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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의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 <로렌조의 밤><피오릴레>
홍성남(평론가) 2005-08-16

역사와 만나 빚어진 전설은 계속 이어지며 그런 점에서 사실이라고 말하는 두편의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 한데 그 둘은 성취도 면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세계의 고저지대를 요약해서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피오릴레>

<무방비 도시>(로베르토 로셀리니, 1945)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처형 임무를 맡은 이탈리아 군인들은 신부를 향해 제대로 총구를 겨눌 수가 없었다. 영화는 적극적인 악의 역할을 철저히 나치 독일이라는 ‘외부’에 부과했고 그 절대악에 맞서 싸우거나 그로부터 희생당한 이탈리아인들의 장중한 이야기가 곧 당시의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이것이 혹독했던 한 시기에 대한 ‘공식적인 이야기’이거나 혹은 ‘좋은 기억’이라고 한다면 타비아니 형제의 <로렌조의 밤>에서 그런 식의 이야기는 심히 훼손된다. 여기서 우리는 동족끼리, 그것도 서로의 이름까지 뻔히 아는 같은 지역 사람들끼리, 죽고 죽이는 부조리하게 비극적인 상황을 보게 된다. (여러모로) <로렌조의 밤>에 대한 최선의 정의들 가운데 하나는 <무방비 도시>(를 비롯한 네오리얼리즘영화)에 대한 수정주의적 응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도입부에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레이터는 오래전 산 로렌조의 밤에 일어났던 일을 얘기해줄 수 있는 말들을 찾고자 한다고 하는데, 바로 그런 소망을 향한 영화적 시도가 <로렌조의 밤>에 대한 앞의 정의를 한층 더 정당화해준다. 타비아니 형제는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44년에 어린 그들이 실제로 겪었던 일들을 영화로 재연해내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타비아니 형제의 <무방비 도시>라고 불리기도 하는 자신들의 영화와 실제 사건(그리고 <무방비 도시>) 사이에 대략 40년의 시간적 간격이 놓여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결코 잊지 않는다. 그래서 <로렌조의 밤>은 <무방비 도시>처럼 고난의 시대를 막 지나온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위무할 영화가 될 필요도 없거니와 당대의 일을 바로 가까이에서 관찰한 듯한 르포르타주적 시선의 영화가 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대신 타비아니 형제는 여섯살 때의 일을 회고하는 여성(체칠리아)을 화자로 내세운 ‘기억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사실과 회고 사이에 벌어진 꽤 큰 거리는, 기본적으로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으되 오류와 상상이 덧대어져 실제적 정확성을 확신할 수는 없으며 외부로부터의 집합적 윤색도 슬그머니 허용하는 자유로운 자리를 가능케 했다. 그렇게 해서 역사는 전설과의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지 못하는 유동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거기서는 관찰과 해석, 가벼움과 무거움, 비극과 유희 같은 대립항들도 공존의 자리를 갖는다.

<로렌조의 밤>

<로렌조의 밤>

<로렌조의 밤>은 전쟁의 슬픈 기억으로부터 한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전설이 생장해서 나온 흥미로운 산물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영화는 안전을 보장할 테니 모두들 성당으로 모이라는 독일군쪽의 명령에 의심을 품고 ‘구원자’ 미군을 찾아 위험한 도주를 감행하는 일단의 산 마르티노 마을 사람들의 여정을 따라간다. 죽음과 갱생의 모티브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이것은 그들의 생존의 이야기이면서 부활의 이야기이다. 결국에는 당사자들로 하여금 “지쳤다!”라는 소리를 내뱉게 만드는 고된 전투(10분 이상 지속되는 이 시퀀스는 단연 이 영화의 압권이라 할 만하다) 뒤에 산 마르티노 마을은 새로운 공동체로 거듭난다. 그리고 유성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산 로렌조의 밤인 바로 그날, 노년의 농부인 갈바노는 40년 동안 간직해온 사랑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품에 안게 된다. 이 감동적인 대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영화가 추구한, 공동체의 운명과 개인의 그것, 유토피아니즘과 숙명주의, 로맨티시즘과 정치성 사이의 오묘한 균형이 좀더 선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순간이다.

<피오릴레>

역사적 사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전설의 위치로 합류되고 또 그것은 계속해서 후세로 전승되어 나름의 힘을 갖는 한 사실이라는, <로렌조의 밤>이 보여준 관점은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뒤에 만들어진 타비아니 형제의 또 다른 영화 <피오릴레>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부부와 어린 두 남매를 태운 영화 속의 자동차는 시간의 흐름을 뚫고 가는 일종의 타임머신이 된다. <로렌조의 밤>과는 달리 이번에는 아버지가 화자가 되어 아이들에게 원래 ‘축복받은 자들’이란 뜻의 ‘베네데티’란 이름을 가진 자신의 가문이 어떻게 해서 ‘저주받은 자들’이란 의미의 ‘말레데티’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저주의 시발점은 나폴레옹 군대가 이탈리아로 진군해오던 179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농부의 딸 엘리자베타는 프랑스 군인 장과 숙명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엘리자베타의 오빠가 보인 탐욕으로 인해 그 사랑은 지극히 짧은 비극으로 끝난다. 이로부터 시작된 저주는 100년 뒤의 후손을 덮친다. 정치적 야심을 가진 오빠가 사랑을 방해한 것을 안 엘리자베타는 독버섯을 먹여 그를 살해한다. 다시 40년의 시간이 흐르면, 연인과 함께 파르티잔 활동에 뛰어들었다가 가문의 이름 때문에 혼자만 치욕스레 생존하게 된 청년 마시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돈이나 권력처럼 부정적 함의를 가진 열정으로 인해 좌절되는 사랑을 다룬 <피오릴레> 속의 ‘작은’ 이야기들은 그리 강렬하거나 신선한 것이 못 되는데, 영화는 그 각각의 이야기들이 이룬 연쇄가 과거(역사)의 침윤을 드러나게 한다는 구조와 주제상의 어떤 거창함으로 그런 밋밋함을 돌파하려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피오릴레>는 우아함과 무미함을 세밀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영화, 결과보다는 개념이 더 잘 보이는 영화에 그치고 말았다. <로렌조의 밤>과 비교해보자면, 이것이 리얼리즘과 시적 감흥, 역사와 판타지를 결합하려는, 네오리얼리즘 이후의 영화적 노력들 가운데 성취를 거둔 작품에 속한다면, <피오릴레>는 <초원>(1979), <친화력>(1993)과 함께 나른하게 우아한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들에 합류하는 쪽이다.

로셀리니와 타비아니 형제

거장이 일으킨 위대한 스캔들

로베르토 로셀리니

파올로& 비토리오 타비아니

<로렌조의 밤>의 한 장면에서 시실리 출신의 젊은 여인인 마라는 다가오는 ‘해방군’이 시실리 출신의 미국인들로 이뤄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미친 듯 뛰어가다가 그만 잠복해 있던 독일군이 쏜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아무래도 이 장면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전화의 저편>(1946)의 첫 번째 에피소드(독일군에 죽임을 당하는 시실리의 젊은 여인을 다룬)에 대한 대응 혹은 오마주처럼 보인다. <로렌조의 밤>이 타비아니 형제의 (반)<전화의 저편>이기도 하다는 점과 타비아니 형제가 로셀리니에 대해 가진 특별한 존경심을 고려하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크리 무리가 아닐 듯싶다.

타비아니 형제에게 <전화의 저편>은 계시와도 같은 영화였다. 고등학생 때 이 영화를 본 그들은 ‘충격’을 경험했다. 하지만 반쯤 비어 있는 극장에서 같은 영화에 대해 싫다며 소란을 피우는 관객이 있어서 형제는 그들과 싸움을 벌였다. 여하튼 <전화의 저편>을 보던 날 자신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고 타비아니 형제는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하고 싶은 게 뭔지를 깨달았다.” 로셀리니 영화는 뒤에 영화감독이 된 타비아니 형제에게 스크린 위에 잔혹한 현실을 담는다는 문제와 역사를 읽는다는 것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파드레 파드로네>나 <로렌조의 밤> 같은 대표작들에서 보듯, 분명 그들의 영화는 로셀리니 같은 아버지가 죽었다고 선언하고 그 사랑하는 아버지를 매장하고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 아버지가 자신들의 기억 속에 강력하게 남아 있다고 말한다.

로셀리니와 타비아니 형제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자가 후자에 깊은 감화를 받았던 재미있는 일화가 또 하나 있다. 타비아니 형제의 <파드레 파드로네>는 77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데, 당시의 심사위원장이 바로 로셀리니였다. 타비아니 형제의 영화를 본 로셀리니는 자기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라며 감탄했다. 그런데 그 영화에 대한 로셀리니의 사랑은 너무나 특별나 스캔들을 만들어냈다. 그는 <파드레 파드로네>가 상을 타도록 어떤 심사위원에게 보석을 뇌물로 줬는가 하면 심사위원 특별상과 감독상은 발표를 하지 않았다. 죽기 직전의 로셀리니가 이렇게 스캔들을 벌이며 준 상이 어쨌든 타비아니 형제의 국제적 명성을 높여놓은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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