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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산 멜로 영화, <성원>
이유란 2000-01-11

작심하고 사람을 울리겠다는 데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럴 셈으로 <성원>은 가슴저미는 사연들을 퍽도 많이 들려준다. 우선 주인공 양파의 존재가 그렇다.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양파에겐 ‘그녀의 얼굴을 단 한번만 봤으면’ 하는 게 살아 생전의 소원이다. 하지만 죽음으로써 양파가 초란을 볼 수 있게 됐을 땐 초란이 양파를 알아보지 못한다. 죽음조차 두 사람의 사랑을 막지 못했지만, 어긋난 사랑의 운명은 죽음보다 더 가혹해서 이들의 재회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홍콩에서 <첨밀밀> 이래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멜로드라마인 <성원>의 뜨락에는 온갖 슬픔의 수사들이 만발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사어의 대부분이 최루성 멜로드라마 장르의 ‘관용어’라는 데에 있다. 할리우드영화 <사랑과 영혼>을 떠올릴 것도 없이 산 자와 유령의 사랑은 <천녀유혼> 시리즈에서 익히 본 것이다. 사랑의 갈피를 채운 작은 사연들에서 이 영화만의 감성을 가려내기도 어렵다. 그래서일까? 아름다운 언어로 가득하지만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상투적인 시를 읽었을 때와 같은 허탈함이 <성원>의 슬픔을 뒤따른다. 현재 홍콩영화의 최대 주주로 떠오른 멜로드라마는 벌써 자기성찰의 끈을 놓아버린 것인지, 홍콩산 멜로 영화와 마주칠 기회는 훨씬 잦아졌지만 만남의 기대와 즐거움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초성 감독은 <첨밀밀> <색정남녀> <유리의 성> 등의 촬영감독 출신. 데뷔작 <신투첩영>에 이어 <성원>에서 말하기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노출했지만, 관객동원에는 성공해 홍콩에서는 흥행감독으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출연진은 우리에게 낯선 얼굴들인데, 초란으로 출연한 장백지는 홍콩영화계가 새로 발굴한 여배우로 현재 홍콩에서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양파의 임현제는 대만과 중국을 동시에 누비는 가수 출신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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