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미국에서는 흥행면에서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트루먼 쇼>의 작가이자 <가타카>의 감독이었던 앤드루 니콜의 <시몬>은 기발한 설정 때문에 흥미를 끄는 영화다. 중요한 것은 컴퓨터를 통해 탄생한 디지털 배우가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 스타가 된다는 설정이 이제는 그다지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배우들이 인간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모습이 그만큼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시몬>에서처럼 디지털 배우라는 사실 자체를 숨길 수 있는 상황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최소한 영화 속에서는 디지털 배우의 등장을 별로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변화는 최초의 디지털 배우라고 할 수 있는 <드레곤 하트>의 드레이코 이후, 은막을 빛낸 많은 디지털 스타들과 그들을 만들어낸 할리우드 전문가들의 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디지털 배우의 탄생과 성공에 대한 특집 ‘Virtual actors’를 홈페이지를 통해 게재하면서, 역대 최고의 디지털 배우들을 선정, 발표했다. 8위에는 <스쿠비 두>의 주인공 스쿠비 두, 7위에는 <맨 인 블랙> 시리즈에 등장하는 벌레 모양의 외계인들, 6위에는 스튜어트 리틀, 5위에는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T-렉스, 4위에는 <터미네이터2>의 T-1000이 각각 선정되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3위를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등장하는 골룸이 차지했다는 사실. 1, 2위에 오른 <스타워즈>의 요다와 <슈렉>의 슈렉이 가지고 있는 중량감을 생각하면, 1편에 잠깐 등장했던 골룸의 3위 등극은 놀라운 ‘사건’이라고 부를 만하다. 골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의 개봉을 앞두고 있던 지난 가을에 이 순위가 발표되었음을 생각한다면, 골룸이라는 디지털 배우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골룸을 3위에 선정한 이유를, ‘그는 에서 비행기 날개 위에 있던 괴물, <구니스>의 추악하게 생기긴 했지만 마음은 착한 괴물 등 많은 영화 속 괴물들을 하나로 합쳐놓고는 더 뒤틀어놓은 것 같다. <반지원정대>에서 잠시 비친 그의 모습만으로도,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예견하게 하기 충분했다’라고 밝혔다. 사실 골룸에 대한 기대감은 여러 채널을 통해 터져나왔다. 우선 <반지의 제왕> 공식 홈페이지에는 골룸의 제작과정에 대한 뉴스가 거의 실시간으로 제공되어왔다. 그중에서도 <반지원정대>에 나왔던 골룸과 <두개의 탑> 예고편의 골룸 그리고 <두개의 탑> 본편의 골룸 사이에 기술적인 차이점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네티즌 팬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어모았다. 새로운 디지털 스타의 탄생과정이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련된 기사들을 읽어보면, 마치 골룸의 제작과정이 한 생명의 탄생과정처럼 숙연하게 기술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상황이 그러하니 골룸을 ‘연기’한 엔디 서키스라는 배우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던 것은 당연한 일. 그는 정통 연극뿐만 아니라 TV 미니시리즈 등을 통해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영국 출신의 연극배우로, 마이크 리 감독의 <Tupsy-Turvy>와 같은 영화를 통해서 일부 영화팬들에게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런 그가 온몸에 모션캡처용 센서를 붙이고 골룸만의 독특한 몸동작을 연기하고, 더 독특한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아주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고통이 묻어나는 골룸의 목소리를 위해 꿀과 레몬 그리고 생각을 섞은 ‘골룸 쥬스’를 만들어 먹어야 했고, 뉴질랜드의 촬영현장에 있을 때는 엄청난 외로움 속에 살아왔던 골룸의 심리상태에 가까워지기 위해 촬영진들과 떨어진 산 속의 오두막에서 혼자 생활했던 이야기는 그를 추종하는 팬들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 인터넷에는 그의 그런 인기를 대변하는 팬페이지들이 수십개나 생겨난 상황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엔디 서키스를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로 거론하는 이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11월22일 타전한 기사를 통해, 그런 분위기를 감지한 제작사 뉴라인시네마가 이미 그의 후보지명을 위한 전략을 구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만약 그의 후보 추대가 성공한다면 할리우드 역사상 처음으로 영화에 자신의 모습을 한번도 드러내지 않은 배우가 후보로 지명되는 기록을 남기게 되는 것이라,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중이다. 엔디 서키스 역시 그런 흐름에 맞추어 본격적인 할리우드 내에서의 입지 구축을 위해, 유명한 배우 에이전시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에이전시는 <두개의 탑>의 미국 내 흥행이 최고조에 달하기 시작하면, 엔디 서키스의 후보 지명 가능성이 점차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여하튼 엔디 서키스라는 배우의 숨은 노력으로 탄생한 골룸의 활약은 <두개의 탑>뿐만 아니라 <제왕의 귀환>으로 이름지어진 3편에서도 가장 기대가 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요다의 견고한 아성에 도전하는 일은 아직 무리인 것으로 보이지만, 최소한 슈렉의 자리를 넘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만들어지게 될 골룸의 좋은 이미지가 영화의 내용과는 무관한 마케팅적인 목적으로 활용되면서 흐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부 골룸의 팬들이 엔디 서키스라는 배우에 쏠리고 있는 지대한 관심에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골룸 팬사이트 : www.gollum-online.net
<반지의 제왕 3부작> 공식 홈페이지 : www.lordoftherings.net
<반지의 제왕> 한글 공식 홈페이지 : www.banz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