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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한국영화 기상도 [5] - 멜로 ②
2005-11-02

제목 그대로 갑부 청년에게 찾아온 첫사랑을 그린 유쾌한 멜로영화다. 고등학생 재경(현빈)은 갑부 할아버지의 10억원의 유산을 물려받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진지한 인생의 목표 따위 뒷전으로 제쳐두고 사는 문제아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인간성 교육을 위해 산골에 처박힌 고등학교로 전학가 졸업장을 따오라고 한다. 교장에게 돈을 찔러줘도 먹히지 않는 시골 촌구석에서 재경은 생활력 강하고 순수한 소녀 은환(이연희)에게 점점 빠져든다. <백만장자의 첫사랑>의 주인공 재경은 성격 빼고 모든 것이 완벽한 재벌 2세로 태어나 사랑을 통해 성격 개조를 당함으로써 진정 완벽한 인간이 되는, 드라마에서 흔히 봐온 남자형 캐릭터다.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을 쓴 김은숙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고, <아일랜드>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스타덤에 오른 현빈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TV는 사랑을 싣고>의 작가로 일하는 수진은 노교수 윤석영으로부터 부탁을 받는다. “평생 잊지 못할” 서정인이라는 여인을 찾아달라는 것. 대학 시절 농활을 갔다 노교수의 평생 인연으로 남은 서정인을 찾기 위해 수진은 수내리라는 시골 마을을 찾지만 그곳에 그 여인은 없다. 다만, 빨갱이로 내몰린 삼촌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된 뒤 어떤 남자와 소리소문없이 마을을 떴다는 소식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품행제로>에서 80년대 악동들의 꽁무니를 뒤쫒았던 조근식 감독의 신작.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흔치않은 사랑 이야기를 통해 감독은 “시니컬 대신 굳건한 믿음과 착한 심성으로 세상을 대하며 자신을 가꿔나갔던 인물들을 그리고 싶다”고.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쓴 김은희 작가는 “엄마, 아빠의 연애편지를 훔쳐보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친 적이 있다.

이별이, 그것도 죽음이라는 이름의 이별이 예정된 사랑은 절박하고 간절할 수밖에 없다. <연리지>는 신인 김성중 감독이 연출하고 최지우와 조한선이 출연하는 작품. ‘연리지’(連理枝)는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으로, 지극한 남녀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도 쓰이는 말. 사랑을 게임으로만 생각하고 가벼운 만남만 지속해온 남자 민수(조한선)는 우연히 만난 혜원(최지우)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받는다. <연리지>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여인의 마지막 사랑과 삶에 냉소적이었던 남자의 첫 번째 사랑을 운명적으로 그려낸다. 슬플 수밖에 없는 멜로물이지만 혜원의 캐릭터를 밝고 재치있게 표현할 예정이라고. 최성국과 서영희 등 주변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도 함께 맞물린다.

조선시대의 전설적인 기생 황진이에 관한 이야기. 황진이는 문과 예에 모두 능할 뿐 아니라 반상계급제에 굴하지 않는 정신적 지존을 지키고 살았던 여인이다. 장윤현 감독이 연출하는 <황진이>는 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 선생의 손자 홍석중의 작품이 원작. 황진이의 삶과 함께 조선의 사회 풍경을 넓게 다룬 원작에서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구도를 확장해 비극적인 멜로로 풀어간다. 황진이는 머슴 놈이와 초혼을 맺고 기생이 됐다. 미모와 재주가 뛰어나고 명철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황진이는 호탕하고 수려한 양반 김희열을 만나 두 번째 사랑에 빠진다. 계급을 초월해 살고 싶었던 꿈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황진이의 모습을 통해 조선 후기를 풍미했던 여인의 바람 같은 삶을 따라간다.

보육원 출신 수민(이영훈)은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다. 미술공부를 꿈꾸는 그가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공장, 택시 운전 같은 힘든 일이다. 그러던 수민은 호스트바로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적인 상대이자 재벌 2세인 재민(이한)을 만난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만 세상과 가족은 그들을 위기로 몰아간다. 이야기 얼개로는 1970년대를 뒤덮은 호스티스영화의 게이 버전처럼 보이지만 <야만의 밤>은 정통 퀴어멜로를 표방한다. <굿로맨스> <동백꽃> 프로젝트를 연출했고 실제로 커밍아웃한 이송희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의 전작들처럼 평범한 이야기를 세련된 비주얼로 재해석하는 작품이 기대된다. 문소리가 재민의 약혼녀로 우정출연한다.

“뼛속 깊이 외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혀짧은 목소리로 구애하는 세상 모든 커플들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족속이라고 여겼던 30대 대학강사 황대우(박용우). 연애는 미친 짓이라고 목소리 높이던 이 남자에게 중병이 생겼다. 허리를 다친 이후로 누군가가 곁에서 자신을 어루만져줬으면 하는 간절함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연애무용론자였던 그가 한번이라도 이성의 마음을 훔쳐본 적이 있던가. 고작해야 신경정신과를 들락거리며 갈팡질팡하는 황대우 앞에 어느 날 유학 준비 중인 미술학도 이미나(최강희)가 등장하게 되고, 서른이 넘도록 키스 한번 해본 적 없는 그는 정체 모를 연애라는 감정에 휩싸인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킬러의 사연을 담은 중편 <너무 많이 본 사나이>(2000)를 연출해 이름을 알린 손재곤 감독의 장편데뷔작. 싸이더스FNH와 MBC프로덕션이 함께 제작하는 HD영화다.

연인을 가슴에 묻는 여정 이야기

<가을로>의 김대승 감독 인터뷰

-<가을로>는 어떤 영화인가.

=백화점 붕괴사고로 죽은 연인을 1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한 한 남자가 연인의 노트를 발견하면서, 노트 속 그녀의 여행 여정을 따라 여행을 떠나고, 그 길 위에서 새로운 여인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연애 로드무비인 셈. 11월 초부터 전국을 돌며 가을 단풍 장면을 찍을 예정이다. 현우(유지태)가 발견한 옛 연인(김지수)의 여정을 따라 거의 전국을 돌게 된다. 포항 근처의 섬에서 시작해서 담양, 거제도, 울진, 정선, 평창 등 전국 곳곳의 경치 좋은 곳들을 두루 카메라에 담을 생각이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맥을 잇는 멜로영화다. 멜로영화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멜로영화는 너무 친절하면 신파가 되고 덜 친절하면 건조해진다. 그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이야기를 엮어가는 게 멜로의 매력이기도, 함정이기도 하다. <가을로>에서는 사랑을 잃은 남자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긴 과정을 그리면서, 어떻게 불필요한 시간을 축소하고 생략해서 리듬감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초반에는 소박하고 담담한 풍경에서 시작,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면 미칠 것처럼 피어오른 단풍 속에서 자연에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을 살리고 싶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이곳에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왔다면 어땠을까를 곱씹는 남자의 가슴 저린 심정 같은 것.

-백화점 붕괴 사고 장면은 어떻게 진행할 예정인가.

=2006년 월드컵 전에 개봉하려면 작업 속도가 숨이 가쁠 지경이다. 백화점 붕괴 사고 장면은 실제 건물의 1/5 크기로 세트를 지어 붕괴 장면을 찍고, 주변 광경 등을 합성하는 후반작업에 공을 들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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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씨네21> 취재팀·사진 <씨네21> 사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