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손에 짐을 들고 전철역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자판기 커피가 먹고 싶어지고, 커피가 나오는 순간 전철이 들어온다. 커피 원샷. 전철 안에 빈자리를 보고 걸음을 뗐는데 동작 빠른 누군가에게 선수를 뺏긴다. 원래 앉으려던 게 아니었다는 듯 쓱 지나치기. 음악을 들어보겠다고 이어폰을 꺼냈는데 배배 꼬인 이어폰 줄은 풀릴 줄 모르고, 보란 듯이 줄을 풀어도 이번엔 MP3 플레이어에 배터리가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마음속 음악의 리듬을 타고 나만의 ‘베이베~’를 흥얼거리자! 전철 안에서 누구나 겪었음직한 소소한 고민의 순간으로 이어진 이 영화는 시종일관 의뭉스럽다. 속을 짐작할 수 없는 멍한 표정과 마지막의 씩씩한 흥얼거림이 일품인 주인공부터, 전철 한량 안에 몸을 싣고 주인공을 주시하게 되는 저마다 다른 개성의 승객을 공들여 연출한 결과, 피식거리는 웃음을 유발하는 일상적인 순간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영화 중간 일종의 뮤직비디오(?)를 난데없이 연출할 때는 과감함이 돋보이지만, 대부분의 러닝타임 내내 영화는 무리한 잔기교없는 소박한 형식으로 승부한다. 둘 중 하나다. 유머가 발생하는 곳을 정교하게 파고든 집중력의 승리, 혹은 연출자가 지닌 태생적 엉뚱함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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