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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 관객, 한국영화의 빛과 그늘
2004-02-11

<실미도> 이전에는 1천만명 관객 동원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한 영화를 1천만명이 관람했다는 것은 실제로 극장을 찾을 수 있는 관객 중 두 명에 한 명은 영화를 관람했다는 얘기. 게다가 <튜브>, <청풍명월>, <천년호> 등 거대예산영화들의 참패가 이어지자 1천만 관객 시대가 이렇게 일찍 올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마자 <실미도>는 연일 기록을 경신했고 급기야 1천만 관객은 거뜬히 넘어설 태세다. 게다가 최근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의 초반 흥행세는 <실미도>를 압도하고 있다.

이제 '파이'는 1천만명 만큼이나 커졌다. 거대 예산 영화에 대한 투자는 한결 쉬워질 것이며 관객들의 한국 영화에 대한 호감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한국 영화의 관객 점유율도 한층 높아질 전망. 또한 국내의 '대박'은 해외 수출의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실미도>의 전국 1천만명 돌파를 놓고 환영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작은' 영화들에게 극장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이고 작품 자체보다는 마케팅의 물량공세나 배급 싸움이 흥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알맹이 없이 한탕만 노리는 영화가 넘쳐날 것도 걱정되는 일. 편당 수익률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대작 영화 제작 늘어날 듯

제작비 100억원을 들인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관객은 약 330만명. 지난 해 개봉영화 65편 중 330만명 이상을 동원한 영화는 <살인의 추억>, <동갑내기 과외하기>, <스캔들>, <올드보이>, <장화,홍련> 등 다섯 편밖에 없다. 하지만 1천만 관객의 '맛'을 본 충무로에는 <실미도>의 영광을 노리는 대작영화들의 제작이 이어질 전망이다.

올 한해만 해도 제작비 100억 규모의 <기운생동>과 60억 예산의 <역도산>, 90억 규모의 <태풍>, <바람의 파이터>(60억), <>(50억) 등의 제작 계획이 잡혀 있고 대작영화 수익성이 검증돼 투자자들이 늘어나면 이런 거대예산 영화의 제작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해외 시장 확대의 호기

지난해 한국영화의 수출액은 2천5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 해 1천 435만 2천 89달러보다 74% 가량 증가한 액수. 국내 영화의 연간 해외 수출고는 2000년과 2001년, 2002년 각각 전년에 비해 18.17%, 59.5%, 27.58% 증가했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국내 흥행 성공은 해외 수출 '대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해외 세일즈에서 자국 흥행 성적이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수출액의 증가는 예산의 설정 단계부터 국내 말고도 해외 시장까지 염두에 둘 수 있다는 의미다. 이미 지난 해 220만 달러(약 26억4천만원)를 받고 일본에 수출돼 해외 시장에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환수한 <올드보이>의 전례가 있다.

▲설자리를 잃고 있는 '작은' 영화

최근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 대작들이 스크린을 대거 점령하자 작은 영화들은 스크린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9일 현재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는 각각 452개와 220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며 둘이 합쳐 전체의 53% 가량을 점하고 있다. 따라서 이나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등의 영화들은 스크린을 잡지 못해 개봉을 연기했으며 다른 영화들도 전주에 비해 스크린 수를 대폭 줄였다.

'작은' 영화들과 '대작'들의 경쟁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엄청난 마케팅 비용.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마케팅 비용은 각각 27억원과 45억원 이상이다.

결국 1천만 관객의 대박 뒤에는 엄청난 수의 스크린 확보와 수십억대의 마케팅 비용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숨어 있었으며 다른 작은 영화들의 한숨이 섞여 있었던 셈이다.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개성과 작품성을 갖춘 영화가 설 자리를 잃고 극장가가 대작만의 경연장이 된다면 결국 상업영화의 토대마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는 일. 최근 영화계 일각에서 예술영화 쿼터제나 멀티플렉스의 중복ㆍ교차상영 금지의 제도화 등 배급 시장 불균형 개선 목소리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여전히 마이너스인 수익률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개봉한 한국 영화는 평균 4억 3천 100만원씩 손해를 봤다. 평균 손실률은 마이너스 10.7%. 결국 흑자를 본 영화보다 적자를 본 영화가 더 많다는 얘기다.

이중 7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의 손실률은 59.4%에 이르렀다. 결국 '대박'만 노리고 제작비를 키웠다가는 '쪽박'찰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말이다. 때문에 몇몇 '대박'영화의 성공을 보고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얘기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 예상

대작 두편이 연일 신기록을 세우며 관객들을 흡수해 내면서 올 일사분기 한국 영화의 점유율은 사상 최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힘을 얻게 되는 것은 스크린쿼터의 축소 주장.

따라서 한미투자협정(BIT)의 일환으로 스크린 쿼터 축소를 주장하는 미국측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끄러운 관객 집계

일부에서는 관객 수치 집계가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배급사의 발표에 의존하는 흥행 성적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관련 배급사 외에는 어느 정도 흥행이 잘되고 있다는 느낌만 있을 뿐 관객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 초부터 통합전산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관객수 집계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상당수 극장들의 참여하고 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한동안은 각 배급사들이 밝힌 수치가 관객 집계의 유일한 방법일 수밖에 없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