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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불 좀 빌려주세요

담배가 추방되는 시대, 마지막 애연가로 남은 한국영화

드디어 1월1일부터 공공장소에서 금연이 실시됐다. 이제 세계 다른 많은 도시들과 같이 초라한 모습의 회사원들이 파리의 건물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게 됐다.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포토숍으로 영화 포스터와 잡지 표지의 담배를 지워버린다. 최종 목표는 영화에서 담배를 추방하는 것이다. 간략히 말해 금지법의 탄생인 것이다.

다행히도 한국이 남아 있다. 나는 <씨네21> 표지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배우나 카메라 앞에서 담배를 붙이는 초대손님을 볼 때마다 마음이 들뜬다. 의도적으로 <서울 시네마>라는 필자의 책 표지로 담배를 물고 있는 류승완 감독의 사진을 선택했다. 소독되고 메마른 이 시대에 영화에서 담배의 신화를 마지막으로 장식할 것은 한국영화인가? 훗날 영화사가들은 어째서 이런 국제적인 위생청결주의가 영화 속의 황홀한 육체적 매력의 세계적 수도이자 로렌 바콜이나 마를렌 디트리히 같은 흡연자들이 지배했던 캘리포니아에서 하필 시작됐는지 자문할 것이다.

<바람난 가족> 포스터

왜냐하면 담배는 무엇보다도 엄청난 유혹의 무기이다. 담배는 배우의 윤곽을 뽐내게 하는 깃털, 모피, 머리의 컬 등과 함께 하나의 장식처럼 자리잡는다. 외투는 한쪽으로 흘러내리고, 치마는 몸매의 윤곽을 드러내고, 담배 연기는 위로 솟아오르는 <길다> 포스터의 리타 헤이워드를 보라. 로이 퓰러라는 무용수를 ‘그녀 자체가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고 표현한 시인 슈테판 말라르메가 떠오른다. 담배를 피우는 여인이 더 뛰어나다. 나는 <바람난 가족>의 포스터를 좋아한다. 담배 불을 붙이거나 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불을 빌려주는 것은 기꺼이 몰두하는 행위다. 차이밍량 감독의 <수박 맛>에서는 아예 남자가 소녀의 발가락 사이에 꽂힌 담배를 피운다. 담배 피우는 여인은 남자들의 안락을 위해 창조된 수동적 여성성과 확연히 구분된다. 리타 헤이워드나 에바 가드너의 담배를 피워 문 입은 그들의 눈부신 피부 아래, 그들의 완벽한 육체 너머로 들어오라는 초대인 것이다. 스타들의 폐에서 나오는 담배연기는 여배우가 우리의 얼굴에 내뿜는 그녀 자신의 일부, 즉 살아 있는 한 부분이다. 자신이 내뿜은 연기를 통해 여인은 우리에게 자신의 쾌락을 받아들이게 하고, 말하자면 “자신을 내게 보낸다”. 게다가 우리는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비범한 여주인공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담뱃갑을 자신의 작은 속옷 속으로 밀어넣던 방법을.

하지만 담배는 그 밖에도 워낙 많은 것을 의미한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처럼) 친구들간의 연대감, (서부극에서 담배를 문 모습, 오우삼 영화에서 주윤발로 대변되는) 모험 등등. 담배는 특히 우리가 만드는 이미지의 소재가 돼줬다. 포토숍이 살려둔 <달콤한 인생>의 포스터를 떠올린다. 담배는 이 작품을 설명해준다. 즉 연기로 날아가버린 희망, 마치 연기로 화한 육체와 같이 유리창에 반사된 모습으로 축소된 주인공. 왕가위 감독의 작품에도 같은 것들이 있다. <화양연화>와 <2046>에서 양조위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기가 차지하지 못한 여인들을, 그 놓친 순간들을, 연기처럼 날아가버린 여러 해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배가 영화의 한 소재가 되는 것은 시간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은유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담배는 빨아들이는 숨결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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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진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