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 부산, 8월27일부터 페데리코 펠리니 특별전 상영
“내 영화는 보기 위한 것이지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 <인터비스타>(1987) 중에서
영화사의 거장들이 거장인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스타일과 영화문법의 성공적 실험, 혁신을 가능케 한 도저한 미학적 사유, 그도 아니면 의미심장한 시대정신의 체현과 같은.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들과 우리 사이에 놓인 시차를 변명하기엔 범접하기 어려운 간유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가 기본적으로 서커스의 요란한 볼거리(스펙터클)와 일맥상통한다고 굳게 믿어 거장이 된 페데리코 펠리니의 위치는 확실히 특이하다. 시대를 넘어서도 분명한 펠리니 영화의 매혹, 그것은 어떤 의미에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미덕과도 얼마간 통한다.
페데리코 펠리니는 광대였다. 한때 실제로도 그랬고, 그의 영화 이력도 여러모로 인구가 복작이는 도시로부터 한적한 해안마을까지 두루 다니는 유랑극단의 여정을 닮아 있다. 불을 뿜는 차력사와 반도네온의 선율, 무대 앞뒤를 오가며 연기하는 희극배우들은 그가 사랑하는 모티브였다. 전기와 후기의 차이라면, 그가 영화를 점점 더 서커스의 일종으로 여기면서, 그리고 인생의 모든 것이 그 서커스에 다 들어 있다고 점점 더 과격하게 확신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뿐 아니라 스스로의 내밀한 욕망이나 환상까지 그 쇼에 포함시키게 되었다는 정도일 것이다. 네오리얼리즘에서 역사와 상상의 경계까지 무너뜨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쉬지 않고 전진했던 그의 영상 이력은 실은 모두 하나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페데리코 펠리니를 ‘가장 논쟁적인’ 거장으로 만들었다. 로셀리니를 위해 <무방비 도시>의 각본을 쓰며 영화를 배웠지만, 금세 네오리얼리즘에 등을 돌렸고, 가톨릭적 구원 주위를 배회하다가도 결국 가장 퇴폐적인 데카당스로 치달았던 펠리니. 파파라치가 암약하는 로마의 뒷골목, 지극히 현실적인 정경으로부터 자신의 추억과 내면으로 잠수해버렸던 펠리니에게서 시대적 무게를 상담하기란 애초에 번지수가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 서커스의 천진한 스펙터클에서 구원을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성이 실패하는 네오리얼리즘의 냉담한 시선을 아슬아슬 줄타기하던 펠리니의 곡예는 그런 의미에서 천천히 무(無)를 향해 행진하는 바로크 스타일 가장행렬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의식의 박약을 늘 질타받았지만 대신 그 영화와의 연애를 꿈꾸는 이들에게 기억할 만한 상상력과 영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어릿광대 페데리코 펠리니의 대표작들이 오는 8월27일부터 9월12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상영된다. ‘페데리코 펠리니 특별전’라는 제하의 이번 프로그램에는 그의 첫 단독 연출데뷔작인 <백인추장>에서부터 <길> 〈8과 1/2> <달콤한 인생>과 같은 대표작, 그리고 85년에 만든 <진저와 프레드>까지 총 14편이 망라돼 있다.
<페데리코 펠리니 영화제 Fellini Retrospective>
일시 8월 27일(금)~9월12일(일)장소 시네마테크 부산 (해운대 요트경기장 내) 051-742-5377,5477주최 시네마테크 부산 http://cinema.piff.org/
<비텔로니> I Vitelloni, The Young and the passionate l 1953년 l 103분 l 흑백<백인추장>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대타로 투입돼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자면, 흔히 <청춘군상>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영화는 네오리얼리즘의 수련을 끝낸 펠리니가 만든 사실상 첫 단독 연출작이다. 펠리니의 영화에서 자전적 요소가 있다는 것은 이제 너무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사전적으로는 ‘암소들’이라는 뜻이고 풀이하자면 ‘백수들’인 비텔로니들은 속에는 리미니라는 작은 해안소도시에서 자란 그의 얼굴이 여기저기 발견된다. 여자를 임신시키고 기행을 저지르는 악동, 극본을 쓰겠다지만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 풋내기 예술가,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는 마마보이, 그리고 결국 마을을 뜨는 청년 모랄도, 모두 어느 정도 펠리니 자신의 모습을 다룬 익살이다. 천사상을 훔친 악동이 어지럽게 어릿광대에게 쫓기는 카니발 장면에서 펠리니가 리얼리즘에 결코 머물지 않을 것임을 예견케 한다.
<카비리아의 밤> Le Notti Di Cabiria, Nights of Cabiria l 1957년 l 110분 l 흑백수난받으며 세상의 죄악을 정화하는 백치 여인이 펠리니만의 것은 아니지만, 이 수난을 서커스의 슬랩스틱으로 받아내는 것만큼은 펠리니의 아내, 줄리에타 마시나의 것이다. <길> <사기꾼들>에 이어 구원의 3부작으로 명명되는 이 영화에서 마시나는 아예 로마의 창녀 카비리아로 분해 구원의 약속을 가장한 가짜 기적들에 거듭 배신당한다. 계급과 사회의 폐부로 돌진해 인간성의 실패를 드러내는 네오리얼리즘의 눈과 구원을 바라는 순진한 눈길이 만드는 팽팽한 긴장을 견뎌내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수도사가 고해성사를 거절하고, 화려한 스타가 카비리아를 욕실 속에 가둘 때, 그나마 가녀린 희망이 소박한 거리의 스펙터클-축제에 남겨져 있다, 고 펠리니는 말한다. 물론 그도 이때까지뿐이다.
<달콤한 인생> La Dolce Vita l 1960년 l 174분 l 흑백예수의 거상을 헬리콥터에 매달고 날아가는 그 유명한 첫 장면을 통해 펠리니는 ‘구원이 없다’고 일찌감치 선언한다. 음란한 쾌락과 부르주아들의 공허한 관계, 황폐한 소동으로 가득한 현대 로마는 어딜 가나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바벨탑의 정경을 연상시킨다. 카니발은 더이상 구원이 아니고, 순수한 영혼의 소녀는 정화를 포기하고 돌아가버린다. 이상한 일은, 밤이 오면 나이트클럽으로 하강했다가 새벽에 성 베드로 성당으로 고양하는 이 현기증나는 지옥도가 실은 아주 매력적이라는 데 있다. 네오리얼리즘의 수법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구원의 상징을 추적하며 데카당스의 매혹에도 동시에 흔들리는 이 영화는, 어쩌면 펠리니의 전·후기 모든 골자들을 망라한 진정한 대표작이다.
〈8과 1/2> 8 1/2 l 1963년 l 138분 l 흑백너무 유명해서 뭔가 더 말을 보태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지만 사실, 〈8과 1/2>는 자서전적이라기보다 뻔뻔한 영화일지 모른다. 〈8과 1/2>의 현재진행형의 제작과정이 틀림없는 이 영화의 부분부분은 분명 다큐멘터리와 혼동되는 순간이 있다. 곤경에 처할 때마다 빠져드는 감독의 백일몽을 통해 현재와 과거, 환상과 현실이 섞여들여오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모더니즘 양식으로 뛰쳐나간다. 하긴 스스로 광대였던 펠리니에게 자전영화란 애초, 서커스 무대 뒤 풍경을 찍는 것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찍기 얼마 전부터 정신분석 치료를 받으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욕망과 무의식의 중층에서 스펙터클을 발견한 펠리니가 서서히 동시대의 현실과 작별을 고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사티리콘> Fellini Satyricon l 1969년 l 138분 l 컬러페트로니우스 아르비테르의 동명소설을 기초로 만든 펠리니 최초의 역사물 <사티리콘>은 한마디로 막 나가는 영화다. 로마를 방문해 추문의 스펙터클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달콤한 인생>의 과격한 1세기 버전이랄까. 역사는 말뿐이고, 1세기 로마인을 화성인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펠리니의 말처럼, 역사라는 설정으로 현실과 최소한의 접점을 포기한 만큼 펠리니는 그로테스크한 인물들, 남색, 수간, 카니발리즘 등 1세기 로마를 금기는 존재하지 않는 억눌린 욕망과 꿈의 상징계처럼 그려 보인다. 기름진 장식과 과잉의 에너지로 충만한 이 바로크풍 풍속화 속에서는 역사와 판타지간 최소한의 구별마저 사라지고 없다. <달콤한 인생>에서처럼 로마를 서구문명의 환유로 사용했던 펠리니는, 68혁명 이후의 여러 정황을 정말로 심각하게 비관했던 것일까? 데카당스를 경고하면서도 오히려 매혹된 듯한 인상의 이 작업은, 그의 두 번째 역사물(?) <카사노바>와 함께, ‘펠리니스크’(Fellinisque)한 스펙터클의 정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여인의 도시> La Citta Delle Donne l 1980년 l 140분 l 컬러
초로의 바람둥이가 기차에서 만난 여인을 쫓다 우연히 페미니스트들의 집회장소가 열리는 호텔에 도착한다. 처음엔 이 여인천하가 잠시 자신이 꿈꾸던 낙원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곧 위협을 느껴 도망쳐 나온다. 그리고 이번에 도착한 곳은 1만명의 여인을 정복했다는 쇼비니스트의 성. 유머러스하게 전개되는 이 만화 같은 이야기는 초현실주의적이라거나 몽환적이라기보다는 아예 펠리니 자신이 꾼 꿈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애초 잉마르 베리만과 함께 구상하고 공동 작업할 생각이었다는 이 영화는, 실현되었다면 역사적 작품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다만 모욕을 느낀 페미니스트 진영의 악의에 찬 비난을 받아야 했다. 펠리니는 그 때문에 해명을 거듭해야 했지만, 그의 진짜 저의가 무엇이었든 칼 융과 정신분석에 깊이 경도되어 꿈과 환상, 기표와 상징을 더 전면에 내세운 노년의 펠리니를 보게 해준다.
김종연/ 영화평론가 il_volo@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