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이 돌아왔다. <단적비연수> 이후 6년 만에 영화계로 컴백한 것이다. 그런데 그 선택이 뜻밖이다. 그가 출연을 결정한 영화 <실종>은 네 아이의 갑작스런 실종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는 서스펜스스릴러다. 게다가 최진실이 맡을 혜정이라는 캐릭터는 ‘<헨젤과 그레텔>에서 과자의 집에 살고 있는 마녀를 연상시키는’ 사이코다. 혜정은 외딴섬에서 펜션을 운영하면서 자기만의 세계 속에 빠져 사는 여성으로, 갑자기 펜션으로 찾아온 네 아이를 감금하고 괴롭히는 인물이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미스터 맘마> <마누라 죽이기>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고스트 맘마> <편지> 등의 영화를 통해 만인의 연인 또는 만인의 아내 역할을 했던 최진실로서는 의외의 방향전환인 셈이다. 그러고보면 최진실의 ‘변신’은 지난해부터 예고된 바였다. TV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 최진실은 남편의 외도와 이혼 요구 속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꾸려나가며 불치병과 싸워나가는 맹순이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최진실 최고의 연기’라고 부를 호연(好演)의 이면에는 이혼 파동, MBC와의 전속계약 문제 등 최악의 상황이 있었다. 그는 이것을 혼신의 연기로 정면돌파했고, 보기 좋게 성공했다. <실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것 또한 <장밋빛 인생> 이후 완벽히 달라진 최진실의 연기, 아니 삶에 대한 그의 태도 때문인지 모른다. 스스로도 “모든 게 달라졌다”고 말하는 최진실의 변신 이야기를 들어본다.
-스릴러영화는 처음인 것 같다. =그렇다. 스릴러를 굉장히 좋아하고 가장 많이 본다. 언젠가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장밋빛 인생> 전에는 최진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인지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았고,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실종> 출연 제의가 들어와서 너무 반가웠다. 정말 이제는 연기를 해보고 싶은데, 이 작품과 이 역할을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실종>의 혜정은 사이코 캐릭터라고 하던데. =나를 아는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하더라. ‘드디어… 편하시겠어요’라고. (웃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사이코적인 면은 내재돼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연기자들은 그런 면이 일반인보다 더 많은 것 같다. 많이 억누르면서 사는 것뿐이지. 그래도 나중에 인터뷰에서는 그렇게 말하려고 한다. 사이코 연기하느라 정말 힘들었다고. (웃음)
-그래도 사이코를 연기한다는 게 부담은 될 것 같다. =내가 믿고 따르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한다. 그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이다. 그래서 전화를 많이 해놓았다. 만나서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볼 것이다. 촬영이 시작되는 6월까지는 혜정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악역에 가까운 역할인가. =나는 혜정이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에 공감할 요소가 당연히 있다. 혜정의 경우는 어떤 병에 걸린 거다. 병 때문에 행하는 일을 악행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영화 후반부를 보면 이 여자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시나리오는 언제 받았나. =3주 전에 받았다. 읽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욕심이 나면 바로 하겠다라고 말하는 편인데, 이번에도 그랬다. 보통 스릴러나 호러영화를 보면 관객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영화적 장치만 두드러지는데, <실종>은 이야기 같은 내용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긴장이 생기고 서스펜스가 발생한다.
-이 역할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해야 할 것이 있나. =특별한 것은 없다. 촬영 전까지 시나리오 전체를 머리와 마음속에 담고 가면 될 것 같다. 하나 있다면, 눈동자 굴리기 연습만 잘하면 될 것 같다. (웃음)
-<단적비연수> 이후 6년 만에 출연하는 영화다. =영화는 정말 하고 싶었다. 마음을 비우고 연기를 하겠지만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TV와는 완전히 다른 매체잖나. 흥행이 되면 물론 좋겠지만, 영화를 하는 모든 분들이 ‘좋은 배우가 또 하나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흥행보다는 지금 영화를 하는 분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게 내 입장이다. 이 작품을 열심히 해서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
-따져보면 TV드라마보다 영화에 먼저 나왔으니 영화계가 고향인 셈인데. =그렇다. <남부군>이 데뷔작이니까. 그래도 영화쪽에서 나를 찾지 않은 것이 섭섭하지는 않다. 결혼한 뒤 큰일을 겪으면서 영화쪽에서 나를 찾는다는 게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여간 영화계로 오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한때는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장밋빛 인생>을 찍을 때 상대역인 (손)현주 오빠가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러 다니는데 참 부럽더라. 그래서 그러기도 했다. ‘오빠 이것 끝나고 영화 들어가시면 저 좀 카메오로 데려가세요’라고. (웃음) 한때는 그렇게라도 영화를 접하고 싶었다.
-다른 인터뷰에서 김기덕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매스컴을 통해서 서너번이나 김기덕 감독에게 프러포즈를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차였나보다. (웃음) 김기덕 감독 작품은 찾아가면서 봤다. <활>도 너무 좋았다. 영화가 독특해서 좋다. 심하게 망가진다 해도 상관없다. <장밋빛 인생>보다 더 망가질 수 있겠나. (웃음)
-김기덕 감독이라면 노출연기를 요구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하고 싶은데 아마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을 거다. 몸이 안 받쳐주니까. (웃음)
-<장밋빛 인생>의 맹순이 역으로 상도 많이 받았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상은 너무 감사하지만, 드라마가 방송될 때 사랑받았던 느낌만큼 기쁘지는 않았다. 맹순이를 밤새우면서 연기할 때가 정말 행복했다. 맹순이에 빠져서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그 시간들이 참 많이 행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장밋빛 인생>이 연기자 최진실의 가장 중요한 작품일 것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장밋빛 인생>을 할 때는 정말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마음으로 임했다. 그런데 그때보다 너무 힘들더라. 그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니까 깨끗한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이 많이 그려진 것을 갈아엎고 다시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까 그랬던 것 같다.
-<장밋빛 인생>은 연기에 임하는 의지도 남달랐던 것 같다. =그 작품을 하면서도 사적인 일 때문에 시끄럽지 않았나. 많은 분들이 이제 연기자 최진실은 끝났다고도 했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KBS나 감독님이나 작가 선생님이나 정말 잘 만난 것 같다. 작가인 문영남 선생님과는 네다섯번 만나면서 많이 울었다. 혼도 많이 났다. 문영남 선생님은 나에게 다짐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너 이 모습 그대로 나오면 안 된다. 정말 망가져야 한다. 소품 하나하나까지 맹순이 같아야 한다”라고. 맹순이는 그분들 덕에 탄생한 것이라고 본다.
-본인의 각오도 있었던 것 아닌가. =정말 죽을 것처럼 했다.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는 눈물이 나더라. 어깨에 힘이 죽 빠지면서. 그 작품이 끝나고 나서 한달 동안 몸이 아팠다. 그 이후로 몸은 좋아졌지만 마음이 너무 허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그 병을 앓은 사람이 나뿐이 아니더라. 감독님도 그랬고 현주 오빠도 그랬고.
-시청자들이 맹순이 캐릭터에 굉장히 공감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맹순이 모습이 최진실의 사적인 부분과 너무 흡사하지 않냐고 한다. 사실 나는 맹순이에게서 내 모습만 본 게 아니라 우리 엄마 모습도, 옆집 아줌마 모습도 봤다. 그야말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왜 아줌마들 그렇게 말하잖나. “내 얘기가 드라마다, 내 얘기를 써야 한다”라고. 그들 모두에게 맹순이의 모습이 있었던 것 같다.
-연기자 최진실의 삶은 ‘맹순이 이전’과 ‘맹순이 이후’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스스로 그렇게 구분하고 있다. 아무래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겠냐.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투덜댔던 것 같고, 고마움을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정신이 확 나더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연기인데 그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을 겪으면서. 촬영에 임하는 모습도 예전과는 달랐을 것이다. 태도도 그렇고. 예전에는 피곤하면 촬영을 빨리빨리 끝내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한신 한신에 애정을 갖고,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장밋빛 인생>은 출연하는 데 부담이 없었나. =없었다. 맹순이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만약 내가 결혼을 안 하고, 그런저런 과정이 없었다면 몰랐을 거다. 두 아이의 엄마고, 아이에 대한 애정이 크고, 남편은 외도하고, 이러니까 오히려 연기를 하고 싶더라. 만약 그런 과정을 겪어보지 않은 채 맹순이 역을 했다면 굉장히 오버했을 것 같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가졌던 물음표를 <장밋빛 인생>을 통해서 정말 마침표를 찍었다. 아, 이거구나, 하는 깨달음 말이다. 많이 배웠다.
-아줌마 캐릭터로 굳어지는 게 싫지는 않나. =알다시피 나는 스무살 때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며 데뷔했다. 처음부터 주부로 나왔기 때문에 거기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트렌디드라마도 많이 했지만 <마누라 죽이기> <고스트 맘마> <편지>처럼 결혼한 여성 역할을 많이 했다. 게다가 나이도 있는데. 내 자리는 내가 알아서 찾아가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만 추하게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웃음) 실제 나이보다 더 많은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면 또 할 거다. 남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그런 마음은 없다. <장밋빛 인생> 이후 그런 마음이 없어졌다.
-지난해 말에는 백혈병 환자들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봉에 올랐다. =현주 오빠가 예전에 산을 많이 다녔나보다. 그러면서 좋은 일도 많이 했고. 드라마가 끝나갈 때쯤 한달 동안 가자고 부탁했다. 계속 거절했는데, “네가 이번 기회에 좋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 좋은 일을 하겠다고 100번 말로 하는 것보다 한번 실천하라”면서 설득했다. 현주 오빠 믿고 따라간 거다.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만약 지금 다시 가자고 하면 망설일 것 같다. 그렇게 힘든 줄 몰랐기 때문에 올라갔던 것 같다. 현주 오빠가 거짓말을 굉장히 잘한다. “도대체 정상이 어디야” 물으면 “저기만 넘으면 정상이야”라고 했다. 그렇게 올라가면 또 높은 고개가 있다. 그렇게 속으면서 올라갔다. 4300m까지 올라갔다. 걷고 있을 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난다.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러다보니 인생이나 두 아이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산을 다녀오니까 내가 못할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안티’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들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나쁜 소리 듣는 것을 좋아하겠나. 연기자로서의 비판뿐이라면 받아들이겠는데…. 애초에는 댓글을 3∼4개만 보다가 그냥 닫아야지 하지만 결국엔 밤을 새면서 보게 된다. 결국 정신세계가 이상해진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상해진다. 내 앞에서 잘해주는 사람이 인터넷에 글을 올렸을 것이라는 의심도 하게 되더라. 그러니 소심해지고. 그래서 지금은 기사만 보고 댓글은 안 본다. 그런데 문제는 굉장히 많은 분들이 댓글에 신경을 쓴다는 거다. 어느 신인배우 얘기인데, 그가 어떤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감독님이 인터넷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에 대한 욕설이 엄청 올라와서. 감독님이 결국 여배우를 불러서 “너 그거 봤냐”고 물었단다. 그 배우가 “전 그런 거 신경 안 써요”라고 하니까 감독님이 “우린 신경쓰거든”이라고 말했단다. (웃음) 그래서 그 배우는 집에 돌아가서 호의적인 댓글을 직접 올렸다고 한다. (웃음)
-고현정, 고소영 등 90년대 스타들이 비슷한 시기에 영화를 찍는다. =너무 좋다. 그 친구들은 몰라도 내 경우엔 함께 뭔가를 한다는 게 힘이 된다. 그 친구들이 작품을 안 하게 된다면 나도 폭이 좁아지고 아줌마 굳히기로 들어가게 될 거다. (웃음)
-혹시 젊은 여성 연기자들을 보면 샘이 나지는 않나. =그런 걸 질투하기 시작하면 힘들어서 못 산다. 이민이라도 가서 편안하게 살아야지. (웃음) 그리고 나도 예전에 다 해봤던 것 아닌가. 여한은 없다. 너무 예쁜 애들을 보면 그런다. “하나님이 다 주시진 않아. 얼굴은 되는데 연기력이 좀 달리거나 성격이 이상한 애들아 많잖아”라면서 혼자 위로하며 산다. (웃음)
-영화와 드라마 중 선호하는 매체가 있나. =가능하면 영화와 드라마를 다 하고 싶다. 예전부터 그렇게 해오기도 했고. 그렇다고 이번엔 영화 했으니까 다음에는 드라마, 이런 건 아니다. 나는 영화만 하겠다는 마인드는 잘 이해 못하겠다. 정말 그 인물에 빠지고 좋은 연기를 보일 수 있다면 매체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아이는 어떤 존재인가. =환희와 수민이는 일을 뺀 나머지 모든 생활의 초점이다. 한국의 엄마가 강한 것 알잖나.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 일을 할 때는 이모님과 엄마가 봐주신다. 사진을 갖고 다니면서 많이 보고 틈나는 대로 전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