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칸영화제에서 화려한 신고식을 마치고 7월27일 국내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국내와 해외의 매체를 통해 다채로운 찬사를 끌어낸 <괴물>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괴물’ 그 자체다. 그것은 괴수 캐릭터가 그동안 한국 주류 영화계에서 거의 등장한 적이 없었던 탓이기도 하고, 촘촘하게 영화를 만들기로 정평이 난 봉준호 감독이 만든 괴수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다. <괴물> 속 괴물의 탄생과정을 되돌아보고, 여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다만, 마케팅 방침상 괴물의 스틸 이미지를 공개할 수 없다는 영화사의 입장으로 다소 동떨어진 이미지를 덧붙이게 된 점에 대해서는 안타까울 뿐이다.
<킹콩>과 달리 <괴물>의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분명 괴물에게 물려간 딸 현서(고아성)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박강두(송강호)와 그 가족이다. 그럼에도 ‘조연’에 불과한 이 괴물에 자꾸만 관심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쥬라기 공원>에서 T렉스와 벨로시랩터에게, <죠스>에서 백상어에게 눈길이 갔던 것처럼. 낯설고 무시무시하기에 그 생김새와 몸놀림이 자못 궁금한 괴물의 모습은 5월 칸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영화를 본 사람들에 따르면, 괴물은 한강에서 돌연변이로 태어난 생명체답게 물고기 같기도 하고 “돌연변이 올챙이”(<버라이어티>)처럼 보이며, 성인보다 3∼4배 정도 크고, 긴 꼬리를 가졌으며, 두개의 다리로 날렵하게 움직이고 앞다리는 기형적으로 생겼다. 이 괴물의 가장 큰 특징은 입이다. “연꽃 모양의 입”(<뉴욕타임스>)은 다섯개의 겹을 이루며, 이를 통해 사람을 날렵하게 삼키고, 또 뱉어낸다.
2년6개월, 2천여장의 스케치에서 선택된 괴물
이 괴물은 보는 이에 따라 그냥 무시무시한 괴생명체 정도로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사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입장에서는 가장 골치아픈 존재였다.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괴물의 ‘출연료’는 40억원에 이른다. 괴물을 디자인하는 데에서부터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생생하게 재현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순제작비 110억원 중 36%가 든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송강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진작부터 출연에 동의한 것과 달리, 괴물이 ‘캐스팅’되기까지는 2년6개월가량이 걸렸다. 2003년 12월 괴물을 구상할 때부터 올해 5월 CG가 완성되기까지 그만한 시간이 걸렸다는 얘기다. 또 괴물의 최종안이 만들어지기까지 모두 2천장이 넘는 스케치가 그려졌으니, 이 2000 대 1의 ‘오디션’ 또한 치열했던 셈이다. <괴물>의 괴물은 결국 한국영화 사상 가장 비싸고 까탈스러운 ‘배우’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봉준호 감독이 <괴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2003년 12월이다. 괴물의 디자인이 선결돼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그는 류성희 감독을 통해 소개받은 장희철씨를 ‘크리처 디자이너’로 기용한다. 고등학생 시절 검은 괴물체가 잠실대교 교각을 타고 오르는 모습을 본 뒤 이 영화를 줄곧 꿈꿔왔던 봉준호 감독이지만, 괴물에 대한 구체적인 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미리 생각해둔 이야기 구조에서 비롯되는 괴물의 기능적인 특징은 있었다. 그것은 ‘한강에서 나온 생명체다. 사람을 입으로 삼켰다 뱉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 긴 꼬리를 이용해 사람을 감고, 다리에 매달리고 해야 한다’ 등이었다.
장희철 디자이너는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괴물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오염물질이 한강에 흘러들면서 돌연변이가 일어나 탄생된다는 기본 설정에 입각해 그는 어류와 다른 종류의 동물이 결합되면서 기형이 된 생명체를 상상했다. 그는 다양한 돌연변이 사례를 조사하면서 다양한 모델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물고기와 쥐가 합체한 모습도 있었고, 새우나 곤충 모양도 있었다. 심지어 사람의 사체로 파고들어가 위장하는 ‘인간형’도 있었다.” 그는 아이디어가 정리되면 봉 감독을 보여줬고, 봉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괴물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과 유사한 모습을 갖게 된 것은 2004년 7월이었다. 8개월 동안 7차례의 프레젠테이션을 한 끝에 최종 낙점된 조합은 어류와 양서류의 합체였다. 물론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좀더 디테일한 작업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장희철 디자이너는 스케치와 함께 ‘매켓’(maquette)이라 불리는 3차원 모형을 만들어 카메라 앵글 안에서 어떻게 보여질지를 연구했다. 봉 감독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던 장희철 디자이너는 “늘 <살인의 추억> DVD를 틀어놓고” 작업을 했다. 결국 10여 차례의 프레젠테이션을 더 거치면서 2005년 중순이 돼서야 최종안은 확정됐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은 대체 무슨 원칙으로 괴물의 모습을 잡아나갔던 것일까. 그는 괴물의 모습을 만드는 과정이 배우 캐스팅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사실 내가 원하는 괴물의 외양이 딱 정해져 있던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 역할은 이런 느낌의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신인배우를 오디션하면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사람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흡사하거나 아주 다른 느낌이지만 훨씬 재밌는 경우가 나타난다. 그렇게 계속 폭을 좁혀가면서 최종 결정을 하는 것처럼 괴물의 모양새를 정해갔다.”
모형작업, CG 작업 거쳐 평면의 괴물이 살아 포효하기까지
곧바로 이 디자인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시작됐다. 첫 번째 작업은 CG의 기본형을 만들기 위한 ‘3D 스캔용 매켓’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CG 작업을 위한 기본 소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 3차원 모형을 3D 스캐너로 읽어낸 값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대형 매켓이 필수적이었다. 이 매켓은 부피도 크지만, 비늘이나 피부조직까지 디테일하게 만들어야 했다. <반지의 제왕> <킹콩> 등을 제작한 뉴질랜드 웨타 워크숍으로 날아간 장희철은 “매일 오전 15분, 점심시간 30분, 오후 15분만 쉬어가면서” 한달 반 동안 자신의 손으로 2m 정도의 매켓을 만들었다. “웨타 워크숍의 아트디렉터 벤 우튼이 많은 도움을 줬다. 그는 전공한 동물학 지식을 통해 캐릭터에 사실감을 불어넣어줬다. 예를 들어 괴물이 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발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발톱이 커야 하는지, 아니면 발에 빨판을 붙여야 하는지. 그의 조언으로 앞다리 근육을 강화하고 발을 무난하게 만드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CG 등 영상효과 전반을 담당한 비주얼 슈퍼바이저 케빈 래퍼티는 촬영 기간 동안 한국을 찾아 다양한 작업을 했다. 촬영 카메라에 담기는 영상 외에 구름의 분포나 물결의 모양새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된 ‘크롬볼’ 촬영도 그중 하나였다.
이제 공은 뉴질랜드에서 미국으로 패스됐다. 이 대형 매켓은 LA의 젠틀 자이언트라는 업체에서 스캔을 통해 고해상도의 3D값으로 변환됐다. 이 값은 CG 업체인 오퍼니지로 넘어갔다. 본격적인 CG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ILM 출신 CG 아티스트들이 독립해 만든 오퍼니지는 그동안 <헬보이> <투모로우> <월드 오브 투모로우> <씬 시티> <슈퍼맨 리턴즈> 등의 작업을 했던 세계적인 업체. 또 <괴물>의 비주얼 슈퍼바이저를 맡은 케빈 래퍼티는 <샤크> <맨 인 블랙2> <미이라2> 등에 참여했던 24년 경력의 전문가였다. 오퍼니지는 모델링(3D값을 작업 가능한 사이즈와 포맷으로 변환하는 작업), 리깅(rigging: 괴물의 뼈대를 만드는 일), 텍스처 매핑(괴물의 피부를 실감나게 구현하는 작업) 등을 거치며 점점 헤엄치고 달리고 포효하는 괴물의 동작을 갖게 됐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일을 파악하고 요구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봉 감독은 오퍼니지와 화상회의로 대화를 해나갔다. 시차 때문에 동시에 회의를 진행할 수 없어 봉 감독은 디지털 캠코더를 틀어놓은 상태에서 대형 화면에 CG 영상을 띄운 뒤 일일이 짚어가며 주문사항을 얘기했고, 이 동영상은 파일 형태로 미국으로 전송됐다. 비주얼 슈퍼바이저 케빈 래퍼티는 “괴물의 움직임, 즉 걷고 뛰고 헤엄치며 꼬리를 놀리는 동작 등은 우리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 다섯겹의 입과 그 입 안쪽의 피부를 실감나게 표현하는 것 또한 어려웠다”고 설명한다.
봉준호 감독은 미국의 오퍼니지와 CG에 관한 협의를 위해 동영상을 이용했다. 그는 오퍼니지에서 보내온 CG작업 영상을 대형 스크린에 틀어놓고 그 앞에서 이런저런 주문사항을 말했다. 이 내용은 파일로 만들어져 미국으로 전송됐다. 제작진은 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일기예보’라고 부르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 인터뷰
"괴물의 리얼리티와 다이내믹한 면을 가장 고려했다"
-애초에는 괴물을 어떤 모습으로 생각했나. =아주 구체적인 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에 내가 스케치를 하기도 했는데, 주머니처럼 말려서 굴러가는 괴물도 있었고, 꼬리에 있는 뼈로 공격하는 괴물도 있었다.
-장희철 디자이너는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 =초반 작업을 해보니 굉장히 현실감있는 리얼리티를 갖고 있었다. 사실 처음 만날 때 포트폴리오를 가져왔는데 물방개가 변이된 괴물을 디자인해왔다.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압권은 본인의 나체 사진이었다. 그러니까 그 괴물이 사람의 옷을 벗겨서 잡아먹는 과정을 동작별로 묘사했는데, 셀프카메라로 찍은 자신의 모습을 합성했더라.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라는 생각을 했다. 하여간 그와의 작업은 너무 만족스럽다. 차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설국열차>도 함께 작업할 계획이다.
-괴물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끼게 하고 싶었나. =그렇다. 영화에 채택이 안 돼서 그렇지, 중·후반에는 훨씬 못생기고 약간 웃긴 디자인이 있었다. 미국 배우 스티브 부세미와 무척 닮은 모습이었다. 너무 코믹해질 우려가 있어서 포기했는데, 카리스마도 눈곱만치도 없으면서 더 무지렁이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 비굴하고 하이에나 같은 존재였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괴물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다는 것에 약간 놀라더라. =사람들은 63빌딩을 부수고 하는 고질라를 생각하더라. 괴물이 클수록 어린이영화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잖냐. (웃음) 그러니까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이내믹한 행동력도 떨어지니까 작게 만들고 싶었다. 또 너무 크면 어디에 숨을 수도 없잖나. 최대한 감춰야 괴물이 나오는 장면을 줄일 수 있다. 한숏에 3천만원이나 하는데 말이다. (웃음) 사실, 2004년 PPP 때도 괴물의 크기를 보여주기 위해 사람을 꼬리에 매단 모습을 그림으로 만들었는데도 잘 모르더라. 아직도 누군가를 만나면 ‘국회의사당을 부수나?’ 하고 물어본다. (웃음)
-애초에는 CG도 웨타디지털에서 하기로 했었는데. =2005년 1월 뉴질랜드에서 협상을 할 때만 해도 300만달러 선에서 합의를 봤다. 그런데 나중에 700만달러가 넘는 견적서가 날아왔다. 결국 조정이 안 돼서 방향을 틀었다. 만일을 대비해 오퍼니지쪽과도 미리 얘기를 하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다음주쯤에야 촬영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웃음)
-괴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설정하고 찍는 상황에 대해서 배우들이 어색해하지는 않았나. =실사영화를 찍을 때도 배우들은 그런 상황에 많이 처한다. 상대배우가 카메라 옆에 서서 연기를 받아주기도 하지만, 안 받아주는 경우도 많다. 몇번 하다보니 익숙해지더라. 다만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긴 했지만. 사실 김형구 촬영감독님이 힘든 일이 더 많았다. 카메라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미리 예정된 대로 패닝을 해야 했다.
-국내 상영 버전은 칸에서 보여진 것과 다른가. =사운드를 손봐야 하고, 음악도 바꿔야 한다. 그리고 부분적인 CG작업도 하고 있다. 편집이 바뀌는 것은 전혀 없다.
-완성된 괴물은 마음에 드나. =괴물은 만족스럽다. 영화 자체에 관해서라면 모든 감독이 다 그렇겠지만, 시간과 돈만 있다면 시나리오부터 다 바꾸고 싶다. 영상자료원에서 김수용 감독님의 회고전을 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김수용 감독님께서 갑자기 영상원 직원에게 ‘야 그 프린트 좀 가져와봐’ 하시더니 ‘그 신은 필요없겠다. 잘라야겠다’라고 하면서 진짜 필름에 손을 대려 하시더라. 그게 65년작인가 그랬는데 말이다. 감독들은 다 똑같은가보다.
-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니 이제 한시름 놓은 것 아닌가. =영화 끝나고서 사람들이 좋아할 때만 해도 의례적인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도 했지만 리뷰가 좋아서 안심은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너무 칸 소식이 부풀려진 것 같아서 부담스럽기도 하다. 기대치도 높아져서 관객이 딱 팔장을 끼고 보면서 ‘뭐 별것도 없구만’ 할까봐 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