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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제왕,영화배우 최민수 [2]
이영진 2003-08-01

#5. 연기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 비해 배우 최민수가 점유한, 그리고 90년대 한국영화가 그에게 허락한 영역은 넓다고 보긴 어렵다. <테러리스트> <유령> <리베라 메>로 대표되는 강한 남성의 이미지, 반대로 <결혼이야기> <미스터 맘마> 등에서 보여준 ‘대발이’식 코미디. 그가 보여준 것이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상업적인 장르영화의 틀 안에서 그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던 것일까.

연기에 대한 욕심을 상업영화의 룰에만 쏟아부었는데. 관객이나 평자들 중에 최민수가 하면 60밖에 못한다고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입장에선 애초 20밖에 안 되는 것을 끌어올렸을 수도 있어요. 전에 임권택 감독님이 <백치 아다다>를 제의하셨는데, 세상을 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못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건방지게.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그때부터 했다면 탄탄한 연기자로 인정을 받았을 텐데 그건 내가 찾은 게 아니라 배운 거니까. 전 전수한다, 승계한다 하는 말들이 참 무서워요. 그건 일방적인 지식일 뿐인데.

혹시 배우가 카메라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적 흐름 안에 스며들어야죠. 배우 혼자서 나대는 건 하는 입장에서도 지겨운 일이에요. 니가 그러지 않았냐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제 입장에서도 그건 바라는 게 아니었죠. 세팅이 안 된 상황에서 앵글 앞에 나서야 했던 때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대근 선생님도 그런 케이스잖아요. 천재라 할 만한 분인데 주위에서 안 받쳐주니까. 물론 비판은 비판으로 새겨들어요. 집에서 유성이 엄마도 간간이 모니터 해주는데 내 연기 보고서 성을 쌓는 것도 좋은데 가끔은 열려 있으면 좋겠다고 그래요. 전 그러면 나도 그러고 싶다고 해요. 근데 성 열쇠를 바다에 빠뜨려서 잃어버렸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해서 그렇지. 흐흐하.

연기론이 있다면. 주문진의 한 식당에서 매니큐어 독이 오른 손을 불어가며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쩍쩍 갈라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식당 아주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그게 가슴에 박히는데. 최상의 연기도 어쩌면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청풍명월>에서 대사없이 3∼4분을 가더라도 드라마가 읽혀지는 연기. 무엇을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버려야 하는 연기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지금 뭐라 하긴 그렇고, 현재 난 어쩌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는 것 아닌가 보여져요.

#6. 최민수는 자신에게 냉혹하다. 스스로 몸뚱이 관리 못하는 것 같으면 자신이 용서가 안 된다고 말할 정도다. 정지영 감독의 <블랙잭>을 찍을 당시, 그는 갈비뼈가 두대나 부러졌지만 촬영을 강행했다. 깁스를 못하는 부위라 완치하려면 두달이나 걸리는 중상이었는데, 그는 진통제 맞고 이틀 동안 참고 다 찍었다. 연기생활하면서 눈에 다래끼 한번 난적 없도록 몸관리 했다는 완벽주의자, 그는 혹시 괴물 아닌가.

촬영장에서 사고가 많았을 텐데요. 액션장면도 많고. 많죠. 뼈 부러진 건 벌써 7∼8번은 돼요. 그래도 아프다고 쓰러질 수 있어요? 스탭들은 한 장면 찍겠다고 앞뒤로 준비하고 정리하고 그러는데. 사극은 특히 그래요. 그러니까 제 몸뚱이 관리를 잘해야지. 그게 내 불찰 때문이라고 판단이 서면 제 자신이 용서가 안 돼요. 제가 지금까지 갖고 있는 마인드인데. 밥도 배부르게 먹으면 날 통제 못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빠요. 담배도 현장에서 많이 피우잖아요. 그러면 내 자신을 혼내요. 담배를 일주일 동안 못 피우게 한다든가. 뭐 그런 식으로 냉혹하게 나를 다루죠. 숙소에 링거 준비 다 해놨는데 맞을 수가 없어요. 이거 맞고 자면 못 일어날 것 같아서. 긴장 늦추면 쓰러지거든요.

지나치게 꼼꼼하다는 말도 있는데요. 배우로선 모든 조건이 충족되면 좋죠. 그런데 배우가 이것도 찾아야 하고 저것도 찾아야 하고 그러게 만드니. 특히나 현장에서 ‘없으면 다른 걸로 커버해서 찍자’, 그러는 소리가 나오곤 하는데 그건 내가 용납할 수 없는 징그러운 장난들이에요. 나보고 완벽주의라고 하는데. 노. 그게 어떻게 완벽주의가 될 수 있어요. 기본을 하자는 거지. 내 입장이 아니면 ‘재는 왜 저렇게 맛탱이가 가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 입장에선 그렇게 해야 해요. 힘들어 죽겠는데도 한번 더 가자고 해서 갔는데 모니터 봤더니 원하는 대로 안 나오면 속이 턱 막히기도 하지만.

요즘 감독들 중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분이 있나요. 음… 아마, 학교 후배일 텐데. 2년 후배던가. <장화, 홍련> 찍은 김지운인가 하는 친구. <반칙왕> 봤는데 캐릭터라든지 리듬이라든지 잘 살리고 있더라구요. 안 놓치고. 강호가 마스크 쓰고 있다가 아부지한테 두들겨맞는 장면도 좋고.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 같아요. 감독이. 박자 개념이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 범상치 않은 연출감각이에요. 반대로 <나쁜 남자> 만들었던 감독의 작품은 좀 꺼려져요. 인간의 추함을 지나치게 극화하는 것이 좀 걸리거든요. 물론 감독 개인이 싫거나 나쁘다는 건 아니고.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는 거예요. 누군가 내게 저 새끼는 연기가 껍데기야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데 좋은 영화 봐도 감독들이랑 편안히 만나서 이야길 잘 못해서. 워낙 최민수에 대한 선입견이 굳어져 있을 것 같기도 하고.

#7.최민수에게 ‘모델’은 없다. 로버트 드 니로나 알 파치노를 그는 ‘존경하는 배우’라고 부르는 대신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파트너’라고 강조한다. 연기 색깔이 예쁜 공리도 그가 언젠가는 한번쯤 함께 영화를 찍고 싶은 배우 중 한명이다.

최민수식 연기에는 눈빛이 꽤 비중이 크잖아요.

알 파치노나 로버트 드 니로 같은 시실리쪽 배우들처럼 우리나 일본 배우들도 눈빛 장악력이 크거든요. 할리우드 배우들의 초록색 눈빛은 좀처럼 강한 감정을 뿜기 힘들어요. 그건 눈을 부라린다고 되는 건 아닌데. 물론 언론에서 매번 내 연기를 두고 하는 말이 어깨에 힘이 빠졌다, 눈에 힘을 뺐다 뭐 이러고 쓰는데 해석이 참 빈약하다 싶을 때가 있어요. <청풍명월>에서 좀 아쉬운 건 (조)재현이한테도 눈빛이 너무 강하지 않니 그랬는데. 원래 재현이가 맡은 규엽이라는 역할은 제가 상상하기에는 새하얀 선비 같은 모델이었거든요. 부초처럼 살았지만 눈썹도 손도 하얀 그런 사람. 대신 비장의 칼을 지니고 있다가 슥 베어버리는 감정이 없는 인물. 그런 이미지가 규환(규엽?????)을 만나 주춤거리고 깨져나가고 해야 대비가 된다 싶었는데. 뭐, 본인의 판단이니까, 뭐라 할 수 없지만 좀 아쉬워요. 아,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는 너무 좋아요. 눈빛 하나로 숨결 하나로 공포를 보여주니까.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가나요. 어떨 때는 대본을 펼치지 않은 상태에서 배역을 느끼고 싶을 때는 무형의 존재하고 이야길 해요. 미친놈처럼 에헤헤헤 하는 건 아니고. 대사 외우기보다는 이 캐릭터에 맞는 어울릴 만한 음악을 듣기도 하고. <백야 3.98> 할 때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띠리링’ 하는 음악 들었고. <유령> 할 때는 <한오백년>이나 오래된 퉁소소리 같은 거 듣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과연 그들이 가고 싶었던 곳은 어디였을까 떠올리기도 하고. 꿈을 통해서도 캐릭터를 느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유성이 엄마한테도 잠꼬대 한다고 핀잔듣기도 하고.

앞으로 뭐 할 거예요. 미래 계산은 안 해요. 데뷔 때부터 앞으로 뭐 할 거다 한 적도 없었고. 이번 작품 끝낸 지도 얼마 안 됐잖아요. 소중한 친구 아니 애인을 떠나보냈는데 곧바로 채울 순 없잖아요. 작품 만나는 것이 운명이니 어쩌면 평생 못 만날 수도 있지 않겠어요? 배우가 직업이 아니라 인생이 직업이니까. 아. 이런 건 있어요. 최민수라는 아이, 정상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지금 보면 전구 갈아끼우는 것도 못해요. 오죽했으면 주민등록증을 안 만들고 사니까 동사무소에서 직접 와서 해줄게 하더라고. 어렸을 때는 어른 되면 하겠거니 했던 것들인데 못하더라고. 그런 일은 외면하고 살았는데, 그래도 이제는 하려고 해요. 배우가 뭔데, 네 인생이 뭔데, 이젠 남들 다 하는 거 너도 좀 해야 하지 않겠니 싶어요. 이번에 캐나다 가서도 설거지도 하고 그랬어요. 오늘은 제 넋두리만 한 것 같네요. 배우가 말 많으면 안 되는데. 연기가 모자라서 말로 채운 거 아닌가 몰라. (웃음)

아, 그런데 혹시 최민수 시리즈 중에 알고 있는 것 있어요. “니네가 마시는 건 술이고, 내가 마시는 건 인생이야.” 제가 현장에서 술먹는 거 되게 싫어하는데 <백야 3.98> 촬영 때 새벽에 (신)현준이하고 (이)병헌이하고 술 먹고 온 거예요. 술 마셨냐 했는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예 하기에, 술 마시지 마라고 했어요. 그러고나서 며칠 뒤에 또 마신 거야. 근데 그날은 나도 현장에서 한잔 했거든요. 근데 얘들이 그 정보를 듣고 온 거지. 그래서 내가 딱히 할말이 없어서 그런 건데. 여기저기서 회자되는 바람에. 하하. 제가 굉장히 고딕적이고 강한 이미지로 알려졌잖아요. 근데 그런 유머를 통해서 어떤 아버지 같은 인물에 대한 애증을 드러낸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런 식의 유머시리즈가 박정희 대통령한테 가해졌다면 혹시 알아요. 정치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었을지. 글 이영진·사진 정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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