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포도주와 영화를 똑같이 신성하게 여긴다. 여러 면에서 2006년은 예외적인 해였다. 프랑스영화는 8천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좀더 기쁜 것은 할리우드에 맞서 자국 영화시장의 43%를 차지했다. 프랑스는 아직까지 인도, 한국과 함께 사람들이 자국영화를 즐기는 든든한 버팀목 같은 나라 중 하나다. 단지 그 작품들이 유독 <당신은 참 잘생겼어> <결혼해줘> <캠핑>과 같은 예술적 야망이 없는 로맨틱코미디거나 성애물이라는 점만 뺀다면 말이다. 2006년은 1월7일자 <르몽드> 기사 제목처럼 ‘작가주의 영화엔 초라한 해’로 남을 것이다.
평론가들이 매긴 순위를 일별해보면 문제점을 헤아려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카이에 뒤 시네마>는 진정 성공한 작품을 <디파티드> 하나만 뽑았고, 나머지는 인상적으로 많은 편수의 상업적인 실패를 맛본 작품들이었다. 그중 상위 세 작품은 알랭 레네 감독의 <마음>,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의 <더 선>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다. 이 분류는 일상의 진실을 반영한다. 즉 신문의 1면을 장식한 작품들이 거의 예외없이 박스오피스를 차지했다.
1995년과 2006년 사이 유통되는 프린트 수가 105%나 증가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상영관의 총 수 거기에 따라가지 못했고, 한 작품의 상영 기간은 점점 더 짧아졌다. 비평, 입소문, 영화제 수상 같은 프랑스영화 애호가들의 특이한 구조를 이루는 이 모든 것은 이젠 더이상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 결과 작가주의 영화의 주역인 아르테 시네마의 올해 수입은 200만유로에서 50만유로로 떨어졌다.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는 독립 배급업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프랑스영화는 2006년 6천만명에 가까운 외국 관객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분류는 <밴디다스>나 <트랜스포터 엑스트림>과 같은 비불어권 작품을 필두로 한 그 지역의 인기작보다 많이 화려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영화의 경제적 성공은 국제적 인정과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인다. 마찬가지로 <포지티브>가 1월호 편집자 논설에서 지적한 대로 유럽영화협회는 지난 19년 동안- 2001년 <아멜리에>와 2005년 오스트리아 출신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히든>- 단 두편의 프랑스 작품에만 상을 수여했다. 이탈리아는 네번, 영국은 세번 수상했는데, 이들 나라는 프랑스보다 영화 상황이 더 좋지 않은 나라들이다. 프랑스 언론은 유럽의 상들을 무시하고, 그 결과 사람들은 이런 수상작들이 터무니없는 작품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정말로 어떻게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타인의 삶>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나 <귀향> 같은 작품을 제치고 올해 수상을 한 것인가?”라든가. 지난 10년 동안 2001년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한 파트리스 셰로 감독의 <정사>가 칸, 베니스, 베를린 같은 중요한 세개의 국제영화제 중 하나에서 유일하게 최고의 상을 거머쥐기는 했었다. 한해 200편 이상을 제작하는 나라이기에 그 이유에 대한 질문을 던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2006년은 영화가 정말 포도주와 같다는 것, 즉, 양은 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준 해일 것이다. 다시 말해, 슈퍼마켓의 싸구려 포도주 때문에 숙취에 시달릴 때 영화애호가들도 메스꺼운 속을 보듬고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