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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정성일이 말하는 장철과 그의 순결한 사내들 [1]
권은주 2003-07-04

張徹‘武俠-功夫’電影, 熱血心醉十代少年 我的莫無可奈告白談(장철 무협공부전영, 열혈심취십대소년 아적막무가내고백담)

장철의 무협영화에 바치는 피끓는 십대소년의 막무가내 고백담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말하는 장철과 그의 순결한 사내들

영화애호가라면 누구에게나 세상을, 영화를 알게 한 영화가 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에겐 장철의 영화가 그랬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장철의 영화가 온다는 사실에 흥분한 그가 자신의 소년기와 함께했던 장철 영화의 추억을 절절한 글로 옮겼다. 장철의 시대를 아는 사람이나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장철의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참지 못하게 할 진심의 기록. - 편집자

글 정성일/영화평론가

이 글은 은밀하게 읽혀야 한다. 나는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가득 찬 이 글을 통해서 당신에게 장철(張徹, Chang Cheh)의 영화세계를 분석하고, 설명하고, 이해시킬 생각이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장철 영화가 무협영화를 빙자한 퀴어시네마라는 말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 혹은 그와 호금전을 비교하는 것은 내게 쓸데없는 일이다. 또는 호금전이 이백의 시의 흥취를 빌려온 만큼 장철의 무협영화가 두보의 시를 빌려왔다는 말은 내게 하나마나한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장철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이성을 잃고 오로지 열광적인 숭배와 홀린 듯 한 추억에 잠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글은 오로지 나(와, 그리고 나와 함께 삼류극장에서 남 몰래 장철의 쇼 브러더스 영화에 심취했던 나의 동세대)를 위해서 쓴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홍콩영화는 결국 장철의 영화들이다. 나에게는 이소룡이 등장하는 순간 홍콩영화와의 밀애는 사실상 끝장난 것이었다. 이소룡의 영화들은 내게, 더이상 홍콩영화만의 그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aura)이 다 증발되어버렸다는 뜻이다(고등학교 1학년 때 본 <용쟁호투>는 정말 한심하고 따분한 제임스 본드 쿵후영화였다). 그러니 제발 부탁인데 내 앞에서 이소룡으로 홍콩영화를 시작하신 분들은 그냥 침묵을 지켜주기 바란다. 혹은 성룡과 오우삼의 세대는 내게 포스트모던해 보이신다!(그냥 쉽게 말하면 홍콩영화 열혈 ‘고전’ 애호가의 시뮬라크라 같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말이 당신을 격분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 수 없다. 홍콩영화 ‘체험’은 내게 일종의 원풍경(原風景)이다.

당신은 웃으실지 모르지만 지난해(사이트 앤 사운드의 앙케트를 통해) 영화사상 10편의 걸작을 뽑는 자리에서 쿠엔틴 타란티노가 (정창화감독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뽑은 것을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넌 아직 멀었어”라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타란티노는 (내 생각에) 홍콩영화의 진수를 알지 못한다. 또는 너무 늦게 시작하였다. 물론 나는 장철의 모든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의 꼭 100편에 이르는 필모그래피 명단에서 내가 본 영화는 고작 32편에 이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영화와 함께 나의 가장 좋은 시절을 보냈다. 또는 내게 가장 행복한 시절의 기억이다. 그러니 마치 십대 소년처럼 열띤 흥분에 사로 잡혀 쓴 이 글을 당신께서는 귀엽게 따라오시기 바란다.

결국 팔은 잘려나간다. 운명처럼

내가 생애에 가장 처음 본 홍콩영화는 장철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영화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건 과장이 아니라 정말이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4월에 (이제는 사라진) 미아리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그때까지 내 생애의 최고 걸작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였다. 부모님은 내게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영화들만을 ‘엄선’해서 보여주었고, 나는 그런 영화들만 있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무협소설에 심취하였던 내 악동친구는 나를 끌고 어두컴컴한 영화관에 나를 데려갔다(당신은 거의 믿을 수 없겠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부모 없이 영화관에 왔다가 선도교사에게 걸리면 정학처분을 받았다). 그해가 1968년이었다. 파리에서 학생혁명이 벌어지기 한달 전 열살이었던 나에게 그렇게 혁명적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의 은밀한 ‘자화자찬’ 기록 중 하나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를 본 이후 1980년 5월까지 한국에서 개봉한 모든 홍콩영화(와 합작영화)를 단 한편(!)도 빼놓지 않고 모두 보았다는 사실이다(그해 나는 군대에 갔고, 제대 이후 전처럼 모든 홍콩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그건 정말 맹세코 사실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보았고, 상영하는 영화관을 절망적으로 찾아다녔으며, 내가 서울 시내 지리를 잘 아는 것은 순전히 영화관을 찾아 헤매느라 익힌 지리감각이다.

장철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를 보던 날은 나에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난 하루이다.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이 영화가 나를 ‘질리게’ 만든 장면은 결투장면들이 아니다.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세트장의 숲. 여기서 방강(왕우)은 사부의 딸과 말다툼이 벌어진다. 사부의 딸은 마음속으로 방강을 좋아하지만 방강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부의 딸은 그만 그 마음에 화가 나서 칼을 내리치고, 당연히 피할 줄 알았던 방강은 그것이 그저 장난인 줄 알고 웃으면서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은 채 서 있다가 그대로 오른팔이 잘려나간다. 그 순간 보는 나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하얀 눈 위에 오른팔이 뚝 떨어지고, 순식간에 방강은 피범벅이 된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팔을 자른 사부의 딸이 별로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별로 미안해하지 않는 표정의 그 얼굴을 나는 이상하게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독비도>

그것은 내게 의식적으로 다가온 첫 번째 클로즈업이다. 나는 그 순간 영화에서 클로즈업을 발견한 것이다. 저 찰나적인 순간의 얼굴에서 보여주는 이상한 담담함이 나에게는 기괴한 쇼크를 안겨주었다. 그러고 나면 거의 표현주의영화와도 같은 세트장의 눈 내리는 숲속을 헤매면서 잘린 한쪽 팔의 철철 흐르는 피를 움켜지고 방강은 분노와 회한에 가득 차서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간다. 그리고는 다리 위까지 걸어간 방강은 거기서 거꾸러지듯이 물 위로 떨어진다. 나는 이 영화에서 여기까지의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진짜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나면 사실상 후반부의 결투로 점철된 장면들은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매우 잔인한 이야기지만, 집에 돌아온 나는 내내 그 팔이 잘려나가는 순간의 클로즈업이 떠올랐다. 그리고 사무치게 그 장면이 다시 보고 싶었다. 나는 그 이전까지 같은 영화를 두번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나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거의 홀린 듯이 영화관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미 피리 부는 소년에 이끌려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쥐처럼 오직 그 장면을 보아야 한다는 일념에 불타고 있었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는 내가 같은 영화를 두번 보기 시작한 첫 번째 영화이자,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 첫 번째 영화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같은 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내가 놀란 것은 바로 어제 본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놓친 장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었다. 혹은 내가 줄거리를 오해한 대목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볼 때 비로소 나는 줄거리와 주인공으로부터 해방되어 정말 자유롭고 즐겁게 영화의 화면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제 주인공이 어떻게 될 것인지 더이상 마음을 조리며 조마조마하게 다음 장면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결국 팔은 잘려 나갈 것이다. 수백번을 보아도 그 대목이 오면 어김없이 방강은 매번 오른팔을 잃을 것이다. 그것이 방강의 운명이며, 영화의 영겁회귀이다. 그러니 나는 죄책감 없이 그 팔이 잘려나가는 장면을 즐기면 된다.

끝까지 가는 잔혹함, 그로테스크한 비장미

나의 영화관 순례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왕우(王羽)가 나오는 영화는 모두 보았다. 그러나 곧 모든 왕우 주연영화가 좋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걸 알게 된 것은 10편이 넘어서였다. 왕우는 정말 많은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그는 내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이번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오지 않은 통탄할 만한 명단 중의 하나인) <대협객>를 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좋아한 영화는 왕우 주연의 영화가 아니라 장철 감독의 영화였던 것이다. 이 영화는 사실상 검술장면이 거의 없다. 그러니까 검술장면을 보기 위해서는 마지막 10분을 기다려야만 한다. 하지만 그 장면을 만나는 순간의 숨이 멎을 듯한 황홀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절세의 무술을 지닌 주인공은 난세 속에서 자신의 무술을 숨기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를 찾아온 충신의 무리들은 애절하게 간청한다. 오직 그만이 혈혈단신으로 성에 들어가 왕의 자리를 빼앗은 간신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임무를 완수하는 순간 성에서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말 그대로 ‘單刀直入’으로 성을 찾아가 마지막 10분 동안 수백명의 무사의 호위 속에 몸을 감춘 간신을 처단하고 수백개의 창에 찔려 죽는다. 이 순간의 저 장렬함은 차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숭고한 지경에 이르고야 만다.

그리고 ‘마침내’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심야의 결투>를 만나게 되었다. 그해에 두편의 장철 영화가 등장하였는데, 다른 한편은 <돌아온 외팔이>이다. 물론 <돌아온 외팔이>는 걸작이다. 대나무숲에서의 대결장면은 훗날 호금전의 <협녀>에서의 대나무숲 장면과 ‘맞장 뜰 만’하며, 특히 마지막의 거대한 물레방앗간 염색공장에서의 저 처절무비의 대결은 진짜 황홀하다. 하지만 나를 거의 미쳐버리게 만든 것은 <심야의 결투>이다. 나는 이 영화를 그해 추석 일요일 4회 중간부터 보았다. 그때 즉시 깨달았다. 이건 내 생애의 걸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금연자>

무림에서 은퇴한 금제비를 다시 불러내기 위해 그녀를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은봉황은 가는 곳마다 악당들을 남김없이 무자비하게 사살하고, 그 자리를 불태우고, 그런 다음 금제비의 표시를 남기고 떠난다. 이제 복수를 하려는 악당들은 금제비를 찾아가고, 어쩔 수 없이 금제비는 무림에 다시 출두한다. 장철은 여기서 거의 끝까지 간다. 하얀 옷을 입고 이마에 상처가 난 은봉황(왕우)는 거의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그 모든 감정으로부터 초월한 듯한 무표정의 그가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연약한 감정을 숨기고 수십명의 악당들이 우글거리는 성채와 무덤에 혈혈단신 들어가서 그들을 그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모조리’ 죽인다. 그는 정말 이상한 주인공이다. 그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는 악당들보다 더 악당이다. 그가 숲길을 접어들어 오솔길에서 달려드는 수십명의 악당들을 걸어가면서 모조리 죽이고 나서, 그는 기나긴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그 계단에서 다시 달려드는 수십명의 악당들을 태연자약하게 죽이면서 걸어올라간다. 물론 여기서 방점은 ‘걸어올라가는’ 그 느린 속도감이다.

하지만 진짜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드디어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거의 기가 막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금제비를 사랑하는 또 한명의 남자(로례)와의 대결에서 은봉황은 나무에 숨어 어부지리를 보려는 악당을 눈치채고 경공술로 날아 그를 처치한다. 그러나 그를 공격하려는 것으로 착각한 남자는 그의 무기인 철봉(말 그대로 쇠몽둥이!)로 하늘을 날아오른 은봉황의 배를 찌른다. 그리고 그만 찔린 채 하늘을 날아오른 은봉황은 그 철봉을 배에 꽂고 부러뜨리면서(!) 나무 위의 악당을 처치한다. 은봉황은 그의 죽음을 보이고 싶지 않아 남자와 금제비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은봉황을 애처롭게 끝까지 따르는 기방의 규녀가 옆에 머물 따름이다.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여기에 악당들이 찾아와 온갖 무기로 무장한 채 배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은봉황을 공격한다. 이제 그에게 숲속의 이 작은 세트장은 도망칠 수 없는 폐소공포증으로 넘쳐난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무지비함을 기억한다. 인간의 육체가 지닌 나약함과 죽음에 대한 기괴한 유혹, 기어이 몸을 뚫고, 찌르고, 쑤시고, 자르고, 난자하는 지경의 마지막에 이르면서 내가 본 것은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끔찍한 아름다움이다. 거기에는 정말 바로크한 비장미가 넘쳐흐른다. 또는 영웅의 초월주의와 자아의 오르가슴이 기묘하게 얽혀들고 있다. 장철에게서 검술 대결은 죽음을 즐기는 일종의 섹스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마치 있는 힘을 다해서 섹스를 하고 사정한 다음 다시 한번 그룹 섹스를 하는 것 같은 처절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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