들’ 가운데 하나인 <테오레마>는, 파졸리니 자신의 말을 인용하자면 명백한 주장을 담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요점은 대략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부르주아의 구성원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항상 그릇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에 대한 자신의 첫 번째 영화에서 파졸리니는 신성(神性)과 접한 부르주아는 몰락을 맞이하는 반면에 하층 계급 사람들은 구원을 경험한다는 ‘정리’(定理)를 대담하게 펼친다. <테오레마>는 그런 점에서 대담한 정치적 우화라고 말할 수 있지만 메마르거나 단순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전달하는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신비로움을 살려낸 식으로 만들어져 풍부한 영화적 경험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돼지우리 Porcile, 1969년, 컬러, 99분 <돼지우리>는 ‘먹어버리는 것’(consumption)에 대한 두개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영화다. 그 한 가지는 식인(食人)에 대한 15세기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예전에 나치였던 실업가와 돼지에게서 욕구를 느끼는 그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두개의 이야기 가닥을 마주보게 하면서 파졸리니는 이를테면 나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가족의 행태를 식인의 풍습과 직접적으로 관련짓는 식의 단순한 도식을 거부한다. 대신에 그는 야만과 문명, 욕망과 소비, 폭력의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게 엉켜 있는지를 바라보라고 대담하게 말한다. 아름다움을 과시함과 동시에 혐오감도 일으키게 하는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파졸리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최악의 불쾌감을 무릅쓰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은 경이롭다.” <돼지우리>는 <살로, 소돔의 120일>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 가운데 받아들이기가 가장 쉽지 않은 영화이면서 파졸리니의 마지막 작품을 예견하는 듯한 영화이기도 하다.

데카메론 Il Decameron, 1971년, 컬러, 111분 이른바 ‘생(生)의 3부작’이라 불리는 영화들을 만들며 파졸리니는 섹스라고 하는 벌거벗은 상징을 통해 현실의 존재론을 찬양하고자 했다. <데카메론>은 <캔터베리 이야기>(1972), <아라비안 나이트>(1974)로 이어지는 3부작의 첫걸음에 해당하는 영화다. 제목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이것은 보카치오가 쓴 동명의 작품에서 가져온 이야기들로 구축되어 있다. 그 이야기들은 다소 저속하다고 여겨질 수 있고 또 그만큼 음탕하면서 유쾌한 톤으로 다뤄지지만 그것들을 통해 파졸리니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사실 단순하지만은 않아서 그는 인간의 조건과 동시대 이탈리아의 삶에 대해 논평하는가 하면 예술의 존재 이유를 묻기도 한다. 하지만 이후로 <데카메론 넘버2> <마지막 데카메론> <데카메론의 뜨거운 밤> 같은 아류작들이 나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이들은 파졸리니의 이 영화를 그저 노골적인 섹슈얼리티를 다룬 영화로만 받아들이곤 했다. 그런 점에서 <데카메론>은 파졸리니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입증하는 하나의 실례가 되기도 한다.

살로, 소돔의 120일 Salo o le 120 giornate di Sodoma, 1975년, 컬러, 117분 ‘생의 3부작’을 마친 뒤 파졸리니는 <‘생의 3부작’에 대한 거부>라는 글을 남겼다. 거기에서 그는 그 세편의 영화들을 통해 자신이 껴안으려 했던 섹슈얼리티의 힘이 소비 자본주의의 무지막지한 식성에 먹혀들고 말았음을 인정했다. 그래서 그는 해방의 힘을 가진 것이 아니라 권력의 포악한 수단이 되고 만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하기에 이른다. 사드와 단테가 주요 레퍼런스가 되는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은 네명의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펼치는 무자비한 쾌락의 향연을 펼쳐놓는다. 하지만 어떤 식의 카타르시스도 제공하지 못하는 그 향연을 통해 파졸리니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같은 이성적인 반응을 넘어서는 영화이기에 보는 이들에게 곤란함을 안겨준다. 여기서 우리는 반파시트적 발언을 대하는가 하면 공포스런 포르노그래피를 보고 있기도 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희생되는 이들에게도 혐오감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극단의 표현 속에서 <살로…>는 영화 속 희생자들만이 아니라 그걸 보는 관객과 창작자인 감독 자신에게도 난감한 굴욕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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