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2일부터 부산시네마테크와 광주극장에서 상영하는 뉴저먼시네마 특별전
1962년, 오버하우젠영화제(Overhausen Film Festival)에 모인 스물여섯명의 독일 청년들이 모종의 선언을 한다. ‘아버지 영화는 죽었다’라든가 ‘새로운 자유를 원한다’ 같은 도발적인 수사가 뒤따랐지만 별반 알맹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그 정도의 말들은 이미 유럽 대학도시 어느 뒷골목에서나 되풀이되고 있던 상투적 문장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26명 중에 장편영화를 만들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영화를 찍어보지 않은 이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실제로 이들의 좌장 역할을 했던 알렉산더 클루게마저 정작 자신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노라 고백하기도 했다.
고다르와 트뤼포 같은 누벨바그영화에 고무되어 단편영화 몇편 찍은 것이 고작이었던 이 독일 젊은이들의 이 해프닝은 그러나, 뜻밖에 이들의 선언에 관심을 가진 정부 당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공식 재정 보조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66년, 드디어 만들어진 이들의 첫 장편영화들이 독일 내에서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으고(클루게, <어제와의 이별>) 칸과 같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거머쥐게 되면서(폴커 슐뢴도르프, <젊은 퇴를레스>) 독일 영화계는 진정한 단절, 정말로 새로운 영화의 출현을 목격하게 된다.
기껏해야 새로움에 대한 소박한 열정이나 혁명적 치기에 그쳤을지 몰랐을, 아니면 누벨바그의 독일산 아류로 기억될 수도 있었을 이들의 운동이 찻잔 속 태풍에 머물지 않았던 것은 어떤 의미에서 세계대전이라는 정신적 외상 때문이다. 전쟁을 통해 20세기의 약속은 깨졌고 근대정신은 파산선고에 도달했다. 그런 점에서 68사상을 비롯해 이전 모든 것들을 갈아엎으려 했던 유럽 전후세대들의 소박한 열망은 이미 한배를 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맞춰 영화에서 새로운 구조와 형식에 대한 전위들이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소멸과 생성이 조우하는 분기점, 뜨거운 시대. ‘새로움’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 금기나 검열에 대한 무차별적인 저항은 당시, 유행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강박이었다.
그런 점에서 누벨바그의 새로운 공기가 독일의 젊은 예술가들을 매혹시킨 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만큼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거의 극단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60년대 누벨바그를 참조해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70년대 뉴저먼시네마의 ‘새로움’은 누벨바그의 새로움과는 확실히 다른 자리매김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유럽인들의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한 파시즘의 악몽, 외상에 대해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독일인의 정체성 탓일 것이다. 누벨바그가 형식적 전위를 통해 그것이 가진 정치적 함의에 주목했다면 뉴저먼시네마는 전위적 형식 속으로 미처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 현실을 주술처럼 불러들인다. 그것은 법적이고 제도적인 청산으로 절대 일소할 수 없는 일상의 파시즘, 혹은 그것을 얄팍하게 은폐하는 값싼 자본주의 프래그머티즘이다. 나치에 동조한 아비를 향해 괴성을 지르는 <양철북>은 그런 의식의 종합에 가깝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뜨거운 전압을 스크린 속으로 흘려넣는 뉴저먼시네마를 특징짓는 한축으로 역사적 외상을 기억해야 한다면, 남은 또 다른 한축의 특징은 이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이 외상을 다루기는 해도 반드시 우회한다는 것이다. 뉴저먼시네마의 심장 파스빈더는 보기 착잡한 멜로물을 던져놓고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권력관계로 돌진하고, 광인 헤어초크는 소외된 인간성의 그늘 속을 마치 거창한 풍광인 양 헤매며, 빔 벤더스는 미국화된 마음속으로 난 길의 로드무비를 찍는 것이다. 차마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외상이 의식과 일상 속에서 미해결로 남았을 때, 영화 또는 영화작가가 어떻게 응수할 수 있는가를 영화 안팎에서 보여준 뉴저먼시네마는 냉전이 채 종식되지 않은 또 다른 미해결의 공간인 한국에서의 의미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영화세계를 소개하는 이번 뉴저먼시네마 특별전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11월12일부터 25일까지 다시 장소를 옮겨 광주극장에서 12월3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이 특별전에서는 파스빈더와 헤어초크의 여덟 작품들과 초기 리더들인 슐뢴도르프와 클루게의 대표작, 그리고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 빔 벤더스처럼 현재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이는 작가들의 뉴저먼시네마 시기 작품들을 포함해 총 15편이 상영된다. 파스빈더나 헤어초크의 경우, 각각의 대표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나 <아귀레, 신의 분노>가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파스빈더가 직접 연기한 <폭스와 그의 친구들>, 명성만큼 잘 소개되지 않는 초기작 <카첼마허> 등이 눈길을 끈다.
김종연/ 영화평론가 il_volo@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