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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보다 더 빛나는 할리우드 조연 12인방 [4]
박혜명 2003-06-05

그러니까 그는

나치옷 입고 난초를 캐도 어색하지 않을 사람

크리스 쿠퍼 Chris Cooper

1951년생

주요작

1987 <메이트 원>

1991 <꿈꾸는 도시>

1993 <이 소년의 삶>

1995 <머니 트레인>

1996 <론 스타>

1999 <아메리칸 뷰티>

2002 <어댑테이션>

크리스 쿠퍼에 대해서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질문으로 끝나기 쉽다. 50살이 넘어 이제 막 노년의 길목에 접어들고 있는 이 배우에게 사람들은 아직도 존함이 어떻게 되시냐고 묻는다. 어떤 영화에 출연했었냐고 묻는다. 사실상 스파이크 존즈의 <어댑테이션>에 존 라로쉬로 출연해 2003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기 전까지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의 출연작을 기억하는 사람도 적었다.

12년 동안 연극무대 위에서 살아오던 그가 영화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할리우드의 양심 존 세일즈가 1987년에 만든 영화 <메이트 원>에서였다. 거기서 크리스 쿠퍼는 노조의 지도자 역할을 했다. 평단에서는 반기는 배우였지만, 대중에게는 인지도 없는 배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그는 존 세일즈의 영화 <꿈꾸는 도시> <론 스타>에 공사현장의 주임과 아버지 살해사건을 추적하는 보안관으로 출연했다. 존 세일즈의 영화처럼 그의 연기도 요란을 떨지는 않았다. “내가 그 배역들을 선택하는 것인지 그 배역들이 나를 선택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고백은 그런 점에서 믿고 싶어진다.

그뒤 <머니 트레인> <타임 투 킬> <위대한 유산> <호스 위스퍼러> 등에도 출연했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은 외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희미한 기억의 부재가 대중의 탓이 아니라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사실이 이제는 확연해졌다. 그러니까 <아메리칸 뷰티>의 해군 장교 출신 나치주의자이며 게이인 엄격한 아버지와 <어댑테이션>에서 앞니 빠진 모습으로 열정을 강의하는 말라 비틀어지기 일보 직전의 난초 수집가 존 라로쉬는 같은 사람, 크리스 쿠퍼인 것이다. 실감이 되시는지? <어댑테이션>의 감독 스파이크 존즈가 크리스 쿠퍼를 두고 “해리슨 포드 종류의 배우”라고 설명한 것은 변화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에 대한 지적일 것이다. 크리스 쿠퍼는 종종 그렇게 눈앞에서 사라진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장, 머리색만 바꿨을 뿐인데도 카메라맨은 “크리스 쿠퍼는 도대체 어디 간 거야?”라며 그를 눈앞에 두고 찾았다. 그에 대한 질문들은 당분간 계속될 듯싶다. 정한석 mapping@hani.co.kr

그러니까 그는

잊기 힘든 얼굴, 더 잊기 힘든 존재감을 가진 배우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Pete Postlethwaite

1945년생

주요작

1992 <라스트 모히칸>

1993 <아버지의 이름으로>

1995 <유주얼 서스펙트>

1996 <브래스드 오프> | <로미오와 줄리엣>

1997 <쥬라기 공원2-잃어버린 세계>

1997 <아미스타드>

2001 <쉬핑 뉴스>

인디언 계열의 피가 흐르지 않을까 싶은, 그렇지 않더라도 굵은 광대뼈와 큰 코 덕분에 쉽게 잊을 수 없는 첫인상을 남기는 영국 배우, 피트 포스틀스웨이트. 인상과 반대로 이름은 외우기 수월찮다. 그러니 95년 <유주얼 서스펙트>에 반했던 관객도 대부분은 그의 본명보다 극중 이름을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목석같이 흐트러짐 없는 태도와 침착한 말투를 유지하면서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는 변호사 고바야시가 바로 그였다.

이안 매켈런과 주디 덴치 등이 거쳐갔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5년간 활동했던 그는 77년 <결투자들>이란 영국영화로 데뷔했다. 강한 인상만큼 순하고 진실한 분위기도 지녔지만 젊었을 적엔 각 많은 얼굴선이 최대로 부각될 수 있는 사악한 역할들을 주로 해왔다. 출연작들 가운데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는 <아버지의 이름으로>와 <브래스드 오프>는 그가 어떤 배우인가를 아는 사람들에게도 인상적인 영화들. 부모의 간섭을 피하고 싶은 철없는 청년 폴(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아버지 쥬세페로 출연한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그는 자상하고 이해심 많은 부성의 온기를 아름답게 정의내린다. 그리고 오스카 회원들은 이 작품으로 그를 남우조연상 후보에 거명했다. <브래스드 오프>의 완고하고 끈덕진 대니는 요크셔의 광부들이 만든 브라스 밴드의 지휘자다. 밴드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결국 이 밴드가 영국 전역에 유명세를 떨치게 만든다. 쥬세페가 따뜻했다면 대니는 뜨겁다. 이후 <로미오와 줄리엣> <드래곤 하트> 등에서 그저 그런 역할만 해오면서 <유주얼 서스펙트>의 인상도 서서히 잊혀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최근작 <쉬핑 뉴스>에서 옹졸한 지방신문사 편집장인 터트 역을 맡으면서, 어리숙한 신입사원이 예상을 깨고 독창적인 재능을 발휘하자 그를 질투해서 못살게 굴려고 하는 편집장의 소심한 내면을 예의 그 커다란 얼굴만 가지고 웬만한 표정변화도 없이 연기했다.

<쥬라기 공원2: 잃어버린 세계>와 <아미스타드>에서 함께 작업했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피트 포스틀스웨이트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언급하기도 했지만, 본인은 이 말을 인용하길 꺼린다. “배우는 결국 거짓말을 하는 직업이다. 전문적인 사기꾼이고 관객은 이를 알면서도 받아준다.”박혜명 na_mee@hani.co.kr

그러니까 그는

희끄무레한 듯 섬세하고, 무난한 듯 도드라졌다

윌리엄 피트너 William Fichtner

1956년생

주요작

1995 <스트레인지 데이즈>

1995 <히트>

1997 <콘택트>

1998 <아마겟돈>

2000 <패션 오브 마인드>

2000 <퍼펙트 스톰>

2001 <블랙 호크 다운>

넓은 이마 아래 날선 콧날을 중심으로 양쪽에 도드라진 광대뼈, 그리고 얄팍한 턱선과 크고 푸른 눈을 가진 배우 윌리엄 피트너를 제대로 포착한 영화는 <블랙 호크 다운>이다. 이전까지 딱히 뚜렷한 인상을 남길 만한 대표작을 갖지 못했던 그에게 델타 부대 소속 제프 샌더슨 중사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무모함과 자신감을 오가면서 여유와 자상함의 균형을 갖춘,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가장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캐릭터 덕에 그는 함께 출연했던 배우 이완 맥그리거보다도 더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피트너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캐릭터의 매력에 대한 무조건 반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얼굴은 어쨌거나 꽃미남도 아니거니와 한 종류의 캐릭터만 파고들기에도 딱히 집어낼 특징이 없을 만큼 무난하므로 그의 맨 얼굴을 제대로 알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무난한 인상만큼 무난한 배역들을 거쳐왔지만 그의 연기는 항상 무난함 이상이었다. 그러니 누군가는 한번쯤 그를 눈여겨봤을지도 모른다. 그가 <퍼펙트 스톰>에서 조지 클루니, 마크 월버그, 존 C. 라일리 등과 한배를 타는 어부 설리 역을 맡아 보여준 연기에 또 누군가는 그를 반가워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캐스팅디렉터가 안목이 없었던 탓에 <진주만>의 그는 어린 아들을 두들겨패는 난폭한 아버지로 초반 2분간 등장했고, 지저분하고 무식한 시골남자의 외양만 도드라지게 남았다.

피트너는 본래 범죄학을 공부해 경찰이 될 생각이었다. 그랬던 그가 힘들게 연기로 전공을 바꾼 뒤 경찰 역에서 돋보이지 않은 것도 의외지만 호프먼이나 라일리 등 여타 유명 조연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연기력을 썩히지 않은 건 잘한 일이다. 아직은 애매한 위치에서 서성이고 있지만, 그런 그를 진작에 클로즈업했던 <아마겟돈>의 카메라를 기억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박혜명 na_mee@hani.co.kr

조연 12인방, 우리 어디서 만났지?꼬리에 꼬리를 무는 조연, 할리우드 링

팝계에 ‘퀸시 존스 게임’이 있다면 영화계에는 ‘케빈 베이컨 게임’이란 게 있다. 즉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케빈 베이컨을 통한다면 6단계 안에 할리우드 배우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 케빈 베이컨에게만 통하는 법칙은 아니다. 위에 소개하는 빛나는 조연 12인방도 연결시켜놓고 보면 다 통하는 구석이 있다.

일단 ‘조앤 쿠색’은 시고니 위버와 <워킹 걸>에서 만났고 시고니 위버는 4년 뒤 <에이리언3>에서 ‘피트 포스틀스웨이트’와 함께 출연했다. ‘피트 포스틀스웨이트’와 ‘톰 사이즈모어’는 <블랙 호크 다운>에서 한 부대 전우로 등장해 생사를 같이했는데 이들은 이 외에도 <히트> <진주만> <스트레인지 데이즈>에서도 만나는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톰 사이즈모어’가 얼 시스턴이란 하사관으로 출연한 <진주만>에서 ‘윌리엄 피츠너’는 조시 하트넷의 아버지로 등장해 두 사람은 촬영장에서는 얼굴을 못 봤겠지만 엔딩 크레딧을 통해 한솥밥을 먹었음을 증명했다.

‘윌리엄 피츠너’는 <퍼펙트 스톰>에서 ‘존 C. 라일리’와 함께 조지 클루니 선장이 이끄는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기구한 어선에 함께 승선했다. ‘존 C. 라일리’는 <디 아워스>에서 줄리언 무어의 성실한 남편으로 등장했지만 안타깝게도 아내의 마음은 옆집 사는 여인 키티로 등장한 ‘토니 콜레트’에게 빼앗겨버렸다. <식스 센스>에서 ‘토니 콜레트’의 예민한 아들로 등장한 할리 조엘 오스먼트는 에서 사랑스런 로봇아이 데이빗으로 분해 ‘프랜시스 오코너’의 따뜻한 품을 얻기 위해 몇만년의 시간여행을 떠난다. ‘프랜시스 오코너’는 <어니스트되기의 중요성>에서 콜린 퍼스와 사랑의 줄다리기를 벌이는 여자로 호흡을 맞추었는데 콜린 퍼스는 바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르네 젤위거의 백마탄 왕자 마크 달시 역으로 출연했으니, 잘만 풀리면 브리짓의 아버지로 등장한 ‘짐 브로드벤트’의 사위가 되는 셈.

‘짐 브로드벤트’는 ‘다이앤 위스트’와 <브로드웨이를 쏴라>에서 오래 전 조우한 적이 있고 ‘다이앤 위스트’는 <호스 위스퍼러>에서 크리스 쿠퍼와 만난다. <어댑테이션>에서 극중 책인 <난초도둑>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크리스 쿠퍼’는 극작가 니콜라스 케이지를 이 책 때문에 머리빠지게 만들고 니콜라스 케이지는 <스네이크 아이즈>에서 ‘루이즈 구즈만’과 권투선수 대기실 문 앞에서 잠시 스쳐 지나간다. ‘루이스 구즈만’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과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 <펀치 드렁크 러브>에 이르기까지 P. T. 앤더슨의 대부분의 작품에 함께 출연한 두말할 것 없는 단짝친구.

그렇다면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다시 ‘조앤 쿠색’과 만날까?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유일한 주연작인 <러브 리자>의 감독인 토드 루이소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레코드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존 쿠색의 친구로 출연했는데, ‘조앤 쿠색’은 이 영화에서 존 쿠색이 힘들 때마다 전화질을 해대는 친구로 등장했다. 그리고 전화는 세계 어디서나 버튼만 누르면 통한다. 뛰어봤자 손바닥 안. 이것이 윤회보다 더 끈질긴 ‘할리우드 링’이다.백은하·박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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