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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사진 작가 이전호 [1]

한국영화 포스터 1순위 사진 작가 이전호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 혹 누군가는 극장 앞에서 이런 고민에 빠져 영화의 포스터를 관심있게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그 경험이 최근이라면, 그는 사실 포스터 사진 작가 이전호의 작품‘들’ 앞에서 망설였을 가능성이 크다. 근래 들어 그는 그만큼이나 작품 수가 많고 활발하다. 남아 있는 후반기를 포함하여 올해 상당수의 한국영화 포스터를 작업한 이전호 작가를 만나 그와 그의 포스터 작업기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전호 작가는 ‘내가 소개하고 싶은 포스터 B컷’으로 <오로라공주>와 <나의 결혼원정기>를 직접 골라 보내주기도 했다. 자, 그의 포스터 세계로 들어가보자.

“표정도 그때하고 똑같이 지어야 하나요? 사실 포인트는 손에 있었는데….” 조명 아래 서서 깍지 낀 양손가락을 조금씩 꼼지락거리면서 그가 말한다. 처음에는 좀 겸연쩍어하더니, 이내 표정이 다양해지고 동작도 익숙해진다. 매번 배우들을 불러 세웠던 그 자리에 자신이 서 있으니 이상할 법도 하지만, 몇분 지나고 나니 피식거리며 구경하는 스탭들 눈길은 신경도 안 쓰는 태세다. 아무래도 흔쾌히 <올드보이> 포스터 컨셉을 제안하고, 의상까지 꼼꼼하게 준비한 데에는 쑥스러움보다 자신감이 더 컸기 때문이 분명하다. 포즈를 취하는 사이에도 당시 조명과 배우들 디테일까지 기억해내며 들려주는데, 그걸 보고 있노라니 오히려 겸연쩍기로는 그를 찍고 있는 <씨네21> 사진기자가 더할 상황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작업한 <올드보이> 포스터를 1인2역으로 패러디해낸다.

“어라, 극장의 포스터가 다 내 작업?”

“최근에 <너는 내 운명>을 보러 극장에 갔다가 겸연쩍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한 적이 있었다. 걸려 있는 개봉예정 한국영화가 거의 다 내가 작업한 영화들이었다. <사랑해, 말순씨> <오로라공주> <나의 결혼원정기> <무영검> <왕의 남자> <태풍>까지. 그걸 보고 있으면 저건 좀 아닌데, 좀 잘할 걸 하는 생각으로 부끄럽기도 하지만… 기분 좋은 것도 사실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를 제외하고 요즘 개봉하는 한국영화의 포스터를 말하기는 힘들 정도가 됐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에서만 벌써 <태풍태양> <주먹이 운다> <형사> <가발> 등 굵직한 여러 편이 있고, 대략 10여편이 넘는 영화포스터를 찍었다. 2003년에 <오! 해피데이>를 첫 작품으로 시작했으니 길다고 말하기는 힘든 연보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로 지금의 단단한 자리가 어떻게 마련됐는지 더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10월28일 찍게 되는 <사랑을 놓치다>까지만 하면 올해 영화는 겨우 다 끝나는 것 같다”고 즐거운 한숨을 쉬는 사람, 혹은 “(사진)찍혀보면 찍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이 자리가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걸”이라며 자신의 피사체에 대한 애정을 되짚는 이 사람. 포스터 사진 작가 이전호(38)씨다.

신발 광고 찍고 영화에 입문하다

99년, 한국에 막 돌아와 포트폴리오를 들고 잡지사를 돌아다닐 때 그는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강영호 작가가 부러웠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영화포스터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이었다. “굉장히 세고 임팩트 있는 작업을 좋아하는 내가 그걸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건 영화포스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계는 좀 보수적일거라고 생각했고, 또 어떻게 해야 그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몰라서 그냥 기다릴 뿐이었다.” 99년 10월부터 패션지 중심으로 이곳저곳의 지면광고 작업을 시작 했지만, 영화와는 계속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가 영화가 그에게 손짓한 것은 의외로 월드컵 붐 때문이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푸마 광고를 찍은 게 계기가 된 것이다. “원래 푸마라는 브랜드는 외부에 광고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니까 예외를 둔 거다. 안정환을 데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보라고 해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걸 실컷 했다. 안정환은 실제로 그 다음주부터 시합이었는데, 결전을 앞둔 이 선수가 얼마나 떨릴까 생각해봤고, 그 긴장이라는 미묘함 자체를 담아보자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굉장히 다큐적으로 보이도록 찍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 포스터 일을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다. 신발 광고를 찍었더니 영화포스터 일을 하게 됐다. 어느 날 푸마 매장에 물건을 사러 갔던 광고디자인회사 ‘꽃피는봄이오면’의 김혜진 실장은 무심코 신발을 담은 쇼핑백을 보게 된다. 그리고는 쇼핑백에 박혀 있는 결전 직전의 긴장으로 가득 찬 안정환의 모습에 시선을 붙잡힌다. 그게 하도 “영화적”이어서 수소문 끝에 사진의 임자를 찾게 된 것이다. 그건 이전호에게도 새로운 기회였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선물로 사준 카메라에 처음 연정을 품고, 결국 뒤늦은 대학 3학년 때 미국으로 사진 공부를 하러 떠나고, 한국에 돌아와 늦은 나이에 군대를 마치고, 다시 미국에 건너가 몇년간 견문을 넓히고, 그리고 돌아와 지면광고 일을 시작하면서까지 그가 내심 마음에 넣어두었던 것이 다름아닌 영화포스터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신이 났다”.

<올드보이> 작업에 정말 올인하다

첫 작업은 <오! 해피데이>였다. 그가 거기서 컨셉으로 참조한 것은 할리우드영화 <킹콩>이었다. “남자 하나를 찍어놓고 계속 쫓아다니는 여주인공 이야기라 <킹콩>을 변형하자는 생각이 났다. 건물 위에 올라가서 한손에 주인공을 쥐고 헬리콥터와 싸우고 있는 킹콩을 생각했고, 동화적인 세트 위에 만화 캐릭터처럼 장나라를 찍었다.” 그렇게 뭔가를 역으로 뒤집어서 참조할 때가 가끔 있는데, 아버지를 포함하여 상태 안 좋은 삼부자가 여자 한명을 두고 별안간 연적이 되는 영화 <귀여워>의 포스터를 찍을 때는 여고 앞에 자주 등장하는 ‘바바리맨’을 여자로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의 압권은 세 아들로 출연한 전문배우들이 아니라, 아버지로 출연했던 장선우 감독이었다. “그거 진짜 표정이다. 예지원씨 앞쪽에 가리는 장치를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둘셋 하고 열 때마다 장선우 감독님 표정이 너무 리얼한 거다. 그래서 쉽게 오케이 났다.”

그 스스로가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 중 하나는 <올드보이>다. “정말 올인했었다. 지금까지 한 영화 중에서도 미팅을 가장 많이 한 영화였고, (일반적으로 영화 촬영에 들어가는 시점부터 포스터 작가가 합류하는 것과 달리) 이미 프리프로덕션 시점부터 참여한 작품이기도 했다.” 결국 박찬욱 감독이 영화의 핵심 이미지로 제시한 ‘보랏빛’과 최민식이 제안한 두 남자의 먹이사슬과도 같은 관계를 한컷의 이미지에 담는 데 성공한 셈이었다. 프리프로덕션부터 참여한 또 하나의 경우가 <주먹이 운다>이다. “보통 시나리오를 읽고 나면 한장의 비주얼이 머릿속에서 툭 떨어지는데, <주먹이 운다>는 시놉시스만 듣고도 그런 경우”였다. “권투라는 스포츠 자체가 그 복합적인 강렬함 때문에 사진을 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티저포스터를 찍을 때 모든 걸 다 집어넣어보고 싶었다. 몸에서 튕겨져나오는 땀, 다 부숴버리고 싶은 감정 같은 거.” 이 영화를 말하면서 이전호는 최민식과 류승범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그건 “배우에게 부담을 안 주고 컨셉과 감정선만 이야기하고 나면 배우가 알아서 보여주기를 기다리는 편이다. 설사 내가 해석한 모습과 다른 게 나오더라도 배우가 해석한 거니까 존중해야 한다”는 그의 연출 원칙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최근 작업 중에 하나”라고 자평하는 <나의 결혼원정기>의 포스터 역시 배우들의 입장을 존중하고 조율했기 때문에, 도리어 영화의 컨셉에 잘 맞는 더 촌스럽고 더 망가지는 이미지를 얻어 낼 수 있었던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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