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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을 비판한다 [4] - 오기민
사진 오계옥 정리 이종도 2005-05-10

전문적이고 다각적인 분석을!

영화산업을 다루는 방식에서 구태의연한 <씨네21>을 비판한다

만만하게 보인 죄로 며칠 전부터 담당 기자의 원고 독촉 전화가 계속이다. 창간 10주년을 맞은 <씨네21>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써달라는 부탁인데 사실 그 저의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스스로 비판할 만한 것이 있으면 비판하고 반성하면 될 일이지 당사자가 굳이 쓰기 싫다는데 억지로 떠맡길 건 뭐란 말인가? 더욱이 창간 10주년이라는 잔칫상을 받아들고서 자신에 대한 비판을 부탁하는 건 아무래도 진심이라기보다 구색맞추기라고 이해하는 것이 똘똘한 처신이 아닐까 싶다. 이제 분위기 파악은 끝났는데 문제는 파악된 분위기에 맞게 언뜻 보면 예리한 비판 같으면서도 잔칫집 체면은 거스르지 않을 만한 비판의 내용이 뭔지 도통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냥 개인적 감상이나 끼적이기로 결심했다.

<씨네21>? <씨네21>! <씨네21>?… 무지하게 촌스런 제호를 가진 영화 전문 주간지가 마치 영화탄생 100주년을 기다렸다는 듯 1995년에 창간되었고, 같은 해 엇비슷한 시기에 그보단 훨 세련된 제호를 가진 영화 전문지 <키노>도 선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두 잡지의 차이 중 하나는 <씨네21>이 늘 영화인과 함께했다면 <키노>는 영화인과 한 걸음만큼의 거리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그건 주간지와 월간지라는 차이라기보단 오히려 시장 속에서 각자의 입지를 마련하기 위한 의식적인 전략이었다. 물론 <키노>는 점차 대중으로부터(좀더 정확하게는 자본의 이해로부터) 멀어져갔고 결국 폐간되었다. 반면 <씨네21>은? 지금도 여전히 영화인과 동고동락할 뿐이다. 가끔은 모질게 영화인들의 뒤통수를 후려쳐도 좋으련만….

창간 때와 비교해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무엇보다도 광고의 지면이 대폭 늘어난 점이다. 그만큼 대중적 영향력이 증가했다는 증거다. 1년 전인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을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났는데, 꽤 오랜만에 만난 그는 나를 보자마자 <씨네21>의 대중적인 영향력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얼마 전부터 <씨네21> 맨 끄트머리 한쪽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신문에 글을 쓸 때와는 주변 반응이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신문에 실린 글은 안 봐도 주변에 <씨네21>에 실린 자신의 글을 안 본 사람이 없더란다. 뭐 그이와의 대화는 느닷없이 “근데 넌 언제 돈 되는 영화 하냐”는 엉뚱한 추궁으로 끝이 났지만 <씨네21>이라는 매체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이기도 했다.

다시 <씨네21>이 창간되던 해로 돌아가보면, 1995년은 한국영화로는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박종원 감독의 <영원한 제국>, 박철수 감독의 <301·302>,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이 만들어졌고, 놀랍게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노스텔지어>,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언더그라운드>, 웨인왕의 <스모크>가 개봉되었다. 더욱이 최초의 예술영화 전용관의 등장으로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같은 영화들을 관객이 만나게 되는 해였다. 왕가위의 <중경삼림>에 열광하고 로버트 알트먼의 <패션쇼>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파안대소했던 것도 이때였다(개인적으론 극장을 가장 많이 찾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아마 <옥보단>도 이때였지???). 그해 <씨네21>은 이들 영화들을 열정적으로 지지했고(<옥보단>은 빼고), 그 지지는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해졌다. 이들 영화들로 인해 <씨네21>은 도움을 받았고 거꾸로 이들 영화들에 큰 힘이 됐다. 그리고 지금도 <씨네21>이 먼저 열광하고 지지할 영화는 많고도 많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편파적인 잡지여도 좋지 않을까….

창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난 10년간 영화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그 성장의 폭만큼 다양한 문제들과 부딪히고 있다. 한국영화가 오랜 기간 끌어왔던 고질적인 문제부터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까지, 산업의 이해관계는 더욱 첨예해지고 이해당사자는 더욱 세분화됐다. 창간 때만 해도 검열, 사전심의, 스크린쿼터 정도만이 기사로 다뤄졌으나 지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산업적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나 영화산업과 관련한 <씨네21>의 기사를 보다보면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라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아마도 산업과 관련한 <씨네21>의 문제의식이 지난 10년간 영화계에 비해 가장 뒤처진 분야가 아닐까 싶다. 최근 기획되었던 스탭처우 문제나 매니지먼트와의 이해 대립 문제를 보더라도 이미 이전에 다뤘던 내용에서 발전하고 있지 못하거나 혹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좀더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문제의 본질과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선까지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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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민/ 제작자·마술피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