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하지만 정교하게, 웃음을 터뜨리다
독특한 감성의 가족영화, <아버지 어금니 꽉 깨무세요> 최원석/ 16mm/ 22분30초/ 2006년
예로부터 가족은 애증의 대상이다. 그러나 장편이든 단편이든, 영화 속에서 가족의 갈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일전을 앞둔 상대에게 맞을 각오를 하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을, 태연스럽게 아버지에게 던지고 있는 이 영화는 좀 다르다. 동네 사람 모두가 피하는 돌아온 탕아, 무배는 이제 막 감옥에서 출소했다. 그를 고발하고 보험금을 타낸 그의 가족에게 무배의 귀환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런데 이 가족, 좀 이상하다. 아들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 치매를 가장한 아버지도 대단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향한 일말의 애틋함도 없이 생삼겹살을 먹이거나, 교통사고 사기에 이용하려는 아들의 행태도 가관이다. 인정사정 보지 않는 이들의 대결은 연신 낯설고 날선 웃음을 선사하는데, 실제로는 어떻든지 간에 어쨌거나 화해의 대상이어야 하는 이 부자의 티격태격은 왠지 밉거나 눈살 찌푸려지지 않는다. 클라이맥스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의 식상함이 다소 걸리긴 하지만, 그 순간까지도 퀴어 분위기를 연출하는 부자의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화해의 순간까지 유머를 놓지 않는 긴장감이,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독특한 감성의 가족영화를 완성한 셈이다.
마초에게 날리는 시원한 핵주먹!, <그녀의 핵주먹> 선지연/ 35mm/ 20분/ 2006년
술버릇 고약한 사람만큼 처치 곤란한 경우가 없다. 술만 취하면 개가 돼서 전화통화며 문자로 욕을 퍼붓지만, 깨고 나면 빌고 자학하고 각서까지 쓰며 난리도 아닌 남자친구. 그러나 그녀의 나이는 이제 서른, 더이상은 결정을 미룰 수가 없다. 헤어지자는 여자친구에게 “남들이 사창가에서 돈 쓸 때 난 너에게 꽃을 사줬다”며 큰소리치는 마초를 응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가공할 핵주먹. 그리고 영화는 농담이 아니고, 진짜 무서운 주먹을 날려버린다. 킥킥거리는 웃음을 유발하는 생뚱맞은 뮤지컬신이며, 인물의 상상을 천연덕스럽게 화면에 전시하는 방식, 무엇보다도 과장된 영화의 톤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 등은 로맨틱코미디에 가깝다. 그러나 <그녀의 핵주먹>은 로맨틱하고 코믹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로맨스로 여겨지는 모든 것을 향해 연신 신랄한 코웃음으로 응수하는 통쾌한 풍자극이다. 여자친구가 전화를 안 받는다고 40번씩 통화를 시도하고, 술기운을 빌려 진심을 전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믿는 세상의 모든 남자들과, 꽉 찬 혼기 때문에 주눅들고 판단력이 흐려지는 모든 여자들에겐, 뻔뻔하고 용감한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
일상의 순간에 담긴 의뭉스런 유머, <베이베를 원하세요?> 이상근/ 35mm/ 10분23초/ 2006년
두손에 짐을 들고 전철역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자판기 커피가 먹고 싶어지고, 커피가 나오는 순간 전철이 들어온다. 커피 원샷. 전철 안에 빈자리를 보고 걸음을 뗐는데 동작 빠른 누군가에게 선수를 뺏긴다. 원래 앉으려던 게 아니었다는 듯 쓱 지나치기. 음악을 들어보겠다고 이어폰을 꺼냈는데 배배 꼬인 이어폰 줄은 풀릴 줄 모르고, 보란 듯이 줄을 풀어도 이번엔 MP3 플레이어에 배터리가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마음속 음악의 리듬을 타고 나만의 ‘베이베~’를 흥얼거리자! 전철 안에서 누구나 겪었음직한 소소한 고민의 순간으로 이어진 이 영화는 시종일관 의뭉스럽다. 속을 짐작할 수 없는 멍한 표정과 마지막의 씩씩한 흥얼거림이 일품인 주인공부터, 전철 한량 안에 몸을 싣고 주인공을 주시하게 되는 저마다 다른 개성의 승객을 공들여 연출한 결과, 피식거리는 웃음을 유발하는 일상적인 순간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영화 중간 일종의 뮤직비디오(?)를 난데없이 연출할 때는 과감함이 돋보이지만, 대부분의 러닝타임 내내 영화는 무리한 잔기교없는 소박한 형식으로 승부한다. 둘 중 하나다. 유머가 발생하는 곳을 정교하게 파고든 집중력의 승리, 혹은 연출자가 지닌 태생적 엉뚱함의 결과.
심사위원의 말/ 류승완 감독
“중요한 건 지치지 않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간 공포판타지나 액션스릴러를 심사했는데 원래 유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이번에는 코미디를 심사하고 싶었다. 디지털이 보편화되면서 코미디 장르에도 미학적인 변화가 생겼다. 촬영은 물론 간단한 CG 등의 후반작업까지 용이해지면서 영화적으로 유머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희극의 본질이 비극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중요시하면서 피사체의 내면까지 파고들어 웃음과 페이소스를 만드는 고전적인 코미디도 깊이를 더했다. 나도 예전에 만든 단편이 영화제에서 상영되지 못하면 상처를 많이 받긴 했지만, 감독들이 그런 것에 너무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중요한 건 지치지 않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지, 영화제 본선 진출과 수상이 영화 인생에서 엄청난 뭔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충무로 데뷔를 위한 포트폴리오처럼 만든 단편들은 예심에서 탈락시키기도 했다. 영화와 감독, 관객이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영화제이고, 그럴 때 더욱 큰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닌가 싶다.
공포·판타지 장르 단편영화 본선 진출작발상의 전환! 팔딱거리는 상상력을 만난다
비루한 현실과 비현실적 내레이션의 충돌, <마녀성의 함락> 전재란/ 16mm/ 18분/ 2005년
“기나긴 전투 끝에 마침내 마녀성은 함락됐고, 우리들의 왕국은 마침내 평화를 되찾았다.”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영락없이 컴퓨터 게임의 그것이다. 서로 사랑한 왕과 왕비는 아들을 낳지만, 왕을 쫓아내고 등극한 반왕의 폭정으로 자애로운 왕비는 마녀로 돌변하고, 수세에 몰리던 왕의 적자는 끝내 반왕을 물리친다. 그리스의 비극이나 웅대한 서사시를 모방한 내러티브라고? 그러나 이 고색창연한 이야기에 맞물리는 것은 심각한 가정폭력 끝에 어린 아들이 양부를 살해하게 되는 과정으로, 구질구질하고도 익숙한 탓에 신문 사회면 1단 기사에나 어울릴 법한 상황이다. 매끈한 화질과 현란한 스타일로 승부하는 근래 단편영화의 어떤 경향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이 영화는 16mm필름으로 만들어졌다. 다소 서툰 기교를 보완하는 것은 뒤통수를 가격하는 듯한 발상의 전환이다. 별다른 대사없이 무성영화처럼 진행되는 영화 속 비루하고 끔찍한 날것 그대로의 현실은 장황하고 비현실적인 내레이션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끝내 찜찜한 의문 하나. ‘반왕의 성’이 아니라 ‘마녀성의 함락’이라는 제목은, 단지 무의미한 수사로 넘겨도 좋은 것일까.
지옥과 맞닥뜨린 우리의 모습, <지옥(두개의 삶)> 연상호/ beta/ 35분/ 2006년
당신이 어느 날, 얼마 뒤 천국 혹은 지옥에 가게 된다는 천사의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2부작 애니메이션 <지옥>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두 남녀가 각각 지옥과 천국의 예언을 맞닥뜨린 뒤 취하게 되는 행동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살면서 느꼈던 고통의 10배에 달하는 고통을 영원히 느껴야 하는 지옥이 두려워 평생 저승사자를 피해다니는 것을 선택한 남자와, 아무리 천국이라도 살아 있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에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다 되레 지옥을 언도받는 여자. 둘의 결론은 동일하다. 올해 공포판타지 부문에서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으로 독립제작 형태가 믿겨지지 않는 완성도를 지녔다. 과장되지 않은 단순함과 현실적이면서도 기괴한 정서를 담은 화풍과 스타일 모두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지닌 최고의 장점은 결국, 평범한 철학적 결론을 드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관객층 모두에게 전달하는 탄탄한 내러티브다. 자신이 피했다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애써 안도하거나, 겪지 않아도 좋을 지옥으로 스스로를 몰고 가는 두 남녀의 모습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향한 두려움으로 일을 그르치는 우리와 너무나 흡사해 소름이 끼친다.
독특한 리듬으로 포착한 일상, <Cloudy Rainy> 권아름/ DV6mm/ 5분23초/ 2006년
공포보다는 판타지가 강세인 것이 올해 ‘절대악몽’ 부문의 특징. 그 때문인지 새로운 형식과 화법으로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작품이 유난히 많다. 모호하고 꿀꿀한 제목과 달리 <Cloudy Rainy>는 한여름의 아이스크림 같은 청량감을 선사하는 깔끔한 소품이다. 푸른 하늘과 휘날리는 빨래만이 있을 뿐인 옥상 위에서 두 소녀가 노닥거린다. 쨍한 햇볕 속에 점점 뽀송뽀송해지는 빨래처럼 자신을 말리던 한 소녀가 바람에 날려가고, 남은 소녀가 중얼거린다. “너무 말렸나?” 비오는 날이면 부침개를 먹어야 한다는 농담 같은 진심을 미니멀한 스타일과 짐짓 심각한 내레이션으로 표현한 <비오는 날의 부침개> 등의 단편과 맥을 같이하는 영화. 내러티브의 강박에서 벗어나, 영화적 공감각에 집중한 때문인지 거짓말처럼 선연한 색감과 툭툭 끊기며 연결되는 리듬이 경쾌하다. 스틸 카메라로 촬영한 결과물을 디지털로 전환하여 컴퓨터 편집을 비롯한 후반작업을 통해 정교한 무빙을 만들어낸 작품으로 독특한 제작방식은 고유의 운동감으로 연결된다. 이는 자신이 표현하려는 것을 위한 최상의 방법을 고민한 결과. 일상 속에 존재하는, 소박하지만 엉뚱한 상상력을 확인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심사위원의 말/ 장준환 감독
“내가 자극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올해로 네 번째 심사인데 멜로나 액션스릴러 장르도 심사한 적이 있다. 공포판타지 심사는 두 번째다. 올해는 유난히 괜찮은 애니메이션이 많아서 16편의 상영작 중 애니메이션이 4편이나 된다. 해마다 특별한 기조가 드러나기보다는 늘 다양한 화법의 영화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심사기준은… 심사위원 취향과 입맛이 아무래도 반영될 텐데(웃음), 일단 재밌어야 한다. 심사하면서 있었던 일? 예전에, 완성도는 감상이 힘들 정도로 떨어지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독특하고, 동화 같은 내러티브도 인상적인 작품을 좋다고 칭찬했는데, 다른 심사위원들은 다들 시큰둥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장편에도 적용되는 것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단편영화는 더욱 자유롭고 신선한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된다. 앞으로 미쟝센을 통해 내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액션스릴러 장르 단편영화 본선 진출작일상을 향해 주먹을 날리다
2분에 담긴 극한의 갈등, <2분> 정태경/ DV6mm/ 11분/ 2005년
누군가의 깊은 숨소리와 몽환적인 음악이 먼저 들려오는 영화는, 화면 가득 메운 남자의 얼굴에서 시작하여 그를 둘러싼 공간과 상황으로 점차 화각을 넓혀나간다. 오전 5시 남짓한 시각을 알리는 시계, 아내와 아들이 한껏 웃고 있는 사진, 주섬주섬 고쳐쓰는 가발 등의 소품을 통해 관객은 점차 남자를 알게 된다. 11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서 깊게 확장되는 2분은, 알 수 없는 표정의 남자와 그가 탄 차의 롱숏으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시간이다. 담배 한대를 피우기에도 벅찬 그 시간 속에서, 음주 운전 끝에 누군가의 아버지를 친 이 남자는 뺑소니를 결심한다. 일체의 대사는 물론이고 극적인 표정이나 사운드 하나없이 일련의 모든 정보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극한의 감정까지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길고 구구절절한 사연 속 가장 의미심장한 순간만을 날렵하게 도려낸 듯한 <2분>은 그 어려운 미션을 아무렇지도 않게 성공시켰다. 저 멀리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희붐하게 새날이 밝아온다. 2분 내내 망설이던 남자의 짐짓 결연한 결심이 아련하다. 언제든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잔인한 갈등과 서늘한 결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두 남녀의 악몽 같은 하룻밤, <일박 이일> 이은천/ 16mm/ 26분30초/ 2005년
친척의 별장으로 놀러간 젊은 커플이 경험하는 악몽 같은 1박2일을 그린, 전형적인 스릴러물. 사진을 찍기 위해 차를 아무렇게나 세워둔 탓에 시작된 동네 인부와의 승강이는 꼬리를 무는 악연으로 인해 악화일로를 겪게 된다. 일련의 과대망상과 피해의식, 상상과 실제, 두 남녀는 신경전과 몸싸움을 벌인다. 영화의 마지막, 두 남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를 타고 익숙한 일상으로 향한다. 이들이 겪은 하룻밤은 꿈인지, 실제인지 분명치 않다.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남자와 애완견을 끔찍이 여기며 혀짧은 소리를 내는 여자, 험악한 욕설로 기선을 제압하며 위협적 행동을 일삼는 토박이 등 갈등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영화 속 캐릭터들은 이 영화가 지닌 양날의 검이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 복잡한 갈등을 묘사할 수 없다면, 소통과 이해가 불가능한 인물을 내세워 극단으로 몰고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도시와 변두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익숙한 대립항이 어떤 식으로든 변주되지 않는다면 이는 동어반복에 그칠 우려가 있다. 한정된 조건 속에서 등장인물 각각이 지닌 긴박한 심리와 분노를 효과적으로 설명하면서 장르의 화법을 능란하게 구사한 <일박 이일>은 그러므로, 절반의 성취를 거둔 셈이다.
평범하지만 유쾌한 성룡식 영웅, <럼블 인더 브롱스> 김관후/ DV6mm/ 20분22초/ 2005년
성룡의 <홍번구>(Rumble in the Bronx)를 즐겨보던 아이는 자라서 경찰대 신입생이 된다. 터무니없이 비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하는 거리의 결투신이 잇따라 경찰대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던 주인공의 악몽임이 밝혀지는 순간, <럼블 인 더 브롱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영화가 닮고자 하는 것은, 실수를 일삼는 평범한 액션 영웅의 대명사 성룡. 사소한 불의도 넘기지 못하는 주인공은 한밤의 귀갓길에서 아리랑치기를 일삼는 고등학생을 파출소에 넘긴다. 그러나 모범생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지닌 얄미운 고교생 때문에 우리의 주인공은 되레 “아무리 경찰이어도 무고한 시민을 의심해선 안 된다”는 충고를 듣고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음날 그는 똑같은 골목에서 바로 그 고교생들과 마주친다. 별수없이 두들겨맞고 버려지지만, 낑낑거리며 일어선 뒤 아무렇지도 않게 제 갈 길을 가는 주인공의 뒷모습은 그저 정겹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NG컷을 보여주는 것까지, 성룡 영화의 형식과 정서를 따라한 이관후(김관후??) 감독은 주연을 겸했다. 그에게선 대작을 만들겠다거나 멋지게 보이겠다는 일말의 사심도 없어 보인다.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찍고, 이를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완성한 이 영화는 한없이 유쾌하다.
심사위원의 말/ 김성수 감독
“전형성에 기대면서도 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편으로 액션영화를 만들면 뭔가 덜떨어졌다는(웃음) 인식이 있었는데, 미쟝센이 5회째 접어드는 동안, 이제는 자신이 그런 영화를 찍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아진 것 같아서 보람을 느낀다. 액션영화는 액션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필요하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미쟝센에 출품된 액션영화들이 그런 전형성을 파괴하고 있다. 적과 내가 대립하고 결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딜레마에 빠지는 주인공들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복수나 수사 같은 전형적인 액션영화의 상황도 별로 없다. 아무래도 다른 장르에 비해 러닝타임이 긴 영화들이 많은데, 장편의 호흡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단편에 구겨넣은 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도 있다. 단편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서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가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다. 특히나 장르의 속성이 강한 액션스릴러는, 전형성에 기대면서도 자꾸 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