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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한국영화 2003] 정성일·김소영·허문영씨 좌담

소통 넓어진 호러·사극, 금기와의 대면 기념적, 그런데 ‘현재’는 어딨지?

2003년이 저문다. 한국 영화에는 좋은 소식이 많았던 해다. 시장점유율이 50% 가까이로 올라,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조폭 코미디 등 가벼운 기획영화의 흥행주도 현상이 시들해지면서 보다 완성도 높은 영화들에 관객이 몰렸다. 장르나 소재 모두 다양했던 올해의 화제작들에서 어떤 경향을 짚어낼 수 있을까. 또 이렇다 할 관심을 끌지 못한 영화 가운데 문제작은 없었을까. <한겨레>에 영화비평을 릴레이로 쓰고 있는 정성일, 김소영, 허문영 세 평론가가 지난 12일 한자리에 모여 2003년의 한국 영화를 정리하고 점검하는 좌담을 열었다. 세시간 반에 걸친 좌담에서 많은 말들이 오갔으나 지면 관계상 중요한 이야기들을 추렸다.

양식미, 금기시돼 온 소재, 동시대성의 빈곤

허문영=2003년은 한국영화에 있어 양식미를 대중들이 본격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한 첫해가 아닐까 싶다. 즉 전통적 드라마의 중심요소인 이야기와 캐릭터 뿐 아니라, 이를테면 호러의 미장센이나 조명, 뮤지컬의 노래 등 특정 장르의 양식적 요소가 대중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핍진성의 대중적 시장가치가 저하되는 징후로도 볼 수 있다. 있을 법한 이야기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영화가 젊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양식적 계기를 발견해 나가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같다. 사례로 호러 영화가 수적으로도 늘어났고 대부분이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에스에프나 누아르처럼 호러도 가장 양식적 장르에 속하고 소수의 마니아를 중심으로 소통되는 장르인데 올해는 메이저 장르로 보일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사극도 주목해봐야 하지 않을까. 영화에서는 <스캔들> <황산벌> 정도지만 텔레비전에선 <다모> <대장금> 등 젊은 문화소비층의 사극에 대한 소비가 폭발적이었다. 지금까지의 사극은 대체로 궁중 내 권력투쟁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었는데 이 작품들은 그 밖의 요소들, 액션히어로나 성적욕망, 음식, 미술같은 양식적으로 풍부해질 수 있는 요소들을 끄집어내면서 실제로 그랬을까를 묻지 않고 자기의 시공간을 만들어나간다. 이 지점에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왜냐면 많은 영화들이 역사적 체험이나 개인적 고통의 기억에서 출발하긴 하지만 그것과 정면대결한다기보다는 양식적인 틀로 도피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할 것같다.

김소영=올해 대중매체들이 웰빙을 강조했는데 이런 문화도 영화에서 웰빙이나 웰메이드, 장르적 조형미를 가진 영화들을 띄우는 데 한 몫 거든 것 같다. 주목되는 건 그런 와중에서 한편으로 익스트림 영화라고 할까, 다시 말해 이제까지 말해지지 못한 것, 타부시돼온 것들을 다룬 영화가 많이 나왔고 상당수가 흥행했다는 점이다. <살인의 추억> <지구를 지켜라> <올드보이> <아카시아> <장화, 홍련> <바람난 가족> <사인용 식탁>까지 개인적 트라우마나 근친적 욕망, 역사에서 해결되지 못한 것 등 말하자면 극한적인 것들을 다룬 영화들이다. 이중에서도 <지구를 지켜라>는 얘기를 파국까지 끌고간다. <올드 보이> <장화, 홍련>은 영화적 양식미를 갖추면서 트라우마들을 영화적으로 해결하는 쪽인데 반해 <지구…>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다. 거짓 화해도 하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완전 폭파시켜버린다. 나는 <바람난 가족>이 그 중간쯤에 있다고 봤다. 이 영화는 <지구…>처럼 파국으로 끝내지도 않고 <올드 보이>처럼 영화적으로 해결하지도 않는다. 영화적 결말과 현실적 결말의 협상 지점을 아주 잘 찾고 있다고 봤다. 이런 스펙트럼에서 보면 대중들은 개인적 트라우마나 역사적 상처와 직접적 대면하는 것보다는 영화적 해결을 훨씬 선호하는 것같다.

정성일=개인적으로 올해 서울에서 본 영화 중 최고가 뭐였을까 생각해봤더니 허우샤오시엔의 <밀레니엄 맘보>와, 텔레비전에서 본 차이밍량의 <지금 거기는 몇시인가>였다. 두 편은 동시대라는 시간, 즉 흔들리는 주체의 자리에 대한 고민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영화가 생각하는 시간은 무엇일까 하는 화두가 떠올랐다. 앞의 영화들에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시간성에 대한 성찰이 있었던 반면, 한국 영화들은 이미지로서의 시간이 아닌 이야기의 시간에만 매달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인의 추억>이 ‘농촌 스릴러’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의 방점은 농촌에 있다. 왜 농촌으로 갔어야 할까. 농촌으로 감으로써 80년대라는 시간에 대한 망각에 매달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만 흥미로운 건, 과거를 다룬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 반면 미래로 나아간 영화들은 끔찍할 정도로 흥행에서 버림받았다는 점이다. <지구…>나 <내츄럴 시티>는 대중들에게 버림받을 만큼 큰 실험을 한 것이 아님에도 실패했다. 미래의 시간에서 우리를 생각하는 것에 대해 대중이 반대하는 게 아닐까. 대중의 욕망이 말하자면 과거에 매달리고 싶어한다는 느낌이다. 공포 영화들 역시 시간의 정지상태, 진공상태를 다루면서 과거에 매달린다는 점에서 한국영화는 다가올 시간에 대해 의도적으로 눈감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공포 영화들은 도래할 시간에 대해 스스로 장님되기를 자처하거나 또는 다가오는 시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올드보이>에서 가장 이상했던 건 마지막 순간에 오대수가 왜 자기의 남근이 아니라 혀를 잘랐냐 하는 것이다. 남근을 자르는 것이 근친상간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일 텐데, 혀를 자른 건 망각에 대해 일정 정도 영화가 동조하는 것 아닐까. 공포영화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 ‘억압의 귀환’인데 귀환한다면 도대체 무슨 억압의 귀환인가. 이 모든 공포 영화들은 공포라는 말만 제외한다면 전혀 다른 계보에 속하기 때문에, 과연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묻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것이 억압의 귀환이 아니라, 김소영씨의 말처럼 유사 트라우마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억압의 귀환이 아니라, 대상의 상실에서 오는 공포가 아니라 결여를 나타내는 데에 실패한 불안의 영화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묻고 싶은 건 왜 불안한가. 한국의 시간은 대통령의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웃음) 노무현 대통령 이전과 이후로 말하고 싶다. 마치 베트남 전 끝나고 어떤 영화가 성공할까 했을 때 <조스>가 터졌고, 스필버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 영화가 베트남 이후 미국 대중의 정신상태에 대한 알레고리가 됐다면, 올해 한국 흥행작들은 노무현을 선택한 남한 대중들의 어떤 무의식의 알레고리로 표현된 것일까. 그게 올해 한국영화의 한 담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조스>의 경우는 사후적으로 읽힌 것이고, 아직 1년도 안된 <살인…>과 비교하는 건 좀 다르지 않을까. <살인…>이 사회적 불안의 반영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 영화가 일종의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있다고 봤다. 너는 그때 거기 있었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느냐에 대한 알리바이를 준다. 영화에서 피해자는 여자들인데 이들은 수렁에 시체로 박혀 있거나 언덕녀처럼 정신 나간 상태에서 산다. 그들이 전혀 발언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농촌 스릴러가 되는 것같다. 이 영화엔 또 애매한 시점 숏이 있다. 관객의 시점인데 그게 모호하고 무기력하다. 그건 역사인식에서 오는 무기력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 이야기가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과거의 알리바이가 필요한 것같다. 피해자들은 수렁 속에 있어야 하고 범인은 찾아지지 않고. 과거의 죄를 완전히 묻는 건 전두환식 망각이니까 반쯤만 묻는식으로 수렁에 박힌 시체나 언덕녀가 나온다. <살인…> 만큼 내게 영화를 만들고 싶은 충동을 준 영화가 없었다. 이 영화의 여자들을 다 깨워서 공포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말 좀 해보라고.

올해의 성취, <바람난 가족> <지구를 지켜라> <선택>

허=어차피 장르영화들은 자기의 시간에 충실하는 일 외에 현실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개입시킬 윤리적 사명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런 비판적 시각이 제기되는 건 장르 영화들이 실제 역사와 현실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끌어들이면서도 그것과 제대로 대면하지 않고 유사화해로 끝나지 않느냐는 생각 때문인 것같다. 그중에서도 김소영씨는 <바람난 가족>이 남다른 성취를 이뤘다고 했다. 정성일씨는 올해에 진전된 성취를 보인 영화가 없다고 보는가.

정=충무로 주류 영화들 중에선 못봤다.

김=<바람…>이 무인도 갈 때 가져가고 싶은 영화는 아니지만 협상을 잘 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며느리와 아들에게 튀는 건 장준환식 지구 폭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피가 다음세대를 물들이지만 아버지는 죽어야 되는 가부장제의 파국처럼 그려진다. 그 다음세대는 각자의 방식으로 협상하며 산다. 쥐어짠 면이 있지만 그런 점에서 임 감독이 도약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구…>의 파국도 의미가 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재앙으로 볼 수 있지만 협상지점을 너무 못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학교를 졸업한 학생의 작품 같은 느낌이 남는다.

정=<지구…>는 성취라기보다 예외적 출현이고, 장준환 감독의 발견이지 영화의 발견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바람…>은 김소영씨 의견에 공감이 가긴 하지만 동의하기는 힘들다. 영화를 보면서 부도덕의 일상화에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통해 부르주아의 삶을 붙잡은 면이 있지만 거꾸로 그것 때문에 삶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게 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아이가 던져질 때 영화가 끝난 것 같았다. 나머지는 결론으로 끼워맞춘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문소리가 아이 죽고 산에 오를 때 영화는 녹색 필터를 사용해 아주 과잉으로 찍었다. 윤리적 파탄상태를 보여주고 여자가 그걸 감당하는 장면인데, 영화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것같다. 그래서 윤리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고 보이진 않는다.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거기엔 동의한다. 녹색필터를 써서 찍었던 그 장면이 올해 한국영화의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저렇게 대담하게 찍다니, 김우형 촬영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허=현재와의 대면이라는 점에서 <바람…>이 올해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는 건 이론이 없을 것 같다. 98년에 데뷔한, 편의상 ‘98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감독들이 올해 대거 새 영화를 만들었고 흥행을 주도했다. 재밌는 건 모두 과거의 기억을 다루거나 아니면 현재를 다루면서도 현실이 공간으로부터 멀어진 곳, 일종의 판타지 공간에서 자기의 무대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김지운의 <장화, 홍련>의 무대, 박기형의 <아카시아>의 시간은 모두 현재이지만 고립적이고 장식적인 공간 안에 들어가 자기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하고 있다. <여고괴담>이 당대의 여고생의 현실에 대한 긴장을 유지했고 무대도 현실의 교육 공간이었는데, 이재용의 <스캔들>이나 99년에 데뷔하긴 했지만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도 그렇다. 반면 임상수 감독만 현재의 문제를 현실의 무대에서 다룸으로써 데뷔작이 고민을 확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나라의 영화가 어떤 진화과정을 걷는 과정에서 양식적 풍부함은 긍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당대의 문제를 잘 다룬 영화뿐 아니라 한국영화에서 그간의 약점이었던 것 중 하나가 형식에 대한 자의식의 결여라는 점이었다. 쉽게 ‘웰메이드 영화’라고 이야기되지만 적어도 세공술이 뛰어난 장르영화가 많이 나온 건 전체적 수준의 향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동의하면서 한마디만 수정을 부탁드리자면 형식에 대한 배려는 있으나 형식에 대한 자의식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우스개로 올해 새로 등장한 장르가 ‘명품 호러’와 ‘명품 사극’, 또는 ‘청담동 호러’, ‘청담동 사극’이라고들 말한다. 충무로의 이 자조적인 표현이 형식은 그토록 추구하는 데 자의식은 없다는 말이 아닐까.

허=정선생의 지적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지구…>가 탁월한 성취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영화에서 부재한 종류의 장르적 상상력을 한계까지 밀고 갔다는 점에서 그렇다. 백윤식이 외계인 왕자고 지구 파멸의 임무를 띤 인물이었고, 결국 지구가 파멸한다는 점만으로 일종의 해방적 설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올해 나온 다른 장르영화와 달리 지극히 누추하고 촌스런 미장센과 캐릭터로 가득하다. 또한 중간에는 70년대를 연상시키는 멜로적 요소까지 등장한다. 그 모든 요소를 망라하고 나서 그 모든 걸 무화시킨다. 우주를 스펙터클로 소비하지 않고 영화적 사유 안으로 끌어들인 이 상상력은 한국 영화의 장르가 진전했다고 말할 때 중요한 징표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영화에 대한 두분의 견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주장을 계속 하고 싶다.(웃음) 그리고 개인적으로 올해 중요한 성취를 꼽을 때 <선택>을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선택>은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나의 베스트 원이다. <선택>을 보면서 내가 최근 충무로의 웰메이드 경향에 대해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고 생각한 게 왜인지를 불현듯 깨닫게 됐다. <선택>은 모든 신, 대부분의 쇼트가 하나의 테마를 위해 달려가고 있다. 이 영화를 본 다음에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보니까 쇼트들이 잡다하더라. 없어도 되는 쇼트들을 장식으로 늘어놓고. <선택>은 그걸 다 치우고 모든 신들이 하나의 테마로 달려간다. 영화적으로 보면 빈약하고 황폐할지 모르지만, 그게 거꾸로 영화가 세상과 만나는 진정성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모든 담론이 웰메이드 영화를 추종할 때 <선택>은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우리가 질문했던 원래의 지점으로 돌아가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두번째로 오직 <선택>만이 과거의 시간의 무게를 하여튼 견디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개봉 여부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한다면 나에게 올해의 최고작은, <선택>처럼 장기수 문제를 다룬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타리 <송환>이었다. <선택>과 <송환>은 많은 제작자와 감독과 관객들이 웰메이드 영화에 매달릴 때 명품영화가 아니라 진품이 무엇이냐를 찾아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새로운 경향 <동갑내기 과외하기>, 그리고 장진영 박해일 정다빈

정=그 다음에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은 게 <동갑내기 과외하기>이다. 나는 이 영화가 몹시 당혹스러웠다. 이 영화의 대중적 성공이 굉장히 낯설었다. 새로운 영화가 왔다기 보다는 새로운 관객들이 도착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허=개인적으로 <동갑내기…>는 주목할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만화적 기법인데, <영어완전정복>에도 나오지만 거기선 너무 직접적이라 덜 흥미로웠던 반면 이 영화는 캐릭터 설정, 편집, 그리고 흐름 전반에 만화적 감수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보통의 기준으로 보면 말 안되는 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흥미로웠다. 그것이 처음에 말했던 양식적인 것, 즉 비로소 사람들이 양식적인 것에 매혹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돌아가 이야기할 수 있을 것같다. 이제는 이야기가 있을 법한 사건인가가 아니라 영화를 구성하는 갖가지 요소들이 나를 얼마나 매혹하는가 하는 양식들과의 대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동갑내기…> <옥탑방 고양이> ‘귀여니’가 하나로 링크되는 어떤 뉴(new)한, 또는 영(young)한 통속성인 것같다. 스타일의 양식화라는 면에서 새로운 통속성이 도착했다고 느낀 것은 김지운이나 이재용의 명품쪽이 아니라 오히려 이쪽에서 더 강하다. 단지 언어의 새로움만은 아닌 것같고. 우리는 어른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을지 몰라도 한국 대중영화의 새로운 도약은 거기에 준비돼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귀여니 소설을 읽다보니 김지운, 이재용, 봉준호는 너무 올드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암호 같아서 정말 힘들었고 <동갑내기…> 영화 보는 것은 지옥이었다. 내가 보기엔 하나도 안 웃긴데 관객들은 앉았다 일어섰다 난리였다. 영화 감상 태도가 이전엔 인터액티브였다면 이제는 인터미디어블한 것 아닌가. 완성도를 제외하고 새로움 만으로 본다면 올해의 가장 새로운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가 아니라 이 작품일 수있다. 그래서 <동갑내기…>의 성공에 대한 해석은 좀 더 긍정적, 창조적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웰메이드에만 집착하다 보면 영화가 전반적으로 올드해진다. 이러한 유치하고 영한 힘들을 중재하는 것도 대중영화가 지금 해야 할 역할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봤다.

허=<동갑내기…>나 <옥탑방…> 둘다 멜로드라마인데 주인공들은 트라우마에서 자유롭다. 심지어 계급적인 차이조차 사소한 취향의 차이와 다름없이 드러난다. 두 작품 모두 남녀의 계급차이가 크지만 계급적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노력해서가 아니라 주인공들에겐 그런 게 귀찮은 일일 뿐이다. 게다가 인물들이 노는 세상은 현실에 존재하는 무거운 정치사회적 사건의 개입에서 자유로운 자기만의 공간이다. 여기서 부정성과 긍정성 공존한다고 본다. 그런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극 속의 수평적 질서는 새로운 세대들이 보여주는 긍정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중압감의 부재가 주는 자기 성찰은 없다는 부정성이 있다. 그러나 그 캐릭터가 주는 해방성은 어쨌든 이전의 캐릭터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것임에는 틀림없다.

김=생각해보니 과외하기라는 서사구조가 임권택 영화에도 등장했듯이 오래전부터 남녀관계, 계급관계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구조이다. 멜로가 발생하고 계급상승도 일어나고. 그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가볍게 환골탈태한 것같다. 지금의 상대적 빈곤감·박탈감은 어느 때보다 심하다고 생각한다. 계급이 아니라 명품, 짝퉁으로 이야기되니까 그렇지, 옛날에는 선생과 제자의 결혼 등으로 정말 과외를 통한 신분상승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계급간의 차이를 넘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이건 그 어느 때부터 더 판타지인 것같다. 신분상승 드라마도 일어날 수 없는 사회의 판타지.

정=대중들의 관심은 스타에 있는데 올해의 얼굴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김=장진영.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와 비슷한데 훨씬 가볍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한국적이지도 않고, 아바타같은 캐릭터의 얼굴이다. 텅 비어 있는 얼굴. 이영애씨도 그런 느낌이 있지만 장진영씨는 정말 캐릭터같은 얼굴이라서 징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나 역사나 상처도 없고, 그렇다고 어린 것도 아니고. 가장 아름다워서라기 보다 매우 시대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전지현이 그 얼굴과 비교하면 어둠이 있어 보인다.

허=<살인의 추억>의 박해일. 흥미로은 건 이 인물에게서 대학생 이미지가 나온다는 점이다. 대학생인데 뭔가 쫓겨서 운동하러 공장으로 들어온 것같은 느낌을 준다. 80년대 억압을 영화가 말하는데도 억압을 빚어낸 장본인인 살인범이 그 시대에 억압과 맹렬히 싸운 대학생 이미지를 가졌다는 건 흥미로운 아이러니다. 영화가 그 아이러니를 더 밀고 나갔으면 훨씬 더 풍부해졌을 것같다. 박해일의 이미지에는 그런 식의 이상한 아이러니가 있다.

정=나는 영화가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정다빈이다. 남자와 동거해도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얼굴이다. 시뮬레이션 같은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 다른 배우가 나왔으면 안 통했을 것같다. 파워풀하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끄는 힘이 느껴지고 매우 시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 한겨레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