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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연극의 영화로 거듭나기,<오구>
■ Story

어느 날 낮잠을 자던 황씨 할머니(강부자)는 꿈에서 죽은 남편을 만난다. 죽을 날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꿈이라 여긴 할머니는 무당인 친구 석출(전성환)을 찾아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며 한판 굿을 부탁한다. 한편 할머니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 셋 가운데는 할머니의 죽은 아들 용택(김경익)도 끼어 있다. 용택은 석출의 딸 미연(이재은)과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겁탈당하는 미연을 지켜주지 못해 괴로워하다 자살한 남자다. 용택이 죽은 뒤 혼자 아이를 낳아 술집을 하며 어렵게 아이를 키우는 미연은 할머니를 위한 굿에 참가한다. 마침내 할머니가 죽고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죽은 남자 용택과 살아 있는 여자 미연이 다시 만난다.

■ Review

<오구>는 1989년 초연된 뒤 지금까지 270만 관객을 동원했다고 알려진 연극 <오구-죽음의 형식>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오세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등 여러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던 극작가 겸 연극연출가 이윤택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미 연극을 본 관객이라면 알겠지만 <오구>는 쉽게 영화로 옮기기 힘든 작품이다. 제목인 ‘오구’가 경상도 지역의 씻김굿인 ‘산오구굿’을 일컫는 말이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오구>는 기본적으로 굿과 장례를 배경으로 삼는다. 굿과 장례가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극적 행사라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연극과 유사한 성격인 데 비해 영화는 굿이나 장례와 별 인연이 없다. 영화 <오구>가 기본적 설정에서 연극과 같지만 세부적인 표현에서 상당히 다른 작품이 된 것은 당연하다. 연극이 죽음을 일상의 사건으로, 산 자를 위로하는 해학으로 그려내는 데 주력한 반면 영화에선 홀로 아들을 키우는 여인의 한이 부각된다. 죽음을 광대로 등장시킨 코미디가 연극의 테마였다면 영화는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졌던 남녀의 멜로드라마를 덧붙인다. 그렇다고 로맨틱코미디는 아니다. <오구>가 펼쳐 보이는 세상은 익숙한 영화적 관습에서 멀리 벗어난 매우 낯선 요지경이다.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보고 오해를 하는 이가 많겠지만 <오구>는 할머니를 시집보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구>의 중심에 있는 것은 할머니의 결혼이 아니라 할머니의 죽음이다. 여기서 죽음을 앞둔 할머니가 시집가는 각시의 차림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오구>는 죽음을 결혼처럼 즐겁고 유쾌한 일로 바라본다. 그것은 우스꽝스런 저승사자의 등장에서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알몸으로 마을에 도착한 저승사자 셋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죽음이 무시무시하고 어두운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뒤집으면서 영화는 삶의 싱그러움에 대한 찬가를 준비한다. 극 초반부에 마을 입구 평상에 앉아 화투판을 벌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그중 백미다. 난생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할아버지가 바지를 벗으며 열연을 벌이는 대목은 이윤택의 영화가 아니라면 보기 힘든 웃음을 전해준다. 죽음을 살아가며 벌이는 축제 중 하나로 보는 <오구>의 시선은 후반부 장례식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에서 봤던 것처럼 장례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코미디로 손색없다. 망자를 핑계삼아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삶과 죽음이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한 풍경이 <오구>가 그리는 한국적인 죽음의 형식인 것이다.

여기에 덧붙는 것은 굿과 장례식을 바라보는 제3의 시선이다. 그것은 저승사자의 시선이며 산 자에 대한 죽은 자의 염려다. <오구>에서 죽은 아들과 아버지는 어머니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승사자가 되어 돌아온다. 그중 아들 용택의 사연은 어머니가 기어코 굿판을 벌이길 고집하는 이유다. 사랑하는 여인 미연을 지켜주지 못하고 자살한 용택은 어머니의 초청으로 이승에 내려와 미연과 재회한다. 홀로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미연은 굿을 통해 용택의 어머니에게 며느리로 인정받고,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시어머니가 됐을 황씨 할머니는 마지막 선물로 용택과 미연의 만남을 이뤄준다. 하지만 죽음이 끝은 아니다. 저승사자 셋 가운데 한명은 할머니의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용택의 조카가 되기로 결심한다. 저승사자의 등장으로 막을 올린 <오구>는 새 생명의 탄생으로 막을 내린다.

안타까운 것은 <오구>의 블랙코미디와 멜로드라마가 유기적인 결합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오구>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연기의 패턴은 지극히 양식적인 것에서부터 몰래카메라로 찍은 듯한 것까지 고루 퍼져 있다. 그중엔 절절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도 있지만 영화 전체로 보면 어수선하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미연 역의 이재은이 <오구 대왕풀이>를 부르는 장면이나 용택의 형수(정동석)가 장례 도중 아이를 낳는 장면이 예측 불가능한 감동(혹은 폭소)을 끌어내는가 하면 주인공 황씨 할머니나 무당 석출의 캐릭터는 모호하게 처리된다. 예를 들어 굿을 반대하는 마을 주민과 황씨 할머니의 갈등 같은 대목은 드라마의 맥락을 헷갈리게 만든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데 욕심을 덜 내고 이야기를 더 다듬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한마디로 <오구>는 불균질한 영화다. 아주 뛰어난 표현과 거칠고 서툰 수법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런 <오구>의 매력과 단점은 장진의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이 그랬던 것처럼 연극에서 영화로 가는 길목에 놓인 통과의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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