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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함께, 인디영화와 함께, CJ인디컬렉션
정재혁 2006-09-20

9월21일부터 한달간 CJ인디컬렉션 ‘인디, 세상을 만나다!’ 열려

CJ인디영화관을 통해 인디영화를 꾸준히 소개해오고 있는 CJ CGV가 CJ인디콜렉션 ‘인디, 세상을 만나다!’를 연다. 한국, 일본, 이란,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인디영화 16편을 소개하는 이번 행사는 “관람 시기를 놓쳐 개봉기간 동안 영화를 보지 못했던 관객들을 위해” 마련됐다. 국내에서 개봉한 작품 12편과 아직 공개되지 않은 영화 4편(<몽골리안 핑퐁> <쓰레기 시인> <라이즈> <택시 운전사의 사랑>)으로 구성된 상영작은 ‘나는 성장한다’, ‘내 삶의 기적’, ‘희망 그리고 소통’ 등 크게 세개의 부문으로 나뉜다.

<피터팬의 공식>

‘나는 성장한다’는 주로 개인 내면의 문제를 고민하고 주변 환경과의 갈등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섹션. 올 여름 개봉했던 조창호 감독의 <피터팬의 공식>과 2005년 개봉작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거북이도 난다>,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 아직 공개돼지 않은 영화 <몽골리언 핑퐁>과 <쓰레기 시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온주완의 첫 주연 데뷔작이기도 한 영화 <피터팬의 공식>은 올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 베를린국제영화제 인터내셔널 포럼부문 초청 등 해외 영화제를 돌며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세상의 무게를 지고 위태롭게 살아가는 고교생 한수의 이야기가 몽환적인 화법으로 그려진다. <거북이도 난다>는 이란의 아슬아슬한 현실이 가슴 아픈 영화. 위험을 무릎쓰고 지뢰를 찾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시울을 적신다. 김지수가 출연한 <여자, 정혜>는 일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다.

‘내 삶의 기적’ 섹션은 판타지 요소를 차용해 몽환적이거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영화들의 모음이다. 원색의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인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의 <시티즌 독>, 시모츠마 시골 마을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로코코 소녀’ 모모코의 이야기 <불량공주 모모코>, 푸켓에서의 ‘보이지 않는 일들’이 신비롭게 흘러가는 아사노 다다노부, 강혜정 주연의 <보이지 않는 물결>, 드랙퀸의 삶을 활기차고도 애절하게 그려낸 제임스 첸 감독의 <드래퀸 가무단>, 신기한 세탁기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판타지극 <나의 아름다운 세탁기> 등이 리스트에 올라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들도 있다. ‘희망 그리고 소통’의 상영작들은 말 그대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희망과 감동을 안겨주는 영화들. 외로움에 대한 보물같은 스케치, 에릭 쿠 감독의 <내곁에 있어줘>는 잔잔하지만 강한 울림을 안겨주며, 모든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노총각 택시운전사의 사랑이야기 <택시 운전사의 사랑>은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인권영화 두번째 프로젝트 <다섯개의 시선>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하고 박경희, 류승완, 정지우 감독 등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일상에 잠재된 편견과 차별을 다섯가지 시선으로 고발하고 있다. 이윤기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 <러브 토크>와 남선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모두들, 괜찮아요?>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 밖에도 CJ인디콜렉션은 특별상영작으로 미국 변방의 댄서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라이즈>를 준비했다. 춤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는 모습이 ‘희망 그리고 소통’ 섹션과 잘 어울린다.

CJ인디컬렉션 상영작 소개

쓰레기 시인 Poet of the Wastes 모하마드 아마디 | 이란 | 2005년| 81분

이란에선 청소부가 되기 위해 3가지 과목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과학, 종교, 정치. 실업자가 300만명이 넘는 이곳에선 청소부 되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25살의 한 청년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테헤란의 청소부로 취직한다. 매일 밤 9시가 되면 집 앞에 놓인 쓰레기를 수거하고, 거리를 빗질한다. 하지만 그의 꿈은 시인이다. 쓰레기를 처리하면서도 종잇조각에 쓰여진 문구를 쉽게 지나치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들의 암살로 약혼자를 잃은 여인의 사연과 한 시인의 메모는 그렇게 발견된다. 영화는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부가 한 여인과 시인의 삶을 엿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낸다. 이는 이란의 암울한 현실과 소통해보려는 작은 몸짓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루지 못한 꿈을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성취해보려는 청소부의 기다림, 망설임, 용기를 보여주며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 아래에서 영화를 배운 모하마드 아마디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몽골리언 핑퐁 Mongolian Ping Pong 닝하오 | 중국 | 2005년 | 102분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넓게 펼쳐진 몽골의 초원. 7살 소년 빌리케는 우연히 하얗고 작은 공 하나를 발견한다. 이는 다름 아닌 탁구공. 몽골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알 리는 만무하다. 손으로 만져보고, 혀로 맛을 보다 결국 빛나는 진주라고 믿어버린다. 어른들에게 물어보아도 별다른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우연히 본 마을 천막 극장의 화면에는 또 다른 하얀 공(골프공)이 지나간다. 아이들은 혼란에 빠진다. 이게 스포츠와 관련된 것일까. 영화는 문명의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한 몽골의 삶을 통해 순수함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에서 ‘국가적 공’이란 말을 듣고 ‘국가를 위해 일한다’고 믿는 경찰관에게 탁구공을 주려는 에피소드는 웃음을 자아낸다. 문명의 아이러니가 동심과 맞물려 묘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MTV 아시아에서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던 닝하오 감독은 광활한 몽골의 풍경을 유려하게 잡아낸다. 그래서 천안문 현수막을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이 더욱 씁쓸하다. 2005년 도쿄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된 바 있다.

택시 운전사의 사랑 Midnight My Love 콩데이 자투라나사미 | 타이 | 2005년 | 105분

끊임없이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직업이 있다. 택시 운전사. 하루에 수십명의 사람과 마주치지만,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못한다. 방콕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바티는 항상 혼자라고 느끼는 외로운 중년 남자다. 잠도 혼자 자고, 밥도 혼자 먹는다. 그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라디오 프로그램 <추억의 애창곡>을 듣는 것. 엽서로 사연까지 보내며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누안이란 창녀를 손님으로 태운다. 왠지 모르게 얼굴에 쓸쓸함이 비친다. 동질감에서 시작된 관심이 점점 애정으로 발전하고, 무력하게 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던 두 남녀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려 애쓴다. 한국영화 <편지>의 타이판 리메이크작 <더 레터>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콩데이 자투라나사미 감독은 택시 운전사와 창녀의 사랑을 복잡한 도시 방콕의 뒷골목처럼 그려낸다. 외롭고 황량하지만, 깊은 감동이 찾아오는 엔딩. <택시 운전사의 사랑>은 현대인의 씁쓸한 일상에서 찾아낸 굴곡이 깊은 사랑 이야기다.

라이즈 Rize 데이비드 라샤펠 | 미국 | 2005년 | 84분

이번 상영작 중 유일한 비아시아영화. LA지역에서 발생한 크럼핑이란 댄스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다. 70년대 힙합문화가 뉴욕에서 발생했던 것처럼 크럼핑은 1992년 로드니 킹 폭동사건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생겨났다. 크럼핑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얼굴에 아프리칸 전통 분장을 연상시키는 페인트칠을 한다는 것. 격렬한 손동작과 발놀림이 비보잉과는 또 다른 쾌감을 준다. 영화는 크럼핑이란 춤을 중심으로 커뮤니티에 대한 고찰, 댄서들의 삶에 귀를 기울인다. 특히 폭동사건으로 총살을 당한 댄서를 추모하기 위해 한 흑인 가수가 거리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모습은 이들의 문화가 거리에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삶의 고난과 역경을 춤과 음악으로 풀어나가는 모습이 리듬감 넘치고, 이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잡아낸 사진작가 출신 데이비드 라샤펠 감독의 연출이 역동적이다. 크럼핑의 창시자이자 이 영화에도 출연한 릴C는 국내 댄스가수 세븐의 <난 알아요>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