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란> <블루>의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진 김해곤 감독의 데뷔작. 어머니의 갈빗집에서 허드렛일을 거드는 영운(김승우)은 술집 여자 연아(장진영)와 4년째 연애하고 있다. 그들은 만나기만 하면 치고받거나 악을 쓰며 싸우지만, 다시 만나지 않을 것처럼 돌아선 다음날에도, 다시 만나지 않고는 못 견딘다. 그러나 영운에겐 연아보다 먼저 만난 참한 약혼녀 수경이 있다. 연아와 영운의 관계를 눈치챈 영운 어머니(선우용녀)가 억지로 결혼 날짜를 잡아 혼인신고까지 마친 다음, 영운은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해 연아에게 연락을 끊어버린다. 연아는 영운을 곱게 보내주려 했다고 울면서도 질긴 마음을 끊지 못한다. 가볍고 경쾌한 연애영화처럼 느껴지는 제목과는 다르게, 초라하고 미래도 없는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연인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영화다.
김해곤
김해곤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이면서 <라이방> <남자의 향기> <달콤한 인생> 등에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다. <달콤한 인생>에서 수현(이병헌)에게 총기 조립법을 가르치던 무기밀매상이 바로 김해곤이다. 이 영화의 주연이자 17년지기인 김승우와는 두 사람 모두 무명이던 <장군의 아들> 시절 만나 인연을 맺었다. 그의 연기와 시나리오에서는 모두 남성적이고 질펀하며 육체성이 묻어난다. 연애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도 어느 정도 그렇다. 1998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된 <보고 싶은 얼굴>이 이 영화의 모태. 김해곤 감독은 판권이 팔렸던 이 시나리오의 저작권을 영진공 유권해석을 통해 다시 가져오는 우여곡절을 거치며 데뷔작으로 만들었다.
영운의 친구들
영운과 연아가 만나는 자리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있다. 날마다 밤새도록 술 마시고 노는 것이 꿈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사는 이들은, 준용의 비디오가게를 중심으로 자그마하고 나태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얄미운 말을 곧잘 하지만 마음 씀씀이는 착한 준용은 <누구나 비밀은 있다> <맨발의 기봉이> 등 부쩍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탁재훈이 연기했다. 얻어맞으며 살던 아내가 집을 나간 다음 밤새워 술 마시는 자리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학이는 <음란서생>의 오달수. 마이크를 헤드폰처럼 귀에 대고 랩을 하는 노래방장면이 압권이다. 이 밖에 여자한테 붙어사는 백수 남성진(<전원일기>)과 패거리 중에선 비교적 점잖은 임승대(<박수칠 때 떠나라> <공공의 적2>) 등이 관객의 눈에 낯익을 영운의 친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