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키즈 리턴>(1996)을 극장에서 보고 돌아와 잠시 행복했다. 재작년에 국내 개봉한 이 영화를 비디오가 아닌 스크린으로 다시 볼 수 있었던 건 서울 동숭동의 하이퍼텍 나다가 개관 두 돌을 맞아 ‘나다 베스트 컬렉션’ 13편을 앙코르 상영한 덕분이었다. 이 행사는 오늘(30일)까지 열린다. 낮 시간임에도 객석이 거의 다 찰 정도로 관객들의 호응도 좋은 편이었다.
‘놓친 영화’를 스크린으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잇따라 마련돼 반갑다. 서울 명동 중앙시네마( www.jacinema.co.kr,02-776-8866)는 다음달 6∼12일 올해 국내 개봉한 영화 가운데 화제작들을 모아 ‘캐치 미 영화 모음전’을 연다. 이 기획전에서는,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으나 대형 블록버스터에 눌려 스크린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헤드윅> <워터보이즈> <레퀴엠>을 비롯해,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던 <생활의 발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8편이 상영된다.
여섯 번의 행사를 치른 인권영화제(02-741-5363)도 영화제에서 주목을 끈 작품들을 극장에서 다시 상영하는 ‘정기상영회’를 마련한다. 그 첫 작품으로 미국 사진작가 제임스 나트웨이를 다룬 다큐멘터리 <전쟁사진작가>를 다음달 7일 광화문 아트큐브에서 3시와 6시 두 번 상영한다.최근 한국의 스크린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앞으로 2년 새 현재 스크린 수(829개)의 거의 두 배인 1600개까지 늘어날 거라는 전망도 나와 있다. 스크린 수 급증을 주도하고 있는 건 복합상영관들이다. 한가지 불만스러운 건 이 복합상영관들이 패스트 푸드점 등 주변 편의시설의 확충엔 공을 많이 들이지만, 정작 관객에게 영화의 다채로운 매력을 제공하려는 기획은 거의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스크린이 열 개쯤 되면 그걸 온통 관객 잘 드는 흥행작으로만 채울 게 아니라, 하나쯤은 영화 마니아들이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획전이나 앙코르 상영이 상시적으로 열리는 공간으로 제공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기획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넘쳐나는 영화 인력의 일부나마 극장에서 소화하게 될 것이고, 영화 마니아들이 찾는 빈도수 만큼 그 복합상영관의 이미지도 좋아질 것이다. 머잖아 스크린 수 늘리기 경쟁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을 때, 영화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영화 마니아층을 두텁게 만드는 길밖에 없다. 멀리 보고 길게 승부하려는 마음이 아쉽다.
이상수 기자