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공포 맛봐달라"
김지운(39) 감독은 90년대 말 데뷔한 일군의 30대 감독 중에서도 두세 손가락 안에 꼽을 유망주이다. <조용한 가족>(1998년)에선 장르를 변주하면서 자기만의 색채를 빚어내는 개성을, <반칙왕>(99년)에선 드라마를 잘 엮어내는 이야기꾼의 재간을 드러냈다. 4년만에 내놓는 장편 <장화, 홍련>은 무엇보다 김 감독의 세번째 영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장화, 홍련>은 최근 몇년 동안 쏟아져나온 한국 공포영화 중에서 완성도가 단연 앞선다. 그러나 김지운 감독에 대한 기대치를 가중치로 적용하고 나면, 평가가 갈릴 것 같다. 완성도에 대한 평점뿐 아니라, 김 감독 스스로 “특별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든 별미라고 생각하고 맛을 봐달라”고 말하듯 이 영화의 남다른 요리법이 입맛에 맞느냐는 취향의 문제도 작용할 것이다. 일부러 반대편에 서서 김 감독에게 따져묻는 공격성 질문들을 건넸다.
영화 만들기 전에는 원작을 마구 훼손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영화 안의 설정은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다할 재해석이 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겠다.
원작을 읽을 때 인물들의 죄의식이나 죄책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놀라웠다. 고대 소설에 그런 게 많지만 너 죽어줘야 해, 쉽게 죽고, 정신적 회의가 없이 단순한 선악으로만 묘사하고 있었다. 마음의 죄의식, 마음의 공포를 살려내려고 했다. 그래서 스토리라인보다 감성과 아우라를 중시했다. 공간이나 가구, 오브제에서 오는 감성을 살리고, 대사로 감정을 전달하기보다 미묘한 분위기의 흐름으로 끌고가면서 그 운동량과 방향을 잡아내고. 내러티브 위주로 갔거나, 설명에 더 충실했다면 더 ‘웰메이드’가 됐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재료도 틀리고, 조리법도 틀리니까 맛도 다른 맛을 느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왜 쇠고기 맛이 안 나느냐, 그러지 말고.
새엄마 은주는 비난받아 마땅할 행동을 한다. 옛부터 나쁘게 여겨온 계모상을 답습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가부장적인, 바보같은 남성상인 아버지 밑에서 은주와 큰 딸 수미 사이에 피해자로서의 연대감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여성관객이 있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여자들은 모두 귀신의 공포에 시달린다. 감성이 살아있고, 그래서 죄의식에서 자유롭지 않은 거다. 아버지에겐 귀신이 안 나온다. 반성 안 하는 이에겐 귀신도 안 나올 것이다.
놀래키는 공포 보다 슬프고 아름다운 공포를 찍겠다고 했다. 그런데 공포스런 장면에선 카메라가 먼저 심상치 않아지고 음향이 깔린다. 놀라게 하는 큰 음향도 동원된다.
귀신이 나오는 장면을 아름답게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강한 공포감을 주려고 했다. 최대한 무섭게 보여주고 싶었다. 놀래키는 것뿐 아니라, 공포의 강도와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다. 음향은 많이 쓰지 않았다. 다른 공포영화와 비교하면 되레 조용할 거다. 그리고 밝은 아침에 나오는 귀신은 이제까지 없었다. 그건 굉장한 모험이었다.
영화를 통해 발언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같다.
내 안에 여성성도 있는 것이고, 이런저런 물건 고르는 재미를 느끼고, 거기서 감각을 느끼면서 내가 편안하고 충만해진다. 이 영화도 그렇게 가려고 한 거다. 내 안의 그런 부분을 많이 살린 거다. 큰 모순은 소통이 되는데 작은 모순들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보통 영화들이 내러티브를 짤 때 빼지만 나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아버지가 수미의 친엄마가 병을 앓고 있을 때, 은주와 함께 쇼핑하고 집에 오는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의 그 행동을 보면서 수미 자매는 더할 나위 없이 속이 상할 거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심하게 지나친다. 그때 아버지에게 다가서면서 카메라 렌즈만 바꿔 끼는 실험을 했다. 이런 게 왜 발언이 아닌가.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